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치치의 결승골 뒤풀이

라돈치치의 결승골 뒤풀이 ⓒ 심재철

 

25일 밤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 이따금 퍼붓는 빗속에서 열린 경기였지만 평소 K-리그보다 취재진이 더 많이 찾아왔다.

 

리그 팬의 입장에서 볼 때, 조금 씁쓸한 장면이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우리와 같은 그룹에서 만나게 될 온두라스 올림픽 축구대표팀의 평가전이었고 더구나 우리 올림픽축구대표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하는 순서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외룡 감독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25일 저녁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온두라스 올림픽 축구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2-1로 이기며 현장에서 지켜본 박성화 감독을 비롯한 우리 올림픽대표팀에게 대비책의 일단을 잘 일러주었다.

 

"나는 여러분들의 '라돈치치' 입니다"

 

여기서 인천의 골잡이 라돈치치는 혼자서 두 골을 터뜨리며 멋진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하지만 득점 뒤풀이 장면만 놓고 볼 때, 경기장에서 명장면을 기다리고 있던 사진 기자들 입장에서는 조금 야속하게 느낄 만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특히, 72분에 보르코의 찍어차기를 받아 슛 각도도 거의 없는 자리에서 솟구쳐 오르며 이마로 짜릿한 결승골을 터뜨린 라돈치치는 아예 사진 기자들이 한 명도 없는 경기장 동쪽 구석으로 내달리며 웃통을 벗었다.

 

그리고는 가장 관중들이 많이 모여있는 쪽에다 대고 자신의 이름 '라돈치치'가 새겨진 유니폼을 치켜들고 기쁨을 나눠주었다. 근육질 몸매 자랑을 떠나서, 마치 "나는 여러분들의 '라돈치치' 입니다"를 무언으로 외치는 듯 보였다. 아무리 친선 경기라지만 어김없이 주심으로부터 노란 딱지가 날아온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창단(2004년) 멤버이기도 한 라돈치치는 이제 팬들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속도감도 모자랄 것 없는 그가 왼발로 공을 툭툭 치며 상대 수비수들을 한꺼번에 둘씩 따돌릴 때 문학경기장에 모인 인천 팬들은 진정으로 희열을 느낀다. 관중석 여기 저기서 터져나오는 감탄사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56분, 서포터즈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라돈치치의 첫 번째 득점 뒤풀이

56분, 서포터즈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라돈치치의 첫 번째 득점 뒤풀이 ⓒ 심재철

 

후반전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들어온 박형근의 오른쪽 띄워주기를 침착하게 잡아놓고 왼발로 깨끗하게 마무리한 선취골 뒤풀이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다. 골을 터뜨린 남쪽 골문에서 가장 멀리 자리잡은 인천 서포터즈 쪽으로 달려간 그는 두 팔을 벌리며 그 짜릿함을 나눠주었고 이어서 두 손가락으로 열광하는 그들을 가리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부대끼고 있지만 자기를 지지하며 믿고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그 기쁨을 진심으로 나눌 줄 아는 마음과 그 동작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라돈치치 덕분에...핵심 수비수 카바에로, 마각을 드러내다

 

'방승환-보르코'와 함께 89분 동안 인천의 공격을 이끌었던 라돈치치는 이 경기를 현장에서 눈여겨보고 있던 우리 올림픽대표팀 골잡이들(박주영, 신영록, 이근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을 안겨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두라스 간판 수비수 사무엘 카바예로(오른쪽)가 라돈치치를 따라다니고 있다. 앞에서 손짓하는 인천 선수는 주장 노종건.

온두라스 간판 수비수 사무엘 카바예로(오른쪽)가 라돈치치를 따라다니고 있다. 앞에서 손짓하는 인천 선수는 주장 노종건. ⓒ 심재철

 

아르주와 나란히 포 백 시스템 속에서 가운데 수비수 역할을 맡은 사무엘 카바예로는 온두라스 수비의 핵이자 팀 전체적으로 봐도 정신적 지주라 할 만한 선수다. 발걸음은 조금 느렸지만 정확한 타이밍의 태클과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게 뛰어올라 높은 공을 처리하는 그 능력만으로도 '수비의 핵'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렸다. 라돈치치 만큼 그를 데리고 다니며 정신 없게 만들 우리 올림픽팀 인물은 신영록(수원 블루윙즈)이 아닐까 한다. 기싸움부터 절대로 밀리지 말아야 한다.

