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 <검은집>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말]
이 기사에는 영화 <검은집>의 결말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주> ▲ 영화 <검은집>의 한 장면. 과연 누가 사이코패스일까.
영화 <검은집>(감독 신태라)이 오랜만에 한국영화 체면을 세웠다. 지난 21일 개봉한 <검은집>은 개봉 첫 주 전국관객 51만8천여명을 동원해 한국영화로는 8주 만에 개봉주 1위를 기록했다. <검은집>의 초기 흥행 성적은 황정민 등 주연배우들의 열연에 기댄 점도 있지만 '사이코패스'란 용어를 앞세운 마케팅에도 크게 힘입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 사이코패스란 개념이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 엽기적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 때부터. 2004년 7월 검거되기까지 10개월 동안 21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절단해 유기한 유영철은 조사과정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다.

영화 <검은집>은 배우의 입을 빌려 사이코패스에 대해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얘기한다. 그들을 '인간의 가면을 쓴 악마'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가면 뒤 사이코패스의 실체를 알기 위해 범죄심리학자 조은경 한림대 교수(심리학)를 만났다. 조 교수는 경찰청 강력사건 분석자문위원으로 연쇄살인범 유영철ㆍ정남규를 직접 면담했으며, <진단명 사이코패스>(로버트 D. 헤어 지음ㆍ바다출판사 펴냄)를 공동번역하기도 했다.

"영화 <검은집> 내용과 유사한 실제 사건 있었다"

먼저 영화 <검은집>의 줄거리를 얘기하자 조은경 교수는 "시나리오 작가가 참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실제 그런 사건이 있었다"며 '그 사건'에 대해 들려줬다.

"2003년에 발생한 사건인데 엄마가 보험금을 노려 친딸을 죽였다고 무기징역을 받은 사건이 있다. 알고 보니 그 여자 주변에 이미 죽은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아이 아빠인 전 남편, 친한 친구도 죽었고, 모두 보험금과 관련이 있었다. 딸은 수영장에서 떠올랐는데, 부검 결과 독극물이 발견됐다. 확실한 물증이나 자백은 없었지만 엄마 이외에는 다른 사람의 살해 가능성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최초로 대검에서 뇌파검사까지 했던 사건이다."

사건 당시 딸의 나이는 9살이었고, 죽기 이틀 전 엄마 안아무개(37)씨는 딸 앞으로 보험에 가입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원심이 확정됐다. 조 교수는 보험금과 관련한 또 다른 사례도 소개했다.

"보험금을 타려고 남의 눈을 계속 찌른 여자도 있다. 자기 남편, 아이, 친구… 그 여자도 보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싶은데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계속하는 거다. 그런 행위를 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사회적으로 비난받고 감옥에 갈 거라는 두려움이 없으니까. 사이코패스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만 관심이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라도 해야만 한다."

<진단명 사이코패스>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들의 삶은 다른 사람이 비용을 대는 자기만족 게임에 불과하다'. 그 '비용'이 경우에 따라선 다른 사람의 목숨이 될 수도 있다.

'가사는 알아도 음악은 모른다'

영화 <검은집>은 사이코패스에 대한 설명을 광고카피로 내세우고 있다. '표정이 없다' '동정심도 없다' '고통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이 없다'.

- 사이코패스는 감정이 없다는데 정말 그런가.
"사이코패스도 감정이 있기는 하다. 화를 낸다든지 그런 건 있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희노애락 상황에서 적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외국 실험을 보면 감정적인 얼굴 모습들을 보여주고 구별하게 했을 때 사이코패스들은 잘 구별하지 못했다."

▲ <진단명 사이코패스> 책표지
ⓒ 바다출판사 영화에도 사이코패스는 웃는 얼굴 사진과 우는 얼굴 사진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설명 장면이 나온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머리로만 이해할 뿐 정서적으로 공감하지 못한다. 비유하자면 '가사는 알아도 음악은 모른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자기중심적이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 외에 사이코패스의 성격 특징으로 충동적이고, 행동 제어를 잘 못하며, 책임감과 죄의식이 없고,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다… 등등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만난 한 강도 전과자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PCL-R(사이코패스 진단방법. 40점 만점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사이코패스 성향이 크다. 보통 사람의 경우 15-16점인데 유영철은 34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점수가 29점이었다. 나이가 마흔이었는데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수십 차례 강도 행위를 저지르고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면서도 얼마나 고민 없이 살았으면 그토록 편안한 얼굴을 할 수 있는지…."

