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올지 기약도 없는 통일에만 희망을 걸고 살아가고 있는 대전교도소 좌익수들. 어느 날, 대전교도소에 새로 부임한 좌익수 전담 반장 오태식은 무자비한 폭력과 협박 등 갖은 방법들을 동원해 사상을 포기하고, 전향서를 쓰도록 강요한다. 그들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하나, 둘씩 전향을 하고….뜻을 굽하지 않는 사람들은 목숨을 잃거나, 미쳐 버리고 만다. 김선명 또한 전향서 한 장에 인생이 바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배고픔을 견뎌내며 마지막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저항하는데…. -영화 <선택>의 시놉시스 中에서

영화 ‘선택’의 포스터 영화 ‘선택’의 포스터

▲ 영화 ‘선택’의 포스터ⓒ 올댓시네마

지난 24일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다룬 영화 <선택>이 드디어 개봉했다. 사랑이나 조폭, 코미디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 영화시장에서 '선택'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제작진들이 '선택'을 통해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싶은 화두는 무엇일까? 아니, 세계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45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던 최장기 비전향 장기수, 반세기의 세월도 꺾지 못한 신념의 소유자 김선명옹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겪었을 어느 인간의 고뇌를 영상으로 담아냈던 제작과정과 영화가 가지는 의미를 '선택'의 관계자들을 통해 들어봤다. 전국에 있는 대학신문 기자들은 10월 24일 개봉 당일 종로3가 서울극장 근처에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의 켄 로치(영국출신의 좌파영화의 거장)'로 불리는 홍기선 감독, 88년 전 전대협 남북청년학생회담 남측 대표단장·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94년 돌연 연기자로 변신한 배우 김중기씨, 비전향 장기수들을 직접 수 차례 만나고 시나리오를 쓴 이맹유씨.

그들은 영화만큼이나 치열하면서도 진실한 사람들이었고 인터뷰 내내 진지하면서도 웃음이 흐르는 편안한 만남으로 이어졌다.

"비전향 장기수는 분단현실의 상징"

“꿈 하나를 가지고 버틴 한 인간이 진실과 악수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는 홍기선 감독 “꿈 하나를 가지고 버틴 한 인간이 진실과 악수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는 홍기선 감독

▲ “꿈 하나를 가지고 버틴 한 인간이 진실과 악수하는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는 홍기선 감독ⓒ 홍대신문사 강태흥

-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다룬 영화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요?
홍기선 감독(이하 홍 감독): "비전향 장기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 80년대 말부터였어요. 감옥 안에서의 상황은 분단현실과 이념 갈등을 가장 잘 이야기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80년대 <장산곶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995년 김선명 어르신이 출감하면서 사회적 관심이 모아졌던 당시 이맹유 작가의 권유로 '선택' 제작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제작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우선 취재부터 들어갔어요. 어르신은 오랜 옥살이로 일상 생활이 힘들었기에 하루에 1∼2시간밖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작가가 허드렛일을 하면서 1달 넘게 취재를 했답니다.

97년도에 시나리오 작업을 끝내고, 국내 제작자를 만나지 못해 외국 제작자를 물색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정치적으로 봤는지 난색을 표하더군요. 결국 토대 구축이 되지 않아 제작 돌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도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화해무드로 가면서 영화가 어느 정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작년에 좋은 제작자를 만나서 10월에 촬영을 들어가 올해 4월에 작업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 배우 섭외는 어떻게 했나요?
홍 감독: "우선 연기 잘하는 배우를 찾고자 했고 일반인보다는 힘든 배역이라 작업스타일에 잘 맞는 배우이길 바랬습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일이더군요. 주인공 섭외에 난항을 겪던 중 중기씨를 보게 되었고 바로 느낌이 왔습니다. 그런데 배우가 망설이더라고… (웃음)."

