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자신은 김종원에게 희생된 유족들을 찾아다니면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
ⓒ 구본환 전쟁 그리고 학살, 무수한 단어들이 오고 가는 한국현대사에서 '백두산 호랑이'를 모르는 역사학자는 드물다. 전쟁 때 '백두산 호랑이'에 물려(?) 죽은 사람들과 그 유족들은 지금도 당시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필자도 그 '맹수'가 저지른 사건들을 생각하면 유대인 학살을 다룬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 같은 전쟁영화보다, <아이덴티티(Identity)> 같은 연쇄 살인마를 다룬 스릴러 영화보다, <한니발(Hannibal)>의 '렉터'보다 더 잔인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백두산 호랑이', 그 별명의 주인공이자 '한국전쟁의 영웅'이라 불리는 김종원의 가족사를 담은 독립영화인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서>(감독 구본환, 95분, 이하 백두산 호랑이)는 어떤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까.

김종원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오랫동안 찾아나섰던 나로선 이번 영화에 기대감이 있었다. 감독 자신이 그의 조카라는 사실만으로 흥미롭게 받아들여졌고, 몇몇 연구자들과 함께 모란공원에 있는 그의 무덤을 찾은 날도 무척 흥분한 상태였으니까.

김종원 또는 백두산 호랑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 고향인 거제도에서 '김종원'보다 '백두산 호랑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말 못할 사연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그들은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될 비밀을 간직하고 외부인 혹은 기관원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 이 영화에 대해 필자가 집착까지 하고 있는지 털어놓고 싶다.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서 떠나다

@BRI@영화 <백두산 호랑이>의 구본환 감독이 나에게 연락한 게 2004년 겨울쯤인가 싶다. 그가 찾아와서 김종원의 손자라고 대뜸 이야기하고,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날 이후 나는 김종원의 일대기, 여수 순천에서 일어난 학살, 경남 곳곳에서 벌어진 학살 등을 찾아서 미약하나마 도움을 주었다. 또한 지금도 살아있는 유족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유족들은 구 감독 아니, 김종원의 손자를 보면서 무엇이라고 말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그 영화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드디어, 지난해 12월 7일부터 15일까지 용산CGV에서 열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백두산 호랑이>를 보았다. 그전에 작년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에 출품돼 꼭 보러오라고 하던 구 감독의 제안을 시간적 이유로 사양한 터라, 이번엔 꼭 봐야 했다.

영화는 김종원과 인연을 맺은 구 감독의 가족사를 '제3자'의 목소리로 혹은 1인칭 화자로 종횡무진 그리고 있었다. 구 감독의 표현에 따라 '이모할아버지'인 김종원(金宗元)과 영화제작자 할아버지 구문회의 과거를 찾아가는 '사적(私的) 다큐멘터리'라고나 할까.

감독은 어릴 때부터 김종원의 무덤을 찾아서 곤충채집에 열중하면서 그를 '자랑스러운 이모할아버지'라고 믿고 자랐다. 김종원은 감독 자신뿐만 아니라 집안의 자랑이었고, 전쟁 영웅으로 우러러 보이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군대 시절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면서 경악하게 된다. 그러면서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김종원의 유품인 각종 훈장들을 의심하게 된다. 감독은 그 수많은 훈장들이 학살의 대가로 주어진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현장에서 찾은 이모할아버지의 악행들

프로그램에 등장한 김종원이 '자랑스럽고 위대한 사람'이 아닌 수백의 민중들을 총칼로 무자비하게 학살한 사람임을 알면서, 감독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두 거짓말'이라는 절규를 남기고 그 진실을 찾으러 여수로 내려간다.

감독 눈에 비친 김종원은 한국전쟁 전후 여수, 거제, 양산, 포항 등에서 민간인들을 학살한 장본인이며, 여순사건으로 악명을 떨친 사람이었다. 이에 미 정보부에서 붙여 준 그의 별명은 '타이거 김'으로, 민간인 희생자들은 그를 '백두산 호랑이'라고 불렀다.

영화는 김종원의 일대기를 재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은 집 안팎의 일상에서 출발하여, 영화기획자로 나선 할아버지의 과거,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야 했던 할머니와 아버지의 지나온 얘기 등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다시 카메라는 여순사건의 희생자 유가족을 찾아가서 '김종원의 손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된 여수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귀신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 등을 비춘다. 또한 거제에 사는 이용대씨는 자기의 형이 김종원 부대에 의해 총살당했다고 증언한다.

이 장면에서 우연과 운명은 결합한다. 할아버지가 기획한 <해 떨어지기 전에>라는 영화에 이용대씨가 스탭으로 참여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고, 감독 자신이 김종원의 손자임을 밝히자, 이용대씨는 놀라운 표정도 잠시 "김종원, 그 양반 카리스마는 있었지"라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감독은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일본도에 목숨을 잃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혹시나 뺨이라도 맞지나 않나 했지만 의외의 답변을 들은 감독, 그리고 관객들도 놀라움과 웃음.

▲ 감독의 할아버지는 영화기획자이자 김종원의 부하였다. 감독은 백두산호랑이의 악행을 듣고자 할아버지 옆에서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러나 끝내 할아버지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 구본환 다시 화면은 바뀌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애증 관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할아버지는 김종원과의 인연, 영화제작과정을 풀어놓고, 죽기 전에 그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한다. 할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작한 그 영화의 원본 필름을 찾기 위해 감독은 종횡무진 카메라를 옮겨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영화수집가로부터 할아버지가 제작한 영화의 포스터를 손에 넣는다. 기력이 쇠진한 할아버지는 영화포스터를 보고 감격 어린 표정을 짓고, 할머니와 함께 기억을 더듬어 영화주제곡을 불러보기도 한다.

