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초이' 최희섭의 국내 복귀가 확정됐다. 지난 10일 총액 15억 5천만원에 계약을 체결한 최희섭은 KIA 타이거즈에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다. 지난 대통령배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호남 최대의 야구 명문 광주일고 출신의 최희섭은 이종범, 김종국, 김상훈 등 팀 내에 많은 동문들이 있어 국내 무대에 적응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특히 내야수 이현곤과는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기동창'으로서 1998년 고교 졸업 후 9년 만에 한 팀에서 재회하게 됐다. 광주일고 황금 내야, '최희섭, 이현곤, 정성훈 그리고 송원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내야진을 꼽으라면 김성래, 강기웅, 김용국, 류중일이 버티고 있던 90년대 초반의 삼성 라이온즈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90년대 중반 장성호, 김종국, 홍현우, 이종범이 건재했던 해태 타이거즈를 떠올릴 수도 있다. 2000년 현대 유니콘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이숭용, 박종호, 박진만, 톰 퀸란도 빠지면 섭섭한 최고의 내야진이다. 이렇듯 '프로야구 최고의 내야진'을 꼽는 데는 꽤 많은 토론과 의견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고교야구 역대 최고의 내야진'을 꼽으라면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1997년의 광주일고가 있기 때문이다. 1루수 최희섭, 2루수 송원국, 3루수 이현곤, 유격수 정성훈.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선수들로 구성됐다. 당시 4명 모두 청소년 대표에 뽑힐 만큼 고교야구에서 독보적인 내야진이었다.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러 '고교야구의 전설'이었던 선수들은 프로야구의 간판 스타로 자리잡았다. 연세대 진학 후 2002년 KIA에 입단한 이현곤은 지난 해 군복무를 마친 후 올 시즌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안타(타율 .324로 33안타)를 때려내고 있다. 당시 유일한 2학년생이던 정성훈 역시 고교 졸업 후 바로 해태에 입단했다가 지난 2003년 현대로 자리를 옮겨 리그 정상급 3루수로 성장했고, 빅리그에서 40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최희섭도 8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국내 무대로 돌아와 '거포 본색'을 드러낼 예정이다. 그러나 1997년 '광주일고 황금 내야'에서 2루수를 담당했던 송원국은 10년이 지난 현재, 프로야구 선수 명단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다. 2001년 6월 23일에 벌어진 '그 사건'
데뷔 첫 타석에서 끝내기 만루 홈런을 터트린 송원국 데뷔 첫 타석에서 끝내기 만루 홈런을 터트린 송원국
 데뷔 첫 타석에서 끝내기 만루 홈런을 터트린 송원국
ⓒ 두산 베어스
연고팀 해태의 지명을 받았던 세 선수와 달리 송원국은 서울팀 두산 베어스(당시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고 곧바로 입단, 네 명 중 가장 먼저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팔꿈치 부상과 간염 증상으로 3년 동안 1군 무대에 올라오지 못한 송원국은 2001년 뒤늦게 1군에 데뷔해 2년 동안 81경기에 출장, 타율 .267 39안타 6홈런 28타점의 기록을 남기고 서른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쓸쓸하게 은퇴했다. 여기까지는 매년 끊임없이 등장하는 '꽃 피지 못한 유망주'의 진부한 스토리지만 송원국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야구팬들에게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심어 놓았다. 2001년 6월 23일에 벌어진 '그 사건' 때문이다. 두산과 SK 와이번스가 맞붙은 잠실 경기. 6-6 동점 상황에서 두산의 9회말 마지막 공격이었다. 두산은 장원진과 타이론 우즈의 연속 안타에 이어 심재학의 볼넷으로 2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지만 한창 들떠 있어야 할 두산의 응원석은 갑자기 술렁거렸다. 듣도 보도 못한 4년차 중고 신인 송원국이 대타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데뷔 첫 타석에 들어선 '풋내기'가 9회말 동점의 2사 만루 상황에서 어찌 긴장하지 않고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겠는가. 게다가 마운드에는 SK의 간판 투수 김원형이 서있는데. 그러나 두산 응원석의 술렁임은 곧 열광적인 환호로 바뀌었다. 송원국이 김원형의 초구를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을 터트리고 만 것이다. '데뷔 첫 타석 초구 끝내기 만루 홈런'. 처음 필드에 나간 아마추어 골퍼가 첫 번째 스윙에서 '홀인원'이 나온 상황이 이보다 극적일까?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기적 같은 상황을 연출한 송원국은 이후 '만루 홈런의 사나이'라는 멋진 닉네임과 함께 최고의 대타 요원이자 안경현의 뒤를 이을 차세대 2루수로 각광받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20대의 어린 나이에 선수 생활 마감 프로야구 역사에 손꼽히는 극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줬던 '운명의 신'은 야속하게도 불과 1년 2개월 후 송원국에게 커다란 시련을 안겨주고 말았다. 송원국은 2002년 8월 9일 자신의 승용차를 몰고 잠실구장으로 향하던 도중 올림픽대로에서 차가 뒤집히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이 사고로 송원국은 왼쪽 무릎 인대를 크게 다쳤다. 곧바로 독일로 출국해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2년이 넘도록 피나는 재활 훈련을 소화했지만 송원국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데뷔하자마자 야구판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송원국은 그렇게 쓸쓸하게 정든 야구장을 떠나고 만 것이다. 최희섭의 복귀로 이현곤, 정성훈과 함께 1997년 '광주일고 황금 내야'를 이뤘던 선수들이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 모두 모인 상황에서 너무나 일찍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송원국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크게 남을 수밖에 없다. 송원국은 현재 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비록 야구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고 있지만 2001년 6월 23일에 보여준 패기와 자신감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멋지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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