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을 헤매는 필자-나는 이미 기다림에 익숙해 져 있었다
ⓒ 박성호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피를 말리는 일인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기대에 부풀어 사는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몇 달간 한가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가을 확인한 매미의 산란흔 속에 있을 알에서 매미 유충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바로 부화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겨울철 3,4달 동안 정원에서 매미의 겨울생활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물론 땅 속 어딘가에는 지난 여름에 부화해서 땅을 파고 기어들어간 유충과 그 전해, 그리고 그 전전해에 이미 땅을 파고 들어간 녀석들이 있을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눈으로 확인한 사실은 아니었다.

다만 여름이면 으레 나타나는 매미의 존재에 비추어 유추한 것일 뿐이었다. 봄이 오고 나서도 나는 매미의 부화 순간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TV속의 계절은 항상 앞서 가는 것 같다. 2월말에 벌써 텔레비전 속에는 봄소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아래 남쪽 지방의 봄 이야기가 나오더니 며칠 사이에 서울의 봄을 알리는 소식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반포의 아파트에는 2월말 봄을 느낄 수는 없었다. 3월 중순이 되어서야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TV는 거짓말을 하는 상자였다.

3월17일 화창한 봄날.

봄은 겨울 말미 일정 시점을 넘기자 속도감이 붙어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눈꼽도 떼지 않은 채 아파트 복도에서 정원을 내려다 보았다. 8층에서 부감으로 내려다 본 정원의 색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봄이 오는 아파트 정원을 기록하러 카메라를 가지고 내려갔다. TV에서 봄이 온다기에 몇 번이나 카메라를 들고 정원을 내려갔지만 TV가 전하는 봄소식은 적어도 반포에서는 거짓말에 불과했다.

매번 왜 이리도 봄이 오지 않나 하고 안타까워했지만 봄이 오고 있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이기에 실망하면서도 매일 정원을 탐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은 분명 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키 작은 민들레들이 잡풀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어떤 놈은 이미 만개를 한 상태였고 어떤 놈들은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3월31일 흐림.

지난 여름 매미들이 떼를 지어 앉아 있던 나무가 이날은 눈에 띄었다. 그 나무에서 오줌을 친구 녀석 머리에 갈기던 개구쟁이 매미가 생각났다. 나무는 하얀 색으로 탈바꿈을 해 있었다. 바로 매미들이 그다지도 좋아하던 그 나무는 바로 벗나무였다. 나무 줄기 사이 사이를 온통 뒤덮고 있는 벗꽃들은 그야말로 봄의 상징이었다. 며칠 피지 못하는 운명을 알기라도 하는 듯 꽃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이 외에도 정원에는 흰색, 노란색, 빨간색, 보라색 꽃들이 이미 피어 있었다.

4월1일 밤 10시.

▲ 실례를 하고 있는 中-이렇게 조금씩 내 보낸 비변토가 쌓이면 신기한 탑모양이 된다
ⓒ 박성호
곤충은 아니지만 반포의 정원에서 나의 관심을 끌었던 한 녀석이 다시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지렁이였다. 지렁이가 뱉어 놓은 똥 덩어리들은 모양 그 자체도 신기했고 어떻게 그런 모양이 생기게 되었는지 그 과정도 무척 궁금했지만 결국 나는 그 똥 덩어리들이 생기는 순간들은 보지 못하고 지난 여름을 넘기고 말았다.

