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됐다. 3월 개봉 후 4월10일까지 연장 상연되었던 <하늘색 고향(감독 김소영)>과 24일 개봉 예정인 75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 <볼링 포 콜럼바인(감독 마이클 무어)>과 더불어 이번에 관객과 만나는 다큐멘터리는 바로 프랑스 영화 <마지막 수업(감독 니꼴라 필리베르)>이다. 이 영화의 시사회를 다녀와서 몇 자 적어 본다.

한마디로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 선생님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다. 시종일관 작은 산골 학교의 선생님과 아이들의 해맑음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어두운 극장 안이라 관객들의 자지러지는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영화에 대한 반응이 공기를 타고 소리로 전해왔다. 그들의 반응은 공통적이었다. 니꼴라 필리베르 감독의 <마지막 수업>은 사람들로 연신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개그프로를 보고 뱉어내는 웃음과는 달랐다.

'마지막 수업' 상연안내 20일부터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etre et avoir ; to be and to have)
감독 : 니콜라 필리베르
각본 : 니콜라 필리베르
제작 : 질 산도즈, 세르쥬 라도우
촬영 : 니콜라 필리베르, 카텔 디안, 로랑 디디에
음악 : 필립 헤르상
편집 : 니콜라 필리베르
출연 : 조르쥬 로페즈, 알리제, 악셀, 조조, 기욤, 제시, 조한, 조나단, 줄리앙, 레티샤, 나탈리

공연시간 및 요금
일정 : 2003/04/20 ~ 2003/05/15 1회 11:20 / 2회 1:40 / 3회 4:00 / 4회 6:20 / 5회 8:40 (24, 25, 28일 마지막회 상영없음) / 박성호 프랑스판 미암분교 이야기

영화는 프랑스 중부 고원지대의 아주 작은 초등학교의 아이들과 선생님의 수업내용을 지루하리 만큼 아주 세심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러다가 카메라는 아이들의 집으로 가서 아이들의 생활을 조금 보여주고 부모님들의 가정학습 장면을 몇 장면 보여주기도 한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아이들이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우리들이 막 숫자를 배우고 글을 배우는 시기를 있는 그대로 담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그림도 아주 단순하다. 방대한 취재라든지 거대한 스케일이라든지 하는 으레 붙는 수식어들을 붙일 데라고는 한군데도 없다. 하지만 마지막 수업은 그 이상의 어떤 다큐멘터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시사회를 찾은 사람들을 사로잡았고 그 이전에 프랑스에서 170만 관객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 영화의 한장면-4살 예비초등학생부터 11살 예비중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이 작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 동숭아트센터 이제 정년을 1년 반밖에 남겨 놓지 않은 조르쥬 로페즈 선생님과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혹은 5,6학년 아이들과의 수업 중 대화들이 길게 아주 길게 보여진다. 딴청 피는 아이들, 그런데도 엄청나게 집요하게 그리고 차분차분하게 아이를 이해 시켜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잘 지내다 심하게 다툰 두 남녀 학생을 앉혀 놓고 왜 싸우면 안되는지, 왜 싸움이 잘못된 것인지를 집요하게 이해시키는 로페즈 선생님의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영화를 보면 누구나 학교 다닐 때 나의 선생님 우리의 선생님 모습을 다시 한번쯤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나이 때문에 다소 보수적이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로페즈 선생님은 진짜 훌륭한 교육자의 상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담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교육자의 상이라던지 그런 단순한 한가지가 아닌 듯 하다.

눈 내린 겨울 들판에서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아니 아이가 되어 눈썰매를 타는 로페즈 선생님의 모습은 프랑스판 김용택 시인의 모습이었다. 전북 임실 미암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용택 시인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방송 다큐멘터리들이 여럿 있었는데 로페즈 선생님은 김용택 시인을 닮았고 영화 속의 아이들은 미암분교의 아이들을 닮아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잘것없는 직책,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지만 본받을 만한 한 인물을 다룬 인물 다큐멘터리로 본다면 이 작품의 흥행실적을 쉬이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마지막 수업>의 매력1-열린 다큐멘터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이점에 대해 감독의 연출의 변은 아주 단순하다. 오래 전부터 글을 배우고 숫자를 배우던 시기를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그런 희망은 영화에서 고스란히 살아나 있다.

