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수여하는 ‘오스카상’의 콧대는 얼마나 높은 것일까.

2월 27일 밤(미국 현지시간), 할리우드의 코닥 씨어터에서 열린 제7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국적의 호주 동포 박세종(38) 감독이 <버스데이 보이>로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Best Animated Short Film) 부문 후보로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다.

▲ <버스데이 보이>
한국인이 오스카 상에 노미네이트 된 것은 77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1989년 재미동포 크리스틴 최 감독이 다큐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로 후보에 올랐던 적이 있으나 수상에 실패한 바 있다. 또 최 감독은 미국 국적을 취득한 재미동포였으므로 한국 국적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버스데이 보이(Birthday Boy)>의 국적도 한국이 아닌 호주다. <버스데이 보이>가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루고 있음에도 ‘호주영화’로 각종 국제영화제에 출품되고 있는 것은 이 영화의 제작비를 호주국립영화 TV라디오학교(Australian Film, Television & Radio School, 이하 호주영화학교)에서 전액 지원했기 때문이다.

ⓒ 윤여문
한국전쟁의 비극 그린 애니메이션 <버스데이 보이>

<버스데이 보이>는 예닐곱 살짜리 한국 소년 ‘만욱’을 통해 한국전쟁의 비극을 돌아보는 애니메이션이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추락한 전투기 잔해더미를 뒤지거나 수류탄 던지기 등을 흉내 내며 혼자 전쟁놀이를 하던 만욱은 자신의 생일날, 마루에 놓여있던 소포꾸러미를 발견한다. 그것을 자신의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한 만욱은 꾸러미 안에서 가족사진이 꽂혀있는 지갑과 군표, 군번줄을 발견하곤 좋아하는데...

<버스데이 보이>는 박세종 감독 혼자서 만든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주영화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 박 감독뿐이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이 첨단 기술과 팀워크가 중시되는 분야임을 감안할 때 <버스데이 보이>의 제작과정은 외롭고 힘겨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박세종 감독이 <버스데이 보이>의 대본을 쓰고 주인공 만욱의 캐릭터를 완성하는 등 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호주영화학교에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 <시드니 모닝헤럴드>에 소개된 박세종 감독.
학교 측이 <버스데이 보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작품성’이 드러날 즈음인 작업 중반부 이후였다. 학교 측은 전면지원에 나섰고 그 후의 작업은 대체로 순탄했다. 일반 프로덕션을 통해 제작했다면 30만 호주달러(한화 2억4천만 원) 정도가 소요됐을 테지만 호주영화학교의 인력과 장비를 무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지출도 거의 없었다.

이렇게 모든 제작비용을 호주영화학교에서 부담했기 때문에 영화의 지적소유권은 박세종 감독에게 있지만 영화자체의 소유권은 호주영화학교가 갖고 있다.

박 감독의 끈기와 성실성은 호주영화계에서 정평이 나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애니메이션 제작테크닉을 꼼꼼하게 챙겨서 자신의 영화제작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신인감독답게 신기술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실험정신도 그의 큰 밑천이다.

그는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시드니에서 가진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이 습득되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았다. 사실 테크닉을 배우고 익히면서 영화작업에 활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죽기 살기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작업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박세종 감독은 2D방식 대신 3D방식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3D는 모델링 하고 캐릭터를 설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그것만 작업하면 동화(動?)를 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작업 후에 클린업을 하느라 수고할 필요가 없다는 이점이 있다.”

데뷔작으로 ‘대박’을 터트리다

▲ 박세종 감독이 그린 <불리튼> 표지 일러스트.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박세종 감독은 3학년 재학 중에 멜버른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길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는 호주의 여대생 르네 레고를 만나 교제하다가 7년 전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호주로 이주한 박세종 감독은 호주 최고의 주간시사잡지 <불리튼>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가가 되어 호주에 연착륙 하게 됐다.

그는 존 하워드 호주연방총리를 비롯해서 수많은 표지일러스트를 그렸고, 거기에서 얻은 성가를 바탕으로 <시드니모닝헤럴드>와 호주 유일의 전국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약했다.

그렇게 5년 동안 일러스트를 그리던 박 감독은 어릴 적부터의 꿈꾸어 왔던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호주국립영화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몇 편의 습작품을 만든 후에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요량으로 본격적으로 <버스데이 보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비록 아카데미 트로피를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박 감독의 첫 데뷔작이었던 <버스데이 보이>는 각종 영화제에서 대박을 터트렸다.

<버스데이 보이>는 35개의 영화상을 거머줬다. 2004년 8월, ‘애니메이션의 칸영화제’라고 불리는 프랑스 안시(Annecy)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신인상을 받은 후,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시그라프(SIGGRAPH)에서 대상을 받아 2005년 미국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오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이어 제51회 시드니필름페스티벌에서는 대상(요람그로스어워드)을 거머쥠으로서 국내외 애니메이션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더욱이 이 상은 2004년 미국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아담 엘리엇의 작품 <하비 크럼펫>과 그 당시 인기절정을 달렸던 <풋 노트>를 제쳤다는 점에서 박세종 감독의 성가를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밖에 2005년 2월 초에 열린 ‘아니마 2005-브뤼셀 카툰&애니메이션 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2월 12일 ‘영국 영화 TV 예술아카데미(BAFTA)’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상, 2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제8회 일본문화청 미디어예술제 애니메이션 부문 우수상 등도 그에게 영광을 안겨줬다.

휴머니즘 물씬 풍기는 작품 만들고 싶어

▲ 호주 영화학교 전경.
ⓒ 윤여문
그는 계속해서 한국 국적의 호주 영주권자로 활동할 생각이다. 아들에게 아빠의 고국과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에 대해서 가르쳐주기 싶기 때문이다. 박 감독의 이런 정신은 작품세계에도 연결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에 의지해서, 동양의 정서가 듬뿍 담긴 애니메이션작품으로 동서양을 모두 감동시키는 작가가 되겠다는 것. 그는 이미 <버스데이 보이>를 통해서 그 소망의 대부분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다르다.

“여기까지 온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정진하겠다. 갈수록 애니메이션에 코미디 및 동적인 요소가 많이 첨가되는데, 나는 관객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휴먼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박세종 감독은 다음 작품에서도 휴머니즘을 강조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 2월초 호주 한인동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판타지와 코믹, 빠름과 폭력이 난무하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지양하고 가족 모두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한국 고유의 정서인 느림과 끈기를 느낄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5-02-28 13:5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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