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야구광인 나는 지난 9일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야구중계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텔레비젼을 통해 야구 중계를 시청하다 순간 가슴이 탁 막히는 경험을 했다. 응원하는 팀의 경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극적인 역전 홈런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내 가슴을 막혀버리게 만든 것은 방송 카메라가 비춘 한 장의 현수막이었다.

 

 임수혁의 심장은 지금도 뛰고 있다.

임수혁의 심장은 지금도 뛰고 있다. ⓒ SBS 스포츠 캡쳐 화면

 

"임수혁의 심장은 지금도 뛰고 있다. 그대들의 투지와 근성은 살아있는가? 일어나라!! 임수혁!"

 

현수막 문구를 보면서 나는 어느 해 겨울 임수혁과 어떤 이들이 함께 만들었던 잊고 있었던 시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그런 가슴아픈 이름이 있다. 2000년 4월 18일 잠실야구장 2루에서 쓰러진 채 7년째 멈춰버린 시간을 살고있는 '임수혁'. 이 글은 그의 소중한 팬들이 함께 만들었던 어느 겨울의 이야기다.  

 

'찌질이'들이 임수혁을 위해 모금 한다고?

 

 임수혁 선수에게 기적이 찾아오길...

임수혁 선수에게 기적이 찾아오길... ⓒ 롯데 자이언츠

왜 그런 무모한(?)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안난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임수혁의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저려왔다는 것, 그래서 나도 임수혁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 한 켠이 답답했다는 것 정도다.

 

그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에서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답답함에 나는 2005년 초겨울, 정확히는 11월 8일, 악플러 들이 난무한다는 비회원제 사이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야구갤러리'에 '임수혁 선수와 그 가족들을 위한 성금모금을 하자'는 조금 위험한(?) 글을 올렸었다.

 

위험하다고 표현을 한 것은 디시인사이드는 인터넷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비실명·비회원제를 표방하는 곳이라 그곳의 사람들은 서로 게시판 상에 사용하는 닉네임으로만 대화를 주고받는, 상대방의 신원이 철저하게 가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누가 흑심을 품고 모금을 한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없는 곳이다. 물론 성금이 걷히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일년을 넘게 활동을 했던 곳이고 마땅히 그런류의 글을 올릴 곳도 여기뿐이 없었다. 기대? 안했다면 거짓말 이겠지만 솔직히 글을 올리고도 수십차례 '그냥 지울까' 하는 고민과 싸워야만 했다. 그정도로 무모한 생각이었다.

 

하루에도 수십페이지가 넘어가는 활발한 게시판에서 그래도 '임윤빈 선생님(임수혁 선수의 아버지), 우리는 당신의 아들을 잊지 않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내가 올린 게시글은 다행히 많은 이들이 클릭을 하는 바람에 생명력이 길었다.

 

처음에는 '에이, 이게 가능이나 할까'라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그래 우리도 한 번 좋은 일 해보자 다른 사람도 아닌 임수혁의 일인데…'라는 댓글들이 올라오면서 놀랍게도 점차 분위기는 우호적으로 바뀌더니 어느 순간 당장 모금을 진행을 하자는 식으로 일이 급진전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과연 모금자를 믿을 수 있는가' '계좌는 누구 이름으로 올려야 공신력이 있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 공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궁리 끝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측에 연락을 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금을 하는 데 계좌를 빌려준다는 것이 힘들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임수혁 선수 가족에게 연락을 해서 모금 할 수 있는 계좌를 열어달라고 부탁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가 걷힐 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괜한 상처만 안겨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시간만 낭비하게 되자 결국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내 개인 계좌를 공지로 올리자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제 모금 예상액은 더욱 줄어들었다. 개인계좌로 비실명사이트에서 인터넷 상으로 모금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디씨인사이드 야구갤러리… 일부 사람들에게는 찌질이들의 집합소 쯤 으로 알려져 있는 공간 입니다. 익명게시판에서 무엇을 할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 속에서 (중략) 그러나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수혁이형에게 지고있던 마음속의 빚을 이제 조금이라도 갚고 싶습니다.'

 

공지글에 나온 찌질이('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놀지 못하는 아이'라는 뜻의 인터넷 신어)라는 표현은 이 모금의 비참한 결과를 미리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성금 모금은 11월 10일 진행이 되었다. 기간은 20여일. 만원이 걷힌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그런 부실하기 짝이 없는 모금이었다. 

 

찌질이들이 모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돈'

 

계좌번호가 올라가고 공지가 뜬 시각은 11월 10일 오후 4시. 감격스럽게도 공지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첫 입금자가 나왔다. 그런데 입금액이 좀 이상했다. 공과금 수납도 아닌데 1원 단위까지 표시돼 있었다. 입금 확인 요청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저려왔다.

 

'나이도 어리고 백수라 돈을 보내고 싶어도 많이 보낼 수가 없어서 통장에 남아있는 전재산을 보냅니다'

 

 성금 모금 한 지 6시간 만에 37만원이 모였다.

