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포스터
ⓒ 싸이더스
80년대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화성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든 '농촌 스릴러' <살인의 추억>은 상반기 한국영화계가 거둔 최고의 수작이었다. 지난 4월 말에 개봉하여 전국 53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몇 안 되는 영화로 손꼽히기도 했다.

지난 8월 <살인의 추억>에 대한 매스컴의 열기가 식을 무렵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영화에 관한 뒷이야기와 언론보도에서 오해가 있던 부분을 이야기하자고 봉준호(34)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일종의 후일담 같은 내용의 부담없는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봉 감독에게 연락이 온 것은 10월 초순이었다.

"그동안 <살인의 추억>과 관련해서 언론, 인터넷에서 다뤄진 것들 중 사소한 것이지만 이러 저런 오해나 오류들이 많아서 답답했었는데. 이 기회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죄다 규명(?) 내지는 수정(?)하고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결국 몇 번의 연락을 거쳐 지난 10월 24일 오후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봉 감독은 서울대에서 강의를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봉 감독은 감기가 걸려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성실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TV를 통해 영화를 접했다"

▲ 봉준호 감독
ⓒ 김용운
- 전공이 사회학이라고 들었다.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를 보면 '사회학과에서 사회학은 배우지 않았지만 사회는 배웠다'고 했는데. 대학교 때 생활이 궁금하다.
"사회학을 잘 모르는 건 사실이다. 인문사회학을 잘 흡수하는 타입이 아니다. 소설이나 예술계통 서적을 보면 이해가 잘되는데 딱딱한 사회과학서적을 보면 머리에 쥐가 난다. 그래서 일 학년 때 맑스의 자본론 1권을 읽다가 포기하기도 했다."

- 언제부터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영화감독은 중학교 때부터의 꿈이었다. 사회학과를 간 것은 학과가 재밌을 것 같고. 점수도 좀 낮아 보이고(웃음). 좋아했던 감독의 면면을 보면 영화과 나온 감독들이 적었던 것 같고, 당시 유명했던 배창호 감독도 경영학과 출신이어서, 영화를 찍는데 전공은 상관없겠구나 생각했다."

- 대학교 1학년,2학년 때 생활은 어땠나.
"혈기가 왕성해 주체를 못하던 시절이었다. 미팅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88년이 학생운동이 대중운동으로 폭발하던 시점이라, 84학번이나 85학번 같은 선배들은 시위하려면 도서관에서 유리창 깨고 몸을 묶은 채 선전물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가까운 연희동으로 쳐들어가야 한다고, 전두환 ·노태우 체포 결사대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학생시위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 직접 학생운동을 했던 것은 아닌가?
"제대로 학생운동을 조직해서 했던 친구들은 따로 있었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었던 것 같다. 찌라시에 만화 같은 것 그려주고, 학회실 벽에 그림도 그렸었다."

- 영화를 만들 때 콘티 같은 것은 직접 그리는 편인가?
"콘티는 직접 다 그린다. <살인의 추억> DVD에 부록으로 실린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도 왠지 저자가 된 것 같아서(웃음) 기분이 좋았다."

- 유년기에 인상적으로 본 영화는 무엇인가.
"초등학교 때 TV에서 본 <자전거 도둑>이 기억난다. 그게 이태리 영화인지 네오리얼리즘 영화인지도 모르고 봤는데 너무 슬펐다.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잔상이 남는 것을 보고 '영화가 이렇게 감동적인 것이구나. 영화의 위력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이브몽땅 주연의 <공포의 보수>라는 영화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였다. 이 영화들은 모두 TV로 본 영화들이었다. 내가 자라오면서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은 TV에서 본 영화들이었다. 여름의 납량특선으로 해주던 히치콕 영화의 경우는 정말 최고의 영화였다."

- <살인의 추억>에 등장한 80년대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 장면도 TV를 좋아했던 감독의 유년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수사반장을 참 재미있게 봤다. 특히 시그널 음악이 주는 긴장감은 최고였다.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수사반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여고생 가수로 데뷔했던 모 여자가수를 백광호, 조영구, 송강호가 함께 보면서 '저 가수 가슴 크다'라는 대사를 주고받는 것으로 돼 있다.

▲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
ⓒ 김용운
하지만 명예훼손 여지가 있어서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생각했던 것은 MBC 퀴즈아카데미 장면을 삽입해 조영구의 학벌 컴플렉스를 부각하려고 했었는데 마땅치가 않아 결국 가장 좋아했던'수사반장'장면을 넣게 됐다."

<살인의 추억>에 관한 몇 가지 오해

- <살인의 추억>에 대해 몇 가지 잘못 알려진 내용이 있다고 하던데.
"특별히 큰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다보니 사실과 조금 어긋나는 부분들이 생기기도 했다.영화가 개봉되고 '<살인의 추억>을 왜 찍었느냐? 영화의 소재가 실제 사건인데 도덕적이나 정신적인 부담은 없었느냐?'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마다 '기억자체가 응징의 시작이다'라고 답한 내용이 있었다.

이 말이 마치 내가 한 말처럼 나오는데 사실 이것은 배우 김상경씨가 한 말이다. 김상경씨가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인데 그 말이 너무 정확하고 우리 영화의 입장을 잘 대변해 주어서 나나 송강호씨나 이 말을 인터뷰할 때마다 인용했었다. 사실 피해자들과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통해 당시의 아픈 기억을 되새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부담스러웠지만 '기억자체가 응징의 시작'이라는 말로 인해 부담감을 다소 상쇄시킬 수 있었다.

