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나는 전설이다> ⓒ 허지웅



<나는 전설이다>를 보며 내내 아쉬웠다. 몇 가지 장면은 참 좋다. 특히 윌 스미스가 연기하는 네빌이 괴물의 덫에 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기까지 과정을 그린 중반 시퀀스는 단연 백미다.

연출과 편집의 호흡이 (무척이나 할리우드적으로) 명민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전설이다>는 원작 '나는 전설이다'를 관통하는 주제의 묘를 살리지 못함으로써 그저 그런 할리우드 오락물로 마무리된다.

원작을 영화화한 모든 작품이 원작을 뛰어넘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원작의 토대를 이루는 주제의식이 있다면, 그것만큼은 튼튼하게 붙잡아 사수해야 하는 게 연출자의 의무다. 의무 운운한다고 숙연해할 필요는 없다. 그건 원작에 대한 경의나 존경의 차원이 아니다. 간단하다. 그 의식이 사라진다면, 원작을 영화화하는 의미 또한 증발하기 때문이다. 애초 '나는 전설이다'의 텍스트와 제목까지 가져다가 시끌벅적하게 재생산할 이유가 없다.

원작 '나는 전설이다'의 주제는 간명하다. 요컨대, “세 눈 박힌 도깨비 마을에서는 두 눈 박힌 인간이 도깨비”라는 거다. 정상성과 비정상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 사회는 정상, 비정상이라는 언어를 동원해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을 구별해왔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비정상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주류가 되고, 정상이라고 생각해왔던 현상이 비주류로 그 자리를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무엇이 정상이고 어떤 것이 비정상이 되는 건가.

 <지상 최후의 사나이>

<지상 최후의 사나이> ⓒ 허지웅


로버트 네빌이 전설인 이유는, 그가 지구를 구원했기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원작에선 지구를 구원 하고말고 따위 플롯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목적은 구원이 아니라 생존과 전복에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가 지구상에 혼자 남은 인간이기 때문이고, 지구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 흡혈귀들이 보기에는 네빌이야말로 단 하나 남은 ‘비정상’의 개체이기 때문이다.

흡혈귀들은 네빌을 두려워한다. (흡혈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우리와 다르다. 그래서 죽이려 하는 거다. 익숙하지 않고, 단 하나 남은 소수이기 때문에 ‘비정상’으로 정의내리고 없애려 하는 거다. 이는 마치 우리들의 주류 사회가 동성애자나 불치병 환자,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매우 흡사하다.  

원작의 결말은 이렇다. 네빌은 결국 (이제는 ‘신인류’가 된) 흡혈귀들에게 붙들린다. 죽음의 공포가 수족을 뒤덮기 직전, 결국 네빌은 깨닫는다. 그래, 이건 저들의 역사에 있어 새로운 시작이구나. 그리고 외친다. “이제, 나는 전설이다.”

이 원작을 첫 번째로 영화화했던 <지상 최후의 사나이>(빈센트 프라이스가 로버트 네빌을 연기한다)는 비교적 원전의 텍스트에 충실했다. 영화 속에서 네빌은 창에 찔려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전략) 나는, 지상 최후의 인간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독백치고는 꽤나 길지만, 어쨌든 원작의 맥락은 지킨 셈이다.

 <오메가맨>

<오메가맨> ⓒ 허지웅



두 번째로 영화화된 건 찰톤 헤스톤이 연기한 <오메가맨>이었다. 세계의 멸망과 그 이후를 다룬 개별 영화로 볼 때 꽤 각별한 재미를 가진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역시 소수성을 바라보는 주류사회의 공포, 정상과 비정상의 전복이라는 원작의 시각을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찰톤 헤스톤이 예수 흉내를 내며 비장한 최후를 맞는 장면은 언제 어디서 보더라도 실소가 터져 나온다. 따지고 보면 최신작 <나는 전설이다>는 '나는 전설이다'의 영화화라고 하기보다, <오메가맨>의 리메이크에 더 가깝다고 할 만하다. 

‘나는 전설이다’를 영화화한 대부분의 작품이 재미가 없거나(<지상 최후의 사나이>) 주제를 살리지 못하는(<오메가맨> <나는 전설이다>) 까닭은, 애초 이 원작이 할리우드 오락물이나 블록버스터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홀로 남아 죽음을 곱씹고 신인류의 탄생을 지켜보는 이 절대고독자의 이야기는, 애초 어떤 스펙터클도 제공할 수 없다. 그저 완벽한 고독과 타자화, 그리고 그로 인한 정상과 비정상성의 전복에 관한 (역사상 가장 탁월한) 장르 드라마일 뿐이다.

‘나는 전설이다’의 기본 골자를 가져다가 한국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어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한국은 소수자에 대한 절대 다수의 폭력이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횡횡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훌륭한 영화 속 배경이 될 수 있다. 물론 영화 속 배경에나 어울릴 법한 세상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별로 매력적인 일이 아니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허지웅 기자는 'GQ KOREA'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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