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 사람들
ⓒ 박성호
6월 29일 9시 30분

흙 위를 기어 다니던 매미 애벌레들이 모두 사라졌다. 다들 흙 속을 파고 들어가 버렸다. 더 이상 구멍을 빠져 나오는 녀석들은 없었다. 녀석들은 땅 속으로 들어가 이제 5년을 더 기다렸다가 탈피를 하기 위해 땅 위로 다시 올라 올 것이다. 그 중에는 어느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는 놈도 생길 것이고, 굶어 죽는 녀석들도 생길 것이다.

작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매미 소리를 시끄럽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녀석들이 활개를 치는 여름이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죽음부터 탄생까지 매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보고 나서부터는 녀석들이 있는 여름이 좋아졌다.

그리고 반포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반포에는 매미가 많기는 많다. 그래서 다른 동네에 비해서 매미 소리가 더 시끄럽다. 그러나 그뿐이다. 매미가 누구네 집 닭을 잡아먹었다든지 매미 때문에 도시의 푸른 숲이 망쳐졌다든지 하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반포의 또다른 주인 매미, 녀석에게 반포는 우리에게 반포나 마찬가지다
ⓒ 박성호
정말 매미들은 억울하다. 단지 숫자가 많아서 좀 시끄러울 뿐인데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는다. 하지만 거꾸로 매미 녀석들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 생각에는 분명히 차 소리며 공사장 소리며 사람들 소리가 더 시끄럽다. 그리고 일정 정도 반포에 매미가 극성을 부리게 된 데에는 인간이 그 원인을 제공한 면도 없지 않다.

도심 온난화라든지 아니면 야간 조명은 분명 인간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환경이다. 고로 시끄러운 매미 소리를 매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마리의 매미는 2주일 밖에 살지 못하니까 그런 생각까지 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반포에 살기 이전부터 매미들이 살았을 것이다. 반포의 유래를 보면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반포동에는 청동기시대 유적인 지석묘가 있었으나 도시계획으로 인해 훼손되었기 때문에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 역사시대 이전부터 인간의 발길이 있던 곳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기는 힘든 곳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포동은 조선말까지 경기도 과천군 상북면 상 반포리 하 반포리 지역이었다가 일제 때인 1914년 3월 1일 경기도 구역 확정에 따라 시흥군 신동면 반포리로 부르게 되었다. 1963년 1 월 1일 법률 제1172호로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반포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반포의 유래는 인근 동네의 유래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매미와 사람이 함께 사는 공간 반포, 내가 주로 매미를 관찰한 정원 부감
ⓒ 박성호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에 의하면 조선시대 서초구 방배동에서 반포동의 자연 부락인 서래 마을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서랫 고개라 하였다. 서랫 고개에서 유래하는 서래 마을은 반포동 64번지 팔레스호텔 뒤쪽의 마을이었다. 서애(西涯)마을 또는 서릿개 마을로도 불리어졌다.

지금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이 20호 이상이나 된다. 서래 마을이란 명칭은 마을 앞 개울이 서리서리 구비쳐 흐른다고 해서 불리어지게 되었으며, 현재의 반포동(盤浦洞)이라는 이름도 마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자로 서애(西涯)라는 마을 이름은 이웃 매곡동(梅谷洞 현 조달청 일대)마을 사람들이 이 마을이 서쪽 물 가에 있으며 마을 뒤에 깎아지른 듯한 산이 솟아있으므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지금 재한 프랑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래 마을은 원래 반포 한신 15차 아파트가 있는 자리에서 살던 주민들이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수해를 입고 이곳으로 이주하여 생긴 마을이다. 반포는 원래 홍수피해를 입는 상습침수 지역이어서 거의 포구나 라는 의미에서 반포(盤浦)라고 불렀다는 설을 뒷바침 하는 사건이다.

이렇듯 상습침수지구였던 반포에 사람이 아주 오래 전부터 집단 거주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생태계는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부분 부분 그리고 점증적으로 파괴되고 동식물의 다양성이나 개체수는 줄어 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진짜 반포의 주인은 매미를 포함한 다양한 동식물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한가지 바람이 생겼다. 반포에는 사람하고 매미가 같이 사니까 서로 시끄럽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같이 사니까 서로 불편한 점은 조금씩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인간도 결국 이 세상을 일정한 시간 동안 살다 가는 존재이고 곤충이나 동물 그리고 식물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존재들은 고로 공생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인간은 수백 수천 년을 거쳐 자신들이 살기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 세계를 자기 중심적으로 개조하고 침범하고 파괴한 것이 사실이다.

 나의 매미다큐 제작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 박성호
그래서 최근에야 그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지만 매미에 관해서만은 아직 무관심하거나 박멸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는 시대에 정말 매미 소리가 시끄럽다면 도심에서 매미 종의 다양성이 지켜지고 그 개체수가 일정정도로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추진하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한 것이다. 그것이 해충방제 개념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나는 아직 풀지 못한 몇 가지 의문점들을 풀기 위해 작년처럼 올 여름도 아파트 정원에서 보낼 것이다. 매미의 교미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확인해야 되고, 반포에 특별히 매미가 극성인 이유도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매미가 우는 이유에 대해서 아직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만큼 녀석들의 울음과 그에 따른 다른 개체들의 움직임을 영상에 담아서 내 나름대로 추론해 볼 작정이다. 그 작업들 속에서 말매미 일색의 도심 환경에서 매미 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개체수를 일정 정도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할 것이다.

2003년 11월 23일

매미의 일생을 역순으로 관찰하고 그 관찰일기를 써 온지 벌써 3년이다. 사실 이 일기 속 매미의 생활사는 1년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다만 그것을 정리하는 데 그다지 성실치 못해서 그 연재가 길어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나의 매미 관찰은 3년간 지속되고 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후의 내용들은 아마 나의 ‘반포매미’에 관한 다큐멘터리 두번째 버전인 ‘밤에 우는 매미’에 담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여지껏 써온 매미 탐사일기를 각색한 새로운 원고의 최종본을 출판사에 넘겼다. 나는 지금 한 권의 책을 준비 중이다. 어른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나의 반포매미 일기는 여기까지다.

 나는 지금도 반포의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 박성호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매미 탐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자연을 새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TV에서 보는 자연도 아니었고 여행이나 산행에서 느껴지던 그런 자연이 아니었다. 정말 살아있는 자연을 보았고 그래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존엄성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인간들이 밀집해서 살고 있는 도시의 자연과 생태계에 대한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아마 나는 일생의 시간에서 이 시간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의 자연과 생태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그동안 주기적이지도 못하고 내용도 다소 산만한 본인의 매미 이야기 연재를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