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의 음악세계를 새로운 방법으로 다루었다는 영화 <아임 낫 데어>가 평단의 화제가 되고 있다. 할리우드 대작들에 밀려 예술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지만 영화를 본 평론가들은 밥 딜런의 음악 세계까지 거론하며 영화에 대한 찬사와 함께 밥 딜런의 음악세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아임 낫 데어>가 물론 훌륭한 영화라는 사실은 알겠지만 왠지 모를 억하심정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임 낫 데어>와 밥 딜런을 논하던 평론가들이 비슷한 날에 개봉한 한 음악가 아니 '문화노동자'를 다룬 영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를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달이 넘게 촛불시위가 이어지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먹구름이 점점 짙어지는 지금, 신자유주의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 슬픔을 위로하며 함께 어울리려는 '문화노동자'의 이야기는 오히려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6일 개봉한 태준식 감독의 <필승 ver2.0 연영석>이 바로 그것이다.

 

연영석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소외자'의 이야기

 

 <필승 ver2.0 연영석>의 주인공인 '문화노동자' 연영석

<필승 ver2.0 연영석>의 주인공인 '문화노동자' 연영석 ⓒ 인디스페이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문화노동자 연영석의 노래와 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주노동자의 집회, 장애인 집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기타를 치며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마음의 위로를 받으면서 동시에 다시 한 번 싸워보자고 결의를 다진다.

 

운동판에서 그의 노래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연영석의 노래에는 '투쟁'이니 '싸움'이니 하는 말이 들어 있지 않다. 그저 노래하는 이의 삶, 노래하는 이의 '간절한' 마음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부분이 연영석이라는 문화노동자가 부르는 노래의 힘이다. 듣는 이의 상황과 동일하게 들려오는 노래. 그것은 투쟁을 독려하는 노래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그러나 영화는 연영석의 노래와 그의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이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영화는 석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하고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우며 중노동을 하는 이주노동자 검구릉과 정규직 전환을 위해 장기 투쟁 중인 KTX 여승무원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부당 해고에 반발해 장기 투쟁에 돌입한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점점 중심이 되고 연영석의 이야기는 조금씩 뒤로 밀리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가 노린 것은 그것이다. 태준식 감독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의 모습을 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소외된 이들이 연영석의 노래 앞에서 하나가 되는 모습은 영화 카피에 나오는 '높낮이 없는 세상'이 잠시나마 현실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가 보여주는 '필승'의 의미

 

 영화에 등장하는 KTX 여승무원들의 행진

영화에 등장하는 KTX 여승무원들의 행진 ⓒ 인디스페이스

이런 활약을 펼치는 '문화노동자'의 일상도 편하지는 않다. 15만 원을 받고 지방까지 가서 노래를 불러야 하고 공연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사정을 잘 알기에 돈을 더 달라고 말할 수 없다. 노래를 부르는 연영석도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나 다를 바가 없다.

 

영화의 마지막, 피로에 지친 모습의 이주노동자 검구릉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그의 뒷모습만 보면 그가 회사에 출근을 하는지, 아니면 또다른 회사를 구하러 가는 것인지, 혹은 또다른 목적지가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영화는 목적지를 가르쳐주지 않은 채 끝난다. 검구릉뿐 아니라 영화 속의 인물들은 아직까지 목적지가 없다. 패배인지 승리인지 결론은 없다(결국 검구릉은 지난해 10월 강제추방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필승 연영석'이면서 동시에 '필승 비정규직 노동자'이기도 하다. 감독도 변을 밝혔지만 제목에 나오는 '필승'은 계속되는 패배를 현실로 받아들여야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패배에 너무나 익숙해져가는 이들을 일깨우는 소리인 셈이다.

 

연영석을 모른다면 더 권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이주노동자 검구릉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이주노동자 검구릉 ⓒ 인디스페이스

<필승 ver2.0 연영석>은 연영석의 대표곡들이 모두 수록되어 있다. 행여나 연영석이라는 가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고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이 영화를 보는 데 애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연영석의 노래가 전하는 분위기와 태준식 감독이 찍은 영상의 매치는 처음 노래를 접하는 이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대형 영화들이 득세하는 지금, 작은 영화관에서 새로운 영화와 노래, 그리고 쉽게 접하지 못했던 '현실의 문제'들을 접한다는 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행운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한 달이 넘는 촛불시위를 통해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국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지를 인식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큰 희생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필승 ver 2.0 연영석>을 이 시기에 권하는 이유다.

 

 <필승 ver2.0 연영석>은 '필승 연영석'과 함께 '필승 비정규직 노동자'도 함께 담는다

<필승 ver2.0 연영석>은 '필승 연영석'과 함께 '필승 비정규직 노동자'도 함께 담는다 ⓒ 인디스페이스

2008.06.10 14:52 ⓒ 2008 OhmyNews
필승 연영석 연영석 태준식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