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는 매미들의 천국일까? 반포에서 매미들은 원래 자신들의 일상 그대로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매미의 전문가가 아닌 내가 관찰을 조금씩 조금씩 더 진행하면서 항상 가졌던 질문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곤충이든 우리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고 알고 있다. 만약 그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하면 도태되게 되는 것이다.

겨울철에 보았던 모기만 해도 그렇다. 지하집 모기라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도시환경에 적응하면서 나타난 빨간집 모기의 변종이 아닐까 싶다. 녀석들 개체군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적응을 하고 적응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스스로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매미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6-70년대 남한의 급속한 근대화로 도시화가 크게 진행되었고, 그로 인해 도시라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매미의 개체가 늘어나면서 나름대로의 변이를 일으켰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매미종들은 개체수가 감소하거나 도태되었을 것이다. 도심 속에서 가장 극성을 부리는 말매미나 애매미는 과연 개체수만 증가한 것일까? 아직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개체수가 증가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름대로 도시 환경에 적응되어 신체적인 변이를 일으키지는 않았을까? 나의 매미 탐구가 시간을 더해 갈수록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질문들이다. 하지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나의 매미 관찰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자신의 고유한 영역과 연관지어 나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사람은 파브르를 연상시키는 인물이었다. 바로 최동환군. 그는 청년 곤충학자였다.

5월14일

8층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 정원은 완전한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잠시 벗 꽃이 만개했을 때 흰옷으로 갈아입었다가 단 며칠만에 벗어버리더니 결국 그가 선택한 옷은 초록색이었던 셈이었다.

 단풍나무의 매미 산란흔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는 청년 곤충학자 최동환군
ⓒ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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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환군이 다시 나를 찾아 왔다. 내가 촬영하는 날 방문해서 직접 촬영하는 것도 배우고 매미촬영현장도 보고 싶다고 해서 온 것이었다. 그는 오자마자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곤충의 세계를 하나씩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캠코더에 대한 간단한 기능 설명을 하고 정원 속에서 이것저것 찍어 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내 나름대로 이것저것 촬영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촬영대상에는 동환군과 그의 행동도 다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는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그가 캠코더를 들이대는 곳마다 각기 다른 곤충들이 있었다.

 최동환군은 구멍이 숭숭 나있는 이것이 나방알이 부화하고 남은 알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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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지식과 정보가 있으니 나보다 쉽게 그런 장면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내친 김에 나는 겨울과 이른봄에 발견했던 이상한 곤충의 흔적들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물었다. 먼저 작은 구멍들이 뚫어져 있던 곤충 알집인지 뭔지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어떤 나방인지는 모르지만 녀석들의 알집이라고 했다. 그리고 알집 위쪽에 있는 항아리 모양의 집은 나방의 번데기가 들어있던 집이라고 했다. 그의 명쾌했다. 나도 대충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추측과는 차원이 다른 대답이었다.

나방의 집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은 나방의 유충들이 알에서 깨어나 알 무리 전체를 감싸고 있는 알집의 표면을 뚫고 나와서 그렇다고 했다. 언젠가 사마귀의 알이 부화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데 비슷했던 기억이 났다. 매미 알의 부화 순간을 예상해 보았다.

분명한 것은 매미 알의 부화는 나방의 부화와는 다른 방식일 듯 싶었다. 매미 알은 알집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목질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알집을 뚫고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목질을 뚫고 나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방의 유충들보다 훨씬 힘겹게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게 되는 셈일 것이다.

