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영화제 본부인 피프 파빌리온이 설치된 해운대 전경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제 본부인 피프 파빌리온이 설치된 해운대 전경 ⓒ 부산국제영화제


1분 30초와 7분 6초 만에 각각 매진시킨 개막작과 폐막작, 예매 개시 40분 만에 팔려나간 5만장의 티켓, 하루만에 예매분이 동난 301회 상영. 개막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을의 전설 부산영화제의 기세가 무섭게 나타나고 있다. 영화 한편 보려는 관객들의 분투기가 거의 전설처럼 들릴 정도다. 관객의 관심으로 영화제 순위를 매긴다면 아마 세계 1위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관객들의 사랑은 짧은 시간동안 영화제가 큰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했고, 이제는 수십 년 된 유서 깊은 영화제들과 어깨를 맞추기에 이르렀다. 초창기 프로그래머들이 미지의 나라에서 열리는 이름 없는 영화제 취급을 당하던 것에 비한다면 격세지감이다. 그때는 영화 한편 달라고 사정했는데, 이제는 골라서 받아야 할 정도까지 됐다.

미지의 나라 영화제서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이만큼 성장하니 이제는 앞에 따라 붙는 수사가 달라진다. 성장을 과시하고 싶은 분위기 탓이다. 흔히 부산국제영화제를 칭하는 일반적인 수사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라는 것. 하지만 이는 도쿄나 홍콩, 상해 등도 사용하는 명칭이다. 독점이 아닌 공유하는 수사라고 할 수 있다. 부산보다 10년~30년 이상 앞서 시작한 도쿄나 홍콩이 아시아를 대표하던 영화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산을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부르는 것은 과장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부산의 위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곳은 없다. 아시아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부산에 가야한다는 것은 세계 영화계의 일반적 상식이다. 최근의 평가도 이를 뒷받침 한다.

지난 4월 세계적인 영화 미디어 전문지인 할리우드 리포터가 아시아판 홈페이지를 오픈하면서 "태평양권에서 비즈니스하기에 가장 좋은 영화제는 어디인가?"라는 주제로 온라인투표를 진행한 바 있다. 투표 결과, 부산국제영화제가 65%로 1위, 홍콩영화제가 23%로 2위, 도쿄영화제가 9%로 3위, 싱가포르영화제가 2%로 4위였다.

지난해 미국의 전국지 <유에스에이투데이>(USA Today)는 전 세계 대륙별로 가장 인기 있는 영화제 22개를 선정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를 그중 하나로 꼽았다. 아시아권은 부산과 두바이영화제 둘이었다.

 10월 2일 개막하는 13회 부산국제영화제

10월 2일 개막하는 13회 부산국제영화제 ⓒ 성하훈


그렇지만 아시아 순위로는 다들 만족하지 못한다. 관객들의 관심은 세계 순위가 어느 정도 인지에 모아진다. '현재 부산은 세계 영화제들 중에 몇 위 정도일까?' 질문에 대한 답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다. 아시아 최고니 세계 10대 영화제니, 5대 영화제니 각각에서 이런 저런 주장들이 나오지만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외에는 딱히 정해진 것이 없이 각 영화제의 주장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제의 성격과 특색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겠지만 세계 영화계에서 부산이 받는 대접과 영화제의 객관적 수치를 기준으로 한다면 부산이 전 세계 영화제들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대략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와 관련 김동호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제 위상에 대해 재밌는 표현을 썼다. "영화제라는 것이 일률적으로 순위를 매기기는 불가능하고 적당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이전과 비교해 볼 때 김동호 위원장이 언급은 꽤 여유 있게 보였다. 작년만 해도 부산영화제의 분야별 순위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미 어느 정도 정상의 위치에 근접한 사람이 보이는 느긋함과 함께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는 태도로 비쳐졌다. 

작품 질은 8위, 관객수는 5위권

지난해 김동호 위원장이 밝힌 1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과는 세계 상위권이었다.

