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2일 10시30분

자동차 서비스에서 긴급출동해서 잠긴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밤늦게 반포의 한 귀퉁이까지 와 준 아저씨한테 고맙다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급하게 차를 몰고 잠원동 나의 집으로 달려 왔다. 그리고 차에서 급하게 조명을 찾고 캠코더를 챙겨서 산란흔이 있는 단풍 나무로 달려갔다.

주민들이 내다 놓은 재활용품 중에서 딛고 설만한 것을 찾아서 단풍 나무 아래에 놓고 산란흔이 보이는 높이로 올라갔다. 가로등이 있었지만 단풍나무의 잎들 때문에 산란가지의 표면은 눈으로 자세히 관찰하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드디어 조명을 켰다. 조명을 키기 전까지 나는 동환 학생의 집에서 본 것과 같은 매미 알 껍질들이 있기를 기대했다. 거기에 운이 좀 따른다면 혹시나 나뭇가지 위를 기어다니는 매미 애벌레들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희망은 좌절로 이어졌다.

산란흔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확인한 것처럼 어떤 변화도 없었다. 애벌레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껍질들도 보이지 않았다. 동환 학생이 가져간 알보다 산란이 늦을 가능성은 있었다. 동환 학생은 산란을 돕기 위해 계속 분무기로 수분을 뿌려 주었다면 정원의 산란흔은 수분 공급이 충분하지 못했다. 최근에 비가 온 적도 없었다. 그렇다면 더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동환 학생과 추가로 부화하는 알들에 대한 소식을 계속 주고받았다. 그날 이후 10여 마리의 애벌레들이 더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나 부화 순간은 번번이 놓쳤다고 했다. 나도 시간 나는 대로 정원으로 가서 산란흔적을 세세히 살폈다.

6월27일 아침 8시

▲ 정원을 헤매고 있는 나-산란 가지 바로 아래
ⓒ 박성호
출근하면서 나는 잠시 산란 가지를 확인했다. 부화의 흔적은 없었다. 어제 그대로였고 부화의 기미도 전혀 없었다. 예를 들면 산란흔 틈 사이로 알이 좀 보인다든지 하면 녀석들이 부화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련만 그런 징후가 없었다.

6월28일 아침 6시

회사 일로 밤을 새게 되었다. 그리고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 깜깜하던 밤하늘에 어느새 푸른빛이 들고 있었다. 동이 트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 해를 보고 출근해서 그 해가 지구를 한바퀴 돌아 다시 그 자리에 오기 직전에야 퇴근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새벽 퇴근 길에도 매미 알의 부화를 생각하고 있었고 집에 도착하자 마자 산란흔부터 확인해야지라는 마음먹고 있었다.

▲ 아직 아무 변화가 없는 산란가지-산란 흔적은 전년도 7월에 생긴 흔적이다
ⓒ 박성호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매미들은 울고 있었다. 무척 부지런한 놈들이었다. 아니면 밤새 울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차공간을 찾아 단지를 이리 저리 돌다가 그만 산란가지에 가 보는 것을 잊어 먹고 말았다. 집에 들어가서 잠든 아내 곁에 눕자 마자 잠이 들어 버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시간이 흘렀다.

아침 9시

나는 아내의 바스락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체육복을 대충 걸쳐 입고 아내가 나설 때 따라 나섰다. 산란가지를 확인하지 않고 올라온 것이 생각난 것이다. 늦었지만 그제서라도 확인해야 했다. 잘못하면 1년 동안이나 기다려 온 순간을 놓치게 될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산란흔을 확인해 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져 있었다. 몇 개의 산란흔 틈 사이에 알 껍질이 끼어 있었다. 그 속의 애벌레는 이미 온데 간데 없었다. 내가 잠시 잠든 아침 6시와 9시 사이에 네 다섯 개의 알이 부화를 해서 애벌레들이 제 갈 길을 간 것이었다.

그제 동환 학생의 집에서 갓 부화한 애벌레는 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동환 학생도 매미 알이 부화해서 애벌레가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상당히 아쉬워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동환 학생은 부화한 애벌레들만 나중에 발견한 것이었고 그 이후에 계속 관찰했지만 그 순간을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했다. 나는 동환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곤충의 시계였다.

곤충은 본능적으로 시간을 감지하고 정확히 그 시간에 특정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미만으로 이 곤충시계를 설명하자면 해질녘에만 매미가 유충에서 성충으로 우화를 한다거나 유충이 땅속에서 정확히 5년을 보내고 여름이 되면 땅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나 모두 곤충의 시계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알에서 부화하는 시기나 시간에도 곤충의 시계가 적용될 것 같았다.