 알집 바로 근처에서 발견된 항아리 모양의 번데기 집 속에는 유충은 이미 빠져나가고 번데기 껍질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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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 알집이 있는 나무에서 동환군이 아주 작고 하얀 껍질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무당벌레 알껍질들이었다. 거의 2,3미리 정도 크기의 무당벌레 알들은 매미만큼 부화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무당벌레 알껍질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가지 부위에서 이번에는 동환군이 부화하지 않은 무당벌레 알들을 발견했다. 주황색의 윤기 나는 알들이 이 삼십 개 무리 지어 나무 줄기 표면에 붙어 있었다. 매미 알에 비해 약간 큰 것 같았다. 알 껍질들이 있고 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당벌레 유충들이 근처 어디엔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추측이 맞았다. 아파트 주민들이 내다 놓은 재활용품 베니어판 조각 위에서 검은 색의 뭔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동환군은 자세히 들여 다 보더니 무당벌레의 유충이라고 했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여기 저기에 널려 있었다. 그냥 언뜻 보아서는 잘게 부서진 낙엽조각이나 흙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분명 곤충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고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녀석들은 분명 살아 있는 곤충이었다. 나중에 무당벌레의 일생도 카메라에 담아 보고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우선 과제는 매미 알의 부화였다.

무당벌레 유충들을 들여 다 보면서 나는 저 녀석들이 매미 알 유충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매미 알의 부화 순간과 매미 애벌레들을 향한 나의 기다림은 마치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심정과 같은 것이었다. 행여나 부화의 순간까지 견디지 못하고 추위나 다른 조류나 곤충에 의해 희생당하지나 않을까 언제나 노심초사했었다.

녀석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지척이었지만 나무 목질 속이어서 전혀 보이지는 않고 그 안을 들여다 볼 방법도 없었으니 멀리 전쟁터, 보이지 않는 곳에 내 보낸 것이나 짐배가 없었다.

 아파트 정원에서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고 있는 드가 '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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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다림의 시간은 거의 7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처음 산란장면을 촬영한 것은 지난 해 7월이었지만 그것이 매미의 산란 순간인 것을 알게 된 것은 1차 편집을 하고 있던 10월 달이었으므로 그 정도 되는 셈이었다.

과연 매미 알은 언제 부화하는 것일까? 산란 후 얼마나 걸리는 것일까? 지금까지만 계산해 보아도 적어도 10개월 이상 걸린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나는 정확한 부화시기가 너무나 궁금했다. 동환군은 직접 곤충을 길러 보기도 했고 곤충 알을 길러 보기도 했다고 한다. 숲에서 곤충 알을 가져다가 집에서 간단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부화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길러 본 알들은 대개 단 시간 내에 부화를 했다고 한다. 며칠 걸린 것도 있고 이 삼 주 걸린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매미처럼 부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곤충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가지 우려를 표명했다. 그가 알고 있는 곤충들은 대부분 얼음벌레(동면상태)로 겨울을 나고 종족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곤충이 알로서 겨울을 나는 경우도 있다고 알고 있지만 과연 내가 본 산란에서 나온 매미 알들이 겨울을 무사히 넘긴 것들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내가 본 알들은 산란한 그 해에 부화를 해서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나무 속에서 죽은 알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런 추측은 대부분의 곤충들이 산란 후 얼마 있지 않아 부화를 한다는 그의 일반적인 관찰에 의한 추론이었다. 내가 보기에 동환군은 매미에 대한 관심은 나에 못지 않지만 산란과 부화에 대한 지식은 상식수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했다.

그의 등장은 나의 촬영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다주었다. 사실 곤충 촬영이니 만큼 가장 중요한 촬영은 아무래도 접사 촬영이었다. 동환군은 스틸로 촬영하면서 얻은 그만의 노하우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스틸카메라용 접사필터를 가지고 왔다. 필터 세장을 결합해서 사용하는데 그 구경이 내가 가지고 있는 6mm디지털캠코더의 렌즈구경과 같았다. 디지털 캠코더에는 접사촬영 기능이 내장되어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사물에 최대한 근접해서 촬영을 하더라도 일정정도 줌을 들어가면 포커스를 맞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가 언제나 나의 욕구에 좀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매미의 신체 각 부위도 클로즈업으로 좀 더 크게 찍고 싶고 지난번에 발견한 매미 알도 깨알 만하게가 아니라 큼직한 달걀만하게 촬영하고 싶었지만 카메라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동환군이 가져온 접사필터를 사용하니 약간의 개선이 있었다. 기존에 최대한으로 가능했던 접사촬영보다 조금 더 피사체를 크게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매미의 알을 찍어내기에는 부족한 정도였다. 하여튼 접사필터를 끼워서 여러 곤충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하얀것은 깍지벌레이고 검은 것은 개미, 개미가 깍지 벌레를 연신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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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깊어가고 여름으로 다가갈수록 아파트 정원에는 다양한 곤충들이 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접사 필터를 낀 카메라로 동환군이 촬영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깍지벌레와 개미의 혈전이었다.