우선  일단 작품의 질 면에서는 세계 8위권. 지난해 작품 완성 후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월드프리미어는 65편이었고, 자국에서만 상영되고 외국에 처음 상영되는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는 26편이었다.

경쟁 영화제인 칸 베를린 베니스와 비경쟁 영화제에서 규모가 가장 큰 토론토 등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산이 그 뒤를 쫓고 있는 것이다. 메이저 영화제들을 열외로 한다면 부산은 4위권까지 올라간다.

관객규모는 세계 5위권이었다. 비가 오는 가운데도 19만 8천의 최대 관객이 찾으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많이 드러났음에도 관객들은 부산에 변함없는 애정을 쏟은 것이다.

김동호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를 대표해 유네스코의 펠리니 메달을 수상하고 있다.

▲ 김동호 집행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를 대표해 유네스코의 펠리니 메달을 수상하고 있다. ⓒ 최윤석

하지만 다른 영화제들의 경우 영화제를 찾는 일반 손님들까지 계산해 발표하고 그래야 30만명 정도 규모가 최대인데 반해 부산은 순수 관람객(티켓 발권 기준)만 산출했기에 사실상 관객 규모 면에서는 그 이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전 세계에서 관객이 많은 영화제로 손꼽히는 곳은 로테르담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 토론토영화제 등이다. 올해 로테르담이 발표한 총 관객수가 35만5000명. 베를린은 '극장을 찾은 관객수'는 45만115 명, 티켓 발권 수는 24만98명으로 집계했다.

그런데 영화제에 따라 관객 집계 방식은 차이가 난다. 로테르담영화제의 관객 수는 티켓 발권 숫자가 기준이 아닌 참관자 수를 합산한 것이고 베를린은 각각을 구분했기 때문이다. 실제 작품을 관람한 관객 수는 베를린영화제의 발표가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국내의 경우 올해 전주영화제가 밝힌 관객 숫자는 25만 여명. 티켓 발권과 관람객수를 합산한 수치다. 이런 기준이라면 부산의 관객은 훨씬 늘어난다.

이와 관련, 부산영화제 측은 올해는 다른 영화제들처럼 참관자 숫자까지 계산할 예정이라고 밝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영화는 안 보더라도 남포동이나 해운대를 찾는, 그래서 영화제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까지 포함시킨다면 단연 세계 상위에 해당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받은 펠리니 메달도 매우 의미가 큰 상이었다. 유네스코가 제정해서 문화다양성에 기여한 사람 또는 단체에 주는 상인 펠리니 메달은 영화제로서는 칸영화제가 처음 수상했고, 그 다음이 바로 지난해 수상을 부산국제영화제였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제치고 부산이 수상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문화 다양성을 향한 부산의 의지가 평가받는 대목이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서 칸 베니스 보다 높은 의전 받아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 8대 영화제 중 하나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이었다.
유럽연합(EU) 산하의 유럽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제의 미래 역할'이란 주제로 2001년 11월 1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영화제정상회의(Summit Meeting of the Film Festival Directors)에 주목받는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초청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부산영화제에 보내 왔던 것.

세계 주요 영화제 조직집행위원장이 참석하는 정상회의에 김동호 위원장에 초대되면서 부산영화제는 위상이 격상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당시 참석대상은 칸의 티에리 프레모, 베를린의 디이터 코슬릭, 베니스의 알베르토 바베라, 토론토의 피어스 핸드링, 선댄스의 제프리 길모어, 카를로비 바리의 에바 자하로바, 산 세바스천의 미켈 올라치레기 등 8명의 위원장이었다.

부산의 김동호 위원장이 2006년에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의 이사로 선임된 것도 의미있는 부분이다. '국제영화제를 공인'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국제영화제작자연맹의 이사진은 12명으로 이 중 영화제 관계자는 6명이다. 칸 베를린 베니스에 산세바스찬, 토론토 영화제가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부산의 위치를 짐작할 수가 있다. 

