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에서는 가끔 스타가 탄생한다. 몇 해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중화권 감독의 신명나는 코미디는 그야말로 '대히트'였다. 관객들은 미친 듯이 웃었다. 킬러와 영화감독의 결합에, 코미디가 덧붙여지니 속도감 넘치는 걸작이 탄생했었다.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그리고 지난 6일(금) 아홉 번째 서울여성영화제에서도 '사실의 힘'을 바탕으로, 또 한 명의 스타가 탄생하는 것을 보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꿋꿋이 여성인권운동에 투신 중인 여자, 말라라이 조야(29)가 그 주인공.

2003년 아프가니스탄의 제헌 의회에서 "나라를 망치고 여성을 억압하는 이들은 국제재판에 회부되어야 한다"라고 무자헤딘 군벌의 여성인권탄압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강경노선파는 격분했고 어떤 의원들은 물병 세례로 위협했다, 조야는 그 이후로 보디가드와 부르카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테러 대상 위험 인물'이 되었다.

<행복의 적들>, 아프간 최연소 여성국회의원 말라라이 조야













▲ 6일 <행복한 적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말라라이 조야

ⓒ 김홍주선
"다른 여성들에게 부르카를 쓰지 말라고 설득하여 이들이 부르카를 벗게 되었는데, 난 이제 부르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덴마크의 감독 에바 물바드의 <행복의 적들>에서 조야의 대사다. 조야를 영국 BBC에 출연케 만든 3분 연설 후 2년, 말라라이 조야는 마침내 아프가니스탄에서 35년 만에 행해지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이 허용된 국회의원 선거이기도 하다. <행복의 적들>은 군벌들의 테러 위협 속에서도 마지막 선거 활동을 멈추지 않는 열흘간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은 남성의 허락 없이는 외출을 할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다. "여든 살 먹은 할아버지와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어린 소녀 라헬라. 말라라이 조야는 설득을 위해 상대 가문 남자를 만난다. 그러나 그는 '문화적 전통과 가문의 관습'이라고 주장한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문맹률이 높아 선거제도에 익숙지 않다. 조야의 얼굴이 노출된 사진이 뿌려지고, "이단자", "공산당", "창녀"라는 황색비방이 자행된다. 살해 협박 속에서 말라라이 조야는 자신의 목소리가 필요한 지역에 찾아간다.

"저를 뽑아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여성의 인격을 존중하고, 부패한 군벌 세력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을 뽑으십시오", "집 그림이 말라라이 조야입니다"

검은 히잡을 둘러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둥근 눈망울을 굴리며 연설을 듣는다.

살해 협박 속에서 말라라이 조야의 친구는 말한다.

"넌 언제나 나의 희망이었어. 하지만 널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해. 네가 다칠까 봐."

선거개표결과가 나오고 의회의 대부분은 군벌이 장악했지만, 말라라이 조야는 최연소 여성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행사 차량을 타고 길거리에 늘어선 사람들이 국기를 흔드는 가운데를 지나가며 조야는 감격에 겨워 한다.

"저들이 우리를 보고 있어요. 희망에 차서 우리를 보고 있어요"

"외롭지 않습니다. 저는 아프간 민중을 믿습니다"














▲ <행복의 적들> 스틸 사진

ⓒ 여성영화제

여성영화제 두 번째 날, 마지막 상영시간을 장식하는 <행복의 적들>이 끝나고 자막이 올라갔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 말라라이 조야가 통역과 프로그래머 사이에 서 있었다. 피부색 다른 여성 관객들이 마이크를 건네 받고 질문을 던졌다.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활동하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옵니까", "어머니입니까? 자식이 있습니까? 외롭지는 않으십니까?", "당신의 이야기에 감명받았습니다. 어떻게 처음으로 의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의회에 들어선 뒤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었습니까?"

말라라이 조야는 대답마다 긴 호흡으로 "제가 죽어도 여성인권의 수호는 계속될 것입니다. 협박이 끊이지 않아도, 의회 밖의 수많은 국민들이 제 편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발언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힘있게 말했다. 관객들은 조야의 답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보냈다.

"2003년 제헌의회에서 군벌들의 만행을 폭로한 후, 제 삶은 너무도 달라졌습니다. 결혼한 지 2년차 된 저는 남편과 함께 살 수도 없고,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가지길 원하지만, 저는 현재 국민과 아프간의 민중을 위한 전쟁 중에 있기 때문에 가정을 만드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해방이 올 때까지는 결코. 하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전 아프간의 민중을 믿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현재 반민주 정권이 장악하고 있다. 군벌이자 마약조직범이 주지사, 장관, 국회의원, 장군 등의 요직을 점하고 있다. 불법정당을 운영하고 지방을 통치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최대의 아편생산국이 되어버렸으며, 대통령조차도 이들과 타협해야 한다.

9·11 이후, 이를 빌미로 민주주의 탈을 쓴 외세가 들어와, 조직범죄자들이 이들과 손잡고 또다시 의회를 통제하고 있다. 불리한 입법안이 추진되면 추진 중 얼마든지 이를 버려버린다.

