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두 광기(狂氣)가 얼키설키 엉키며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하나는 고담시의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죽이고 부수는 배트맨의 광기, 다른 하나는 그 배트맨을 죽이고 고담시를 악의 소굴로 만들려는 조커의 광기다.

영화 <다크 나이트>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라는 틀에서 전개되는 기존 폭력물들의 단순함을 광기로 포장하여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믿는 실제의 허구를 칼질한다. 영화의 출발은 역시 ‘선과 악의 대결’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만든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 비긴즈>에서 그토록 꿈꿔왔던 사회정의를 <다크 나이트>라는 블록버스터를 통해 실현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나의, 그리고 관객의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다. 극도의 히스테리 살인광 조커(히스 레저)의 지시로 가면을 쓰고 은행을 터는 이들의 이야기로 영화는 시작된다.

룰러와 반룰러의 대결

 영화 <다크 나이트>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라는 틀에서 전개되는 기존 폭력물들의 단순함을 광기로 포장하여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 우리가 믿는 실제의 허구를 칼질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이라는 틀에서 전개되는 기존 폭력물들의 단순함을 광기로 포장하여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 우리가 믿는 실제의 허구를 칼질한다.ⓒ 워너브러더스


무대는 고담시, 구도는 배트맨의 사람들과 조커의 사람들의 대결. 범죄와 부정부패를 제거하여 고담시를 정의로운 도시로 만들려는 배트맨(크리스찬 베일)과 그의 사람들, 짐 고든 형사(게리 올드만)와 야심찬 정의의 사도 고담시 지방검사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는 의기투합하여 악당 조커를 없애려고 한다.

이에 맞서 흰색 칠을 한 얼굴에 찢어진 상처에 핏자국을 흘리는 분장을 한, 보라색 양복을 입은 조커, 배트맨을 죽이자는 제안으로 자신의 편 악당들을 긁어모은다. 배트맨을 죽이는 이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악의 화신인 조커는 그저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규칙을 깨야 진실을 알게 돼. 세상을 살아갈 유일한 방법은 규칙 없이 살아가는 거야.”

조커가 한 이 말에서 그의 싸움의 목적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그는 배트맨이나 고담시의 관계자들은 룰러로, 자신은 반룰러로 규정함으로 싸움의 명분을 만든다. 어리석은 자들이 계획을 세우는 것이고 자신처럼 훌륭한 삶을 아는 자는 절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통상적이며 사전적으로 법이란 ‘법률, 법령, 조례 등 구속력을 갖는 온갖 규칙’을 말한다. 조금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다수의 사람들 간의 배분 및 협력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하여 발달한 규범의 체계’라고 법전적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단순히 영화는 룰러와 반룰러의 대결구도로 간다. 여기서 선이니 악이니, 정의니 불의니 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적 실험을 만나게 된다. 마치 김지운 감독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제목을 붙여놓고도 그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듯, 놀란 감독 또한 룰러와 반룰러의 대결 이상을 주장하지 않는다.

'정의(正義)'와 '불의(不義)'의 정의(定義)

 사이코 조커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바로 그것이다. 배트맨과 그의 일당이 정한 룰은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룰 없음이 정의’라고 말한다.

사이코 조커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바로 그것이다. 배트맨과 그의 일당이 정한 룰은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룰 없음이 정의’라고 말한다.ⓒ 워너브러더스

배트맨을 위시한 고담시 관계자들이 룰러라면 조커는 그 반대편에서 룰러를 없애려는 반룰러다. 그런데 그 방향성이 애매모호하다. 자신들이 만든 ‘정의’라는 이름의 룰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이, 특히 배트맨이 하는 행동 자체가 사회적 룰을 깨는 것들이다.

우선 그는 떳떳이 본모습으로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검은 망토에 가면을 뒤집어쓰고 나타난다. 물론 반룰러 계열과의 싸움이긴 하지만 닥치는 대로 죽이고 닥치는 대로 부순다. 이런 면에서 반룰러인 조커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렇게도 관객이 안달하는 정의의 승리, 선의 승리에 대하여 감독은 전혀 궁금하지 않다. 김지운 감독이 희한한 지도에 관심을 쏟는 관객을 의식하지 않았듯 말이다.

정의(正義)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공정하고 올바른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로, 대부분의 법이 포함하는 이념이다. 하지만 그 법이라는 룰을 누가 정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기능을 한다.