머리를 낮추어 정원 수풀 사이를 세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전등의 방향을 이리 저리 옮기고 있는 순간 지렁이 한 마리가 급히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녀석은 생각보다 빨랐다. 들어간 구멍은 아주 선명했다. 들어간 구멍으로 다시 나올 것 같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30분이 지났는데 녀석은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지렁이 머리가 구멍의 입구에 나타났다. 사실 머린지 꼬리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은 머리를 밖으로 완전히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진흙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진흙을 뱉어내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꼬리였다. 지렁이는 그냥 보면 머리와 꼬리의 구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구분이 있다. 지렁이는 항상 앞쪽으로만 움직인다. 이때 앞쪽이 당연히 머리이다. 또한 이 머리에 입이 있다. 즉 흙을 빨아들이는 것은 머리에 있는 입이고 뱉어내는 것은 꼬리에 있는 항문이다. 너무나 간단하지만 사실 육안 구별은 쉽지 않다. 육안으로 구분하자면 띠를 중심으로 마디수가 적은 쪽이 머리이고 마디수가 많은 쪽이 꼬리라고 보면 된다.

좌우지간 녀석은 항문으로 물기가 많은 진흙을 조금씩 내보내고 있었다. 항문에서 나온 진흙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굳어지고 있었다. 굳어진 진흙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유지되고 있었는데 지렁이 녀석은 그 구멍으로 계속 진흙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런 과정이 얼마 정도 진행되자 정말 내가 그렇게 신기했던 탑 모양의 지렁이 똥 덩어리가 제 모양을 드러냈다. 녀석은 마치 진흙 아티스트 같았다. 조소 작가라고나 할까?

4월 3일.

비둘기들은 매미와 무관한 존재들일까? 도시라는 공간에서 철저하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생물이 비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이 도시라는 공간에서 거대한 개체를 형성하고 살아가는 매미의 생존과 상충되는 점은 없을까?

정원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는 비둘기를 보았다. 별로 신기할 것은 없지만 비둘기 녀석들도 매미와 마찬가지로 도시에서 종족을 이어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런 짝짓기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그 새끼들과 어미들은 생존해야 하므로 먹이를 조달해야 하고 그 먹이 중에 혹시 갓 부화하고 나온 매미 유충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파트 정원에 10여 마리의 비둘기들이 내려앉아 뭔가를 주워먹고 있었다. 그 자리도 정확히 매미가 산란했던 바로 그 나무 아래였다. 날아가 버릴까봐 멀리서 망원경으로 관찰만 했다. 혹시 4월에 매미알이 부화를 해서 유충이 땅에 떨어져 돌아다니고 있다면 비둘기들의 시야에 잡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녀석들의 운명은 자명할 듯 했다.

한참을 지켜보다 녀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나서 그 나무 아래로 가 보았다. 다행이었다. 녀석들이 그렇게 집요하게 주워먹고 있던 것은 아파트 주민이 버린 제과점 빵 조각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산란가지를 확인해 보니 부화를 한 흔적은 없었다. 아직 때가 아닌 듯했다.

4월 6일-매미알 발견

매미가 산란을 하는 바람에 말라 죽은 단풍나무의 줄기들은 여전히 말라 있었다. 봄이 깊어 갈수록 다른 가지들은 생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잎들도 점점 푸르러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죽은 나뭇가지는 전혀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번 말라 죽은 가지는 다시 생명력을 찾을 수 없는 것 같았다.

겨울에 발견했던 산란 흔적이 있는 나무들을 죽 둘러 보았지만 별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한 군데에서 산란한 가지가 부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지는 부러진 채 다른 나뭇가지들 사이에 걸려 있었다. 사람이 일부러 부러뜨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높은 곳이었다.

기다란 막대를 이용해 부러진 가지를 내렸다. 산란흔적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가지는 아무래도 그 나무에 앉은 비둘기나 까치에 의해 부러진 것 같았다. 겨우 내내 산란흔이 있는 가지를 잘라서 매미알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내가 정한 원칙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나의 희망 사항을 새들이 대신 이루어 준 것 같았다.