성금 모금 한 지 6시간 만에 37만원이 모였다. ⓒ 이정래

이 성금 모금이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10시, 잠시 은행에 들려 통장을 찍어봤다. 그런데 통장을 읽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통장에 찍힌 입금액이 무려 37만2045원. 손이 떨렸다. 공지가 올라온지 불과 6시간 만에 모인 금액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금액 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통장에 빼곡하게 적힌 수십명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성금을 입금하면서 실명을 쓰지 않고 게시판 사용하는 닉을 사용했다. 익명게시판이라 실명으로 보내면 누가 보냈는지 확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가 철저하게 가려져있는 곳에서 6시간 만에 그런 금액이 모인 것이다.

 

그리고 공지 올라온 지 6일만에 모금액이 100만원을 넘어섰다. 모두가 놀랐다. 금액이 예상보다 커지자 논란도 생겼다. 일단 '모금자가 먹고 튀는 것 아니냐?'는 본능적인 문제제기에서 부터 '모금자 명단에 입금액을 쓰는 것은 적게 낸 사람들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속깊은 논란까지.

 

그렇게 아무도 믿지못했던 20여일이 흘렀다. 성금 모금 마감시한인 12월 1일 오후 4시 추가 입금을 막기위해 통장을 해지시키고 전액을 환급받았다. 최종 모금액은 2,396,022 원.

그날 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돈을 품에 안고 밤새 뒤척거려야 했다. 잠이 오지를 않았다. 다음날 임수혁 선수의 아버님께 연락을 드리고 모금액 전액을 보내드렸다. 인터넷 상에서 모금을 했다는 사실에 아버님도 놀라시는 눈치였다.

 

그렇게 아무도 믿지못했던 성금 모금이 끝이났다. 어떤이에게는 하룻밤 술값도 안되는 금액 일지 모르지만 우리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금액이었다. 그랬다. 이것은 기적이다.

 

 죽을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임선수의 부친 임윤빈 선생께서 보내주신 감사의 편지

임선수의 부친 임윤빈 선생께서 보내주신 감사의 편지 ⓒ 이정래

기적의 존재를 확인한 이상 망설일 것이 없었다.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났으니 수혁이형에게도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거라 믿었다. 어느 날 아침 벌떡 일어나 다시 그라운드로 달려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두 번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수혁이형은 아무런 의식도 없이 누워만 있고 가족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다.

 

모금을 한 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바쁘다는 핑계로 더 이상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망각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며칠전 텔레비젼 야구 중계를 통해 야구장에 걸린 한 장의 현수막을 보게 된 것이다.

 

'아.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임수혁은 얼마나 가슴시린 이름이었던가'

 

그때의 기록들을 찾아봤다. 성금 모금을 마무리 하면서 분명히 나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작은 기적을 만들어 낸 것처럼 수혁이형의 가정에 기적이 찾아와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21일 동안의 이 감동적인 기억 고마운 기억 죽을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언제 부터인가 그해 겨울을 잊고 지내왔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망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잊지 말아야 할 것도 있기 마련이다. 떠올리는 내내 가슴이 시리도록 아프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잊지말고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너무나 한 참이 지났지만 2005년 11월, 그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이글로 전하고 싶다. 그리고 절대로 잊혀져서는 안되는 이름, 임수혁선수에게 기적이 찾아와 주길 간절하게 소망한다.

 

'당신의 심장은 지금도 뛰고 있다. 일어나라!!! 임수혁!' 

 

임수혁 선수는 여전히 투병중

 

고려대-상무를 거쳐 1994년 롯데자이언츠에 입단을 한 임수혁은 국가대표 주전 포수를 지낸 유망한 포수였다.

 

무시못할 장타력을 보유한 '공격형 포수'였던 임수혁은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 3-5로 패색이 짙던 9회에 동점 투런 홈런을 때려내는 등 유난히 포스트시즌과 같은 큰 경기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펼치며 마해영과 함께 '마림포'의 한축으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4월 18일 잠실에서 벌어진 LG와의 원정경기 도중 2루에서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구장에 의료진이 없었기 때문에 응급조치가 늦어진 것이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이후 모든 경기장에 의료진을 대기시키는 법안이 만들어졌다)

 

이후 법원은 롯데와 LG가 각각 2억 4천만원과 1억 2천만원을 임수혁 가족에게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마땅한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일년에 1억원 가까이 들어가는 병원비와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족들은 현재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임수혁을 집으로 옮긴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매달 수백만원에 이르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온 가족이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 매년 연말에 벌이는 자선모금 행사와 지인들의 도움 등으로 근근히 치료비를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런 주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수혁의 병세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으며 그의 의식은 여전히 2000년 4월 18일 잠실 야구장 2루에서 멈춰 있는 상태다.


 

2007.09.12 08:4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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