성냥개비를 괜히 물고 갖은 폼을 잡았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영웅본색>(1986. 오우삼 감독)은 80년대 홍콩누아르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커다란 화제를 모았지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 이름은 알만큼 유명한 영화지요. 검은색 바바리코트에 선글라스, 쌍권총을 동경하며 영화 주인공들에게 껌뻑 죽었지요.

현재 상영하고 있는 <영웅본색>에 이어 <영웅본색2>(1987. 오우삼 감독)가 11월 20일 재개봉하네요. 한 시기를 풍미했던 영웅본색 시리즈가 80년대 홍콩영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킬지 주목되네요. 20년 전 주윤발, 장국영, 적룡이 내한해 홍보했따는 드림시네마 영화관에서 시사회를 봤답니다.

포스터 음모와 배신을 당하며 이리저리 고생하는 주인공들, 그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있지요.

▲ 포스터 음모와 배신을 당하며 이리저리 고생하는 주인공들, 그들의 모습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있지요. ⓒ 클래식 시네마


시대를 풍미한 영웅본색 시리즈 돌아오다

전편에서 열혈 경찰 송자걸(장국영 분)은 화폐를 위조하는 자신의 형 송자호(적룡 분) 때문에 아버지도 죽고 승진도 되지 않아 분노를 하고 있었지요. 초라하게 살고 있는 친구 마크(주윤발 분)를 보고 충격을 받지만 손을 씻은 송자호는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 다짐하지요. 그러나 송자호의 출감으로 암흑가는 술렁입니다. 송자걸 살해 음모를 알게 된 송자호는 마크와 마지막으로 '한탕'에 나서지요.

마크의 죽음으로 아우와 화해를 하지만 송자호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2편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요. 감옥에 있는 송자호에게 정부는 송자호의 사부였던 용사(석천 분)의 뒷조사를 부탁하지요. 용사도 손을 씻었다고 거부하지만 동생 송자걸이 이 일에 깊게 개입되어 있고 위험하다는 걸 안 송자호. 그는 끔찍한 동생사랑으로 감옥을 나와 용사를 찾지요.

용사는 합법 선박회사를 운영하며 살고 있었으나 위조지폐단이 선박회사를 노리고 용사의 숨을 조여오고 있었지요. 송자걸이 용사의 딸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캐내려고 할 때 회사 2인자 고영배(관산 분)는 용사가 위조지폐단 두목을 살인한 것처럼 음모를 꾸미지요. 용사는 누명을 쓰고 미국으로 도망가고 고영배가 용사의 딸을 죽이고 위조지폐단과 선박회사를 다 거느리게 되지요.

영화는 20년이란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매력을 뿜어내내요. 1편에서 마크가 죽었으나 '멋진 주윤발'을 영화에 출연 안 시킬 수 없지요. 쌍둥이 동생 켄이 미국에서 살고 있다는 설정으로 주윤발을 부활시키네요. 용사는 딸의 죽음과 15년 동안 쌓아올린 회사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정신착란에 빠지죠. 용사를 죽이러 온 마피아들을 상대하는 켄은 정신 차린 용사와 함께 홍콩으로 돌아와 복수에 참여하지요.

"동생 지키려고 하는 것인데 동생을 쏘다니." 동생을 지키려고 들어간 조직인데 그는 동생을 쏘게 되지요. 비극성을 키우는 누아르 형식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주고 받는 대화들은 20년이 지나서 지켜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 "동생 지키려고 하는 것인데 동생을 쏘다니." 동생을 지키려고 들어간 조직인데 그는 동생을 쏘게 되지요. 비극성을 키우는 누아르 형식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주고 받는 대화들은 20년이 지나서 지켜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 이인


배신과 음모,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

뒷조사를 하려는 송자호는 옛 명성을 미끼로 선박회사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고영배는 송자걸을 죽이면 받아주겠다고 하지요. 상대는 수십 명인데 혈혈단신으로 거래를 하러 오는 송자걸은 황당하죠. 송자호는 사로잡힌 송자걸에게 총을 쏠 수밖에 없게 되지요. 동생을 지키려고 가석방되어 범죄조직에 잠입했는데 동생에게 총을 쏘는 상황이 생기네요.