부러진 나뭇가지의 굵기는 새끼 손가락보다 가늘었다. 그리고 가지에는 길이 1센티 정도의 산란 흔적들이 무수히 많았다. 부러진 끝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매미알을 발견했다. 부러진 부위가 마침 산란흔이 있는 부위였는데 부러지면서 속의 매미 알이 바깥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 정말 깨알만하다. 오히려 깨알보다 가늘어 보이고 반투명해 보인다. 이것이 바로 매미알
ⓒ 박성호
그 갈라진 틈 사이에 서너 개의 매미 알이 노출되어 있었다. 매미 알은 기다란 볍씨 모양이었다. 다만 크기가 아주 작았다. 길이 1미리미터 내외 굵기는 0.5~0.3 미리미터 내외였다. 색깔은 우유 빛이었다. 확대경으로 알들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별 특징은 없었다. 도대체 이 작은 알에서 어떻게 매미가 나오는지 의아했다. 껍질은 불투명했다.

내부의 모습을 알 수는 없었다. 그냥 하얀 색으로 뒤 덮힌 달걀과도 같았다. 다만 모양새가 조금 달랐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만 눈의 존재다. 모든 매미알의 한쪽 끝에는 짙은 갈색의 작은 점이 있었다. 위쪽과 아래쪽을 구분하는 것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매미 신체의 한 부분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보았다.

알의 한쪽 나뭇가지의 갈라진 틈 사이를 조금 더 벌려 보았다. 쏟아 지듯 더 많은 매미 알들이 노출되었다. 하나의 산란흔 안에는 거의 20여 개의 알이 있었다. 순간 가벼운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그 약한 바람에 모습을 드러낸 매미 알들의 절반 정도가 날아가 버렸다.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말이다.

그런데 일단 날아간 매미알들은 너무 작아서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내 행동이 어린 생명들에게 누를 끼쳤다는 죄책감에 내가 서 있던 주위를 아주 샅샅이 찾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일단 날아간 녀석들은 때가 되더라도 부화를 하지 못할 것 같아 너무 미안했다.

사실 이날은 지난 가을 매미의 산란을 촬영본 테이프에서 확인한 순간부터 이날까지 그다지도 학수고대하던 순간이었다. 우연히 산란순간을 포착하고는 녀석들이 낳아 놓은 알들을 보고 싶었지만 양심의 가책 때문에 함부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부러진 산란가지가 있어서 드디어 매미알을 내 눈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알들이 부화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날은 멀어 보였다.

매미가 나무 목질 속에다 알을 낳고 알은 그 목질 안에서 안전하게 겨울 그리고 봄을 지낸다는 것은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었다. 어미 매미로서 힘들더라도 산란관을 목질 속에다 찔러 넣고 힘겹게 산란하는 이유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나는 부러진 나뭇가지를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걸쳐 놓았다. 가지가 부러진 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기에 적어도 남아 있는 알들의 운명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러진 가지에서 나중에 녀석들이 부화를 할 수 있다면 나는 단지 잠시 동안 운좋게 녀석들의 삶의 한 순간을 훔쳐 본 것일 뿐 녀석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은 아니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령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해서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고 알들이 위기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그건 그들의 운명 즉 자연의 섭리일 뿐이었다.

5월1일.

메이데이라서 낮 동안 집에서 쉬면서 하루 종일 정원을 관찰할 수 있는 날이었다. 특별한 것들을 발견하거나 찾을 수는 없는 날이었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출퇴근의 일상에서 잠시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는 날이었다. 이날 저녁 아주 귀한 손님이 나를 찾아 온 날이기도 했다.

며칠 전 핸드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었다. 고대 농생물학과 4학년 학생의 전화였다. 그는 내가 웹에 올려 놓은 반포매미 이야기를 보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는 나의 매미 촬영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본인도 곤충을 좋아해서 학교에서 곤충 동아리 활동도 하고 전국 방방곳곳으로 곤충촬영도 다닌다고 했다.

