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네월드<왕의 남자>의 원작인 연극 <이(爾)>는 두 가지 설정에서 출발한다. "연산군이 궁중 광대극을 좋아했다"와 "연산군이 광대 중에 한 명인 공길과 남색(동성애)관계였다." 이 설정은 영화로 옮겨와도 바뀌지 않는다. 특이한 건 '동성애'다.

연극 <이(爾)>의 극본을 쓰고 연출한 김태웅 연출가는 "연산군의 성적 취향을 탐험하다 보니 동성애도 하지 않았을까? 여자만 상대하는 건 재미없어 남색에도 관심을 가졌지 않을까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연극보다 '동성애 코드'가 강하게 다가온다. 제목부터 풍기는 뉘앙스를 보라. '왕의 여자'도 아니고, '여왕의 남자'도 아니다. 남자인 '왕의 남자'다.

공길(이준기)은 남사당패에서 여장 전문 광대다. 공길은 양반들의 잠자리 상대로 툭하면 불려간다. 분개한 장생(감우성)은 급기야 동료 광대와 맞붙는다. 공길은 실수로 그를 죽이고, 장생과 공길은 도망친다. 그리고 만난 게 왕이다. 바로 연산군이다. 연산군 역시 공길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둘의 키스신도 있다.

동성애? 으웩. 토할 것 같아

"사실 동성애는 우리 영화에도 심심하면 나와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볼 때였어요."

'한국 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대표가 말했다.

"거기에 엄정화 전남편인 천호진이 동성애자로 나오잖아요. 천호진 집에 남자 가사도우미가 들어와요. 그런데 극장에서 사람들이 둘만 나오면 '쟤네, 뭐냐?' '우웩!' 그런 소리가 나는 거예요."

황정민과 정찬이 동성애자로 열연한 영화 <로드 무비>DVD 메이킹 필름에서였다. 누가 물었다. "동성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스태프가 말했다. "동성애자. 죽여버리고 싶죠."

커밍아웃한 게이 작가 한중렬씨는 그 장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정말 재수 없었죠. 아름다운 동성애자를 그리겠다던 영화가 자기네 스태프도 설득 못하는 영화를 세상에 내놓다니." <로드무비>는 일반인들에게도 외면을 받았지만, 동성애자들은 더했다. 동성애자들 사이에선 <로드 무비> 안 보기 운동까지 일었다.

장국영, 양조위가 주연으로 동성애자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린 <해피 투게더>는 또 어땠나? 흥행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1997년 칸느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영화를 그 당시 '공연윤리위원회'는 수입불가 판정을 내렸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어 미풍양속을 해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영화는 결국 1년간 심의유예 기간을 거친 뒤에도 논란 끝에 겨우 상영이 허락됐다. 8년 전 일이다.

하지만 예외란 있는 법. <패왕별희>다. 1993년 개봉한 <패왕별희>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왕의 남자>가 개봉 9일만에 관객 2백만명을 넘어서며 2006년초 흥행 주역으로 떠올랐다.

ⓒ 씨네월드 오직 남자의 사랑만 '아는 남자'?

"일반적인 기준의 퀴어 영화(동성애 영화)는 아니에요." 동성애자인 김아무개씨는 딱 잘라 말했다. "게이들이 열광할 요소도 없고, 그렇다고 반감 가질 것도 없어요."

'한국 성적소수자 문화인권센터' 한채윤 대표는 "기존 형식과 가치관을 전복시킬 때 퀴어 영화라고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동성애가 등장했다고 해서 동성애 영화라고 하진 않아요. 그리고 사실 '동성애 영화'란 말부터 편하지 않네요. '이성애 영화'란 말은 안 쓰잖아요?"

그래도 이 영화가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닌 건 확실하다. 장생과 공길, 공길과 연산은 남자와 여자가 아니다.

게이 작가 한중렬씨는 "그래도 잘 만든 동성애, '필'이 나는 영화인 건 맞다"고 말했다. "엄밀한 의미로 '퀴어 영화'는 아니지만요. <패왕별희> 느낌이 나는, 남자 세 명의 러브 스토리잖아요."

영화 초반에 장생과 공길은 남사당패 동료를 죽이고 도망 친다. 그건 어떻게 보더라도 사랑의 도피로 보인다. 장생이 단지 '비역질'로 내몰리는 공길이를 구하기 위해서 불같이 나선 걸까? 질투는 없었을까?

한중렬씨가 이어서 말했다. "연산군도 결국 공길이에게 키스하잖아요. 사랑 느낌 나던데요. 장생이도 그냥 떠나려다 마음을 바꾸고 다시 돌아오구요. 그건 전형적인 러브스토리 아닌가요?"