더구나 고영배는 송자호를 믿지 않아 송자호를 함정에 빠뜨리죠. 송자호 무리는 곤경에서 간신히 빠져나오지요. 한편, 가까운 거리에서 총을 두 방 맞은 송자걸은 금세 나아서 또 혼자 수백 명이 있는 고영배 집에 잠입하지요. 돈을 위조하는 근거지를 찾아내나 들켜서 죽게 됩니다. 마침 송자걸 아내가 아이를 낳는 때이기에 더 비극이 되죠.

송자걸이 죽기 직전, 피를 흘리며 공중전화에서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80~90년대 많은 패러디를 낳기도 하지요. 이 밖에 켄이 계단에서 뒤로 미끄러지면서 총을 쏘는 장면이 있는데 10년 뒤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가 몸을 뒤로 젖히면서 총을 피하는 장면처럼 사람들에게 굉장한 인상을 남겼었지요.

"아기가 보고 싶어" 일에 매달려 바람피는 것처럼 오해를 낳고 출산하는 아내 곁을 지키지도 못하는 송자걸이 죽기 직전 아내와 통화를 하고 있네요. 성인 남성들 과로사가 연상되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떠나기 전에 중요한 게 보이니까요.

▲ "아기가 보고 싶어" 일에 매달려 바람피는 것처럼 오해를 낳고 출산하는 아내 곁을 지키지도 못하는 송자걸이 죽기 직전 아내와 통화를 하고 있네요. 성인 남성들 과로사가 연상되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떠나기 전에 중요한 게 보이니까요. ⓒ 클래식 시네마


송자걸의 복수를 위해 용사, 송자호, 켄은 죽여도 끝없이 사람들이 나오는 고영배집을 담넘어 들어가지요. 그 수백명은 담은 지키지 않고 농담 따먹기만 하는지 세 명의 총질에 전부 나가떨어지죠. 이렇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웅본색은 배신과 음모, 거기서 피어나는 남자들의 의리와 우정을 다룬 홍콩누아르 영화지요.

비장미? 오히려 웃겨요

그러나 영웅본색이 멋지기만 한 영화는 아니더군요. 20년이란 시간이 지난 오늘날 영화가 갖고 있는 비장미와 주인공들 의협은 돌아볼 필요가 있지요. 영화가 갖고 있는 어떠한 정서에 왜 사람들이 열광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20년 전 시대상과 정서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려고 해요. 화끈한 총질과 이른바 '똥 폼 액션'이 얼마나 불편할 수 있는지 점검하려고 해요.

암울한 상황에서 비장미를 뿜어내지만 오히려 꽤 웃겨요. 세 명이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죽이지요. 상대 조직은 싸움 한 번 안했는지 좁은 문을 열고 동시에 몰려나오다가 벌집이 되지요. 분명히 상대도 총을 주인공들 몸 쪽으로 쏠 텐데 총알들은 꼭 발 주변에서 불꽃을 내며 떨어지죠. 마치 보호막이 있는 것처럼.

오우삼 감독도 너무 했다 싶었는지, 아니면 비장미를 더 높이려고 주인공들을 몇 발 맞게 하지요. 하얀 와이셔츠에 묻어나는 피는 그들을 숭고한 것처럼 보이게 하네요. 송자걸을 죽인 킬러에게 켄은 1편에서 절뚝거리던 마크처럼 총을 다리에 맞습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킬러는 총을 주며 똑같은 조건에서 누가 빠르게 총을 쏘나 대결을 하지요. 마구 총을 쏘아대며 '학살'하는 게 너무 했다 싶었는지 갑자기 일대일 대결을 넣어 멋지게 총을 쏘는 것을 보여주려 하네요.