이맹유 작가(이하 이 작가): "감독이 3시간만에 결정을 봤지만 중기 씨의 반응이…."
김중기 배우(이하 김 배우): "전화 받은 지 3시간만에 어찌 답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웃음) 망설였다기보다는 명색이 배운데… 튕기는 척도 해야… (웃음). 사실 배우로서 분단의 아픔을 가장 크게 끌어안고 사셨던 역사적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어요. 그동안 조명해 보지 않은 비전향 장기수 어르신들의 삶을 나의 연기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영화가) 잘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부담감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내가 과연 연기를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결정을 하게 된 것은 감독님 영화를 비디오 감상실에서 봤는데 탄탄한 영화들이었고 '선택' 시나리오와 캐릭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리고 20∼70대까지 연기를 한다는 것은 평생에 한두 번 있는 일이기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측면도 있고 학생운동 했던 전과도 있고 해서… (웃음)."

"독방생활 연기 자체로 답답했는데 비전향 장기수 어르신들은 수십 년씩 어떻게 사셨을까?"

- 캐릭터 분석은 어떻게 했나요?
김 배우: "솔직히 관객들에게 신념과 믿음을 보여줄 자신은 있었습니다. (웃음) 그러나 잘해야겠다는 생각할수록 힘이 들었던 것 같아요."

20대에서 70대까지 극 중 김선명씨을 연기한 김중기 배우 20대에서 70대까지 극 중 김선명씨을 연기한 김중기 배우

▲ 20대에서 70대까지 극 중 김선명씨을 연기한 김중기 배우ⓒ 홍대신문사 강태흥

- 20대에서 70대까지 연기가 힘들지는 않았나요?
김 배우: "시간순서대로 촬영에 들어가 특별히 크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신념과 믿음을 조명하는데 있어서…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다가가려고 했습니다. 학생운동을 했기 때문에 어필이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이미지만 부각되어 따로 놀 수 있다는 생각에…. 나의 입장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서 보려고 했었습니다."

- 찍으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김 배우: "0.75평 독방생활에서 연기하는 것 자체로 답답했습니다. 비전향 장기수 어르신들의 삶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주인공으로 연기하는 나조차 답답한 마음이 들었고 좁은 공간에서 촬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카메라도 가까이에서 촬영될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교도소 안에 난방이 안돼서 추워서 힘든 점도 있었어요."

- 연기하면서 가장 애착이 갔던 장면이 있었겠죠?
김 배우: "크게는 칠순이라고 동료들이 방으로 물품을 넣어주는 장면과 '눈이 온다'라는 소리에 창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대사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소세하게는 고문 받는 장면에서는 직접 머리를 박고 깨지고 했었는데 막상 영화 보니까 별로 표시가 안 나더라고요. (웃음)"
이 작가: "시사회에 여러 번 참가를 해서 봤는데 연기가 질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홍 감독: "안석환씨 연기는 실감이 나고 박진감 넘치는 것 같지 않나요. 석환씨와 중기씨가 언쟁을 벌일 때 흥분이 고조되어 실제 책상 유리가 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연출만 빼놓고 다 좋았지 뭐… (웃음)."

- 다루는 소재가 민감한 거라 국가정보원에서 영화에 대해 말이 있었을 것 같은데…
홍 감독: "국정원의 체킹은 있었던 것 같은데 직접적인 간섭 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15세 이상 관람가의 이유는 잘…. 내용적으로 무리가 없고 철학 교육이 부재한 한국사회에서 긍정적 영향을 미칠 영화인데…."
김 배우: "그러고 보니 12세 관람가도 무난했을 텐데 왜 안 됐는지…."

홍 감독: "어쨌든 이 영화가 극장에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은 사회가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지 않을까요. 현 사회무드가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하고 있지만…. (웃음) 전반적으로 화해무드인 것 같고, 영화 작업하면서 어떤 일이 발생하진 않을까 약간은 우려했으나 오히려 놀랐다고 해야 하나…. 영화 쪽에서는 10년 전에 비하면 표현의 자유가 그래도 많이 보장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선명 뿐만 아니라 감옥에서 죽어간 사람들까지 모두 주인공"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이 계신 ‘만남의 집’을 찾아가 허드렛일을 도우며 취재해 시나리오를 쓴 이맹유 작가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이 계신 ‘만남의 집’을 찾아가 허드렛일을 도우며 취재해 시나리오를 쓴 이맹유 작가

