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가 주최하는 '제2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응모기사입니다. 장일호 시민기자는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학년에 재학중입니다 <편집자주>

"산지사방이 일터인데 그리도 할 일 없어 탄광에 왔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막장으로 들어간다."

 

아리랑. 모르는 이 드문 단순한 가락은 애달프고 고단하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소리는 광부에게로 와 '광부 아리랑'이 된다.

 

막장은 탄광 제일 안쪽에 있는 광산의 끝 부분이다. 언제 굴이 무너져 깔려 죽을지 모르는 그 곳, 광부들은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그곳으로 향한다. 죽음도 두렵지 않은 '막장정신'은,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광부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들의 '막장인생'을 다룬 영화들도 있다. <브래스드 오프> <빌리 엘리어트> <훌라걸스>…. 그런데 한국영화는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반가운 <검은 땅의 소녀와>는 21세기 한국에 어울리지 않건만 여전히 존재하는 이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 스펀지하우스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검은 땅의 소녀와>를 만났다.

 

여전히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 장애를 가진 오빠와 아픈 아빠, 그 사이에서 엄마 역할까지 해야 하는 영림이지만 밝고 꿋꿋하다. 가족은 그렇게 영림이의 맑은 기운으로 단란하다.

▲ 검은 땅의 소녀와 장애를 가진 오빠와 아픈 아빠, 그 사이에서 엄마 역할까지 해야 하는 영림이지만 밝고 꿋꿋하다. 가족은 그렇게 영림이의 맑은 기운으로 단란하다. ⓒ 동녘필름

아빠(조영진 분)는 10년 넘게 일하던 광산에서 쫓겨난다. 진폐증 때문이다. 진폐(塵肺), 아빠의 폐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 있다. 치료될 수 없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합병증이 생기기 전에는 별다른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긴 세월, 가족의 밥줄이 되어 주었던 광산은 아빠에게 '장애'만을 남긴다.

 

'술'은 그래도 살고 싶은 사람들의 근심과 시름을 잠시나마 위로한다. 알싸한 소주에 취한 한 사람의 입에서 시작된 구슬픈 아리랑은 이내 술집에 모인 모두의 돌림노래가 된다. 구성진 가락 속에 모여 앉은 이들의 꾀죄죄함은 아프게 도드라진다.

 

그리고 그들을 가만히 응시하는 한 광부의 시선. 차마 합석하지 못한 그이는 쫓겨난 광부들과 달리, '아직'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이의 폐에도 아직 장애가 되지 않은 먼지들이 그득할 테지.

 

아빠에게는 열한 살 난 장애아들 동구(박현우 분)와, 또래답지 않게 조숙하고 씩씩한 아홉 살 난 딸 영림이(유연미 분)가 있다.

 

영화 속에서 엄마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아픈 아들과 험한 일을 하는 남편을 견디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났을 테지, 상상해본다. 지난한 삶이지만 가족들은 단란하다. 동구의 장애는 가족에게 아무런 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아빠는 진폐의 장애를 달래며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자격증도, 모아둔 돈도 없는 나이많은 남자에게 새로운 일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검은 땅의 소녀와 영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극단을 선택하고, 초점 잃은 눈으로 가만히 관객을 응시한다.

▲ 검은 땅의 소녀와 영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극단을 선택하고, 초점 잃은 눈으로 가만히 관객을 응시한다. ⓒ 동녘필름

카지노가 생기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던 타지 사람들의 말을 믿었던 광부들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진다. 트럭을 임대해 생선 장사를 시작했던 아빠는, 카지노를 하러 온 외지인의 그랜저 자동차와 접촉사고를 일으킨다.

 

그 순간부터 삶은 무참하게 부서진다. 집은 철거대상이 되고, 아빠는 술에만 온전히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아홉 살 영림에게는 감당할 수 없이 버거운 짐이 지워지고 소녀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영림은 아빠와 오빠와의 추억이 서린 버스정류장에 가만히 서있다. 망연한 표정, 초점을 잃은 맑은 눈은 관객을 응시한다. 관객이 소녀의 시선을 온 몸으로 받으며 어찌할 줄 모르는 사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완성되지 않은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는 뚜렷한 결말을 주지 않는다.

 

영화에는 탄광과 어울리지 않는 세련된 외모의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녀의 시선도 그저 가만히 응시하는 역할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아이들을 도와주기를, 아이들의 엄마 같은 이가 되어주길 관객들은 기대하지만,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는다. 그 시선은 존재하는 것들에 무관심한 우리의 시선을 닮았다.

 

'관심의 불편함'보다 '무관심의 편함'

 

광부 일로 밥 벌어먹고 사는 한 가족의 풍경. 진부하지만, 작정하고 관객들을 울리려면 울릴 수도 있고, 희망적으로 윤색할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영화는 그 관례를 답습하지 않는다. 전수일 감독은 담담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렇게 영화는 태백의 풍경처럼 스산하고 허허롭다.

 

화려함에 잠식된 최근의 한국영화는, 가난과 궁핍을 피상적으로만 다뤄왔다. 그래서일까. 엄연히 존재하지만, 아무도 기억하거나 들춰내지 않는 탄광의 아픔은 역시나 낯설다.

 

대다수 사람의 생존권이 위태로운 사회에서 타인의 고통과 아픔은 더 이상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 된다. '관심의 불편함' 대신 '무관심의 편함'을 취하고, 삶의 고통은 경제라는 이름의 주술 혹은 마약 앞에 그저 자신의 앞가림만을 향해 밀고나가는 몫밖에는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영화 제목이자 배경이었던 '검은 땅'은 꼭 탄광촌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어디든 우리가 발 딛고 선 곳이 검은 땅인 시대다. 이랜드 계산원 아주머니들이 서있던 계산대,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서 있는 사람이 발 디딘 높고 좁은 철탑, 애써 기른 농작물을 갈아엎어야만 하는 농민의 땅, 취업이 되지 않는 젊은이들의 한숨 가득한 캠퍼스 등등.

 

자신의 삶이 불안한 모든 이들이 서 있는 곳, 이 곳에서 우리는 때로 극단을 생각한다. 우리는 이 검은 땅에 그래도 희망의 아우라로 서 있는 영림이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제목의 '소녀와'가 말해주는 혼자가 아니라는 외침. 너와 내가 동행한다는 것에서 우리는 비로소 작은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

 

영화는 6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돼 국제예술관연맹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했다. 15일 스폰지 하우스에서 개봉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소녀의 시선을 만나게 되길 기대해본다.

 

검은 땅의 소녀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작업한 영화 포스터. 포스터는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작업 전에 일부러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 검은 땅의 소녀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작업한 영화 포스터. 포스터는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작업 전에 일부러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 동녘필름

 

덧붙이는 글 | 동녘필름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dnfilm

2007.11.14 17:20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동녘필름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dn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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