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젊은 거장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너를 보내는 숲>은 소중한 이를 잃은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을 통하여 치유와 공감, 이별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젊은 거장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너를 보내는 숲>은 소중한 이를 잃은 과거를 가진 두 사람을 통하여 치유와 공감, 이별을 이야기한다. ⓒ 영화사 진진

마치코는 자기 잘못 때문에 아들 유세이를 잃은 쓰린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시골 요양원에 간병인으로 들어가는데, 옛날에 죽은 아내 마코를 잊지 못하고 있는 치매 노인 시게키를 만난다.
 
올해로 마코가 죽은 지 꼭 33년이 된다. 일본 불교에는 사람이 죽고 33년이 지나면 부처가 되어 다시는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시게키는 마코의 무덤을 찾아가고 마치코가 동행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숲과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너를 보내는 숲>과의 첫 대면이다. 바람 때문에 서로 비벼대는 나뭇잎 소리가 아련하고, 쪽빛 들판이 널리 펼쳐져 있다.

 

잠시 후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귀에 점점 가까워지고 이윽고 상여 행렬이 지나간다. 컷을 무척 자제하여 깊고 느린 숨을 유지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졸음을 참지 못할지도 모를 노릇이다.

 

영화의 고즈넉한 첫인상은 주눅이 들 만큼이나 압도적이다. 5분쯤 지나자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멍청하게 앉아있어야 하지는 않을까 불안해졌다. 영화의 정서와 쉽게 접촉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10분쯤 더 지나자 자연스럽게 모가리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흡사 다큐멘터리를 방불케 하는 카메라워크가 사람을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영화가 현실과 거의 똑같다고 착각할 만큼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질감이다. 화면이 덜컥덜컥 흔들리면서도 아주 작은 부분까지 꼼꼼하게 잡아내고 있다.

 

시게키가 중에게 "나는 살아 있습니까?" 하고 생의 의미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중이 두 가지를 대답한다. 첫 번째는 몸이 살아있다는 것. 두 번째는 마음이 살아 있다는 것. 만일 사람이 몸이 멀쩡한데 죽은 것처럼 느낀다면 그것은 마음이 비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비었기 때문이라고.

 

시게키는 사랑하는 마코를 잃은 뒤로 죽음 같은 삶을 살아왔다. 마음의 빈자리는 언제나 돌아오지 못할 마코를 위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마음에 들이지 못하고 33년 동안 홀로 고독하였다. 매년 빼놓지 않고 썼던 일기장 33권은 시게키가 마코를 마음 속으로 그렸던 괴롭고도 애틋한 기록이다.

 

 <너를 보내는 숲>은 자연을 담아낸 아름다운 영상미가 일품이다.

<너를 보내는 숲>은 자연을 담아낸 아름다운 영상미가 일품이다. ⓒ 영화사 진진

 

포스터에 실린 장면, 녹차밭에서 마치코와 시게키가 장난치는 신은 어린애처럼 해맑다. 둘은 직무와 성별과 나이를 넘어서 어린애처럼 전면적으로 교감하고 공감에 이른다. 마치코가 손을 다치면서도 시게키에게 공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게키가 그랬듯 마치코는 유세이가 돌아올 자리를 남기고 있었고, 또 시게키가 일기를 쓰듯이 매일 아들을 위해서 향을 피웠다.

 

두 사람 모두 무척 맑고 정이 깊은 사람들이다. 마치코가 시게키의 이상한 발걸음을 말리지 않고 오히려 따라 나서는 것은 둘이 같은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마치코는 시게키에게 '마코'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말릴 수 없다.

 

<너를 보내는 숲>의 '모가리의 숲'은 사람을 한껏 작아지게 해서 결국 겸손에 이르도록 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걸 표현하는 데에 자본력이 필요하지 않다. 가와세 나오미는 컴퓨터 그래픽 대신에 바위와 흙, 물소리와 바람 소리, 고목과 뿌리, 벌레와 풀이 있는 그대로를 기막히게 사용하여 자연을 이야기한다.

 

숲에서 맞은 밤, 오한에 떠는 시게키를 끌어안고 맨몸을 부비는 마치코의 모습은 야하기보다 거의 경건하다. 공감하고 소통하여 마침내 마음을 채우려 애쓰는 장면이다. 그리고 아침볕을 맞으며 마코의 무덤에 도착한 둘. 죽은 이를 애도하듯 오르골 소리가 흐른다. 그들은 소중한 사람을 추억으로 떠나보내지만 또 언제든 추억으로 맞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너를 보내고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언제든지 다시 너를 만날 수 있도록.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리는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

예술영화 전용극장 '하이퍼텍 나다'에서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이 열렸다.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이라고 해서 어찌 한 번 볼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때를 놓칠 수 없다 싶었다. 은근한 입소문 때문인지 관객이 예상보다 많았다. 그녀는 <수자쿠>로 칸느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최연소 수상한 천재 감독이다.

 

4월 17일부터 27일까지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가와세 나오미의 최근작 <너를 보내는 숲>을 비롯한 아홉 작품을 상영하고 있다. 서울 특별전 후에는 대전아트시네마, 상상마당, 광주극장, 대구동성아트홀을 순회하며 특별전을 가진다. <너를 보내는 숲>은 24일 시네큐브 광화문, CGV강변, 메가박스 멀티플렉스 등에서 정식 개봉한다.

 

절제된 카메라워크와 아름다운 영상미가 특징인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는 세계 영화계의 높은 명성에 비해서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너를 보내는 숲>은 그녀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첫 번째로 정식 개봉되는 작품이며 원제는 <모가리의 숲(殯の森)>이다. '모가리'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시간, 또는 그 장소를 의미한다.

 

하이퍼텍 나다는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동숭아트센터(http://www.dsartcenter.co.kr/) 1층에 있으며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의 상영작 목록은 다음과 같다.

 

너를 보내는 숲 2007 | 97min

출산 2006 | 32min

그림자 2004 | 26min

사라소주 2003 | 99min

벚꽃편지 2002 | 65min

캬카라바아 2001 | 55min

호타루 2000 | 164min

수자쿠 1997 | 95min

달팽이: 나의 할머니 1994 | 40min

따뜻한 포옹 1992 | 40min

2008.04.22 09:58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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