즉 부화도 우화처럼 하루 중 특정한 시간에만 하게 되고 길게 따져 보면 그것은 정확히 산란일로부터 얼마가 지난 시기일 것이다. 시기로 보면 분명 정원의 알들도 부화시기에 접어 들었음이 분명했다. 다만 나는 하루 중 언제 부화를 하는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아침의 이 사건으로 인해 대충 그 시간 폭을 좁힐 수 있었다. 분명 아침 6시와 9시 사이임에 틀림없었다. 다행히 몇 개의 알만 부화한 듯 했고 나머지는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내 생각은 대충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오후 2시

출근을 하면서 다시 산란흔을 찾았을 때 새로 부화한 알들은 없는 듯 했다. 아침 상황 그대로였다. 매미가 한번에 낳은 알들도 하루 이틀 부화시기가 다른 것 같았다. 아침에 확인한 산란흔들은 모두 하루에 낳은 알들의 흔적이었는데 모두 부화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부화한 알들 보다 남은 알들이 많은 듯 했다.

6월 29일 아침

나의 추측은 맞아 떨어졌다. 아예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잠복 근무에 들어갔다. 6시가 다가오면서 파란 색의 하늘빛이 빠지고 있었다. 산란 흔적이 있는 나무 아래에 사람들이 버린 책상을 가져 다 놓고 그 위에 올라갔다. 경비원 아저씨가 잠에서 깨면 나를 발견할 것이 분명했지만 내 행동에 크게 신경을 쓸 것 같지 않았다. 아저씨들에게 나는 ‘반포의 매미 박사’였다.

6시 15분 역사적인 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매미를 따라 다닌 지 딱 1년, 그 시간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미 한 마리의 매미 애벌레가 부화를 마치고 나뭇가지 표면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분명히 좋은 징조였다. 아직도 부화하지 않은 알이 훨씬 많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좀 전까지 기어다니던 애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내가 보지 못하는 순간에 땅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여전히 하얀 알 껍질이 붙어 있지 않은 산란 구멍들이 여럿 있었다. 곧 매미 애벌레들이 나올 구멍들이었다.

▲ 막 구멍을 뚫고 나오는 애벌레와 이미 나무가지 위를 돌아다니는 애벌레들
ⓒ 박성호
정말 한 구멍에서 깨알 만한 알 하나가 낑낑대며 나오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구멍으로 알의 끝부분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조금씩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몸통이 구멍에 꽉 끼어 있는 모양새였다. 정말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녀석들의 부화는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부화의 시작은 바로 움직이는 알이었다.

알은 조금씩 몸을 구멍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막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민 녀석의 얼굴에는 까만 눈이 보였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움직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녀석은 구멍 바깥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부화를 앞둔 알은 움직일 수 있었다. 마치 배추벌레의 움직임 같기도 했다. 알이 움직이다니 정말 신기한 노릇이었다.

30분을 구멍에 끼어 낑낑대더니 겨우 몸통 전체가 나무 바깥으로 빠져 나왔다. 빨리는 아니지만 천천히 배추애벌레처럼 기고 있었다. 녀석의 몸에는 어떤 기관도 없었다. 다만 날개가 붙어있을 법한 부위가 부풀어 있었다. 아마 그 안에 다리가 있는 것 같았다. 좌우지간 알 모양을 하고 기어가는 것은 신기했다.

기어가던 알은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이 부위를 뚫고 속에서 주인공이 탄생하고 있었다. 녀석은 조금씩 조금 씩 몸을 밖으로 빼내었다. 알 껍질은 나팔꽃 모양으로 벌어졌다. 녀석은 고장난 로봇처럼 뒤뚱거렸다. 그러나 이내 온몸이 제대로 풀렸는지 식식하게 나무 위를 기기 시작했다. 우와 그런 광경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고 여지껏 내가 본 어떤 광경들보다 나를 흥분 시켰다. 비록 눈곱만한 생명체의 탄생이었지만 너무나 황홀했다.

▲ 땅위를 기어 다니고 있는 애벌레들-한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 박성호
나무 위에서 한동안 있던 애벌레는 바람이 한번 불자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혹시나 녀석을 놓칠까 봐 나도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엎드려 녀석을 찾았다. 돋보기가 아니면 그 작은놈을 흙 위에서 찾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땅바닥에는 한 마리가 아니라 대여섯 마리의 애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범인과 경찰의 추격이 펼쳐졌다. 나는 애벌레의 뒤를 돋보기를 들이대고 따라갔다. 나무 위에서 보다 훨씬 몸놀림이 빨라졌다. 말이 흙이지 좁쌀만한 녀석들에게는 조그만 흙덩어리도 산이고 가파른 언덕이었다. 그래도 잘 넘어갔다.