▲ 영화의 한장면-줄리앙의 숙제때문에 모인 온가족이 사칙연산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 동숭아트센터 11살의 예비중학생 줄리앙이 집에서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칙연산을 푸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관객이 보기에는 너무나 쉬운 연산을 줄리앙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풀어나간다. 틀리게 답하면 바로 움츠려들고 어머니는 매섭게 꾸짖는다. 심지어 나중에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숙부까지 나서서 온 집안이 사칙연산을 두고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교실에서는 4살 예비초등학생부터 11살 예비 중학생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조르쥬 선생님과의 밀고 당기는 시름이 계속 벌어진다. 칠판에 보기로 쓰여져 있는 7이라는 숫자를 그대로 베껴 쓰는 것조차 아이들에게는 엄청난 곤경으로 다가간다.

조르쥬 선생님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나탈리와 햇살이 내리 쬐는 양지바른 곳에 앉아 중학교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일러주고 언제든지 다시 자기를 찾아와 중학교 생활을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나탈리는 소심하고 자폐증적인 증세가 있어 조르쥬 선생님은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과 조르쥬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들을 통해 니꼴라 감독 담아 내고 있는 세상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거대한 담론이나 거창한 주장들이 아니다. 그냥 숫자를 배우고 글을 배우던 시절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 시절을 다들 한번씩 다시 떠올리게 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그 안에서 감독의 주장을 찾으려고 언제나 애를 쓰기 마련이다. 마치 지루한 교양서적을 읽으면서 문맥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읽고 핵심포인트를 찾아 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동이다. 이것은 당연하다. 더군다나 객관적인 사실전달에 치중하는 르포나 저널리즘 형태의 보도물이 아닌 이상 감독의 주장을 찾고 그것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다큐멘터리의 독법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노력들을 포기했다.

영화가 10분, 20분 흘러가고 결국 화면에 스텝 스크롤이 나오고 끝이 났지만 그 안에서 거대한 주장이나 메타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감독은 자신의 영화는 어떤 영화이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였다는 등의 감독의 변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감독의 변이 관객의 변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유는 이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하나로 수렴되지 않을 망정 가볍지 않은 여러 가지 메시지를 관객들로 하여금 읽어 내게끔 하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교육의 문제나 진정한 교육자의 상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조르쥬 선생님과 그의 교수법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고, 다양한 학년의 아이들을 교사 한명이 이끌어 나가는 수업 모습을 통해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작은 학교 폐교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자폐아 나탈리의 생활을 통해 장애우의 일반학교 진학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도 있다. 힘들게 진행되지만 글자와 숫자를 사이에 두고 조르쥬 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액션과 상호작용들을 보면서는 입학하기 전 이미 한글을 깨치고 왠만한 연산을 거뜬히 하는 대한민국의 아이들과 우리의 조기교육 문제를 반성해 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러한 관객의 다양한 변과 해석이 가능한 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구조가 인과론적인 구성을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대신에 이 영화는 단순하지만 치밀한 기술과 나열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는 방학을 하는 마지막 수업을 향해 진행되고 있지만 처음이나 마지막 수업이나 구성상 대등한 요소들일 뿐이다.

즉 기승전결식의 구성이 아니라 병렬형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열린 다큐멘터리의 구조라고 말하고 싶다. 구성이 인과론적일 경우 관객의 반응은 감독이 의도하는 하나의 메시지 쪽으로 수렴되겠지만 이런 열린 구조 하에서 메시지는 감독의 것이 아니라 보는 관객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반응을 기대할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는 저널리즘과 달리 분명 감독의 주제의식을 표출하는 것이지만 소통의 민주화 차원에서 본다면 다큐멘터리 또한 일방적 전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진정한 소통의 민주화는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 그 작품이 수용자 관객에게 도달되고 관람이라는 행위를 통해 관객의 지점에서 다양한 메시지가 만들어지는 형식이어야 한다.

