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촬영을 막 하기 시작하던 무렵, 정확히 말해서 매미를 카메라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첫날 나는 이상한 그러나 뭔지는 모르는 매미의 한 행동을 카메라에 담았던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본 ‘반포매미에 관한 한여름 보고서’첫번 째 연재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녀석들의 그 이상한 행동에 대한 나의 결론은 ‘의문스러운 행동’이었다. 즉 당시에는 매미의 생태에 대한 나의 지식이 일천한 단계여서 그들의 특정한 행동이 뭐 하는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때의 내 기록을 잠시 되짚어 보면 다음과 같다.

7월28일(토) 오후
▲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산란 중인 말매밍ㅇ
ⓒ 박성호
시간은 계속 지나갔지만 결과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나무에서 이상한 매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운 좋게도 그리 높지 않은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어 정원에 버려져 있던 못쓰는 의자에 올라 쉽게 녀석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매미의 신기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매미는 쉬지 않고 꼬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 매미의 일반적인 행동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너무나 재미있어 조금 더 다가가 보았다.
그러나 매미는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 그 행동이 뭐 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줄만한 새로운 동작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의 이상한 움직임은 숙제로 남게 되었다. 태어나서 성충 매미를 가장 가까이서 보게 된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날의 이 이상한 발견을 설명하고 있는 나의 글은 고작 이 정도다. 대략 7,8줄 정도 되는데 그때 이렇게 짧게 기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알고 보면 매미의 이 행동에 대한 나의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녀석들의 행동을 좀더 자세히 떠 올려 볼 수 있게 된 것은 몇 개월이 지나서 였다.

10월 중순 SBS VJ영상전 담당PD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년도의 같은 영상제를 담당했던 PD였다. 전년도에 나는 우리나라의 헌혈캠페인의 문제점에 대한 르포물로 SBS VJ영상전에서 우수상을 받았었다.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던 담당PD가 이번에는 작품을 제출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당시에 매미의 촬영은 마무리가 되지 않고 다음해로 촬영을 연장해 놓은 상황이어서 매미를 편집해서 제출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회사에서 주간 단위로 방송되는 정규물을 맡고 있어서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매주 3,4일씩 야근을 해야 겨우 방송시간에 맞출 수가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갑자기 매미를 편집할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매미의 촬영이 장기화되고 있어 이미 쌓인 촬영본을 일차적으로 한번 걸러야 이후 작업하는데 좀더 편하지 않을까? 즉 그때까지 촬영된 내용으로 1차 완성본을 만들어 놓고 이후 촬영이 계속되면 새로 촬영된 것들을 포함해서 2차 완성본을 내 놓는 게 좀더 효율적인 제작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없는 시간이지만 짬을 내서 편집을 해 영상전에 출품하기로 결정을 했다.

10월 24일 저녁
편집을 막 시작하던 날이었다. 넘버가 1이라고 표시된 촬영 테이프를 편집기 플레이어 속에 넣고 플레이를 시켰다. 매미 촬영을 시작하던 초기의 테이프였다. 촬영 노트로 보아 그 테이프 속에는 매미 촬영 첫날 그리고 둘째 날이 담겨 있었다. 촬영 초기라 길거리 그리고 정원 여기 저기에 널려 있는 매미 껍질들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그 와중에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매미 그림이 있었다. 화면 속의 매미는 말매미였다. 녀석은 단풍나무의 가느다란 한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팔과 발로 철봉을 부여잡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 어린애 같은 모습이었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아이들은 손발 모두 합쳐 4개로 매달리지만 매미는 총6개의 발로 철봉 아니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있었다.

수액을 빨고 있는 것인가 해서 유심히 화면을 들여 다 보았다. 머리 부위에 대롱처럼 생긴 주둥이가 나와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수액을 빨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녀석은 꽁지를 꼼지락 꼼지락하고 있었다. 화면은 매미와 단풍나무의 줄기를 크기를 계속 바꿔가며 잡고 있었다. 나의 새끼 손가락 굵기만한 단풍나무 줄기였지만 카메라를 줌인해서 들어가면 팔뚝만해 졌다. 그만큼 매미의 크기도 확대돼서 보였다. 줌인 기능 때문에 화면은 많이 흔들려 보였지만 매미의 꽁지에서 하얀 실 같은 것 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하얀 실이 아니었다.