▲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이 계신 ‘만남의 집’을 찾아가 허드렛일을 도우며 취재해 시나리오를 쓴 이맹유 작가ⓒ 홍대신문사 강태흥

- '선택'을 통해 전달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이 작가: "영웅을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우리랑 다른 신념의 소유자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45년을 흔들림이 없이 산 것이 아니지만 순간순간 고민하고 흔들리는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와 싸워 결국 한쪽을 취하는 것이 아닌 한쪽을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 일반인과 다르다고 봅니다. 영화에서는 그분의 실명을 썼지만 감옥에서 죽어간 또 다른 김선명을 그려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 나약한 인간일 수 있지만 양심과 신념을 지키는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강해지고 그로 인해 당당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 특별히 애착이 가는 극중 인물이 있다면요?
이 작가: "김선명 선생님이 선택 영화에서 기둥적 역할을 담당하지만 실제 이 영화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어간 사람들까지 모두 포함해 주인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등장 인물 모두 다 나에게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거 같지만 나에게는 다 같은 의미로 다가오니까요. '전향할까 봐요'라면서 나중에 미쳐버린… 실제 전향을 하는 사람도 또 다른 자신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강할 때 보다 약할 때 넘어야 하는 산이 많은데… 그 감정의 절정을 잘 담아내고자 했고 그때마다 마음이 아파서 울면서 쓴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 취재를 하면서 장기수 선생님들을 실제로 만나보았을 텐데 기억에 남는 인상은요?
이 작가: "김선명 어르신은 착하고 온순하시고 안학섭 어르신은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로 불의에 언제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분 같았어요. 그러나 어르신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에 당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향하신 분들을 만날 때는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많은 분들이 숨어 살고 있었고 자기 삶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눈이 흔들리면서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들은 감옥에 들어간 거 이상으로 더 큰 자기세계의 감옥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으며 양심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전향을 요구한 것만큼 잔인한 일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과 이 사회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송두율 사건, 김선명의 시각에선 역사가 반복된다"

- 송두율 교수가 구속됐잖아요. 김선명 어르신이나 송 교수 둘 다 남북이 분단돼 있는 상황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볼 때 송 교수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김 배우: "요즘 영화 홍보 탓에 송 교수 관련해 일을 잘 못 봐 자세히는 모르지만 분단체계를 아직 극복하지 못함으로 인해 문제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제 2의, 제 3의 송 교수는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이겠고 주인공인 김선명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는 '역사가 반복된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 그때와 같은 역사라는 말인가요?
김 배우: "똑같진 않겠죠. 시대가 좀 변했지만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는 걸 같다고 말한 겁니다. 10년 이후 지금을 바라볼 때 이 상황이 어쩌면 우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네요." 홍 감독: "포용력 있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사건이 터진 것은 냉전적 사고에서 아직 벗어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며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면 이와 같은 사건은 한두 달안에 해프닝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100억 원의 사기를 친 사람도 아니고 칼로 사람을 난도질해서 죽인 살해범도 아닌데…. 단지 남북이 잘 되기를, 통일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인데…. 송 교수를 둘러싼 일련의 모습은 무고한 인간을 파멸시키는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 영화가 늦게 개봉을 했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홍 감독: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어쩌면 영화와 가장 잘 맞는 시기(가을)에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가 관객들과 만남을 가질수록 반응이 좋은 것 같고 관객들의 힘을 많이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은 영화는 입소문이 중요합니다.'

이 작가: "광주에서는 8백여 석 되는 극장에서 12월까지 무조건 상영하기로 했답니다. 그리고 선택을 사랑하는 각종 온라인 카페들도 생겨나고 있어 반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김 배우: "우리 영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관객들의 힘, 대학생들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전대기련) 문화분과 공동기사입니다.

공동취재단: 서울여대학보사 김현정 기자, 홍대신문사 강태흥 기자, 충남대신문사 도경주 기자, 경대학보사 박창환 기자

유뉴스에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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