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폭스드>(Outfoxed)

<아웃폭스드>(Outfoxed) ⓒ Brave New Films

미국의 조중동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블 뉴스채널 <폭스뉴스>는 미국 보수의 목소리를 대표한다. 중도적 성향의 CNN과 달리 <폭스뉴스>는 노골적으로 우파의 논평과 뉴스를 섞어서 방송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몇 번 <폭스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주장은 참아준다고 해도 근거없는 비방으로 일관된 뉴스는 짜증이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심각성이 이미 도를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버트 그린왈드(Robert Greenwald)가 감독한 <아웃폭스드>(Outfoxed)는 루퍼트 머독의 <폭스뉴스>가 저널리즘에 심각한 위기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은 사라지고 공화당의 이익에 철저히 봉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을 차분히 보여준다. 이 작품은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처럼 냉소적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확실한 증거와 조심스런 인터뷰를 바탕으로 <폭스뉴스>의 문제점을 고발한다.

비민주적 뉴스생산

기자들이 뉴스거리를 찾아내고 편집진의 선택을 통해서 이뤄지는 상향식 뉴스과정이 일반적 저널리즘이다. 하지만 <폭스뉴스> 채널은 이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고 사주나 경영진이 뉴스를 결정하고 기자가 뉴스를 찾아내는 하향식 뉴스결정을 따른다.

이런 비민주적 뉴스결정은 매일 아침 메모형식의 보도지침으로 기자에게 내려온다. 그날 다뤄야 할 주제뿐 아니라 단어의 선택이나 동영상 촬영방법까지 상세히 명시되어 있다. 전두환 정권시절의 보도지침 같은 언론통제가 정부가 아닌 사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만 다를 뿐이다.

폭스식 비민주적 뉴스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뉴스가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현실을 왜곡하는 순간, 권력이 된다. 전직 <폭스뉴스> 기자의 고백은 현실 왜곡의 한 단면을 명백히 보여준다.

존 드 프레(Jon Du Pre) 기자는 레이건 대통령 생일날 레이건 도서관 보도를 배정받았다. 축제 분위기를 보도하라는 상부의 명령이었지만 도서관에는 소수의 초등학생 견학이 전부였다. 존 드 프레 기자는 억지로 촬영을 강행해서 필요한 보도를 했지만 충분히 축제의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직을 당하게 되었다.

경영진의 머릿속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폭스뉴스>의 기자는 선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뉴스생산 체계가 비민주적이기 때문에 잘못을 바로 잡을 방법도 구조적으로 막혀 있다. 경영진은 자신의 가치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케이블로 전파할 수 있다. <폭스뉴스>는 파시즘 정권의 언론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솔직하지 않은 <폭스 뉴스>

역설적이게도 <폭스 뉴스>의 캐치프레이즈는 '공정하고 균형잡힌(Fair and Balanced) 시각'이다. 그러한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의 목소리를 같은 비중과 태도로 다뤄야 한다. 하지만 <폭스뉴스>는 사회 현안에 관해 보수 인사들 위주로 인터뷰한다. 80%의 보수인사와 20%의 진보인사를 모아놓고 벌이는 토론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반면 중도를 지향하는 CNN방송은 똑같은 수의 진보와 보수 논평자를 모아놓고 토론한다. 어느쪽이 더 공정한 방송에 가까울까?

<폭스뉴스>의 앵커가 상습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누군가 말하길"(Some say)이 있다. 이 말은 정보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서 쓰는 저널리즘의 표현이다. 하지만 <폭스뉴스> 앵커는 정보원 보호와 상관없이 앵커나 경영진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 말을 남용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폭스뉴스>는 제3자의 의견을 전달하는 척 하면서 앵커의 의견을 은근슬쩍 전달한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이라고 말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앵커는 <폭스뉴스>의 아이콘이 되었다.

공정한 방송을 한다면서 <폭스뉴스>는 게스트를 불러놓고 말도 못하게 혼을 낸다. <폭스뉴스>의 대표 앵커 빌 오라일리(Bill O'Reilly)는 인터뷰를 하다가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무조건 "입 닥치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망가지는 저널리즘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폭스뉴스>의 시청률이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는 <폭스뉴스>의 선정적인 선동에 반응하고 있다. 폭스채널의 오라일리의 지난 9월 평균 시청자는 400만 명이다. 이는 동시간대 최고 뉴스 시청률이다.

매일 400만이 넘는 미국의 시청자가 허구에 가까운 쇼를 보고 있는 것이다. 폭스채널은 사주의 개인적 주장을 사실과 적당히 섞어 기사를 만들어 낸다. 기사 중간마다 "공정하고 균형있는 뉴스"라는 주문을 걸면서 <폭스뉴스>는 저널리즘을 망가뜨리고 있다.

<폭스뉴스>의 인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요즘 시청자들은 사실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뉴스보다, 비록 선동적이라도 논평이 담긴 뉴스를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논리 대결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실이나 근거가 뒷받침되지 않은 비방이나 협박은 저널리즘이라고 볼 수 없다. <폭스뉴스>가 미래의 저널리즘이 된다면 뉴스에서 합리적 토론은 사라지고 시장판의 개싸움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오랜만에 <폭스뉴스>를 다시 봤다. 민주당 대선후보 오바마가 테러리스트나 위험 인물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런 근거도 없는 사실을 바탕으로 오바마를 위험한 인물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폭스뉴스> 속 오바마는 이슬람교를 믿는 테러리스트이자 공산주의 혁명가로 그려지고 있다. 사실 확인이라는 저널리즘의 기본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억지 주장과 사실 왜곡으로 채워지는 <폭스뉴스>는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 같다.

폭스뉴스 보수 방송국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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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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