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섭과 임대원의 탈락 등 초반 부진으로 침울했던 한국 레슬링이 21살의 신예 정지현의 '깜짝' 금메달로 일순간에 분위기가 180도 뒤바꿨다.

26일(한국시간) 이원희의 금빛 감동이 남아있는 아노리오시아홀에서 벌어진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 경기에서 한국체육대학의 정지현은 8강전부터 결승까지 거침없는 승리행진을 거듭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솔직히 대회 전 정지현은 크게 알려졌다거나 큰 기대를 받은 선수는 아니었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에는 김인섭이라는 '비운의 스타'가 있었고, 언론은 '금메달 후보 0순위'라는 이름으로 김인섭만을 집중조명했다.

하지만 믿었던 김인섭이 그만 8강에서 탈락하며 메달획득에도 실패하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지라, 분위기가 '팍' 가라 앉았다. 그런 우울한 상황에서 나와준 뜻밖의(?) 금메달 소식, 주인공은 바로 21살의 신예 정지현이었다.

준결승에서 지난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인섭을 꺾었던 나자리안(불가리아)을 제압하며 결승전에 오른 정지현은 지난 6월 헝가리 오픈 때 0-4로 패배한 기억이 있던 쿠바의 몬존과 최후의 한판을 벌였다.

1라운드, 정지현이 패시브 찬스를 살려 2:0으로 앞서나가자 금메달은 거의 눈 앞오 온 듯했다. 하지만 2라운드 들어 체력적으로 조금씩 밀리는 모습을 보이며 불안감을 더해갔고 연장 클린치에서 몬존에 선제권이 돌아가자 승부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숨막히는 승부처에서 정지현은 8초만에 상대방을 넘어뜨리며 1점을 획득,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바나나 우유가 말해준 눈물겨운 체중감량

"이제 우승했습니다. 바나나우유 실컷 먹어도 됩니다."

금메달을 확정짓고 코치진들과 기뻐하는 정지현에게 보낸 유인탁 KBS해설위원의 말이다.

대회 중반을 넘으며 연이은 부진이 거듭되자 '10위권 입상은 이미 물건너 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레슬링의 정지현 선수가 뜻밖에 결승진출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너무나 반가웠고 너무나 절박했다. 결국 금메달까지 따내며 10위 목표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더구나 이틀 전 김인섭의 안타까운 탈락 소식 이후 받아든 낭보에 경기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코치 및 레슬링 관계자들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듯했다.

또한 전 레슬링 대표선수들이 나선 각 방송국의 해설위원들 역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기쁨의 탄성을 내지르며 간절했던 속마음을 환호로 표출했다.

이런 감격적인 순간, KBS 유인탁 해설위원의 한 마디가 걸작이었다.

"체중감량 중 바나나우유를 제일 먹고 싶었다는 정지현 선수. 이제 우승했습니다. 바나나우유 실컷 먹어도 됩니다."

바나나 우유라는 아주 사소한 음식 하나가 체중감량에 고생하는 선수들의 노고를 그대로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대회를 준비하며 해 온 피눈물 나는 훈련들도 선수들에겐 너무나 힘든 과정이겠지만 체급별 종목의 경우 대회 직전 자신의 체중에 맞추는 체중 감량 과정 역시 그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지 못한다는 기본적인 욕구는 차치하고라도, 체중감량으로 인한 경기력 저하, 그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감은 선수들에게 '피할 수 없는, 너무도 가혹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체중감량 실패로 인해 경기를 그르치며 오랜시간 흘려온 땀방울의 수고가 물거품이 될 때 느끼는 좌절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애처로운 선수들을 찾아 고충을 들어준 유인탁 해설위원, 그 역시 해설위원이기 이전에 레슬링 선수(84LA올림픽 금메달)였기에 그 마음을 십분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나온 그의 한마디는 선수들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었다.

정지현 선수는 아테네에 와서 체중을 6Kg이나 감량해 60Kg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를 거둔 셈이다.
2004-08-27 10:0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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