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극동아시아영화제가 지난 10월 25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왼쪽은 봉준호 감독.

나폴리 극동아시아영화제가 지난 10월 25일부터 나흘간 열렸다. 왼쪽은 봉준호 감독.ⓒ 김은정


<괴물> 등 한국영화 11편과 단편만화영화 20편 소개

올해 3회째를 맞는 나폴리 극동아시아영화제는 2005년 중국영화제, 2006년 일본 영화제를 거쳐 금년 한국영화제를 주최했다. 한국영화제는 10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폴리의 유서 깊은 건축물 엘모 성에서 4일 동안 열렸다. 영화제는 오는 11월 3일과 4일 이틀 동안 로마에서도 열린다.

이탈리아 남부지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극동아시아영화제는 매년 극동 아시아 나라의 영화들 중 한 나라를 선정하여 중점적으로 소개해왔다. 올해 한국영화제는 봉준호 감독에게 주는 오마주를 비롯해 올해 베니스 영화제의 오리존티 부문에 초청받은 전수일 감독의 <검은 땅의 소녀와>, 곽경택 감독의 <친구>,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 허진호 감독의 <외출>, 신연식 감독의 <좋은 배우> 등 11편의 한국영화가 상영됐다.

매년 소수이기는 하지만 한국영화가 로마, 피렌체, 볼로냐, 토리노, 밀라노, 우디네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중부,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소개되고 있는 데 비해 시네마테크도 없는 나폴리시가 극동 아시아 영화제를 적극 후원하며 한국영화가 남부지방 관객과 만남을 갖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화제는 봉준호 감독과 전수일 감독을 초청하고 ‘한류’에 대한 대담과 관객과의 대화 시간 등을 가졌으며 한국 단편만화영화 20편도 소개했다. 개막식 공연에 정송희 만화가와 이탈리아 피아노 연주가 다닐로 레아를 초청해 재즈음악과 만화가 어울러진 즉흥 공연을 갖기도 했다. 중국과 일본을 언더그라운드 시각에서 바라보는 비디오 아티스트들도 초청됐다.

그다지 큰 규모의 영화제는 아니더라도 한국영화를 접할 기회가 적은 남부지방 관객을 대상으로 열렸다는 면이 흥미로웠는데 캄파니아 주의 안토니오 바솔리노 자치단체장은 "1700년부터 이어져 온 동방 아시아와 문화교류의 맥을 잇기 위해 크고 작은 문화행사가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폴리 대학 동양학부 출신 학자들과 함께 ‘동방’협회를 만들고 극동 아시아 영화제를 기획하게 된 전 페사로 영화제 프로그래머 알렉산드로 보리는 한국영화제를 기획하게 된 의도를 이렇게 말했다.

"지속적인 한국영화 소개가 가능하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지만 무슨 일이든 처음이 있기 마련이고 이번을 기회로 한국영화 마니아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구조적인 한국영화 마니아를 생산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일본영화제에 초청되었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관객과의 대담에서 당시 현재 아시아 영화감독들 중에서 가장 흥미있는 감독으로 봉준호 감독을 꼽았고 그래서 초대전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이 영화제를 찾은 봉준호 감독은 "전세계 어디를 다녀봐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뜻이 통할 것 같다. 낯선 사람과도 만나서 밤새도록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참가 소감을 말했다.

관객들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과 전수일 감독의 <검은 땅의 소녀와>를 흥미를 가지고 보았고 이들 영화가 상영된 직후에는 많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영화 속에 보여지는 시대 상황, 한국영화의 할리우드 진출 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대담을 찾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봉준호 감독.

대담을 찾은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봉준호 감독.ⓒ 김은정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기이한 상황 말려드는 게 내 영화의 패턴"

개막식에서부터 마지막 날까지 참석한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적 성장과정과 현재 활동, 계획 등을 들어보았다.

- 위키 백과사전에서 봉준호 감독을 찾으면 이렇게 나온다. 직업은 영화감독이고 예술가의 집안에서 자랐고 첫 장편인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으나 이후<살인의 추억>으로 상업성과 작품성을 모두 만족시키며 유명해졌다.
"위키백과가 뭐예요?(웃음) 감독이 하고 싶은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어요. 아버지가 미술을 전공하셨는데 미술 서적들을 많이 보게 됐죠. 만화를 자주 그렸고 대학교에서 시네마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죠. 충무로에서 조감독 4년 생활 이후에 첫 장편을 만들었어요. 살다보니 어느날 감독이 되어 있었던 거죠. 충격적이거나 운명적인 모티브는 없었다고 봐야죠.