이런 과정 전체가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이 열린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이 영화를 더욱 높이 평가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다큐멘터리라는 말만 들어도 거창한 주의와 주장을 연상하고 거기에 짓눌려, 주제의 중압감에 눌려 재미도 없는데 사명감으로 작품을 끌어안고 씨름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주제의 거창함이 문제가 아니다. 주제가 아무리 거창하더라도 작품을 보고 자유롭게 해석하고 그 감흥에 의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가 작품의 주제를 나름대로 만들어 볼 수 있다면 그런 중압감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메시지의 일방적 전달 형식을 띄고 있는 작품의 구조에 있다. 그것을 나는 닫힌 구조라고 말하고 싶다. 닫힌 구조를 가진 작품은 아무리 좋은 대의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필연코 관객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 다큐멘터리의 대중적인 접근을 저해하기도 한다. 국내 인디 다큐멘터리의 제작이 몇 해 전에 비해서 엄청나게 활발해 졌다.

그만큼 한 해 선보이는 작품의 양적, 질적인 성장을 거듭해 오고 있다. 하지만 게 중에 좋은 작품들조차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그들만의 잔치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바로 나는 이런 닫힌 구조를 가진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수업>의 대중과의 만남을 계기로 해서 다큐멘터리 하시는 분들에게 하나의 반성을 제안하고 싶다. 여지껏 우리는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 공유할 수 있는 주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이런 문제가 있어’, ‘이런 문제는 이렇게 풀어야 돼’라고 관객의 의견을 강요해 왔던 것은 아닐까요?

다큐멘터리 <마지막 수업>의 매력2-니꼴라 필리베르의 연출력

▲ 영화의 한장면-아주 어린 여자 꼬마애는 4살의 예비초등학생, 오빠의 공부가 너무 신기한가 보다.
ⓒ 동숭아트센터 이 영화에 출연하는 13명의 아이들은 하나 하나 모두 주연이었다. 그만큼 영화는 선생님과 13명의 캐릭터를 아주 잘 담아 내고 있다. 이것은 감독이 생각하는 리얼리즘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감독은 이를 위해서 철저한 준비와 촬영 규칙들을 만들어 작업을 해 나갔다고 한다. 시골의 학교이면서 아이들의 숫자가 10명에서 열 둘을 넘지 않는 학교를 찾기 위해 감독은 프랑스 전역의 수백개의 학교를 조사했고 백 여 군데 이상을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선택된 학교가 바로 영화 속의 학교와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실제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촬영의 원칙들을 철저히 지켜나갔다.

이 다큐멘터리의 힘은 바로 아이들 각각에서부터, 선생님 그리고 집에서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몇몇 부모님까지 각 인물들의 캐릭터들이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이다. 대신에 다큐멘터리의 전형적인 표현 요소인 내레이션이 전혀 없다.

인터뷰도 조르쥬 선생님에 한해 아주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캐릭터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모든 내용은 그들의 대화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내레이션이 없어도 그림이 이해가 안 된다든지, 줄거리를 모르겠다든지 하는 것이 없다. 그만큼 이 영화는 선생님과 아이들 그리고 두 존재들의 상호관계를 세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진짜 논픽션답다. 그런데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감독의 연출력의 결과다. 아이들이나 조르쥬 선생님이 카메라의 존재에 대해 잊어버리도록 세심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선생님의 대화가 일어나는 주공간은 교실, 교실 안에는 카메라 감독과 세컨더 카메라, 오디오맨, 그리고 감독 자신 총 4명만이 들어가 촬영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먼저 감독은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작업에 대해 이해를 시키고 카메라에 대한 인식을 할 필요가 없음을 충분히 가르쳤다. 그리고 촬영 중에도 엄격한 룰들이 적용되었다.

스텝들은 도움을 요청해 오는 아이들에게 절대 개입해서는 안됐다. 심지어 아이들과의 리액션이 일어나는 것조차 배제하고자 노력했다. 아이들에게 촬영팀은 그냥 그저 교실 안에 있는 칠판이나 꽃병과 같은 오브젝트에 불과했다.

