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오후 5시

일찍 퇴근을 했다. 퇴근이라기 보다 약속이 있어 오후에 회사를 나왔다 일찍 귀가를 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가슴이 뛰었다. 평번한 한 일반인인 내가 위대한 '파브르 곤충기'의 오류를 찾아 낼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희미하게 들기 시작했다.

해는 아직 하늘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 겨울철이면 이 시간 이미 사방의 사물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둠이 드리워졌겠지만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서산에 걸리 모습으로 보아 해가 떨어지려면 사오십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산란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차례였다. 그 흔적 속에는 매미의 알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흥분되기 시작했다. 마침 정원에는 누군가가 재활용 수거를 위해 내다 놓은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책상을 나무 아래에 옮겨 놓고 올라갔더니 아주 근접해서 나뭇가지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놀라운 현장을 볼 수가 있었다. 매미가 산란한 치열한 흔적이었다. 한낱 힘없는 곤충이 어떻게 그런 현장을 만들어 내었는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뭇가지가 말라 죽은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 산란흔-나무 가지의 껍질이 일어나 있고 갈라져 있다
ⓒ 박성호
매미가 거꾸로 매달려 산란했듯이 그 나뭇가지의 아래쪽에는 수많은 생채기들이 있었다. 십여 개 생채기들의 모습은 아주 규칙적이고 동일했다. 매미 녀석이 산란관을 찔러 넣은 자리에는 나무 표면이 갈라져 있었고 한 두 갈래의 껍질이 일어나 있었다. 녀석이 비스듬히 산란관을 밀어 넣을 때 갈라진 자국이며 그때 일어난 껍질이었다.

2자국은 길이 1센티미터 넓이 3밀리미터 정도의 크기였다. 각각의 자국은 1,2센티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었다. 가지의 길이 방면으로 볼 때 녀석은 한 장소에 두 개 이상의 산란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즉 두 개 내지 한 개씩 기다랗게 자국을 내고 있었다. 모두 같은 녀석의 소행이라는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벌어진 나뭇가지 표면 안 쪽에 매미 알이 들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매미 녀석은 산란할 때 나무의 결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었다. 녀석이 산란관을 박아 넣은 흔적은 모두 나무의 결과 평행했다. 즉 나무 속의 섬유질이 가지고 있는 결과 결 사이를 벌려서 그 안에다 알을 놓은 것이다. 만약 매미가 나무결의 수평방향으로 산란관을 박아 넣으려고 했다면 지금의 방식보다 두 세배는 힘이 들었을 것이다. 매미가 산란하는 방식은 자연환경을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일단 나무 가지의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에 산란을 했다는 점과 나무 목질 속에다 알을 놓았다는 점은 적어도 알이 부화할 때까지 새나 다른 곤충들의 위협으로부터 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설령 새가 그 나뭇가지에 앉더라도 가지 아래쪽의 갈라진 틈 속에 부리를 넣어 알을 위협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른 곤충들의 경우 가지 아래쪽으로 거꾸로 매달려 산란 자국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조그만 생채기 속에 있는 알에 쉽게 근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매미의 산란 흔적 무리가 한군데가 아니었다. 같은 가지의 상단부(나무의 원 줄기에서 가까운 방면)에 또 다른 산란 흔적으로 추정되는 한 무리의 갈라진 자국들이 있었다. 이곳은 이미 전지를 한 끝 부분이어서 산란 흔적 아래쪽(가지의 끝부분)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고 있었다. 즉 아래쪽 나뭇잎들이 말라 있거나 가지가 말라 있거나 한 것은 볼 수가 없었다. 이 흔적의 특징은 앞서 발견한 나뭇가지의 흔적들에 비해 갈라진 틈이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다른 종류 혹은 다른 매미의 산란 흔적이 아닐까 싶었다.

산란 흔적이 있는 나뭇가지를 당장에라도 잘라서 그 속을 벌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알량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아니면 촬영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아무리 작은 곤충이지만 그들의 생에 치명적인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늘 하던 생각이었다.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자연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가 결국 인간과 자연이 좀더 화합해서 살아갈 수 있다는 명분 하에 촬영시 피사체인 자연과 동식물에 대한 배려를 소홀히 한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안에 있는 매미 알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 생김새를 보고 싶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 말라버린 나뭇가지-산란흔적이 있는 나뭇가지는 모두 이렇게 말라 있었다
ⓒ 박성호
그보다 더 의구심을 자아내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나뭇가지가 말라 비틀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분명 매미가 산란을 할 때 그 나뭇가지는 말라 있지 않았다. 잎도 푸르렀고 나뭇가지도 생성된 지가 얼마 안된 듯 짙은 회색의 본줄기와 달리 연하고 탁한 녹색을 띄고 있었다. 이러한 나뭇가지가 말라 죽어 버린 것은 분명 매미 산란의 영향이었다. 정확히 매미가 산란한 흔적이 있는 부분에서 가지 끝부분까지만 죽어 있었다. 나중에 정원의 다른 단풍나무에서도 매미의 산란 흔적을 여럿 발견했는데 나뭇가지의 상태는 처음 발견한 나무와 동일했다. 즉 매미 산란의 영향으로 말라버려 있었다.