최근의 예를 하나 들자면 올해 베를린 영화제의 김동호 위원장에 대한 의전은 지난해와 비교해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칸이나 베니스 영화제 위원장들에 비해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의전이 제공된 것이다. 국제 행사의 의전이란 것이 안에 담겨진 함축적 의미가 크기에 부산국제영화제의 위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9월 4일~13일까지 개최된 토론토 영화제. 비가 오는 가운데도 상영관 앞에 관객들이 몰려 있다.

지난 9월 4일~13일까지 개최된 토론토 영화제. 비가 오는 가운데도 상영관 앞에 관객들이 몰려 있다. ⓒ 토론토영화제


올해 영화제의 사정을 보면 부산의 위치는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영화제의 위상은 다른 무엇보다 영화작품으로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일단 프리미어 작품 수에서 지난해를 압도한다. 올해 출품되는 60개국 315편의 영화 중 월드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가 85편에 인터내셔널 프리미어(자국 상영 후 해외 최초 상영)가 48편, 아시아프리미어(아시아 대륙 최초 상영)가 95편이다. 프리미어 작품수는 228편이며 비율로 따지면 72% 정도다.

'이 정도가 뭐가 대단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난 4일 개막된 북미 최대 영화제인 토론토 영화제와 비교해 본다면 부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토론토 영화제는 부산과 같은 비경쟁 영화제로 관객이 많이 몰리는 영화제로 유명하다. 1976년 시작돼 올해 33회를 맞고 있으며 칸 베를린 베니스 등과 함께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히기도 한다.

올해 토론토 영화제의 참가작 규모는 64개국 312편. 이중에서 월드, 인터내셔날, 북미 프리미어 숫자는 모두 237편으로 비율로는 76%다. 13번째를 맞는 영화제와 33번째를 맞는 전통 있는 영화제가 거의 같은 규모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부산의 질적인 수준이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큼 컸음을 나타내 주는 대목이다.

부산의 프리미어 작품 숫자는 세계 정상급

부산영화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장편이 107편이나 되는 133편의 월드 인터내셔날 프리미어 숫자는 세계 정상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칸 베니스 베를린과 초청작의 면면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이들 보다 많다"고 말했다. 이들 영화제들의 공식 초청작 자체가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부산보다 프리미어가 많은 영화제는 토론토, 로테르담 영화제 정도"라며 "이들 영화제는 공통적으로 비경쟁영화제이면서도 3대 메이저 영화제의 턱 밑까지 그 위상이 올라가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특히 가을에는 다른 계절에 비해 영화제들이 많이 몰려 있기 때문에 영화제간 프리미어 작 품 유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베니스는 논외로 하더라도 로카르노(8월), 몬트리올(8월), 토론토(9월), 벤쿠버(9월), 도쿄(10월), 로마(10월), 뉴욕(10월), 런던(10월) 등과 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133편의 월드·인터내셔날 프리미어 확보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는 수치"라고 김 프로그래머는 강조했다.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 담당 수석 프로그래머

▲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 담당 수석 프로그래머 ⓒ 성하훈


이러한 위상을 반영하듯 올해 부산영화제 게스트는 8000명 선에 이른 다는 것이 영화제 조직위 측의 전언이다. 조직위가 공개한 올해 부산에 오는 세계 영화제 관계자들은 칸, 베를린, 선댄스, 로테르담, 토론토, 로카르노, 도쿄 영화제는 물론 방콕, 싱가포르, 하와이, 도빌 등 30여개 영화제의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들로 그 증가 폭이 상당히 넓다고 한다.

또 초청이 아닌 자비를 들여오는 단체 참가도 늘어났고, 주요 국가나 단체들의 프로모션 행사도 현저히 늘어났다고 전했다. 아시아권에서 이런 정도의 프로모션용 파티가 개최되는 영화제는 부산이 유일하며, 부산이 해외 영화의 아시아 시장 진출에 가장 중요한 장임을 입증하는 사례라는 것이다. 

PIFF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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