그가 내게 전화를 한 것은 본인이 여태 해오던 스틸 촬영이 아니라 곤충에 대한 비디오 촬영 때문이었다. 나에게서 비디오 촬영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일단 나의 작업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만나서 기뻤다. 다소 내 작업이 번거러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 사이트를 운영하면서도 다큐멘터리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초심자들로부터 별의별 부탁을 받으면 나는 언제나 성심껏 도와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누구에게나 시작이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동환 학생의 경우도 그런 것이었다. 비디오 촬영이라는 것이 처음이 막막한 것이지 조금 배우고 나면 그 다음은 스스로 촬영을 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이므로 처음 시작을 도와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농생물학과 4학년생에 곤충 동아리 활동까지 하는 친구라면 반대로 내가 그에게서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을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나는 매미를 죽 촬영하고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 곤충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 말해도 충분했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자전거를 배우고 있는 것이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서 최동환 학생이 나의 집으로 찾아왔다. 우연히 그가 사는 곳도 반포였다. 내가 사는 곳은 신반포 잠원동이었고 그가 사는 곳은 신반포 반포동이었다. 걸어가도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아파트 단지 앞으로 나갔다. 멀리서 그라고 여겨지는 한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예상보다 키가 컸다. 서글서글한 호남형의 건강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학구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처음 만나는 순간을 그리고 그가 우리 집에 들어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순간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내가 만들고 있는 반포매미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있어서 최동환이라는 학생의 등장 또한 담지 않을 수 없는 중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19평의 좁은 아파트 거실에 앉아서 아내와 함께 차를 마셨다. 동환 학생은 예사롭지 않은 청년이었다. 몇 마디를 나누지 않았는데도 그가 곤충에 대해 아주 해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매미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분명 반포매미에 대해 나보다 훨씬 이전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가 반포매미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놀랍게도 초등학교 시절이었다고 했다. 당시 그는 학교 숙제로 반포매미의 생활에 대한 스틸 사진을 찍고 관찰일기를 썼었다고 했다. 그때 매미의 우화순간을 목격하기도 했고 매미의 교미순간도 보았다고 했다. 매미의 교미순간을 보았다는 것은 너무나 부러운 일이었다. 나는 그토록 장시간 아파트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 순간을 보지 못했고 여전히 남은 숙제였기 때문이다.

동환군이 보았다는 교미하는 모습은 언젠가 내가 아이들의 곤충도감에서 본 사진과 같았다. 머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하고 몸을 겹치고 있는 상태 혹은 마치 꽁지를 맞대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마치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왜 보지 못했을까? 이건 전적으로 내 운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반포에는 말매미가 제일 많이 서식한다는 나름대로의 관찰 결과를 말하기도 했다. 내가 내린 결론과 같았다. 그는 반포 토박이인 셈이었다. 적어도 반포 매미에 대해 나보다 먼저 관심을 가진 청년이라는 점에서 거꾸로 내가 배울 것이 더 많아 보였다.

그런 동환 학생도 내가 끄집어낸 매미에 대한 한 가지 이야기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바로 매미알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매미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는데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했다. 나는 더욱 신이 나서 내가 촬영한 매미의 산란과 매미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치 친구들 사이에서 우쭐대며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막 늘어 놓는 초등학생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충의 다큐 제작과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내가 촬영한 몇 가지 화면들을 보여주었다. 그의 눈은 호기심으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일단 나중에 직접 매미를 촬영하는 날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는 돌아갔다.

동환 학생이 돌아가고 나서 나는 아파트 정원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매미 촬영을 시작하고 나서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밤낮없이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도 일, 집에 와서도 일 생각만 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나는 변화하고 있었다. 회사일과 나의 개인 일을 엄격히 구분하게 되었고 회사일보다 개인일 즉 매미촬영에 더 매달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회사일보다 개인 일에서 훨씬 재미를 느끼고 있기도 했다. 매미촬영은 물론 내 직업인 PD의 일과 다르지 않지만 적어도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나의 여가라는 것도 깨달았다.
2003-05-30 19:4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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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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