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와 STX 그룹간의 인수 협상이 실패로 끝이 나면서 자칫 공중분해의 위기에 빠진 현대 유니콘스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마무리 훈련도 추위를 피해 해외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국내에서 실시를 했다.

그러나 몸으로 느끼는 추위보다 현대 선수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에이스' 정민태도 있다. 한때 프로야구 최고 투수라는 영광의 주인공에서 어려운 팀 재정을 축내는 '먹튀'로 전락해 버린 정민태. 그는 지금 투수 인생이 걸린 매우 중요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현대 유니콘스 '최초의 에이스',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최초의 에이스'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최초의 에이스' 정민태. ⓒ 현대 유니콘스

한양대 시절 아마야구를 대표하는 투수였던 정민태는 1992년 1차 지명을 받고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을 했다.

그러나 입단 전에 겪은 병역 파동으로 인해 정민태가 정상적으로 자신의 투구를 보여주기 시작한 시즌은 1994년이었고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시즌은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하고 프로야구에 뛰어든 1996년이었다. 그해 정민태는 입단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리 승수(15승)를 기록하며 서서히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민태는 현대와 함께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정민태는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 무려 83승을 쓸어 담았다. 연평균 17승에 가까운 놀라운 성적이었다. 그 사이 다승왕은 두 번(99년·2000년)을 차지했으며 소속팀 현대는 한국시리즈 챔피언에 두 차례(98년·2000년)나 올랐다.

1999년 20승을 기록했던 정민태는 올 시즌 다니엘 리오스(두산)가 20승을 넘어서기 전까지 프로야구에서 20승을 거둔 마지막 투수였다. 1999년은 이승엽(당시 삼성)이 54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것을 비롯해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낸 선수가 무려 12명에 달하고 3할 타율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20명이 넘었던 극심한 '타고투저' 시즌이었다.

정민태는 그런 절대적인 '타고투저' 시즌에 230.2이닝을 버텨내며 20승 7패 3세이브 평균자책점 2.54라는 눈부신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정민태는 현대의 에이스를 넘어서 한국 프로야구의 에이스라는 이름을 얻은 투수였다.

정민태의 추락과 유니콘스의 몰락

국내에서 이룰 것을 다 이룬 정민태는 2000년을 끝으로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을 했다. 이전 해였던 1999년, 시즌을 마친 후 요미우리 진출을 시도했지만 이적 규정에 묶여 해외 진출이 끝내 좌절되었던 정민태가 1년의 와신상담 끝에 뜻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정민태는 요미우리에서의 2년 동안 2승 1패 평균자책점 6.28이라는 처참한 성적만을 기록했다. 일본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본 정민태는 2003년 다시 친정팀 현대로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의 실패를 정민태의 실력 부족 탓이라 생각했지만 일본 프로야구에서 다시 국내로 돌아온 2003년, 정민태는 29경기에 등판, 17승 2패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 자신의 실패가 결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시위했다. 2003년 정민태는 선발 21연승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현대는 또다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에서 성적은 곧 돈이다. 정민태는 2004년 7억4천만원의 연봉계약에 성공하며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를 다시 쓰는 등 일본에서의 실패를 딛고 야구 인생 정점에 올라섰다. 그러나 정민태는 그때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을 기점으로 현대구단의 운명도 한치 앞을 모르는 어둠 속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정민태를 괴롭힌 끊이지 않는 부상.

정민태를 괴롭힌 끊이지 않는 부상. ⓒ 현대 유니콘스

2003년까지 117승을 거뒀던 정민태가 최고 연봉을 받았던 2004년부터 올해까지 4시즌 동안 거둔 승수는 불과 7승이다. 그사이 패전만 23번을 당했으며 그나마 2004년 7승을 거둔 이후에는 지난 3년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민태가 지난 3년 동안 투구한 이닝은 50이닝에도 미치지 못하는 48.1이닝이다. 정민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다름 아닌 끊임없는 부상이었다.

2004년 허리부상으로 7승 14패 평균자책점 4.99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둔 정민태는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오른쪽 어깨 부상을 당했으며 5월에는 오른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후반기에는 다시 오른쪽 어깨 부상이 재발하는 등 시즌 내내 연이어 찾아오는 부상으로 마운드에 거의 서지를 못한 채 부상과 싸워야 했으며, 2005년 9월 결국 오른쪽 어깨 수술을 받고 2006년 단 2이닝만 투구하는 데 그쳤다. 정민태는 올 시즌에도 부상에 허덕이며 7게임에서 승리 없이 6패(평균자책점 12.81)만을 기록했다. 2005년 이후 부상으로 3년이라는 시간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다.

최근 2년 동안 거의 마운드에 올라오지를 못했던 정민태의 연봉이 대폭 삭감되는 것은 당연했다. 2004년 7억4천만원을 받았던 정민태는 2005년 25% 삭감된 5억5천만원을 받았으며, 다시 그해 단 1승도 거두지 못하자 2006년에는 4억2920만원으로 다시 20%가 삭감되었다. 올 시즌 정민태의 연봉은 3억8850만원이다.

3년 동안 무려 4억원 가까이 하락을 했지만 3년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50이닝도 투구하지 못한 선수의 연봉치고는 여전히 많은 연봉이다. 이로 인해 정민태는 '먹튀'라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현대가 극심한 자금 압박을 받는 상황이라 고액 연봉을 받는 정민태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유니콘스와 함께 다시 날아오르기를

 정민태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정민태의 앞날은 불투명하다. ⓒ 현대 유니콘스

정민태는 먹튀다. 그것도 아주 한심한 먹튀다. 그러나 정민태는 2001년 요미우리로 진출을 하면서 현대에 무려 5억엔(비공개)에 이르는 이적료를 안겨준 바 있다. 당시 환율로 따진다면 50억에 이르는 거액이다. 정민태를 현대구단의 재정을 갉아먹는다고 무조건 매도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그러나 "해준 것이 있으니 먹튀는 아니다"라고 한다고 정민태의 자존심까지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정민태의 자존심은 땅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김시진 감독은 내년에도 정민태에게 다시 기회를 준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재활과정에서 보여준 의지를 믿는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김시진 감독의 뜻이 분명하다고 구단의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민태에게 기회가 올지 여부는 미지수다. 최악의 경우 정민태는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정민태를 보고 있노라면 현대의 운명과 궤를 같이 하는 '운명 공동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정민태는 현대 유니콘스와 영욕의 세월을 함께 건너온 투수다. 정민태가 정말로 먹튀이든,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한 전력 외 투수이든 상관없이 그가 다시 마운드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은 이유도 정민태의 모습에 유니콘스의 서글픈 운명이 겹쳐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민태는 현대의 상징적인 선수다. 그는 현대 최초의 에이스 투수였고 유니콘스의 영광 가장 높은 곳에 서 있었던 투수다. 그리고 이제 유니콘스와 함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린 겨울을 넘고 있다. 정민태가 다시 부활을 하면 어쩌면 현대도 다시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상상을 해보곤 한다. 현대가 이렇게 사라져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리다. 한 번쯤 다시 높이 높이 날아오르기를 바란다. 정민태도 그리고 유니콘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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