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타올랐던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의 성화가 꺼졌다. 더불어 전세계 204개국 선수들이 펼쳤던 '각본없는 드라마'도 4년 후를 기약하며 모두 마무리됐다.

그러나 지난 17일간 벌어졌던 감동의 드라마는 여전히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267명이 참가한 한국 선수단도 매 종목마다 눈물의 명승부를 연출하며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기쁨의 눈물이건 슬품의 눈물이건, 선수가 울면 국민들도 함께 울었다. 올림픽 폐막을 맞아 온 국민을 울렸던 7인의 눈물, 그 감동 스토리를 다시 되짚어 보자.

[유도-최민호] 아테네의 한을 풀었던 '투혼의 한판승'

 남자 60kg급 금메달리스트 최민호가 은메달을 딴 파이셔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

남자 60kg급 금메달리스트 최민호가 은메달을 딴 파이셔의 품에 안겨 울고 있다. ⓒ MBC 화면 캡쳐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 최민호는 확실한 금메달 후보였다. 전초전이었던 200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민호는 우승을 차지했던 60㎏급의 최강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최민호는 무리한 체중 조절로 인해 경기 도중 근육 경련을 일으켰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투혼을 발휘한 끝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최민호를 기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년 후 베이징 올림픽. 사람들은 한국 나이로 29세가 된 최민호에게 그리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아테네 올림픽 이후 슬럼프에 빠져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민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매트 위에서 유감없이 쏟아부었다. 마치 유도의 신이 몸 속에 들어간 듯, 신들린 듯한 한판 행진을 벌였다. 결국 최민호는 '5연속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결승전 상대였던 루트비히 파이셔(오스트리아)를 다리들어 메치기 한판으로 제압한 후 최민호는 매트 위에 엎드려 대성통곡했다. 지난 4년 간 겪었던 슬럼프, 지옥 같았던 체중 조절의 시간이 모두 굵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 것이다.

최민호의 눈물로 얻어낸 한국의 첫 금메달은 두 자리수 금메달을 노리던 한국 선수단에게 큰 기폭제가 됐다.

[유도-왕기춘] 13초 만에 깨진 스무살 '유도소년'의 꿈

 갈비뼈 부상을 당하고도 값진 은메달을 따낸 왕기춘

갈비뼈 부상을 당하고도 값진 은메달을 따낸 왕기춘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테네에서 최민호가 최고의 기대주였다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의 기대주는 단연 73㎏급 왕기춘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공교롭게도 4년 전의 최민호와 흡사했다.

왕기춘은 레안드로 갈레이로(브라질)와의 8강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벌이면서 갈비뼈 부상을 당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단순 통증이 아닌 6개월의 재활이 필요한 갈비뼈 골절이었다.

당장 기권해야 하는 큰 부상이었음에도, 왕기춘은 포기하지 않았다. 준결승에서 라술 보키에프(타지키스탄)를 제압한 왕기춘은 결승에 진출해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를 상대했다. 맘마들리는 이미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왕기춘에게 패한 바 있는 선수.

금메달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스무 살 '유도 소년' 왕기춘의 꿈은 단 13초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힘 한 번 써볼 틈도 없이 맘마들리에게 발목잡아메치기 한판패를 당한 것이다.

한동안 멍하니 체육관의 천장을 바라보던 왕기춘은 매트 위를 내려 오면서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갈비뼈 골절에도 흐트러짐 없이 경기에 임했던 왕기춘도 역시 스무 살 소년이었다.

그러나 왕기춘이 흘린 아쉬움의 눈물은 4년 후 런던에서 기쁨의 눈물로 변할 것이라 믿는다. '비운의 유도가'에서 '한판승의 달인'으로 거듭난 최민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배드민턴-이효정] 여자복식 결승전에서 실수 남발... "언니, 미안해"

 여자복식에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이효정(앞)은 혼합복식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여자복식에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던 이효정(앞)은 혼합복식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연합뉴스 진성철


배드민턴 여자복식의 '이경원-이효정 조(세계 4위)'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천운이 따랐다. 16강부터 준결승까지 세계랭킹 1~3위를 독식하고 있는 중국의 복식조를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결승에서 격돌할 것이 유력했던 세계1위 '양웨이-장지웬 조'는 박주봉 감독이 이끄는 일본 '마에다 미유키-스츠나 사토코 조'에게 덜미를 잡혔고, 덕분에 파죽지세로 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결승 상대는 남자 선수를 방불케 하는 스매싱을 자랑하는 세계2위 '유양-두징 조(중국)'였다.

