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노동자체육관에 설치된 복싱경기장. 경기가 시작하면 선수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잃고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이 되고 만다.

베이징 노동자체육관에 설치된 복싱경기장. ⓒ 박상익

 복싱 라이트급 백종섭.

복싱 라이트급 백종섭. ⓒ 베이징올림픽공식홈페이지

복싱 국가대표팀의 백종섭 선수는 8월 14일 열린 베이징올림픽 복싱 라이트급(60㎏) 16강 전에서 상대방에게 목에 펀치를 맞은 뒤 기관지가 파열됐다. 그리고 닷새 후인 19일, 흐라칙 자바크얀(아르메니아)과 8강전에서 이기면 꿈에도 그리던 동메달을 확보할 수 있었다.
8강 전을 앞두고 백 선수와 감독·주치의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감독님만큼은 제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백종섭 선수)"

"종섭아, 나도 메달이 고프다. 다른 종목들은 역대 최고 메달잔치하고 있는데…. 하지만 민주랑 뱃속의 둘째를 생각해라. (천인호 감독)"

"물론 충분히 승산있는  경기다. 하지만 경기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이창형 박사)"

 

결국 백 선수는 생명을 염려한 코칭스태프의 강권에 따라 경기를 포기했고, 올림픽 폐막을 사흘 앞둔 21일 가슴에 메달의 꿈을 묻은 채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나도 메달이 고프지만 뱃속의 둘째 생각해야지"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만난 국가대표 복싱팀 천인호 감독과 베이징올림픽대표팀 주치의 이창형 박사.(폰카 촬영)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만난 국가대표 복싱팀 천인호 감독과 베이징올림픽대표팀 주치의 이창형 박사.(폰카 촬영) ⓒ 이충섭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온종일 내렸던 지난 1일, 이른 저녁부터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국가대표 복싱팀 천인호 감독과 베이징올림픽대표팀 주치의 이창형 박사(삼성의료원 재활의학과)가 바로 그 주인공. 기자는 이창형 박사와의 친분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이들의 대화 주제는 베이징올림픽 복싱 라이트급(60㎏) 8강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복서' 백종섭(28·충남체육회) 선수였다. 

 

올림픽 이후 백 선수에게 메달리스트 못지않은 관심과 격려가 이어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백 선수가 기관지 파열로 인한 '종격동 공기증'이란 진단 후 경기를 포기하기까지, 선수 자신을 포함해 곁에서 감독과 주치의가 함께 나흘 동안 겪었던 혼란과 통한의 기억을 들춰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경기 후 가슴에 뭔가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검진을 받았고 별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숨쉴 때마다 계속 거북스럽다고 찾아왔더군요. 증상을 듣고 목 부분을 만져보는 순간, 예전에 종격동 공기증으로 숨졌던 환자가 떠올랐습니다. 선수를 정밀 검사해보니 이미 기관지 파열로 인해 정상인은 진공상태가 되어 있어야 할 종격동 및 경부피부 밑 부분에 많은 양의 산소가 들어차 있었습니다. 흔하지 않은 증세였지만 X선과 CT 검사 후 명확히 진단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에는 세 명의 의료팀이 참가했다. 그 중 이창형 박사는 가장 많은 국제경험을 가진 선임자이다. 이 박사는 백 선수의 8강전을 앞두고 천인호 감독을 따로 만나서 백 선수의 상태를 알렸다. 천 감독은 놀라면서도 진단을 믿지 못하는 듯 보였다.

 

이 박사는 이전의 국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상황에서 애매모호하게 설명한다면 천 감독이 경기를 뛰어도 좋다는 결론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느꼈다. 이 박사는 예전에 응급실에서의 경험 중, 교통사고로 인한 이런 증상으로 계속 악화되어 결국 목숨을 잃었던 환자 이야기를 천 감독에게 해줬다.

 

제자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를 지도하는 천인호 감독(사진 가운데).

태릉선수촌에서 선수를 지도하는 천인호 감독(사진 가운데). ⓒ 이충섭

천 감독은 이 때부터 고민에 빠졌다. 다른 대표팀 선수들은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리며 축제의 분위기건만 복싱은 상황이 달랐다.

 

애초 천 감독은 이옥성·백종섭·김정주 선수를 앞세워 최소한 금·은·동메달을 각각 1개씩은 따겠다고 장담하며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이옥성이 편파판정으로 인해 경기가 뒤집혔다. 메달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백 선수의 경기 포기는 그래서 더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천 감독은 백 선수를 설득하기로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지도해온 제자가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할 수는 없었다.

 

백종섭 선수의 반응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다섯살배기 딸과 둘째를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군에 입대할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이번 올림픽이 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한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평생 8강 이상 못 가는 선수라는 비아냥도 떨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백 선수는 '죽으면 순전히 자기 책임'이라는 각서를 쓰겠노라고 배수진을 쳤다. 이때부터 8강 경기가 열리는 나흘 동안 온종일 백 선수를 상대로 감독과 주치의의 설득전이 벌어졌다.