 

그의 왼쪽에 서는 에릭 노랄레스는 공격 가담을 최대한 자제한 상태에서 수비를 안정적으로 구사하는 왼쪽 측면 수비수였고 반면, 카바예로와 아르주의 오른쪽에 서는 측면 수비수 다비드 몰리나는 거의 쉴 새 없이 공격에 가담하는 강철 체력을 자랑했다.

 

또한, 62분에 인천 수비수 김영빈의 잡기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가운데로 차 넣은 왼쪽 미드필더 에밀 마르티네즈는 우리 선수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로 떠올랐다. '안현식-안재준-김영빈'으로 짜여진 인천의 수비 라인이 상대의 핵심 골잡이 카를로스 파본을 번갈아가며 잘 묶어준 탓도 있지만 온두라스의 실질적 유효 슛(32분)은 왼발잡이 마르티네즈의 오른발에서 유일하게 나왔다.

 

 인천 MF 이준영의 공격 때, 적극적으로 끝줄까지 따라내려와 막고 있는 에밀 마르티네즈(오른쪽).

인천 MF 이준영의 공격 때, 적극적으로 끝줄까지 따라내려와 막고 있는 에밀 마르티네즈(오른쪽). ⓒ 심재철

 

머리 모양이 개성적이어서 멀리서도 잘 알아볼 수 있는 미드필더 에밀 마르티네즈는 기본적으로 왼쪽 측면에서 뛰면서 간결한 볼 터치에 이은 반 박자 빠른 찔러주기가 특기다. 후반전에는 가운데 미드필더로 자리를 바꾸기도 하면서 왼발 공몰기, 찔러주기 실력을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다음 달 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우리와 다시 만났을 때, 오른쪽 수비수 신광훈과의 맞대결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군더더기 행동 없이 볼 처리가 매우 빠르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올림픽 남자축구 8강 진출을 위해 조별리그 세 번째 마지막 경기에서 만나게 되는 그들이 직접적인 상대역을 코 앞에 두고 평가전을 치르면서 모든 것을 다 드러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라돈치치 덕분에 간판 수비수 사무엘 카바예로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고 라몬 누네즈나 에밀 마르티네즈가 측면은 물론 가운데 쪽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까지 해내고 있다는 사실도 똑똑히 봤다.

덧붙이는 글 | ※ 온두라스 올림픽 축구대표팀 초청 친선 경기 결과, 25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

★ 인천 유나이티드 FC 2-1 온두라스 올림픽팀 [득점 : 라돈치치(56분,도움-박형근), 라돈치치(72분,도움-보르코) / 에밀 마르티네즈(62분,PK)]

◎ 인천 선수들
FW : 방승환(46분↔박형근), 라돈치치(89분↔조원광), 보르코(89분↔여승원)
MF : 전재호, 노종건(46분↔김선우), 박창헌, 이준영
DF : 안현식, 안재준, 김영빈
GK : 성경모

◎ 온두라스 선수들(이름 왼쪽 숫자는 등번호)
FW : 9카를로스 파본(59분↔제퍼슨 베르날데스), 8리조베르토 파딜라
MF : 7에밀 마르티네즈, 18조지 카를로스, 16마빈 산체스, 10라몬 누네즈
DF : 5에릭 노랄레스, 4사무엘 카바예로, 2퀴아롤 아르주, 3다비드 몰리나
GK : 22케빈 에르난데스

2008.07.26 10:45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온두라스 올림픽 축구대표팀 초청 친선 경기 결과, 25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

★ 인천 유나이티드 FC 2-1 온두라스 올림픽팀 [득점 : 라돈치치(56분,도움-박형근), 라돈치치(72분,도움-보르코) / 에밀 마르티네즈(62분,PK)]

◎ 인천 선수들
FW : 방승환(46분↔박형근), 라돈치치(89분↔조원광), 보르코(89분↔여승원)
MF : 전재호, 노종건(46분↔김선우), 박창헌, 이준영
DF : 안현식, 안재준, 김영빈
GK : 성경모

◎ 온두라스 선수들(이름 왼쪽 숫자는 등번호)
FW : 9카를로스 파본(59분↔제퍼슨 베르날데스), 8리조베르토 파딜라
MF : 7에밀 마르티네즈, 18조지 카를로스, 16마빈 산체스, 10라몬 누네즈
DF : 5에릭 노랄레스, 4사무엘 카바예로, 2퀴아롤 아르주, 3다비드 몰리나
GK : 22케빈 에르난데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