결승전에서 '이경원-이효정 조'는 대등하게 경기를 치르다가 뜻밖의 변수를 만났다. 이경원이 첫번째 게임 도중 발목에 부상을 당한 것이다.

발목에 붕대를 감고 다시 코트에 들어 온 이경원은 언니답게 전혀 흔들림없이 경기에 임했다. 그러나 부상을 옆에서 지켜본 동생 이효정은 그렇지 못했다. 자신이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책임을 어깨에 짊어진 이효정은 갑자기 범실을 남발하며 흔들렸고, 결국 한국은 게임 스코어 0-2로 패하고 말았다.

은메달을 목에 건 이효정은 시상대에서 자신보다 21㎝나 작은 이경원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4년 동안 호흡을 맞춘 언니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 담긴 우정의 눈물이었다. 이경원 역시 눈시울이 붉어지면서도 애써 웃음을 지으며 이효정을 위로했다.   

그러나 이효정의 눈물은 곧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불과 이틀 뒤 이용대와 짝을 이룬 혼합복식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효정은 눈물과 환희로 뒤섞인 베이징 올림픽에서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탁구-여자단체] 제자들을 외면해야 했던 현정화 코치의 눈물

 현정화 코치(왼쪽에서 두 번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값진 동메달을 따낸 제자들을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현정화 코치(왼쪽에서 두 번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값진 동메달을 따낸 제자들을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 SBS 화면 캡쳐


지난 6월, '서울올림픽의 영웅' 유남규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천영석 대한탁구협회장에 대한 탄핵을 결정하던 임시 대의원 총회에서 격한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대한탁구협회의 오랜 내분은 작년 12월 남녀 대표팀을 지휘하던 유남규·현정화 감독이 동반 사퇴하면서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천영석 회장의 독단적 운영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 상황. 시시비비를 떠나 대대장과 중대장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부대에서 '정병'이 나올리 만무했다.

특히 여자부의 상황은 심각했다. 2년 넘게 동고동락하던 현정화 감독을 잃은 여자 선수들은 2월 세계단체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 16강 탈락'이라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내고 말았다. 이미 올림픽 출전권을 가지고 있던 김경아와 박미영은 전초전이었던 선수권대회에 참가조차 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탁구협회의 새 수장이 됐고 7월 현정화 감독이 코치 자격으로 대표팀에 재합류했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여자 대표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한 달 남짓이었다.

그러나 여자 대표팀은 짧은 기간 동안 전력을 가다듬어 '단체전 동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를 얻어 냈다. 특히 동메달 결정전에서는 6개월 전 세계단체선수권대회에서 한국에게 수모를 안겼던 일본에게 설욕하며 두 배의 기쁨을 만끽했다.

여자 단체전 동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20년 전 서울 올림픽에서 여자복식 금메달을 차지할 때도 담담한 표정을 지었던 현정화 코치도 이번에는 제자들을 부둥켜 안고 소리내 울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제자들을 외면하고 감독직을 물러나야 했던 지난 날의 미안함과 그런 상황에서도 값진 메달을 따낸 선수들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 담긴 눈물이었다.

[야구-이승엽] 금메달 만큼 감동적인 '국민타자'의 눈물

 '국민타자' 이승엽의 눈물은 금메달 만큼 감동적이었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눈물은 금메달 만큼 감동적이었다. ⓒ 오마이뉴스 유성호


"너무 미안해서…. 4번타자가 너무 부진해서 미안했어요. 감독님한테도 그렇고…."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자이언츠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승엽은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할 필요가 없는, 아니 참가해선 안 되는 선수였다.

올 시즌 최악의 성적을 올리고 있는 이승엽으로서는 각 팀의 주요 선수들이 빠진 올림픽 기간이 그 동안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승엽은 지난 7월 28일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에서 시즌 1호 홈런을 터트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상황.