한채윤씨도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고, 질투하고 그런 걸 보여주는 건 맞아요. 그게 단순히 우정이냐도 의심스럽구요. 장생이 우회적으로 공길이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잖아요. 거부감도 안 들구요. <로드 무비>처럼 완벽한 동성애자로 표현하면 보통 거부감이 있는데요. 개인적 아픔, 시대적 아픔 등을 넣으며 우회적으로 표현하니까, 거부감보다 호감이 가는 거겠죠."

관객들이 쓴 영화 리뷰 어디에도 극도의 '동성애 혐오증'을 드러내는 감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나타나는 건 "자세히 보니까, 동성애 영화야..." "남자끼리... 내 취향은 아닌 듯"(씨네서울 네티즌 한마디 게시판) "난 왜 동성애 영화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들지?"(네이버 네티즌 리뷰)정도다. 세상이 바뀌었나? 사람들이 동성애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나?

"제목 때문이라도 뜻밖이네요." 문화평론가 서동진씨도 놀랍긴 마찬가지였다. "'왕의 남자'잖아요? 지금껏 동성애 관련 영화들은 흥행이 저조했거든요. 투자도 저조했고."

동성애자 김아무개씨도 의아스럽다고 했다. "한국사회가 이제 동성애 코드에 대해 너그러워진 건가요? 모호하게 처리했지만, 분명히 동성애 이야긴데." 그가 덧붙였다. "이준기라는 배우가 여장 남자 느낌이 나는 인물이라서 거부감 없이 본 거 아니에요?"

▲ <왕의 남자>의 원작이 된 연극 <이(爾)>의 포스터. 영화 흥행에 힘입어 지난 7일(토) 앵콜 공연에 들어갔다.
ⓒ 씨네월드이준기는 너무 예뻤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단연 뜬 인물은 이준기다. 이 영화를 찍기전 무명에 불과하던 그는 일약 최고 스타로 발돋움 했다. "너무 예쁘다"는 말이 2만5200여 가지 말들로 인터넷을 떠돌았다.

<씨네서울>의 '영화를 보고나서'란에서 이정화씨는 말했다. "이준기가 '마이 걸'이란 드라마에 나온다길래 보고 상당한(?)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저 배우가 뭐가 이쁘다는 거지? 의아해했는데, 영화에선 정말 매력적이다." 실제 이준익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준기는 무조건 예쁘게 찍으려 했다"고 밝혔다.

정말로 영화 속 이준기는 예쁘다. 어떤 여자보다 예쁘다. 영화 속에서도 그런 말은 여러 번 강조된다. 희대의 미인이라던 장녹수가 공길이한테 말한다. "하긴 여자보다 더 예쁘니까." 또 공길이 옷을 벗기려 들며 말한다. "너, 여자 아니냐 보자. 피부도 곱고..."

한채윤씨는 "저 정도로 예쁘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냐고 했다. "하리수가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예쁘니까요. 공길이를 보면, 내가 연산군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한중렬씨도 재미있는 이야길 했다. "연극 <이(爾)>에서 공길이는 예쁘지 않아요. 장생보다 더 남자 같이 생겼죠. 뭐랄까. 우락부락하게 생긴 최성국 버전이거든요. 그래서 전혀 다른 느낌이 나죠. 하지만 영화 속 공길이는 워낙 예쁘니까. 한국 남자들이 그 미모에 저항 못하는 거 아닌가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는 말했다. "무조건 예뻐야 돼." 결국 <왕의 남자>의 흥행 뒤에도 "예쁜 것이 승리한다"라는 공식이 숨어 있다.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이 그랬던 것처럼?

퀴어 영화 감독으로 알려진 이송희일 감독은 이준기가 일본 영화 <고하토>를 떠오르게 한다고 했다. 영화 <고하토>는 사무라이 세계에 들어선 초절정 꽃미남 미소년 카노(마츠다 류헤이)를 두고 남자들끼리 사랑하고 질투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칸느에 갔을 때, 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마츠다 류헤이를 보고 말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미소년도 있나?" 안 그래도 지금 누리꾼들은 이준기와 마츠다 류헤이를 놓고 누가 더 예쁜지 비교하느라 바쁘다. 둘은 닮았다. 눈은 쪽 찢어지고 얼굴은 갸름하다.

"눈이 째지고 여성적이잖아요. 그게 오리엔탈 이미지예요." 이송희일 감독은 말했다. "우리 영화에선 시도되지 않던 이미지잖아요. 하지만 일본 영화에선 '클리세'(상투성)예요. 일본 영화 보면 사무라이 가운데 꼭 절대절명의 미모를 지닌 남자가 있어요." 만약 공길이가 우락부락하고 남성미가 들게 생겼다면? 지금처럼 반응이 뜨거웠을까? '호모 섹슈얼' 한 에로틱 장면이 있었다면?