 

이 기간에 천 감독을 괴롭게 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국제전화였다. 백종섭 선수의 부상과 경기포기 의사가 알려지자, 복싱인이라면서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 천 감독에게 전화를 해왔다.

 

"당신은 올림픽 전사를 이끄는 장군이다, 알아서 잘 판단하기 바란다"라며 은근한 압력을 넣는 건 그나마 고마운 수준이었다. "쪼다" "새가슴"이라고 욕설까지 해댔다. "20년 동안 금메달 못 딴 복싱이 이번에 기회를 모처럼 맞았으니 모험을 해서라도 금메달을 따야 복싱이 산다"는 말은 천 감독이 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항상 해왔던 말이기도 했다.

 

 베이징올림픽 당시를 회상하는 천인호 감독.(폰카 촬영)

베이징올림픽 당시를 회상하는 천인호 감독.(폰카 촬영) ⓒ 이충섭

그렇지만, 천 감독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고 한다. 

 

"만약에 의사의 걱정대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거야말로 한국복싱은 물론 올림픽에서도 퇴출당할 수 있는 비극이 된다. 뿐만 아니라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린 한국선수단 전체가, 아니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메달에 목숨을 건 미친 집단으로 매도당할 일이잖아요."

 

이 말을 기자에게 전하는 천 감독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그래도, 천 감독의 설득만으로는 부족했다.

 

대학 때 아이스하키 선수로 고연전을 뛰기도 했고, 의사로 선수들과 친분이 두터웠던 이창형 박사가 3시간씩 백종섭 선수와 면담을 하면서 설득했다. 뒤늦게 종교에 입문한 백종섭 선수가 "이건 하나님의 뜻"이라면서까지 주장할 때는 신앙의 선배로서 상담을 해주었다.

 

4일 동안 백 선수와 많은 얘기를 나눴던 이 박사는 그가 너무 많은 실망과 울분을 느끼고 있으므로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그의 방 창문을 열지 못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이 박사는 당시를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야말로 백종섭은 전형적인 파이터의 자질을 갖췄습니다.  일단 링에 올라서면 물러설 줄 모르는 인파이터 스타일을 타고난 선수죠. 그를 설득하면서 복싱에 대해 많은 애정과 매력을 새삼 느꼈습니다."

 

드디어 경기에 앞선 계체량 순간이 왔다. '뛴다', '못 뛴다', '그래 니 맘대로 해봐라' 등 수십 번 상황이 바뀌는 중에도 백 선수가 체중감량을 해놓은 걸 보고 천 감독은 할 말을 잃었다.

 

죽음 각서 쓴 선수, 욕먹으면서 말린 감독

 

천인호 감독은 백종섭 선수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종섭아, 나도 메달이 고프다. 하지만, 민주와 뱃속의 둘째를 생각해라."

 

백 선수와 천 감독은 얼싸안고 펑펑 울었고, 그렇게 동메달의 꿈은 날아가고 말았다.

 

소주를 연거푸 들이키던 천 감독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준이 정말 예전과는 달라져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예전 같으면 은메달도 관심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천인호 감독과 이창형 의학박사는 누구?

 

천인호 국가대표 복싱팀 감독은 59년생으로 영산포 상고를 나와 한국체육대학 체육학사 및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거쳤다.

 

지난 1993년부터 2006년까지 국가대표 상비군 감독을 역임했고, 2007년 1월 1일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이창형 의학박사는 69년생으로 고려대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를 받았다.

 

지난 2006년~2007년 대한체육회 태릉선수촌 의무실장을 지냈고, 2006년 도하 하계 아시안게임 주치의, 2007년 장춘 동계 아시안게임 주치의, 2007년 방콕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주치의,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주치의를 맡았다. 현재는 삼성의료원 재활의학과 임상조교수로 있다.

이창형 박사는 오는 10월 전국체전에 나간다는 백종섭 선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건강상태를 물었다.

 

이미 3주가 지나 부상은 회복된 상태이니 10월 대회에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것보다는 이미 팬이 되어버린 이 박사가 백 선수의 선전을 응원하는 듯 들렸다.

 

그렇다. 대한민국의 수준은 예전처럼 오로지 승리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패자를 배려하는 성숙한 모습으로 변했다.

 

결코 쉽지 않은 상황에서 승리가 아닌 선수의 생명을 선택한  천인호 감독과 이창형 박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의 응원단들이 17일 저녁 베이징 공인체육관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남자 복싱 웰터급(69kg) 8강전 한국의 김정주와 미국의 드미트리어스 안드라이드 경기에서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저녁 베이징 노동자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남자 복싱 웰터급(69kg) 8강전 한국의 김정주와 미국의 드미트리어스 안드라이드 경기에서 한국응원단이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2008.09.04 08:34 ⓒ 2008 OhmyNews
천인호 이창형 백종섭 베이징올림픽 복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BO선수협의회 제1회 명예기자 가나안농군학교 전임강사 <저서>면접잔혹사(2012), 아프니까 격투기다(2012),사이버공간에서만난아버지(2007)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