사이코 조커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게 바로 그것이다. 배트맨과 그의 일당이 정한 룰은 지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룰 없음이 정의’라고 말한다. 룰은 바보들이나 정하는 것이다. 조커는 그 룰을 만들고 그 룰을 강요하는 자들을 없애기 위해 끝없는 도전을 한다.

그리고 그가 택한 것은 동전 던지기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것 또한 룰일 수 있다. 그러나 계획적인 룰은 아니다. 계획하고 룰을 만드는 자들과 무계획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자들과의 팽팽한 긴장감, 영화는 이를 통하여 이 사회의 단면을 해부한다.

룰러가 정하는 '정의(正義)'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정의인가. 혹시 선과 정의를 규정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규정한 자들의 전유물일 뿐이다. 특히 가진 자들, 아니면 권력 있는 자들 그들의 선과 정의는 정말 선이요 정의인가. 이 물음에 대하여 놀란 감독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인간의 양면성, 규칙의 양면성이 영화 내내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전투 신에서 걸어 나온다. 광기 머금은 조커의 입에서 튀어나온다. 배트맨 그룹의 기존 인사들의 입에서 행동에서 배어 나온다. 선과 악의 모호성을 모티브로 하여 각종 게임들이 우러나온다.

고담시의 새 지방검사 하비 덴트의 악과의 본격적인 싸움은 아주 허탈하게 끝난다. 조커가 만든 폭발로 비서 레이첼(배트맨의 친구이기도 하다)도 죽고 자신은 조커와 배트맨 사이에서 방황하는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된다.

화상으로 인하여 얼굴 한쪽은 멀쩡하지만 한쪽은 흉악한 몰골이 된다. 이른 바 ‘투 페이스 하비’는 이 영화의 양면성을 극렬히 보여준다. 한 얼굴이 선일 수도 악일 수도 있다. 한 인간이 정의와 불의를 함께 품고 있다. 다만 지금 어느 쪽이 득세하고 있느냐에 따라 언제든 선과 악, 정의와 불의는 바뀔 수 있다.

부시와 MB가 만나 북한의 인권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누가 누구의 인권을 이야기할 권리를 가졌는가. 그러는 그들은 자국에서 국민의 인권을 얼마나 보호하고 있는가. 부시의 방한과 때맞춰 ‘반 부시 집회’와 ‘찬 부시 집회’가 벌어졌다. 정부는 반 부시 집회는 철저히 물대포를 쏘며 진압했고 사람들을 연행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찬 부시 집회는 고이 치르도록 보호해 줬다.

무엇이 선이고 정의이기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가. 역사는 이긴 자의 것이다. 지금 가진 자, 권력자는 그들의 승리사(勝利史)를 기록하는 것일 뿐이다. 현재의 선과 정의에 대한 정의는 룰러들에 의해 쓰이고, 반룰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철저히 외면당한다.

민초가 정하는 '정의(正義)'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정의인가. 혹시 선과 정의를 규정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규정한 자들의 전유물일 뿐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정의인가. 혹시 선과 정의를 규정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규정한 자들의 전유물일 뿐이다.ⓒ 워너브러더스


그럼 진정한 선과 정의는 없는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선과 정의를 믿는다. 그것은 조커가 만들어놓은 함정에서 벗어나는 두 배에 탄 사람들에 의해 이뤄진다. 서로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자신의 배가 폭발함에도 두 배의 사람들은 결코 그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물론 두 배의 사람들에게 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들은 혼란의 바다를 건너고 갈등의 골짜기를 지나지만 결국은 선과 정의의 편을 택한다. 공멸할 순간에 공존을 택한다. 민중은 위대하다. 민초는 지혜롭다. 이 시대의 정의는 권력에 의해 정의되는 게 아니라 민초들에 의해 결정된다.

시민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통하여 배트맨도 아니고 조커도 아닌 참 선과 정의의 승리를 말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애매모호함에 모든 걸 방치한 <놈놈놈>의 김지운 감독보다는 한 수 위인 듯하다. <다크 나이트>가 그냥 오락영화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해도 그 무지막지한 파괴와 싸움의 엑스터시 속에서 진정한 선과 정의를 건지는 맛은 참으로 맛깔난 일이 아닐 수 없다.

덧붙이는 글 <다크 나이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주연, 워너브러더스 작품, 152분

이 기사는 http://blog.godpeople.com/kimh2, http://blog.daum.net/kimh2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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