"결국 공길이는 거세된 이미지, 중성적 이미지예요." 이송희일 감독은 덧붙였다. "그러니 여성이든 남성이든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였을 거죠."

비극은 힘이 세다?

▲ 네이버 아이디 2UR이 만든 마츠다 류헤이의 <고하토>에 이준기 얼굴을 패러디한 포스터.
ⓒ 2ur<왕의 남자>는 <패왕별희>와 사뭇 닮았다. 물론 둘 다 사극이다. 하지만 가장 크게 닮은 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이다. 시대적 아픔 때문에? 개인적 아픔 때문에?

<왕의 남자>에서 치러지는 광대극 공연은 희극이지만, 그걸 둘러싼 이야기는 사실 비극이다. 그들은 신명나게 광대극을 펼치지만, 그걸 보는 극장의 관객들은 조마조마하다. 장생과 공길은 궁궐을 나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저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사랑이 아니라고 본다면, 저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너는 내 운명> 이 세 영화는 지난해 흥행에 성공했다. 이 세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비극이다. <말아톤>은 자폐증을 가진 아들과 악다구니 치는 엄마 이야기다. <웰컴 투 동막골>은 분단의 비극이다. <너는 내 운명>은 에이즈 환자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비극이다. <왕의 남자>는?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이들의 비극이다.

움베르트 에코는 일찍이 "비극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이라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들먹여 말했다. "관객이 부분적으로 경탄하고 부분적으로는 경멸할 만한 주인공을 설정하여, 관객이 그의 약점과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에게 공포와 연민을 주는 사건들이 일어나게 하고, 그 모든 것에 극적인 반전, 신분 폭로, 파국 등을 정확한 용량으로 투여하라. 그리고 그런 요소들이 비등점에 오를 때까지 적절히 뒤섞어 저어 주면, 바로 여기서 카타르시스라고 부르는 것이 탄생하게 된다."(<작은일기>)

<왕의 남자>는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 공식을 정확히 따른다. <너는 내 운명>도 그랬다. 에이즈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비극에 많은 관객들이 매료 당했다.

지난 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와 벽초 흥행 가도를 달리는 <왕의 남자>의 공통점은 이것이 아닐까? 특이한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비극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 것. 그렇지만 내가 갖고 있는 비극과 절대 겹칠 수 없는 주인공이 등장할 것. 지금 시대가 원하는 건 둘 중 하나다. 자극적이거나, 비극적이거나! 중간은 없다.

야오이 세대, 야오이 시대가 왔다
문화평론가 서동진씨는 <왕의 남자>의 시놉시스가 '전형적인 야오이 코드'라고 말했다. '야오이'란 다른 말로 BL(BOYS LOVE)이다. 남자끼리 성관계나 로맨스를 다룬 작품을 이른다.

하지만 속칭 '야오이 문화'가 전면으로 나온 적이 있었나? <로드 무비>는 참패했다. (물론 황정민을 꽃미남으로 보기는 민망하다) 그렇다면 <왕의 남자>의 성공은 어떻게 봐야할까?

서동진씨가 또 말했다. "동성애 관련 영화들은 그 동안 흥행이 저조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성공한 건, 야오이 세대가 성장해서 극복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소비자의 세대교체를 일컫는 건지도 모르죠."

실제 야오이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만큼 널리 퍼져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 보호위원회가 2003년 설문조사를 했다. 그때였다. 45.4%의 청소년들이 야오이나 팬픽 등 동성애 표현물을 한두 번 이상 접해본 걸로 나타났다.

'팬픽'이란 팬과 픽션의 합성어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팬이 쓰는 소설이나 만화를 말한다. 주로 뜨는 주인공은 꽃미남 스타들이다. 꽃미남 스타들끼리 러브 스토리가 팬픽의 대세다. 1997년 'H.O.T'와 '젝스키스'로 시작한 팬픽 문화는 가파르게 성장했다. 그때 10대가 지금은 20대가 됐다. 현재 <다음> 카페에서 '팬픽'을 치면 5052건이 나온다.

미국의 마케팅 리서치사인 패키지팩츠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동성애자 시장의 규모는 6100억달러다. 세계적으로 동성애 문화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게이 소비자를 상대로 한 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동성애자 카우보이를 그린 <브로크백 마운틴>은 흥행성적 3위를 기록했다.

이제 '동성애'는 상업적으로 흥행할 수 있는 코드가 됐다. 우리도 동성애 코드가 익숙한 세대, 야오이 세대가 돈을 내고 문화를 즐기는 시점에 온건 지 모른다. 아직은 절묘한 줄타기가 필요하겠지만. 2006-01-09 11:37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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