매체와 인터뷰 할 때마다 이 말을 하면서 '김상경씨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는데 막상 기사 나간 것을 보면 그 말은 빠져 있었다. 자신이 한 말이 마치 감독이 한 말처럼 보도되었던 기사를 보면서 김상경씨가 얼마나 웃었겠나?

그리고 극장에 개봉된 <살인의 추억>은 바로 100% 디랙터스 컷이다. 감독은 자르기 싫었는데 20분 정도 자른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이 아니다. 물론 1차 편집 할 때는 2시간 20분 가량을 찍었다. 하지만 1차 편집 분을 그대로 거는 경우는 없다. 1차 편집 분을 본 관계자들이 개봉한 것을 보고 오해를 했던 것 같다.

또한 인터넷이나 기사들을 보면 실제 사건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도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범인이 미군일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당시 현지에 그런 소문이 돌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루머의 신빙성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미군 혼자 돌아다니기도 어려웠을 테고…. 반미감정이 그런 억측을 만들어냈을 것으로 생각한다."

- 네티즌들이 기대하는 속편 영화 중에 <살인의 추억>을 꼽은 사람들이 많다.
"가장 속편을 만들지 말아야할 영화가 아닌가?(웃음) 후일담이 나오면 나올수록 지저분해질 것 같다. 그래도 만약 속편을 제작한다면 다리 잘린 조용구의 재활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조용구의 인간승리 같은."

- 조용구를 연기한 김뢰하씨는 단편 <지리멸렬>부터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까지 다 출연했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나.
"처음 단편을 찍을 때 배우 섭외가 쉽지 않았다. 마침 대학교 동기 중에 연우무대에서 갓 들어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통해 김뢰하 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이 93년도인 것 같다. 그때 <백색인>이라는 단편을 처음 찍으면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 영화 살인의 추억 중 한 장면
ⓒ 싸이더스

- 영화를 보면 80년대의 모습이 디테일 하게 잘 그려져 있다. 감독이 기억하는 80년대 분위기는 어떤 것이었나.
"지금 생각하면 참 코믹하고 부조리한 부분이 많다. 그리 먼 과거도 아닌데 등화관제 훈련이라든가. 대통령 지방훈시라든가. 영화를 쓰고 찍고 하면서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었다. 그것이 바로 영화의 주제나 영화를 만들게 된 동기다.

우리가 가까운 과거에 정말 이런 꼬라지로 살았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한복입고 대통령 환영하고 그런 장면은 무슨 역사 다큐에서 찾아낸 것도 아니고 실제의 경험이었다.

조선시대 사극 같으면 자료와 상상력에 의존하겠지만 이 영화 같은 경우 자료뿐만 아니라 실제로 겪었던 것이니까 그 기억이 남아 있으니까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 디테일에 더 신경이 쓰였다. 모든 이에게 남아 있는 경험이고 기억이라서."

- 프로필을 보면 민병천 감독의 영화 <유령>의 시나리오를 장준환 감독과 함께 쓴 걸로 나온다.
"김종훈 이란 친구와 세 명이 함께 <유령>시나리오를 썼는데 셋 다 <모텔 선인장>의 연출부 출신이다. 그 영화가 끝나고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가 잠수함 영화를 준비한다고 아이템을 주면서 시나리오를 부탁했었다. 초고 만들기까지 두 달 정도 도와주었고 <플란다스의 개>를 만들면서 나는 빠져 나왔다.

사실상 장준환 감독이 <유령>의 메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주문 생산하듯이. 아르바이트 삼아 만들었던 작품이라 딱히 내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좀 곤란하다."

- 최근 스페인에서 열린 51회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받은 상금이 만만치 않아서 영화계에 봉 감독 억대부자 되다 라는 소문이 돌던데.
"아! 그것도 정정해야 한다. 12만 유로 상금을 나 혼자 다 받은 것으로 나왔는데 사실이 아니다 제작자가 6만 유로, 감독이 6만 유로씩 나눠서 받도록 영화제 규정에 정해져 있다. 우리 돈으로 하면 약 7000만원 정도다. 물론 그 돈도 많기는 많지만 왜 억대 상금을 혼자 다 받은 것처럼 기사가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하나 영화제에서 받은 상이 최우수 및 신인 감독상 등 2개가 아니라 3개이다. 국제비평가 연맹상도 받았는데 그것이 빠져 있었다."

- 현지에서 <살인의 추억>의 반응은 어땠나.
"서양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한국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똑같이 웃고 뒤에 가서 다 슬퍼하고 그랬다. 사실 맨 처음에는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 때문에 긴장하는 것 같았다. 그 곳에서 성과가 또 있다면 상을 받는 바람에 스페인에서 개봉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프랑스나 영국에선 한국 영화가 곧잘 개봉하는데 스페인에서는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 김용운
- 다른 영화제에서도 <살인의 추억>이 상영된다는 소식이 있다.
"하와이 영화제, 런던 영화제, 동경 영화제에 출품되는 것으로 안다. 다른 영화제는 잘 모르겠는데 동경에는 송강호, 김상경씨와 함께 갈 것 같다. 내년 3월 초에 일본에서 크게 개봉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일본에서 상영 중이다.

<살인의 추억>은 <쉬리>를 배급했던 회사에서 개봉한다. 송강호씨가 일본에서 상당히 지명도가 있는 편이다. 나 <반칙왕> 때도 반응이 괜찮았고. 송강호씨 표현에 의하면 '거기서는 자기가 먹어준다'하더라.(웃음) 실제로 <살인의 추억> 개봉 당시 일본에서 아줌마 팬들이 송강호씨를 보러 왔을 정도이다. 그리고 스톡홀롬 영화제, 그리스의 데살로니카 영화제 같은 해외 영화제에 출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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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30 13:1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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