조 교수는 또 "사이코패스의 공통된 성격특징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발현되는 형태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했다.

"폭력을 즐기기도 하고, 남의 것을 슬쩍 하기도 하고, 남을 속여서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남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느낄 수도 있고, 성폭행으로 여자에게 고통을 주면서 만족해할 수도 있고…."

또 매우 드물긴 하지만 연쇄살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도 한다. 사이코패스는 희생자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그들에게 살인은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한 하나의 게임일 뿐이다. 조 교수는 "연쇄살인범의 90% 정도는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정남규는 다른 유형의 사이코패스

▲ 유영철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사이코패스에 대해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론 괴물 같은 사람도 있다. 유영철이나 정남규 같은 사람은 거의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무얼 할지 모르는 그야말로 시한폭탄 같은 괴물이다. 새벽에 잠 안자고 그냥 돌아다니다가 자기 맘에 내키면 아무데나 들어가 사람 죽이고…."

조은경 교수는 앞서 밝혔듯이 경찰청 강력사건 분석자문위원으로 연쇄살인범 유영철ㆍ정남규를 직접 면담했다. 유영철을 직접 만나보니 어땠느냐는 질문에 "멀쩡하죠"라고 답했다. 그리고 유영철과 정남규는 "서로 유형이 다른 사이코패스"라고 진단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정남규는?
유영철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0개월 동안 주로 부유층 노인과 윤락여성 등 21명 살해한 연쇄살인범. 자신은 26명을 살해했으며, 사체의 뇌수와 간을 먹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에서는 "붙잡히지만 않았다면 올해 안에 100명은 거뜬히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남규 이른바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2년에 걸쳐 부녀자와 어린이 등 13명을 살해하고 20명을 중태에 빠뜨렸다. 그는 첫 공판에서 "마치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싶은 충동만 강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유영철은 2005년 6월, 정남규는 지난 4월, 각각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유영철은 말도 잘하고, 남을 잘 기망하고, 죄책감이 없고,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고, 사이코패스가 갖춰야 할 모든 속성을 다 갖춘 클래식 사이코패스라고 할 수 있다. 또 충동적이면서도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어떻게 충동적이면서도 계획적일 수 있냐가 잘 이해 안 되기도 하는데,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만족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참는 거다. 반면 정남규는 충동적이면서 우발적이고 치밀하지 못한 경우다. 또 대인관계 매력이 떨어지고, 말도 어눌하고, 남을 속이는 기술도 없다. 유영철과는 다른 유형의 사이코패스다."

유영철은 검거 직후 "여성들은 몸을 함부로 굴리는 일이 없고 부유층은 각성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했으며, 이후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반면 정남규는 범행동기에 대해 "세상이 싫어서"라고 밝혔으며, 첫 공판 최후변론에서 "(피해자나 그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전혀 없고 오히려 즐거웠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유영철에 대해선 한때 동정론이 일고, 팬카페가 개설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유영철이 원하는 건 사람들을 조정해서 자신을 믿게 만드는 것"이라며 "그게 그 사람 성격에 맞는 거"라고 했다. 현재 유영철은 다른 재소자와도 잘 어울리지 않은 채 고시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코패스는 사이코가 아니다

▲ 영화 속의 사이코패스들. <양들의 침묵> <한니발> 등의 렉터 박사(안소니 홉킨스 분ㆍ왼쪽)와 <투 다이 포>의 수잔(니콜 키드만 분).
-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도 사이코패스로 보는지?
"기록으로 나타난 것만 보면 사이코패스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스트레스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조승희는 오히려 정신질환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는 과거를 보면 주변에 피해를 입힌 흔적들이 나오는데, 조승희는 그런 흔적들이 별로 없다. 있다면 여학생을 따라다닌 것 정도인데 어린 시절 가족들의 증언을 들으면 사이코패스는 아닌 것 같다."

조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정신질환자, 이른바 '사이코'가 아니라고 했다. 쉽게 말해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정신장애 항변이라는 게 있다. 법정에서 피의자의 범행 당시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판단되면 무죄선고를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한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거기 해당 안 된다. 그들은 범행을 저지를 때 그것이 범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사이코패스로 판단되면 '위험한 범죄자'로 판정해 종신형을 선고한다."