이러한 노력에 의해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극도의 리얼함과 수업 분위기의 행간에 놓인 감정까지 자연스럽게 잡아 낼 수 있었다. 나는 이 점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스토리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카메라가 이렇게도 자연스러움과 리얼함을 담아 낼 수도 있구나 하고 경탄했다.

통상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출연자들이 카메라의 존재를 잊어버리게 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다큐멘터리 영화든 방송 다큐멘터리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카메라를 인식한 출연자는 필연코 과장되게 행동하고 말하던지 반대로 행동이나 말이 위축되게 된다. 많은 경우 카메라의 존재 자체가 일상성을 방해하게 된다. 피사체가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경우 심지어 진실성과는 거리가 먼 작품들도 탄생하게 된다.

@IMG5@글이든 영상이든 리얼리즘이라는 미명하에 그것이 구현해 내는 세계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작가가 재구성해 내는 또 다른 세계일 뿐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의 작가적 주관성과 연출의 부주의에서 발생하는 진실의 왜곡과는 차원이 분명 다르다.

카메라와 피사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논란은 다큐멘터리계의 해묵은 논쟁거리이다. 하지만 감독이 구현해 내는 또 하나의 세상이 적어도 타인들에게 공개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보는 이들이 정서적으로 그리고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출연자들 또한 어떤 사회적 평가의 시스템에 놓이게 된다면 감독은 최대한의 성실성을 가지고 기록작업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카메라는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은 아니다. 즉 전지적 존재는 아니다. 카메라가 사람이라는 피사체를 찍고 있다면 피사체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카메라를 당연히 인식하고 그의 행동이나 말에 있어서 어떤 반응을 나타내게 마련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대전제 하에서 사물과 사건 즉 뷰파인더 안의 세상을 가장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그렇게 인정하더라도 감독이 주의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것을 니꼴라 필리베르 감독이 보여준 것 같다. 최대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기 위한 장치와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 다큐멘터리의 양적인 성장은 필연적으로 이런 부분에서의 성실성을 포기한 작품들을 많이 양산한 면이 있다. 마치 카메라와 피사체간 상호작용을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작법인양, 감독의 연출의도에 따라 계산된 것인 양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하나의 경향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연출의도에 따라 아주 엄밀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촬영 방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아주 예전에 MBC에서 방영되었던 ‘인간시대’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촬영되었다. 커다란 ENG카메라가 주인공이나 사람들 옆에서 따라 다니는데도 카메라 속의 사람들은 카메라를 전혀 인식하지 않는다. 제작진들은 이렇게 카메라 속의 주인공들이 카메라를 인식하지 않도록 초기 며칠 동안 빈 총(녹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 테이프도 넣지 않은 상태에서 찍는 시늉만 함)을 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카메라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가 될 때부터 본격적인 촬영을 들어가곤 했다.

시간에 쫓기는 방송 다큐멘터리 감독들이지만 나름대로 다큐멘터리 정신에 철저한 선배 감독들이었던 셈이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6mm 캠코더로 촬영된 다큐멘터리들은 어찌 보면 동일한 효과를 장비 덕에 좀더 쉽게 얻고 있는 셈이라 보여진다. 장비가 무엇이든 모든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이런 다큐멘터리의 기본 원칙들을 이번 개봉된 다큐멘터리 <마지막 수업>을 계기로 다시 한번 새겨야 할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언제나 거창한 명분을 들고 나오고 거창한 주제들을 선호하지만 실상 그런 명분과 주제들과 주장들을 담아내기 위해서 반드시 거창한 아이템이나 대단한 피사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마지막 수업>이 산골 학교의 평범한 아이들, 평범한 선생님, 평범한 부모님들을 담았지만 그것이 던지는 메시지는 작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작품을 만들 때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작고 평범한 이야기들 속에서 작지도 않고 평범하지도 않은 메시지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쉽지는 않다. 그것이 연출력의 한계라고 생각하고 극복하기 위해 매진하는 중이다. 좌우지간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관객이든 만드는 쪽 사람이든 이번 <마지막 수업>을 통해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다시 생각할 수 있기 바란다.2003-04-23 08:58ⓒ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