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미의 산란 흔적-자세히 보면 나뭇가지가 목질 방향대로 갈라져 있다
ⓒ 박성호
과연 파브르의 곤충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일까?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파브르가 관찰한 곤충들의 생활상은 모두 일반화될 수 있는 것일까? 파브르의 곤충기 이야기는 대개의 곤충관찰기가 그렇듯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곤충의 생활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관찰자 파브르의 추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미 옆에서 대포를 쏘아 보았는데도 매미가 꿈적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매미는 청각이 둔하다고 추론했습니다. 사실은 진동수에 있어서 매미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대포소리는 매미의 가청 음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초음파를 사람들이 들을 수 없지만 박쥐나 많은 동물들은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대포소리는 매미에게 있어서는 사람에게 있어 초음파와 같은 것이었던 셈입니다.

▲ 곤충학자 파브르
ⓒ 박성호
파브르의 추론은 파브르의 상식 수준 혹은 논리 수준 그리고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 수준에 부합하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파브르 선생님은 적어도 곤충의 생활사 연구에 있어서는 아직도 감히 범접할만한 후학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하지만 관찰이란 모든 경우 모든 사례에 대한 고찰이 아니라 눈으로 목격하는 몇몇 경우로 한정되는 것이며 추론이란 본인의 논리적 사고력에 의지한 것이며 한 과학자의 지적능력은 그 시대의 과학수준에 근간을 두고 있으므로 파브르 선생님의 곤충이야기는 모든 경우에 적용 가능한 일반화된 이론 수준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개별 곤충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은 이후 모든 학자들에게 하나의 지침이 될 정도로 치밀하고 성실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매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파브르의 곤충기 도움을 받아가면서 만들다 보니 파브르 선생님의 관찰도 백퍼센트 맞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미를 관찰하면서 파브르 선생님의 매미 생활에 대한 관찰결과와 다른 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매미의 산란에 대한 파브르 선생님의 기술에는 분명 오류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10월 25일 아침 6시
출근하기 전에 매미의 산란 흔적을 확인하고 싶어 아침 일찍 서둘렀다. 주섬주섬 체육복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서는데 눈이 많이 아팠다. 신발장 위의 거울을 들여 다 보니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간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흔적이었다.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낮에 본 산란 장면이 머리 속에서 계속 재생(PLAY)되고 있었다. 아무리 확장되는 생각을 접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다. 결국 그래서 새벽4시까지 잠을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아침 정원은 찬란했다. 일단 한낮의 푹푹 찌는 더위의 흔적은 없었다. 마치 나무들이 신선하고도 차가운 공기를 내뿜고 있는 듯 했다. 나무들의 초록 빛은 대낮의 그것보다도 더욱 선명한 듯 했다. 인적 또한 없었다.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시간이어서 오로지 정원 속에 혼자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매미의 산란장면을 촬영한 정원에는 총 3그루의 단풍나무가 있었다. 총 40여 그루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벚나무였고 키 작은 사철나무 몇 그루 그리고 개나리 등의 나무들이 있었다. 게 중에 단풍나무 세 그루였다. 정원 왼쪽에 한그루 그리고 정원 중간쯤에 거의 나란히 심어져 있는 두 그루. 그래서 매미가 산란한 나무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 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아주 떨어져 있는 한그루는 아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위치와 확연히 달랐으므로 후보에서 제외시켰지만 나무지 두 그루는 거의 같은 위치에 있었으므로 어느 나무인지 헷갈렸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회사에서 준비해 온 것이 있었다.

▲ 산란 흔적을 찾아-촬영본에서 매미가 산란한 나무의 위치를 찾기 위해 해당 화면을 인쇄해서 실제 정원에서 해당 나무를 찾으려고 하였다
ⓒ 박성호
일종의 지도 내지 현장 확인 사진이었다. 촬영본에서 매미가 산란했던 나무를 가장 크게 즉 넓게 잡은 화면을 캡쳐해서 칼라로 출력을 해왔다. 그 사진과 정원의 실제 모습을 비교하면 매미가 산란했던 나무가 어느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준비한 것이었다.

해당 사진을 들고 두 그루 주위를 이러 저리 옮겨 다니면서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습과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정확히 매미가 산란한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워낙 당시가 촬영 시작 시점이어서 아무 생각 없이, 제대로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서 촬영을 해서 더욱 찾기가 힘든 것이었다. 또한 여름 철의 그 진한 초록빛이 많이 사라지고 잎들이 여기 저기 울긋불긋해지기 시작해서 사진의 색깔과 차이가 있다는 점도 쉽게 위치를 찾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위치파악은 뜻하지 못했던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두 그루의 단풍나무를 중심으로 빙빙 돌고 있는데 둘 중의 한 그루에서 말라 비틀어진 가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때는 가을의 중반이어서 단풍나무의 잎들은 대개 불그스름한 색을 띄고 있었는데 유독 이 가지에 달린 잎들은 바싹 마른 갈색을 하고 있었다. 가지 또한 물기 없이 말라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가지가 달려 있는 위치를 사진과 비교해 보았다. 매미 녀석이 산란했던 가지의 위치와 딱 일치했다. 그날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에 서 있었는지 어떤 각도에서 촬영했는지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또 한가지의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왜 매미가 산란한 나뭇가지만 말라 있는 것일까? 매미의 산란이 나무에 도대체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까? 추측되는 이유는 있었지만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모든 추론을 접어 두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2003-02-24 09:15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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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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