주인공들은 끝까지 그럴싸한 겉멋을 내지요.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경찰들이 나타날 때까지 의자에 앉아서 '가오 잡는' 모습은 멋지다기보다는 안쓰럽더군요. 얼마나 아프겠어요. 얼른 병원 가야지. 누가 봐주지 않으면 그런 가오도 안 살지요. 배신한 고영배를 해치우는 것이 대단한 것처럼 비장하게 그려지는데 착각이죠. 그들이 선이어서 악을 무찌른 게 아니라 그들은 자신의 곁에 있다가 배신한 사람들을 죽였을 뿐이에요.

"아파 죽겠어." "조금만 참아,  우린 영웅이잖아." 총을 많이 맞은 그들, 수많은 시체들 옆에서 자랑스럽게 '가오' 잡으며 앉아있지요. 예전에는 비장미있고 멋져 보였던 그들, 이제는 얼른 병원가서 치료받았으면 좋겠네요.

▲ "아파 죽겠어." "조금만 참아, 우린 영웅이잖아." 총을 많이 맞은 그들, 수많은 시체들 옆에서 자랑스럽게 '가오' 잡으며 앉아있지요. 예전에는 비장미있고 멋져 보였던 그들, 이제는 얼른 병원가서 치료받았으면 좋겠네요. ⓒ 클래식 시네마


내부의 배신과 불의한 세상

왜 영웅본색에 사람들은 열광했을까요. 배우들의 멋진 모습도 끌렸겠지만 아마도 사내들의 의리에 반했을 거예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의를 잊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복수를 감행하는 주인공들은 누가 봐도 멋지니까요. 그들에게 빨려 들어가 배신당할 때 마음 아파하고 마음 졸이게 되지요.

그러나 꼭 자기편에서 배신이 일어나는 걸 주인공들은 모르죠. 미리 사람들 챙기거나 신경쓰지 않다가 뒤늦게 알고 나서 복수를 하죠. 여기서 짚어볼 게 있지요. 적은 외부에 뚜렷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편)안에 있는 설정이죠. 그리고 이 설정이 관객들에게 엄청나게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죠. 현실에서도 또렷하게 상대해야 할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 자기편에게 뒤통수 맞으며 살아가니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배신과 음모는 사람들에게 먹혀들었죠.

영화에서도 경찰과 당국은 늘 한발 늦고 뒷북치기 일쑤지요. 믿을만한 것은 주인공들 자신이라는 사실은 많은 걸 의미하지요. 주인공들 역시 범법자이거나 자신들의 싸움이 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영역이기에 오직 자신과 친구들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러한 상황은 한국 사회에 상당히 들어맞는 구석이 있지요.

20년 전, 힘이 있는 자가 법이었고 불의를 저질러도 윗자리에만 오르면 되는 사회였지요. 법을 무너뜨린 사람이 떵떵거렸고 불의한 사람에게 합당한 대우를 할 수 없었지요. 법이 정의를 세우지 못하는 현실에서 '영웅'들이 불의를 소탕하는 영화를 보며 관중들이 얼마나 속시원하였을까요. 그들이 쏘는 총질에 쓰러지는 악당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죠.

강호에 도의는 땅에 떨어졌어도 그들은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기에 영웅이 되지요.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는 현대 세상이 영웅본색 배경이지요. '불신사회'는 여전히 유효하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고 있지요. 우리는 서로 믿지 못하고 살아가니까요. 영어 제목이 a better tomorrow듯이 더 나은 내일을 바라며 사람들은 살고 있지요. 오늘은 그다지 좋은 날이 아니지요. 늘 미래에 저당 잡힌 오늘이지요.

1편에서 비폭력으로 일관되게 행동하고 송자호를 받아주던 진정한 영웅 견숙(증강 분)이 2편에서 갑자기 '대량살상 무기'들을 제공하는 무기상이 되어 안타까웠지만 영화는 20년이 지나도 재미있네요. '영웅'이 그리운 사람들은 모처럼 영화관을 찾아 강산이 2번 변한 과정 동안 세상과 영화의 느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네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씨네21 개인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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