<진단명 사이코패스>에서 인용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이코패스의 재범율은 다른 범죄자의 2배에 이른다. 특히 폭력 관련 재범율은 다른 범죄자의 3배나 된다.

조 교수는 그렇지만 사이코패스는 일반적으로 조폭 등 범죄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와도 다르다고 했다.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행동패턴에 따른 분류인 데 비해 사이코패스는 성격특징을 가리키는 개념이라는 것. 그는 "사이코패스는 충성심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조폭이나 테러리스트 집단에는 별로 없다"고 했다.

"사이코패스는 자기밖에 모른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나 대의를 위해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봉사라는 개념이 없다. 조폭 무리에 사이코패스가 있으면 아마 왕따당하거나 퇴출당할 거다. 자기 밖에 모르고 남 밑에 있는 걸 못 참으니까… 아마 보스 중에는 사이코패스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양복 입은 뱀'

<진단명 사이코패스>의 저자 헤어 박사는 "대부분의 범죄자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오히려 법망을 피해 교도소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사이코패스가 많다"고 경고했다. 그의 추산에 따르면 일반인 가운데 사이코패스의 비율은 1%.

- 1%라면 100명에 1명꼴이라는 얘기다. 정말 그렇게 많은가.
"헤어 박사는 미국과 캐나다를 분석 대상으로 했기에 우리와는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많은 건 사실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지나가고 난 뒤 걔한테 또 당한 거 같애'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잖은가. 흔히 사이코패스라면 연쇄살인범이나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을 떠올리는데 그건 굉장히 드문 경우다. 대부분 사이코패스들은 우리가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이지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 영화 <공공의 적>에서 이성재는 전형적인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 교수는 이어 "예를 들면 영화 <공공의 적>에서 이성재가 맡은 펀드매니저 역할도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또 "그처럼 반사회적 전과나 경력이 겉으로 드러난 게 없는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를 '양복 입은 뱀'이라고 부른다"고 소개했다.

"그들은 양복을 입었다 뿐이지, 먹잇감을 보면 앞뒤 안돌아보고 날름 잡아먹는다는 점에서 똑같은 파충류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양복 입은 뱀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가정에서 잘 교육을 받아 폭력적이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격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고 거기서 만족감을 느낀다."

조 교수는 고위 정치인이나 대기업 임원 또는 종교 지도자 가운데도 사이코패스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자신의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뭐든지 한다. 지칠 줄 모른다. 아마 자신은 '나는 야심이 큰 인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리고는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따라 웃었지만 등골은 서늘했다.

치료프로그램을 거친 사이코패스의 재범율이 더 높아

-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인가.
"생물학적으로 감정을 느끼고 억제하는 전두엽 부분이 정상인과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사이코패스 성격은 대개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 품행장애 아이들이 나중에 사이코패스로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신경학적 결함에 나쁜 환경이 더해지면 사이코패스적 성향과 행동을 더욱 부치기게 된다. 조 교수는 "사이코패스들을 보면 결손가정이나 학교를 제대로 못다닌 경우가 많다"고 했다. 유영철과 정남규도 그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

- 치료는 가능한지?
"아동기 때 충동조절 훈련이나 행동치료 같은 걸 하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사이코패스는 자기한테 뭐가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잘 아니까,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해 교육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게 대안이 될 듯싶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다음엔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 자라면서 이미 많은 위반 행위들을 하고, 그게 라이프스타일로 고정돼 버렸기 때문에 치료프로그램으로 바꾸긴 어렵다. 게다가 그들은 치료의지가 없고, 치료자를 항상 이용하려고만 생각하니 치료의 기본조건이 안된다."

그래서 오히려. "치료프로그램을 거친 사이코패스들의 재범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 치료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의 약점을 더 잘 알아채는 학습을 하기 때문이다."

- 그럼 사회적 차원에선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나.
"어려운 질문이다. 범죄자라면 일단 법망에 들어왔으니 스크리닝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같은 경우 분식회계나 돈세탁에 용이한 제도적인 허점을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애초부터 관계를 안 맺는 게 최선인 듯싶은데?
"그렇긴 한데 처음엔 잘 알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대개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받아 왔지 않나. 사이코패스라고 머리에 써 있는 것도 아니고…. 주변 믿을 만한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영화에서 주인공과 사이코패스의 대결은 대개는 사이코패스의 패배(?)로 끝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래서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고,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2007-06-30 14:41ⓒ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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