더 신기한 것은 녀석들의 땅 파는 기술이었다. 녀석들은 흙덩이 사이의 틈새를 파고 들어가기를 여러 차례 시도했다. 들어가다가 안되면 다시 기어 나와 다른 장소를 찾아 또 파고들었다. 다리가 튼튼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악으로 깡으로 땅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녀석은 사라졌다.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는 모르지만 땅을 파고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곳이 바로 녀석이 몇 년의 시간을 보낼 두 번째 보금자리였다. 그리고 때가 되면 제 몸집의 백배, 천 배는 커져서 우화를 하기 위해 다시 땅을 뚫고 올라올 것이다.

껍질들은 산란 구멍 근처에 붙어 있거나 구멍에 끄트머리가 끼어 있었다. 구멍에 끼어 있는 껍질들로 보아 알이 완전히 구멍에서 빠져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애벌레가 껍질을 찢고 나오기도 하는 것 같았다. 매미 애벌레가 까고 나온 알 껍질들은 달걀껍질과는 달랐다. 딱딱한 각질이 아니라 곤충이나 파충류의 허물에 가까웠다. 마치 얇은 비닐 조각처럼 보였다.

이 껍질들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한가지 발견했다. 구멍에 끝 자락이 끼어있는 껍질 하나를 조심스럽게 뽑아내었다. 그런데 그 구멍 안에 뭔가가 들어 있었다. 구멍이 너무 좁아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가지고 있던 옷 핀을 구멍에 집어넣어 벌려 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 알 껍질이 또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있었다.

구멍 입구에 끼어 있던 껍질은 얇은 막이었는데 구멍 속에 들어 있는 껍질들은 조금 두꺼운 것이 진짜 알 껍질 같았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구멍 속에 이렇게 껍질들이 많은 것일까? 대부분의 매미 알들이 이미 구멍 속에서 부화를 해서 애벌레 상태로 구멍 밖으로 나오는 것일까? 그런데 다른 구멍에서 나오는 알들을 여러 번 보았지만 애벌레가 구멍에서 기어 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 1차로 구멍안에서 알껍질은 벗은 상태의 알, 여기서 한꺼풀만 더 껍질을 벗어면 진짜 애벌레가 된다.
ⓒ 박성호
구멍 속에 남아 있는 부화하지 않은 알들을 보고서 해답을 알 수가 있었다. 구멍 속에 남아 있는 알들은 구멍을 기어 나오는 알에 비해 불투명했다. 그렇다면 매미 알은 두 번 부화를 했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먼저 구멍 속에서 제일 바깥쪽의 알 껍질을 깨고 나오게 되는데 이때 매미애벌레는 얇은 막에 쌓여 있게 되고 막을 뒤집어 쓴 채로 구멍을 기어 나와서 마지막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막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산란가지 여기 저기서 보았던 알 껍질들은 사실은 알 껍질이 아니라 알 속에서 애벌레를 감싸고 있었던 막이었던 셈이었다. 알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껍질이라기보다 그냥 하얗고 얇은 막을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구멍을 기어 나온 것은 알이 아니었던 셈이었다. 파브르 아저씨는 이 애벌레를 나중의 애벌레와 구분하기 위해 ‘전유충 또는 전애벌레’라고 부른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녀석들은 정말 머리가 좋았다. 껍질을 다 벗어버리고 좁은 구멍을 나오려면 다리나 더듬이가 걸려서 힘들텐데 얇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나옴으로써 아직 튼튼해지지 않은 몸을 보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10시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지각이었다. 매미 촬영에 매달리다 회사에 지각을 여러 번 해서 난처했었다. 전날 야근을 한 것도 아니니 더욱 그랬다. 게다가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아내가 나타났다. 나는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신기한 매미의 부화과정을 주절이 주절이 설명을 했다.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별 이야기 없이 빨리 회사나 가라고 했다.

출근하는 길에 올해 여름 처음으로 반포 아파트에서 우는 매미 소리를 들었다. 출근 길 내내 머리 속에는 의문점들이 끊이지 않고 맴돌았다. 그 중에는 새로운 의문도 있었다.

왜 애벌레들이 태어나는 날 때 즘 어른 매미들이 울기 시작하는 것일까? 여기에도 어떤 자연의 오묘함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곤충학자는 아니지만 사명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파브르의 곤충기에도 나와 있지 않은 내용인 것 같아서 내 힘으로 꼭 이 이유를 알아내고 싶었다.
2003-12-01 11:05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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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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