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날개를 가진 커다란 한 마리의 새'
대한민국의 함성과 열기가 그대로 살아있는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처음 본 느낌이다. 감동과 환희의 월드컵 기간을 불행(?)하게도 '대∼한민국'이 아닌 외국 땅에서 보냈던 나. 이번 '남북 통일 축구대회'는 이런 나에게 월드컵의 기분을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거기에다 남과 북의 선수들이 함께 한 운동장에서 뛰는 역사적인 화합과 단결의 장이라니.

이번 남북 통일 축구대회는 1990년 이후 12년만에 재개,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식민치하에서 하나 된 '독립의 꿈'을 안고 민족의 유대를 다졌던 유서 깊은 경평 축구대회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도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또한 지난 5일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채화된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성화를 비롯한 최근 당국간 회담을 통한 남북 관계의 진전의 모습도 이번 남북 통일 축구대회에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남북통일 축구가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태극기와 인공기를 대신해 한반도기가 게양되며 ‘아리랑’이 응원가로 울려 퍼져 대결보다는 화해를 염원하게 된다. 또 월드컵 기간에 한반도에 울려퍼진 ‘대∼한민국’의 함성은 이날 ‘통∼일조국’으로 살아나 남북의 하나됨을 노래한다."

지난 9월 3일자에 실린 모 신문의 발췌내용이다. 남북통일 축구대회의 부활이 구체적으로 현실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신문, 방송 등을 통해, 혹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이 기사의 내용은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왔다.

나에게도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통일조국'을 동시에 바라고 외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 월드컵 기간 내내 '대한민국'을 목청껏 외쳤을 때와는 또 다른 전율을 주는 듯 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모든 내 기대는 어긋나버렸다.

경기장은 어느 새 '대∼한민국', '대한민국은 승리한다' 등의 응원이 능숙한 응원솜씨를 가진 붉은 악마들을 중심으로 퍼져가며 간혹 들려오는 '통일조국'의 외침을 그야말로 '민망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태극기와 인공기 대신 한반도기가 게양 된 경기장에서 12년만에 벌어지고 있는 화합의 축구, 그 곳에서 들리는 '통일조국'과 '대한민국'이라는 응원의 엇갈림은 정말이지 당혹스러웠다. 조국을 잠시 떠나 있으면서 이민자들과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교포 2세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그렇게 외쳤던 '대한민국'이었는데, 이렇게 듣기 괴로울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축구는 축구일 뿐, 우리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서포트 하는 클럽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외쳐야한다', '개최취지, 아울러 축구팬 이전에, 붉은 악마 회원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번 경기에 신중했어야 한다'

붉은 악마 공식 홈페이지(http://www.reddevil.or.kr) 자유게시판은 이 두 의견이 엇갈려 지금 한창 논쟁 중이다. 통일을 원하네, 아니네, 축구가 그저 좋으네, 너무 정치적이네 등 또 하나의 새로운 '남남갈등'의 현장이 되는 것 같아서 그저 씁쓸한 따름이다.

"어느 한 팀이 이기고, 지면 어쩔까 경기 내내 마음을 졸였다"며 비긴 것이 좋은 경기는 난생 처음이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던 송인백(37)씨. "남과 북이 함께 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는 방글라데시아 출신의 아난다(27)씨와 함께 난 축구가 끝나고 난,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한참동안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무심한 한반도기만이 쉬지 않고 펄럭이고 있었다.
2002-09-10 10:2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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