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의 한 장면
ⓒ 명필름
세상을 이루는 많은 꽃들 중에는 채 그 망우리를 피워보지도 못하고 쓸쓸히 시들어가는 것들이 있다. 인간들 본연의 표피성과 자각의 시간성으로 인해 아름다움을 느끼기 전에 계절의 변화에 의해 소멸해 버리는 꽃. 찬란하게 빛나거나 흥미롭진 않지만 약간의 블루와 회색이 교차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영화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2002년 최고의 영화 중 한편으로 꼽는 ‘버스정류장’은 극장 개봉 1주일의 벽을 넘기지 못하고 쓸쓸히 비디오 가게로 발길을 옮겼다.

소녀는 조용히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안식을 찾는다. 그리고 루시드 폴이 만든 메인테마 ‘그대 손으로’가 흐른다. 음악이 가지는 감수성만큼이나 영화의 그것은 풍부했지만 OST가 대중들에게 더 익숙하게 남아있다.

정작 영화를 본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음악채널을 통해서 뮤직비디오로 음악을 접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음악이 나오면 흥얼거리면서도 이 곡이 어디에 삽입된 곡이며 심지어는 곡의 인트로에서 느껴지는 유럽적 정서 때문에 외국 밴드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루시드 폴은 생소한 그룹 이름만큼이나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미선이’라는 인디밴드가 있었다. 모두 그러하듯이 군입대 문제는 밴드의 해체를 가져왔고 다시 돌아온 조윤석은 솔로 프로젝트 ‘루시드 폴’을 구성한다.

17살 소녀와 32살 남자의 사랑이야기는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지는 않다. 보습 학원 강사와 원조교제를 하는 여고생의 테마를 놓고 말초적인 대중성을 배제하면서 감독은 마이너리티의 서정성에 대한 실험을 강행한다. 쉼표와 느낌표, 물음표를 조용히 그리고 계속해서 던지면서 그 가운데 영상이라는 여백을 두는 구성, 감성이 과해서 보는 이의 기억의 소중하고도 아픈 편린들을 끄집어내는 것이 흠이 될 수 있다면 흠이다. 이 시각과 내러티브의 감성에 또 다른 감성을 보탠 것들이 바로 영화의 음악들이다.

음악의 화두는 모던락이다. 서정적이고도 몽환적인 테마들은 극중 인물들의 상처를 더듬는 동시에 아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트라우마의 소멸을 자신들의 섬 속에 국한시킴으로써 온전히 극복해 내지 못하지만 음악은 한발 더 내딛는다. 순애보 아닌 순애보는 남겨진 음악으로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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