말라라이 조야는 국회의원이지만 발언권을 얻기조차 힘들다.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을 하면 발언 도중 마이크를 꺼버린다. 국회에서 끌려나간 적도 있다. 언론검열도 심하다.

2월 사담 후세인이 사형된 이후, 말라라이 조야를 인터뷰한 외신 기자가 있었다. 그러나 아부 사야프 조직이 외신 기자를 협박하였고 기자는 이에 굴복해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의 적들>의 아프가니스탄 상영? 너무도 큰 꿈일 뿐이다.

"돌려서 얘기하라고? 그럴 필요 조금도 못 느낀다"














▲ 관객과의 대화 뒤 사인 요청에 응하는 말라라이 조야

ⓒ 김홍주선

1982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당시, 조야는 네 살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파키스탄으로 피난을 떠나 그곳에서 공부를 마쳤다. 1998년 소련이 떠난 뒤 아프간으로 돌아왔을 때, 고향인 파라의 여성들은 참담한 상태에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가 문맹이었다.

말라라이 조야는 오파크(OPAWC; Organisation for Promoting Afghan Women's Capabilities. 아프간 여성 능력 증진 조직)라는 비정부, 비영리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지역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 특히 '활동가 여성'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하에서 <어두운 꽃>이라는 시집을 내며 활동했던 여성 시인 나디아 안주만(2005년 사망 당시 25살)은 군벌과 결탁한 남편에 의해 교사, 살해당했다. 여성이 드러내놓고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에 격분한 것이다.

카불에서는 네 살짜리 소녀의 납치 강간이 있었지만 범죄자는 잡히지 않았다. 22살 여성을 자식 앞에서 강간한 뒤, 자식에게 침을 뱉는 사건도 있었다. 11살짜리 소녀를 '개값'도 안 되는 돈에 팔아넘긴다. <행복의 적들> 속 '라헬라'는 아프간 모든 여성의 이야기다.

"대부분 여성들이 의식과 자각을 갖지 못합니다. 학교 다니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이들이 눈을 떠 평등 대우를 요구할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저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제게 말합니다. '희석시켜서 예쁘게 얘기해라' 하지만 저는 그렇게 얘기할 필요를 '조금도' 느끼지 못합니다. 여성들이 제 역할을 할 때 국가 발전도 있습니다. 그들이 저를 죽여도 제 목소리는 죽이지 못합니다. 꽃을 꺾어도 봄이 오는 걸 막을 수는 없습니다."

관객들은 말라라이 조야의 주위에 몰려들어 사인을 받고 지지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관객들이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않자 여성영화제 상영 스태프가 "장내 정리를 위해 남은 이야기는 바깥에서 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여성인권활동가냐고요? 아직!"
[관객미니인터뷰] 레바논에서 온 유학생 리나 콜레이라트











▲ 여성영화제 관객 리나 콜레이라트(오른쪽)
ⓒ김홍주선

레바논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 와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 중인 리나 콜레이라트(Lina Koleilat). 한국 여성의 정치적 지위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한국 여성들이 왜 정치에 많이 진출하지 못했는지, 여성의 정치적 지위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여성영화제에서 가장 보고 싶은 영화요? 디마 알 준디 감독의 <노예 비자>요. 레바논에서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서 감독은 레바논을 떠나 벨기에에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노예 비자(Maid for Sale)>는 인구 400만 레바논에 거주하는 10만명 이상의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권을 압수당하고 자택에 감금당한 채 고용주로부터 임금착취를 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현대판 노예제도다. 양국 정부는 이들을 하나의 '수출 상품'으로 보고 있다.

리나는 <행복의 적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말라라이 조야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는 행운을 얻었다. 질문은 "이라크전을 하면서 미국이 인권의 수호자로 자처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의 지원이 있느냐." 조야의 대답은 이러했다.

"개인적으로 미국에 두 번 갔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 축출 후, 제하딘은 미국 지원을 등에 업고 집권하고 있습니다.

양복을 입고 민주주의를 들먹이지만,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고 국민에 대한 기만입니다. 한국 정부가 진정 아프간 국민의 편이라면, 미국 정부로부터 독립된 판단하에 정책을 펼칠 것을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호주에서 석 달 전 한국에 와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친구와 함께 주말에 여성영화제를 챙겨볼 예정이라는 리나. 레바논에서 여성인권 활동가였느냐고 묻자 리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직은…(Not yet)."

<행복의 적들>은 일요일(8일) 오후 1시 다시 한 번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오후 5시 서울 신촌 아트레온 지하 1층 관객다방 '쾌girl女담'에서 대담 시간이 있다.

또한 <제국과 여성>, <이주여성 특별전> 섹션이 연동해서 마련한 국제 포럼 '제국, 지구화, 아시아 여성들의 이주'가 4월 10일(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화여자대학교 국제교육관 지하 1층 LG컨벤션 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 김홍주선 기자








2007-04-08 12:5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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