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포터>의 한 장면
ⓒ 누리픽처스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는 1866년 런던 킹스턴에서 전형적인 빅토리아 가족의 첫째딸로 태어났다. 부유한 아버지를 둔 탓에 유년기에는 집 밖에 나갈 일도 별로 없이 풍족한 생활을 했다. 그녀는 1882년 스코틀랜드의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를 방문해 전원생활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1902년 피터 래빗 이야기가 처음으로 출간되어 한 권 당 단돈 1실링에 팔렸다. 이는 지금으로 환산하면 5파운드, 1시간당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출판사의 막내아들과 약혼했으나 악성빈혈로 약혼자가 죽은 뒤 포터는 1912년까지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에 참여했던 변호사를 만나 1912년 결혼했고 1943년 세상을 떠났다. 포터는 4000에이커의 땅과 15개의 농장, 오두막 등을 내셔널 트러스트 재단에 기부했다. 포터의 삶, 발랄한 러브 스토리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스 포터>에서 르네 젤위거가 열연한 베아트릭스 포터의 간략한 전기를 살펴봤다. <미스 포터>는 <꼬마 돼지 베이브>로 유명한 크리스 누난 감독이 오랜 공백을 깨고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동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르네 젤위거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을 맡아서 철없고도 순진한 러브스토리를 짠하게 연출했다. <미스 포터>의 눈꽃 날리는 포스터를 보고 있자면 이 영화를 틀림없는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상영시간의 상당수가 두 남녀의 '눈맞음'에 예쁘게 할애되고 있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살았던 19세기, 20세기 초반 영국은 여성 미술가가 활동하기에는 다사다난했을 때였다. 현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페미니즘'의 캠페인이 불붙듯이 번지던 때였으며 이와 발맞추어 동물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던, 한마디로 복잡한 시대였다. 서유럽과 미국의 19세기 개혁운동에서 유래한 페미니즘 캠페인에 프랑스의 샤를 푸리에, 생시몽,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 해리어트 테일러, 로버트 오웬, 인민헌장 운동가 등이 힘을 실어주어 본격적으로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던 때라고 하니, 그 시끌벅적한 논쟁터가 눈앞에 그려질 듯하다. <미스 포터> 영화 자체는 이와 같은 복잡한 상황은 피해가고 발랄한 로맨스로 포터의 삶과 사랑을 조명하려 했던 듯이 보인다. <아기돼지 베이브>로 알려진 누난 감독의 동화적 상상력이 빛을 발하면서 포터와 포터를 둘러싼 상황들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시종일관 따뜻하게 감싼다. 르네 젤위거와 이완 맥그리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도, 슬픔보다는 사랑이 싹트던 때의 설렘에 초점을 맞추어 낙천적으로 그려진다. 그 시절, 여성이 그림을 그린다는 건...
 피터 래빗의 모델인 토끼와 함께 있는 베아트릭스 포터
ⓒ 베아트릭스 포터 홈페이지
영화 <미스포터>에서도 포터의 성역할에 대한 저항이 미미한 짜증으로 드러난다. 그의 어머니는 결혼과 가정생활의 중요함을 강조하며 그의 직업을 쓸데없는 일로 취급한다. 출판업계에서는 '미혼여성이라는 프로필은 광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인권이 신장되었던 경과를 살펴보면, 포터의 삶에 끼어드는 잡음과 그에 대한 포터의 작은 투쟁이 어떤 의미인지 더 잘 느껴질까? 1830년대 영국의 결혼한 여성에게는 권리의 대부분이 허용되지 않았다. 1857년의 이혼법은 여성에게 이혼을 허락하였다. 1869년 밀의 책과 테일러의 <여성의 종속>은 성의 법적 종속이 도덕적으로는 큰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1870년에는 결혼한 여성도 자신의 수입과 임대료 등을 자신의 재산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1884년 결혼소송법은 가정 밖에서 여성의 사회활동을 보장하도록 하는 최초의 시금석이 됐다. 아직까지는 여성을 가정에 가두고 남편의 종속물로 취급하던 때, 포터가 택했던 작가로서의 직업 역시 여성에게는 마땅찮은 걸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이 당시 여성의 미술교육이 점차적으로 허용되었으나, 전문적인 예술인으로 명성을 떨치던 화가는 모두 왕립미술학교 출신의 남자였다. 당시 저명한 미술잡지에서는 성공한 여성화가를 비꼬는 풍자만화를 공공연히 싣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의 미술 활동을 장려하는 일각의 노력도 꾸준히 유지됐다. 어려움 속에서도1826년부터 1850년경까지 영국과 미국에는 여성 미술 전문학교가 설립됐다. 1843년에는 국립미술학교의 하나로 미술, 디자인 여성학교(Female School of Art and Design)가 세워졌으며 1848년에는 가정교사를 위한 여성 대학교가 런던에 들어섰다. 