깍지벌레는 복숭아 나무 등의 유실수에 해를 끼치는 유해충이었다. 매미가 산란했던 단풍나무 줄기의 가지와 가지 사이에 하얀 색의 깍지벌레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크기 2,3미리미터의 깍지벌레들은 하얀 등을 보호막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의 칩거에는 훼방꾼이 있었다. 바로 개미들이었다. 개미들은 깍지벌레의 흰 등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뭔가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개미들은 0000계의 개미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정원에서 촬영 초기에 찍은 개미들은 곰벌레들일 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좌우지간 개미들의 공격에 대항해서 깍지벌레들은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예전에 동환군이 없을 때는 보이지 않던 깍지벌레들이 동환군과 함께 정원을 돌아 다녀 보니 여기 저기 천지였다. 감나무의 피해가 가장 큰 것 같았다. 정원에 간혹 아직 어린 감나무들이 몇 그루 있었는데 동환군이 그 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잎마다 한 두 마리씩 깍지벌레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붙어 있는 잎의 부위는 상해 있었다. 깍지벌레가 해충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재미난 것은 이렇게 하얗게 생긴 깍지벌레가 옛날 옛적에는 붉은 염료의 원료였다는 것이다.

동환군의 설명에 의하면 깍지벌레를 모아서 으깨면 붉은 염료가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동환군이 깍지벌레 한 마리를 손으로 잡아 으깨자 붉은 색의 덩어리가 되었다. 동물성 자연 염료인 셈이었다. 동환군의 곤충 상식이 놀랍기도 했고 똑 같은 아파트 정원 속에서 눈으로 곤충의 세계를 들여 본다고 칠 때 그의 시야와 나의 시야가 지식의 양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BOX1@
그가 찾아 낸 한가지 유충이 더 있었다. 그것은 풀잠자리의 유충이었다. 유충은 아파트 주민들이 내다 놓은 재활용품 가구의 표면을 기어가고 있었다. 아주 작았다. 길이 3mm 정도 굵기 1mm 정도였다. 그는 단번에 풀 잠자리의 유충이라고 확언했다. 만약에 나 혼자 녀석들 발견했다면 또 궁금증에 휩싸이고 사진을 대조해가며 인터넷이나 곤충도감에 의존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녀석이 풀잠자리의 유충이라는 것을 알아낸다는 보장은 없었을 것이다. 알아 낸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정말이지 신통방통한 청년이었다. 청년 파브르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매미 관찰을 시작하고 나는 나 스스로를 파브르라고 칭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의 청년 파브르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는 최동환군이었다. 그는 졸업을 한 학기 남겨 두고 있었다. 그리고 졸업을 하면 유학을 갈 거라고 했다. 아마 그가 유학을 갔다 오면 좀더 성숙한 진짜 파브르가 되어 있을 듯 했다. 동환군의 등장은 그야말로 반포매미 이야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5월25일

처음 듣는 목소리의 한 남자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내가 <오마이뉴스>에 올린 글을 보고 내 사이트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거기서 내 핸드폰 번호를 보고 전화를 안 것이었다. 그는 자기를 모 출판사의 기획자라고 소개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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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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