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제3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 개막식에 다녀왔습니다. 작은 영화제치고는 엄청나게 화려한 심사위원단이며 참가 배우들 때문에 대단히 많은 매체의 시선이 몰린 영화제 개막식이었는데요, 그 반면 “드레스 코드”가 전혀 없는 자연스럽고 털털한 분위기라 더욱 마음에 드는 영화제 개막식이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꼭 가봐야 할 만한 흥미있는 영화제라 개막식 스케치 겸 개막작을 이곳에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 제3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 포스터
ⓒ 이종순 이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은 이현승 감독이고 부위원장은 박찬욱 감독입니다. 칸 영화제에서의 성가 때문에 박찬욱 감독의 근황은 늘 카메라들을 몰고 다니기 마련인데, 그 “거물”을 소개하는 이현승 감독의 태도는 매우 소탈했지요.

집행위원장으로서 한 말씀하시라는, 사회를 맡았던 아나운서 최윤영씨의 말에 이현승 감독은 “올해는 박찬욱 감독이 한 말씀하시겠다”며 예고 없이 마이크를 넘겼고 울며 겨자먹기로 무대에 나온 박찬욱 감독은 “아니 뭐 이런 법이 다 있냐”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관객들에게는 그 자연스러움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지요.

그 밖의 심사위원들 명단도 화려한데요, 여기서 잠시 <필름2.0>에 실렸던 심사위원 대담 중 한 부분을 소개드리지요.

이현승 - “40분짜리 SF영화를 주류 영화에 필적하는 비주얼로 만들어낸다는 게 보통 저력이 아니다”

박찬욱 - “도전적인 영화들이 아쉽다.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한편으로는 에너지가 약해진 것 같다.”

허진호 - “점점 DV 영화도 프로덕션이 굉장히 전문화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지고 있다.”

김성수 - “액션영화들이 특별히 뛰어났다. 화법이 신선하고 자신감과 대범함이 느껴졌다.”

김지운 - “외국에 비해 주류 영화 감독과 단편영화 감독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거 같다.”

봉준호 - “한국영화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느끼면서 나의 미래에 대해선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류승완 - “단편영화를 주류 영화의 대척점으로 설정하기보다 자기 영화를 만드는 데 충실해진 것 같다.”

장준환 - “단편영화에서 DV를 다루는 능숙함이 상당히 훌륭해졌다고 생각한다.”

자, 위의 인용을 보니 제3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가 어떨지 대충 짐작이 되시는지요? 이 영화제에서는 감독들뿐 아니라 배우들도 명예심사위원들로 참여시켰는데요, 이현승 감독의 말을 믿어보자면, 그 바쁜 스케쥴의 배우들도 며칠씩 와서 영화를 보고 감독들과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하는군요.

▲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 로비의 모습
ⓒ 이종순
개막식에서는 그 배우들에게 위촉장을 건네주는 시간도 가졌는데요, '뻘쭘'하게 무대에 서 있었던 감독들 못지 않게 배우들도 서먹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배우 문소리씨는 위촉장을 받으면서 “이런 건 좀 안 하면 안 되냐. 무지 쑥스럽다. 그리고 왜 맨날 사회성 짙은 영화 하는 <비정성시> 섹션 심사위원 하라고 하냐. 나도 에로나 코믹물 심사위원 하고 싶다”라며 나름의 볼멘 소리를 했고 봉준호 감독이 내민 위촉장을 받은 봉태규씨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봉봉 콤비”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난 다른 배우들과 달리 고운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나온 이영애씨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인 줄 모르고 혼자… (웃음) 죄송합니다. 공부 시간으로 알고 열심히 보겠습니다”하며 조용히 자리잡았고 위촉장을 건네주던 박찬욱 감독은 “다음에는 <친절한 금자씨> 각본 드릴께요”라는 말로 이 영화의 진행 상황을 짐작케(?) 했습니다.

류승완 류승범 형제는 마주 보고 서서 웃음을 참지 못하며 류승완 감독이 류승범씨에게 “밥은 먹었니?” 하는 말로 형제의 의리를 표현하더군요.

▲ 심사위원단인 여러 감독들의 모습
ⓒ 이종순
영화제 개막식에 많이 다녀보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정말 처음이었고 내심 부럽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고 즐거운 개막식은 미쟝센 단편 영화제 전체의 분위기를 충분히 짐작하게 해 주었고 이어진 개막작은 그를 확인케 해주었지요!

제3회 미쟝센 단편 영화제는 6월 23일부터 다음주 월요일인 28일까지 계속됩니다.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근처 아리랑 시네센터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제에 많이들 가셔서 즐기세요. 입장권도 싸답니다. 단돈 3000원! 더 많은 정보는 영화제 홈페이지(http://www.mjsen.co.kr/film/main.jsp)에서 찾으실 수 있어요.

'Moving Self Portrait 2004' 젊은 감독들의 동영상 증명 사진 모음
개막작 중 한 편이었던 “Moving Self Portrait 2004”는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한 감독들이 보내온 30초 동영상 증명 사진 모음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편대단편>의 감독 지민호씨가 만든 것이었는데요, 척박한 세상에서 아무리 꿈을 꾸며 살아도 계속 자신의 꿈은 짓밟힌다고 한숨처럼 독백하던 30초의 끝 부분에 갑작스런 반전, 전투기 한 대가 추레한 골목 사이에서 비상하는 장면을 본 관객들은 박장대소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이 30초 동안에 감독이 자신 삶의 한 조각을 담았다는 건 모두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고요.

<갈증>의 이경식 감독 역시 유사한 컨셉트로 30초를 채웠는데 프로 레슬러를 연상케 하는 몸을 가진 그가 작은 아이스박스에서 튀어나올 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답니다, 그가 30초 마지막에 마치 수퍼맨처럼 단독 주택 옥상에 서서 “우와~”하는 비명을 지르며 빗속에 서있을 줄은….

<네게 맞는 약은 살뚝한 가위뿐>의 감독 김유리씨는 무용 연습실에서 말도 안 되게 엉성한 힙합 춤을 추어대는 장면을 보내왔는데,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르면 어떤 감독들은 이 동영상을 보내면서 “쌩쑈”했다고 했다던데 아마도 이 감독이 그 경우 아닐는지…) 이 30초짜리 작품의 압권은 감독이 춤추고 있는 뒤로 피자 배달 아저씨가 들어와 아무렇지도 않게 피자를 놓고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비록 30초밖에 안 되는 짧은 동영상들이었지만 감독의 일면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독특한 시도였고 동시에 “나도 한번 단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일깨우는 작품이기도 했지요. / 강윤주 2004-06-24 15:13ⓒ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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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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