국립미술훈련학교(National Art Training School)에 여성입학허가가 난 것도 같은 해이다. 1856년에는 여성미술가협회(Society of Female Artists)가 결성됐다. 이는 1872년에 여류 미술가 협회(Society of Lady Artists)로 이름을 바꿔 정회원을 전문여성으로 규정하고 회원수도 23명으로 제한하게 된다. 그녀들은 왜 동물을 그렸을까 여성 작가가 작업하기 '척박한' 이런 환경 속에서 옆나라에서도 포터보다 조금 일찍 동물 그림으로 이름을 떨친 여성 화가가 있었다. 로자 보뇌르(Rosa Bonheur)가 그녀다. 로자 보뇌르는 이른바 '말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작품 중 '말 시장(The Horse Fair)'은 우리에게도 꽤 알려졌다. 보뇌르는 19세기 가장 유명한 동물 화가 중 한 사람이다. 보뇌르는 말 시장과 도살장을 오가며 그림 작업을 했다. 활동하기 편한 복장인 '바지'를 입었는데, 이 때문에 파리경찰국장의 허락을 맡는 등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휘트니 채드윅은 <여성, 미술, 사회>(김이순 옮김·시공아트)에서 19세기 미술사에서 드문 '여자화가'로서 로자 보뇌르의 위상을 강조한다. 프랑스의 화가였던 보뇌르의 영국과의 인연은 1855년 파리 살롱에서 시작됐다. '말 시장'으로 유명해지고 그는 이듬해 영국을 방문했다. 보뇌르의 그림은 영국에 전해져 중류층 중심으로 큰 호감을 샀다. 1855년 <데일리 뉴스(Daily News)>는 "동물들은 활력과 생기에 넘치지만 경작 일을 하지는 않는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포터와 보뇌르는 모두 동물에 대한 친화력을 나타내고 있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이 두 여성 작가가 그림에서 동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프랑스의 동물 화가 로자 보뇌르
보뇌르는 '동물의 자유와 타락하지 않은 본성, 충성, 용기, 그리고 우아함'을 강조했다. 포터는 동물을 의인화해서 출판업계로부터 "지나친 의인화"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이런 공통점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보뇌르의 명성이 높아지던 시기는 영국에서 생체 해부를 둘러싼 동물 학대와 동물 권리에 대한 대중의 논쟁이 열띠게 진행되던 때와 일치한다. 이 논쟁은 동물뿐만 아니라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로도 확대됐다. 그 과정에서 여성과 동물의 몸을 통제하는 방법이 대단히 비슷하다는 주장도 터져나왔다. 동물의 나약함을 드러낸 이미지는 남성의 권력 속에서 여성의 복종을 강조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1853년 전시된 월터 데버럴(Walter Deverll)의 '애완동물(A Pet)'은 새장 속의 작은 새에 입맞춤하는 여인을 그리고 있다. 그림에는 "애완동물을 변덕스럽게 만드는 의심스러운 친절"이라는 작자미상의 문구가 쓰여져 있다. 말과 여성이 '애완동물'이었던 시대, 여성화가들의 몸부림 신기하게도 1900년대 생체 해부 반대운동에 가담한 여성의 숫자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 가담했던 여성의 숫자와 비슷했다. 동물 권리 찾기 운동에는 노동자 계층의 남성과 여성이 광범위하게 참여했는데, 이들이 다룬 이슈는 동물 지지의 범위를 훨씬 벗어나게 된다. 문제는 중·상류층 남성의 제도화된 권위 앞에 중산층 여성과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경험한 무기력으로 확대된다. 또한 19세기 새로 등장한 의학인 '부인과학'도 적지않은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여성의 몸을 남성 의사에게 내맡기는 상황에 대한 문제였다. 일례로 당시에 생리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소 제거수술이 일반적으로 시술되고 있었다. 첫 미국 여성 의사인 엘리자베스 블랙웰(Elizabeth Blackwell)은 이것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거세'라고 지적했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학대 당하고 생체해부 당하는 동물의 입장과 동일시해 감정이입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은 않다. 1885년 <소녀들의 글(Girls Own Paper)>은 팬시(Pancy) 라는 말과 주인 밥의 대화를 통해 여성인권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암말인 팬시는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말은 동등권의 주제에 대해 강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 만약에 이 말이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와 참정권의 확대로 여성의 마음이 동요되는 시기에 살았다면, 우리는 팬시가 말과 관련된 문제들을 깊이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과 여성이 똑같이 아름다운 '애완동물'이었던 시대, <미스 포터>의 스크린 뒤편에 묵직하게 덧칠된, 여성화가들의 결코 쉽지 않았을 자취를 좇아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기자 기획취재단' 기자가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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