다시 장면은 바뀌고, 마지막 기력도 남지 않은 할아버지의 방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김종원에 대한 증언을 듣고자 감독은 카메라를 옮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김종원은 그런 짓 안 했어"라고 민간인 학살 사실들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는다.

"유족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백두산 호랑이>를 만든 구본환 감독을 만나 제작과정과 후일담을 들어보았다. 먼저 그는 김종원 부대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 이번 서울독립영화제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 할머니는 '개인사나 한국사의 걸작'이라고 호평을 하셨습니다. 독립영화제에서도 가족의 이야기를 그대로 그렸다고 좋은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상영했는데, 가족사를 사실 그대로 담아냈다고 하더군요."

▲ 구본환 감독은 이모할아버지 김종원의 악행을 알고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전갑생- 이모할아버지인 김종원과 할아버지의 인연은 어떻게 되나요.
"할아버지는 영덕에서 전쟁을 맞았고, 바로 군에 입대했으며, 그때 김종원을 만났다고 들었죠. 그리고 김종원이 부산계엄민사부장으로 있을 때 다시 할아버지와 만나서 그 밑에서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 이 영화는 김종원의 학살 과정을 찾아가는 것만 아니라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아버지 등 가족사를 담았는데, 제작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고 생각되는군요.
"원래 혼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일들을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니까. 그래서 게으름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가족사를 있는 그대로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 영화 제작은 가능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 현재 제작하고 있는 영화나 앞으로 진로는.
"현재 단편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점차 폭력적으로 변화하는 아이들이 어른들을 살해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 <왕의 남자>의 감독인 이준익 감독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또한 민간인 학살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올해 4월에 있을 일본의 야마카타 영화제에 <백두산 호랑이>를 출품할 예정입니다."

구본환 감독은 1980년 서울 출생이며, 200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하여 <박카스>(2001) 등의 단편을 연출했다. <백두산 호랑이를 찾아서>는 2005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상반기 독립영화 제작지원작이다.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은 누구인가?
▲ 제16연대 부연대장을 맡았던 김종원은 진주지구를 시찰하고 촉석루에서 기념촬영한 사진. 중앙에 철모를 쓰고 있는 자가 김종원이다. ⓒ한국전쟁사김종원(金宗元, 1922〜1963, 창씨명 金山宗元)은 경북 경산군에서 출생, 일제 때 일본군 하사관 출신으로 뉴기니아 전투에 참가해 인육을 먹는 상황을 경험했다고 한다. 1946년 1월 15일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연대 A중대 소대장, 1948년 10월 27일 여순사건에 개입하여 일본도로 사람의 머리를 내리치는 잔인한 학살자로 이름을 떨쳤다.

1949년 2월 보병 제16연대(마산) 부연대장 시절, 마산중학교(현 마산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마산 시내 전 중학생을 집결시키고 기관총을 단 지프차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 "반민특위에서 나를 잡으러 오면 3초 내에 권총으로 쏴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다음해인 1949년 11월 18일 제23연대장을 맡으면서 진주, 산청, 통영, 거제, 마산 등지에서 '공비(빨치산 또는 야산대)' 소탕 임무에 종사하면서 죄 없는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또한 같은 해, 12월 부산 주둔 육군 제356부대장(당시 중령)으로 양산, 울산, 경주, 포항, 창녕, 합천, 의령 등지를 다니면서 토벌활동을 하였고, 1950년 2월 5일 양산 주군 맹호부대(부대장) 양산·동래·울산·밀양·청도군까지 토벌활동을 벌여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가축까지 도살했다. 그의 활동을 본 사람들은 잔학한 행위에 치를 떨었다고 하며, 우는 아이에게 '김종원이 왔다' 하면 울음을 그쳤다고 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1950년 5월 30일 토벌을 마치고 후퇴하던 김종원부대는 거제시 마전동 공동묘지에서 이용대씨의 형을 비롯한 43명을 집단총살했다. 특히 1950년 7월 경북 영덕에서 수천명을 학살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때는 구문회(구 감독의 할아버지)와 만난 시기이기도 하다.

1950년 8월 부산 헌병사령부 부사령관 겸 경남지구병사구 사령관, 9월 23일 경남지구 계엄사령부 북구사령관을 맡아, 1950년 포항·영덕지구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서 '백두산 호랑이'로 불렸다.

1951년 9월 거창학살사건을 조사하러 온 국회의원들을 가짜 공비를 매복시켜 습격한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징역 3년의 판결을 받았으나, 약 8개월 후 이승만의 특별명령으로 석방되었고, 1952〜53년 전북경찰국장을 지냈다.

당시 김종원은 경찰복 정장차림에 검은 안경과 지휘봉을 든 채 백마를 타고 휘하 기마병과 함께 거들먹거리며 전주 시내를 순시했다고 한다. 1953년 치안국장을 거쳐 경남경찰국장을 맡았고, 1953년 9월 19일 남부군의 대장인 이현상 체포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1956년 5ㆍ15 대통령선거 뒤 부정선거의 공을 인정받아 내무부 치안국장에 임명된다. 승승장구하던 김종원은 1960년 5월, 4월혁명 뒤 임흥순과 이익흥 등과 함께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61년 12월 당뇨병으로 병보석을 받아 1963년 12월 7일에 사망했다. 그는 민간인 학살의 대가로 을지무공훈장을 비롯해 총 8개의 훈장을 받았다. / 전갑생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2007-02-10 15:58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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