꽁지를 한참 꼼지락 대던 녀석의 아랫배 부위에서 가느다란 바늘 같은 것이 나왔다. 배에서 나온 바늘 같은 기관은 이내 껍질을 벗었다. 정확히 말하면 속에 바늘에 있고 그 바늘 바깥에 바늘을 감싸고 있는 집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옥수수 껍질과 그 속의 옥수수 같은 관계인 듯 했다. 녀석은 곧바로 이 바늘같이 생긴 부위를 나무 가지 속으로 박아 넣기 시작했다. 수액을 빨기 위해 몸 전체를 사용해 주둥이를 나무 속에 박아 넣던 모습과 비슷했다. 다리들은 가지를 힘차게 부여잡고 있었고 여러 번 용을 써서 조금씩 조금씩 박아 넣고 있었다.

▲ 배에서 나온 산란관은 산란관집이 벗겨지고 나서 나무 가지에 박힌다
ⓒ 박성호
매미의 아랫배에서 나온 이것은 바로 매미의 산란관이었다. 말 그대로 알을 놓는 관이다. 배 속의 알이 몸 밖으로 나올 때 이관을 타고 나오게 된다고 한다. 당연히 암컷에게만 있는 기관이다. 물론 알을 놓지 않는 인간이나 동물들에게는 없는 기관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매미의 산란관은 거의 수액을 빨 때 사용하는 주둥이와 흡사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암컷 매미는 비슷하게 생긴 기관을 하나는 주둥이로 하나는 산란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주둥이 용도로 쓰이는 대롱은 밖에 있는 것으로 몸 안으로 빨아 들일 때 사용하고 산란관으로 쓰는 대롱은 몸 안에 있는 것을 몸 바깥으로 내 보낼 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곤충의 산란관

곤충 중에 일부 곤충들은 산란관을 보유하고 있다. 과연 그들은 왜 산란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주로 메뚜기나 귀뚜라미와 같은 메뚜기류의 산란관이 매미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들의 산란관은 대롱 형태로 대개는 이 대롱은 단순히 알이 나오는 관이라서 산란관이 아니라 알이 부화할 때 까지 있어야 할 장소를 만드는데도 쓰이는 도구이다. 예를 들면 귀뚜라미는 이 대롱(관)을 땅에다 박아 넣고 땅 속에다 알을 놓는다. 그리고 뀌뚜라미는 매미처럼 목재 속에다 산란관을 박고 그곳에다 알을 놓는다.

왜 산란관을 가지고 있는지 이유가 설명이 된다. 그런 곳에다 알을 놓기 위해서는 대롱형태의 구조가 아주 적합한 것이다. 일단 구멍을 뚫거나 나무나 흙 속에다 박아 넣을 수 있는 구조가 바로 관의 형태인 것이다. 아주 신기한 산란관을 가진 곤충도 있다. 바로 말총벌이다. 말총벌이란 이름에서 보듯이 말총처럼 긴 털모양의 산란관을 가지고 있다. 말총벌의 꼬리에 보면 세 갈래의 기다란 털이 나와있다. 몸길이의 6내지 7배에 이르는 길이다. 이 중에서 가운데 것을 제외하고 양쪽으로 나 있는 털은 가짜다. 진짜 산란관을 보호하기 위한 산란관 집이라고 한다.

이 녀석의 산란관이 이다지도 긴 것은 결국 이 정도 깊은 곳에 알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실제로 말총벌은 나무 몸통 깊숙이 들어 앉아 있는 하늘소의 애벌레에다 알을 놓는다. 즉 나무 표피 깊숙이 숨어있는 하늘소 애벌레까지 산란관을 가까스로 집어 넣은 다음 산란관을 애벌레 몸에 꽂아 알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때 긴 산란관은 애벌레가 들어간 구멍을 따라 구부리고 접고 해서 목적지까지 도달하게 되는데 그래서 말총벌의 산관을 잘 휘어질 수 있게 되어 있다. 놀라운 사실이다.

또한 꿀벌이나 말벌의 산란관은 독샘에 연결되어 독침구실을 하기도 한다. 딱딱한 재질을 뚫고 그 속에 알을 낳는 곤충들의 산란관 끝에는 톱니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곤충들의 산란관은 결국 그들의 필요에 맞는 형태, 그들의 산란 습성에 맞는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 박성호

덧붙이는 글 | 이 이야기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2003-02-14 09:35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이야기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www.degadocu.com'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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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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