<플란다스의 개>는 꼭 하고 싶었던 영화인데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말리더라구요. 뭐 그딴 영화를 하냐구요. 그런데 제작자가 저를 믿어주어서 영화가 만들어진 거예요. <플란다스의 개>는 제 개인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어요.

반면에 <살인의 추억>은 실제로 일어났던 화성연쇄사건을 다룬 것인데 준비하는 데만 1년 반이 걸렸어요. 화성연쇄사건이 실제로 범인이 잡히지 않잖아요. 범인이 잡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시기죠. 그래서 결국은 제 나름대로 답을 찾은 것이 당시 사회와 정부는 범인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평단으로부터 사회 정치적 상황이 적절히 묘사되었다는 평가를 받은 정도로 기억하고 있어요."

- 맹숭맹숭한 인물들이 감독님 영화에 주요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난 한군데 오래 머물러 일하는 직종에 관심이 많다.' 남루한 캐릭터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제 취향이죠. 따분해 죽을려고 하는 관리 사무소, 매점에서 자고 있는 송강호, 바보 같은 형사...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기이한 상황에 말려드는 것이 나의 영화의 패턴이라고 봐야 할까요. 특별한 사람과 특별한 상황의 만남은 재미가 없죠."

- 봉 감독은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영화의 소재로 삼기에는 시시할 정도로 평범한 상황에 대한 관찰이 세심한 편이다. <플란다스의 개>가 아파트라는 일상적 공간과 강아지 실종이라는 사건과 부딪히며 일어나는 일을 다뤘고, <살인의 추억>은 평범한 지역 경찰이 어느날 연쇄살인을 맞아 일어나는 일을 다뤘다. 이러한 함께 하기 어려운 것들의 결합이 감독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안 어울리는 것들을 한군데에 밀어넣고 보는 거죠. 이상한 쾌감을 느껴요. 예를 들면 <괴물>에서 죽은 사람들 앞에서 슬프게 울어대는 사람들 사이를 노란 작업복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다 넘어지죠. 내가 만든 영화 자체가 어느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이 싫어요. 이 영화는 상업영화다. 아니다. 장르영화다. 이런 식으로 분류되는 것이 싫어요. 그런 생각을 교란시키고 싶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날 비디오 가게의 주인에 의해 제 영화가 분류가 되더라구요. <살인의 추억>을 찾아보면 아마 액션영화 코너에 꽂혀있을 걸요.(웃음)"

- 봉준호 감독 영화는 영웅이 없다. 영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가.
"영웅을 보면 닭살이 돋아요. 70년대 미국, 일본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괴물>에서 영웅이 있죠. 영화에서 현서의 아버지로 분한 송강호는 여전히 못났지만 때로는 영웅적일 수도 있고 이것은 더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해요. 나폴리 오는 비행기에서 <300> 영화를 보았는데 주인공이 부담스러워서 보기 힘들었어요."

 나폴리 극동 아시아영화제 준비위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맨왼쪽으로부터 봉준호 감독, 정송희 만화가, 전수일 감독이다.

나폴리 극동 아시아영화제 준비위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맨왼쪽으로부터 봉준호 감독, 정송희 만화가, 전수일 감독이다.ⓒ 김은정


"내 멋대로 꿰어맞추고 했던 것들이 상상력을 자극시켰던 것 같다"

- <괴물>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서늘한 풍자를 심어놓는 특유의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다.
"모르겠어요. <괴물>은 슬프고 심각한 상황에 피식피식 웃게 됩니다. 이중적이죠. 절박한 상황에 어이없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처한 영화예요."

- 미국에서 <괴물>이 개봉을 하고 흥행에 성공하고 평단으로부터도 반응이 좋았다. 이어 중국, 캐나다, 호주, 독일, 스페인 등에서 <괴물>이 개봉이 되어 프로모션 활동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영화 비즈니스의 한 부분인데 어떻게 경험했나.
"<살인의 추억>은 일본, 프랑스만 개봉했어요. <괴물>은 나라들이 많았죠. 영화 프로모션은 어쩌면 감독의 일상이 되는 거죠.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괴물>은 반미영화다 아니다 라는 논란이 있었는데 미국은 영화의 한 부분으로서 보고 있더라구요. 프랑스와 일본은 큰 규모로 개봉했지만 실패했어요. 그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중국 심의위원회에서 4장면을 삭제하도록 했는데 아이러니하게 중국에서는 성공적이었어요."