그럼에도 불과 이틀 후, 미련없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 3월, 올림픽 2차 예선에서 '본선에도 꼭 참가해 너희를 돕겠다'던 후배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베이징에서 후배들을 돕기는 커녕, 오히려 후배들의 짐이 되고 말았다. 예선 7경기에서 단 한 개의 홈런도 없이 22타수 3안타로 부진하면서 '국민타자'의 명성에 커다란 흠집을 내고 말았다.

그럼에도 김경문 감독은 이승엽을 계속 4번 타자로 중용했고, 이승엽은 일본과의 준결승 8회말 2-2 동점에서 천금같은 투런 홈런을 날리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이승엽은 경기가 끝난 후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였다. 그동안의 부진에 대한 마음 고생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 눈물에는 후배들을 위하는 마음과 '대한민국 국민타자'로서의 책임감도 함께 담겨있었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나약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승엽은 다음날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결승 투런 홈런을 날리며 한국 선수단에 13번째 금메달을 선사했다. 역시 그는 '뼛속까지 해결사'였다. 

[태권도-황경선] 양 다리를 봉쇄당하고도 금메달 따낸 '여왕'

 황경선은 경기가 끝난 후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황경선은 경기가 끝난 후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 SBS 화면 캡쳐


사실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하는 태권도 선수단은 예전 올림픽에 비해 무게감이 다소 떨어졌다. 남자 68㎏급의 손태진과 80kg 이상급의 차동민은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한 신예였고, 여자 57㎏급의 임수정도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큰 경기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여자 67㎏급의 황경선은 달랐다. 2005년·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빛나는 한국 태권도의 간판스타였기 때문이다.

만약 태권도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부진하더라도, 황경선만큼은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 태권도는 첫날부터 임수정과 손태진이 금메달을 합작했고, 태권도의 목표는 '전체급 석권'으로 상향 조정됐다. 

태권도 선수단의 세 번째 주자로 등장한 황경선. 첫 경기에서 '아랍공주' 모하메드 라시드 알 막툼을 5-1로 가볍게 제압했지만, 산드라 사릭(크로아티아)과의 8강전에서 왼쪽 무릎 인대를 다치고 말았다.

황경선은 이미 오른발에 뼛조각이 돌아다닐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발차기로 득점을 올려야 하는 태권도 선수가 양 다리를 모두 봉쇄당한 셈이다.

그러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4년 전 아태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에 멈췄던 한을 풀기라도 하듯, 황경선은 준결승과 결승에서 각각 글라디 에팡(프랑스)과 카린 세르게리(캐나다)를 차례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경기가 끝난 후, 황경선은 절뚝거리며 경기장을 내려와 문원재 감독과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무릎 부상의 극심한 고통과 그것을 참고 이겨냈다는 기쁨이 함께 뒤섞인 '금빛 눈물'이었다.

[여자 핸드볼] 마지막 작전 시간, '우리 생애 최고의 1분'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노장 선수들은 임영철 감독과 후배들의 배려 덕분에 '우리 생애 최고의 1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노장 선수들은 임영철 감독과 후배들의 배려 덕분에 '우리 생애 최고의 1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 연합뉴스 진성철


"마지막 시간에…. 이해해 줘야 돼…. 마지막 선배들이야… 오성옥·홍정호·정희·순영이… 영란이!"

임영철 감독은 헝가리와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33-28로 앞서던 후반 29분 경에 작전 시간을 불렀다. 완전히 승기를 잡은 경기였기 때문에 다소 의아했던 작전 시간이었다.

작전 시간마다 호통을 치며 선수들의 선전을 독려했던 임영철 감독은 마지막 작전 시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선수 다섯명의 이름을 불렀다. 어쩌면 마지막 올림픽이 될지도 모르는 '노장 5인방(오성옥·홍정희·박정희·허순영·오영란)'이었다.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부터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노르웨이전까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함께 했던 '언니'들에게 바치는 임영철 감독의 선물이었다. 김온아·문필희 등 젊은 선수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랜 기간 동안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렸던 노장 선수들은 동메달이 결정되는 순간을 코트 위에서 함께 했고, 경기가 끝난후에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책임질 후배들과 부둥켜 안으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비록 그토록 원했던 금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여자 핸드볼에게는 그야말로 '우리 생애 최고의 1분'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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