나뭇가지가 말라 버린 이유는 산란 흔적의 위치와 말라 버린 부위를 통해 쉽게 추정할 수 있었다. 어른의 새끼 손가락 만한 굵기의 나무 가지에 한 마리의 매미가 이렇게 여러 번 산란관을 박아 넣고 그 안에 알을 놓았을 테니 나뭇가지는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물을 가지 끝부분 즉 잎으로 더 이상 공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을 공급 받지 못한 잎이나 가지 부위가 말라 죽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 '파브르 곤충기'번역본 중 산란관련 부분-오쿠모토 다이사부로가 쓴 책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본이다
ⓒ 박성호
얼마 전에 찾아 읽었던 파브르 곤충기의 산란관련 부분을 다시 펼쳐 보았다. 내가 읽고 있던 파브르 곤충기는 일본의 오쿠모토 다이사부로씨가 해설을 달아 놓은 것을 국내에서 번역 출간한 것이었다. 파브르 곤충기 3권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이 책의 첫번째 곤충이 바로 매미였다. ‘매미 노래의 비밀’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매미 장의 5번째 이야기가 바로 산란에 관한 것이었다.

산란에 관한 장의 첫번째 소제목이 ‘마른 나뭇가지에 낳은 알’이라고 되어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에 낳은 알’이라는 제목만 보았을 때는 내가 본 매미의 산란 광경과의 차이를 눈치 챌 수 없었다. 그런데 내용을 조금씩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그 책의 내용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파브르가 산란 부분에서 언급하고 있는 매미는 물푸레나무 매미였다. 파브르가 살았다고 하는 남 프랑스에 많은 종이였다.

책에 의하면 물푸레나무 매미는 뽕나무나 벚나무, 복숭아 나무 등 여러 종류의 마른 나뭇가지에 산란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서 마른 나뭇가지에 알을 낳더라도 땅에 떨어진 마른 나뭇가지에 알을 낳는 법은 없으며 나뭇가지 끝의 마른 부위에 알을 낳는 것이 가장 많다고 했다.

여기서 마른 나뭇가지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무가 마른다는 것은 결국 죽은 가지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 내가 관찰한 결과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내가 본 나뭇가지의 매미는 분명 마른 나뭇가지에 알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대신에 녀석이 알을 놓았기 때문에 나뭇가지가 말라버렸던 것이다. 시간적인 선후로 보아 매미가 마르지 않은 나뭇가지에 알을 놓은 것이 먼저이고 그로 인해 수분공급에 차질이 생겨 나뭇가지가 말라 버린 것이 나중이었다.

물론 내가 목격한 것은 말매미의 산란이었고 선생님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물푸레나무 매미였지만 그 차이가 알을 낳은 기본적인 입지의 차이를 야기할 만한 큰 차이는 아닌 듯 했다. 왜냐하면 파브르 선생님은 매미의 생태를 관찰하면서 여러 종류의 매미를 관찰했을텐데 매미의 생애 중 산란을 설명하면서 물푸레나무매미라는 한 종류 매미의 산란을 가지고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매미의 산란이 일반적으로 물푸레나무매미의 산란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번역상의 문제라는 추측도 해 보았다. 하지만 파브르 곤충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전세계어로 번역돼 출판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오역일 수도 있다는 추측은 타당성이 없는 듯 했다. 나머지 한가지 결론은 파브르 선생님이 실수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대학자이자 철저한 관찰 학자였던 파브르의 곤충기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나름대로 그런 실수가 생긴 연유를 추론해 보았다. 파브르 선생님이 매미가 산란하는 순간을 직접 관찰했으나 그것이 단 한두 번에 불과하고 이후 매미가 알을 낳아 놓은 나뭇가지를 여러 번 관찰했을 가능성이다. 매미 산란의 결과로 알을 낳은 흔적이 있는 나뭇가지들은 죄다 말라 있었을 테니 매미는 마른 나뭇가지에 알을 낳는다는 일반화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아니면 파브르의 곤충기를 곤충의 일반론적인 생태학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의 관찰기로 이해해야 하는데 내가 지나치게 모든 매미론에 통용되는 일반론으로 이해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에 단순한 그러나 아주 철저한 관찰기로만 해석한다면 파브르 선생님은 분명 물푸레나무매미라는 특정한 한 종류 매미의 산란을 기술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그로 인해 내가 관찰한 말매미의 산란과 비교하는 것은 나의 오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파브르 선생님의 관찰은 거의 자신의 집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집 근처에서 채집한 것들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와 작은 실험들을 하기도 했다. 그의 연구는 거의 확대경과 핀셋 정도에 의지해 있었다. 어쩌면 파브르 선생님은 죽는 날까지 매미가 나무에만 산란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관찰의 지리적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았던 것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도 실렸습니다.

2003-03-11 10:3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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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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