-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라는 심플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괴물>은  많은 자본이 투자된 영화이고 심플한 원칙과 상업적인 제작자의 원칙이 서로 충돌하지는 않았나.
"당연히 있죠. 솔직히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라는 말은 해외 영화제에서 추상적인 질문을 받을 때 준비한 답이에요. 물론 거짓말은 아니에요. <괴물>은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했던 아이디어였어요. 지금은 흥행했지만 준비할 때 괴물이 한강에서 SF등장하는 영화에 대한 제작비 부담이 있었구요. 잘못하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더 부담스럽더라구요.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할려고 해서 시작했던 영화인데 한강에서 괴물이 출연하는 게 말이 되냐는 식으로 주위에서 삐딱하게 보더라구요. 다행히 제작자가 절 믿어 주었죠."

- 94년부터 10년 동안 세 편의 장편과 다섯 편의 단편을 했다. 다작을 하는 감독은 아닌데, 디시인사이드가 네티즌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네티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선정되었고 누리꾼들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에 당선되어 <괴물>이 감독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기쁜데 부담스럽죠. 역대 흥행 1위를 한 감독의 작품이다. 뭐 이런 식으로 규정되어지는 것이 싫어요. 느긋하게 물살을 타고 가야 하는데 내 영화에 대한 잣대가 흥행 기록의 잣대로만 보여지는 부담이 있어요. 저는 평생 영화를 찍고 싶은데 작업속도가 느려요. 이제껏 3년에 1편씩 찍었으니까. 제가 조금 있으면 40대로 접어 드는데 가장 원초적인 공포는 내 영화는 더 좋아지든  깊어지든 넓어지든 나중에 이것 중 어느 하나라는 느낌도 받지 못하면 공포스러워질 것 같아요."

- 만화를 즐겨보고 콘티를 직접 그리고 좋아하는 사진에 집착하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속 환타지는 이런 예술가적 기질의 욕구충족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릴 때 밤에 몰래 미군 채널을 보면 영어로 나오잖아요. 멋대로 상상하게 되는 것이 몸에 밴 것 같아요. 아버지 방에 가면 사진, 그림 서적들이 외국말로 되어 있고 저는 그것들을 보면서 상상을 하게 되고 이게 무엇일까. 내 멋대로 꿰어맞추고 했던 것들이 상상력을 자극시켰던 것 같아요."

- 최근에 도쿄에서 작업을 마치고 편집을 하고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로 스폰지, 비터즈 엔드, 뽐 데 시네마가 공동제작하는 한일불 합작 영화인데 미셸 공드리, 레오 까락스와 함께 작업을 할 텐데 이방인의 시각으로 도쿄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다.
"‘처음으로 해외로케 작업을 했어요. 도쿄에서 찍는 옴니버스인데 도쿄에서 두 달간 살고 왔어요. 저만 홀홀단신 갔다 왔는데 일본 스태프하고 재미있게 찍었습니다. 나폴리에 오기 전에 편집을 끝내고 가뿐하게 왔어요. 개인적으로 도쿄는 제게 참 외로운 인상을 주었어요.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은데 점들이 움직이는 다 외로운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랄까. 3명의 감독이 각각의 시각으로 도쿄를 그려낼텐데 저는 ‘히키코모리’라는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을 소재로 했어요. <흔들리는 도쿄>(가제)는 지진에 대한 이미지도 있어요. 아마도 일본사람들이 보면 공포스러운 재앙일텐데 제 영화에서는 느낌이 다를 거예요."

- <흔들리는 도쿄>에 이어 상태가 좋지 않은 어머니 이야기인 <마더>, 프랑스 만화가 장 마르코 로셰트의 원작을 바탕으로한 <설국열차>를 계획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상태가 좋지 않은 어머니 이야기는 한국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인가. <괴물>에서 모성부재를 의식한 것 같기도 한데.
"엄마가 있으면 가족이 강해지죠. <괴물>에서 모성 부재는 제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쓴 것입니다. <마더>는 굉장히 철 없는 아들과 아들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가진 엄마를 말하는 영화가 될 거예요. 시나리오 작업을 준비할 때 해외에서 다른 나라 엄마들은 어떤지를 물어보면 자기들 나라 엄마들이 가장 상태가 안 좋다라고 대부분이 말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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