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암 경기장을 찾은 조운제옹(오른쪽)과 양철영옹
ⓒ SP21 이혜준
"형님, 저 아이들 좀 보시우. 저렇게 늠름하고 잘 뛸 수가 없네요. 북에 있을 우리 손자들도 저 아이들 또래 아니겠어요. 참 보기 좋네요."
"왜 아니겠는가. 모두들 우리 손자만 같아 반갑기 그지없네. 죽기 전에 어서 통일이 되어야 할텐데…."

지난 7일, 2002 남북통일축구 경기가 열렸던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통일을 기원하는 축구시합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경기장 남쪽 관중석에서는 두 노인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측, 혹은 북측 팀이 아까운 찬스를 놓칠 때마다 무릎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몸짓을 해보이던 그들은, 경기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삼팔선 너머의 고향과 남겨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드러냈다.

양철영(84)옹과 조운제(80)옹. 두 분 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6·25 당시 피난길에서 만난 이후 여태까지 친형제처럼 지내왔다는 그들은, 한 평생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떠나온 고향과 가족들을 보고 싶어하며 살아온 실향민이자 이산가족들이다.

"안 그렇겠소, 젊은이. 이렇게 한평생 못 만날 줄 알았다면 절대 혼자 피난길에 나서지는 않았겠지. 길어야 석 달이면 고향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석 달이 3년이 되고, 30년이 되고, 오늘날까지 이르렀지."

조옹의 주름질 얼굴이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인지 눈에 띄게 어두워진다. 이산가족 상봉이 있을 때마다 참가 신청을 냈지만 번번이 선정되지 못했다는 조옹. 옆에 앉아 있던 양옹이 위로하듯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준다.

잘 짜인 조직력과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북측 팀이 경기 분위기를 주도하던 전반전 상황. 많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 경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두 노인은 경기를 관전하면서도 이렇게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을 품고 떠나가고 있어."

"동생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사실 북측의 가족들을 만났거든. 2차 이산가족 상봉 때였지. 평양에서 거의 50년만에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났는데 아무 말도 못하겠더라구. 그냥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만 했지. 피난 나올 때 6살이던 큰아들은 그새 55세의 중늙은이가 되었더군.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어."

▲ 50여 년만에 북측의 가족들을 만났던 양철영옹. 하지만 그는 그때부터가 진정한 그리움의 시작이었다고 이야기했다
ⓒ SP21 이혜준
양옹과 조옹을 처음 만났던 것은 남북통일 축구가 펼쳐지기 7시간 전쯤이었다. 영등포구청 부근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부터 두 노인은 북측 축구선수들을 보게 된다는 설레임을 드러내면서도, 더불어 따라오는 북쪽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애석해했다.

한평생 소식을 모르다가 82세 때인 2000년 가을이 되어서야 북쪽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한 양옹. 하지만 그리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고 했다. 소식을 모를 때는 그저 한 번 보기만 해도 소원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생사를 확인하고 나니 계속해서 안부를 묻고 싶은 심정은 그만큼 강렬해졌다는 것.

갈수록 쇠약해지는 기력은 더 더욱 고향땅과 남겨놓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커지게 만들었다. 안 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가뭄이 심하다던데 식량 사정은 괜찮은 것인지, 생활의 순간순간에 근심은 불쑥불쑥 머리 속을 파고들었다.

"추석 전에 5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다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해서는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할 수 없어. 나만 해도 이제 80살인데 얼마나 살게 될지 그 누가 알겠어.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을 품고 떠나가고 있는데. 어서 빨리 더 많이 만나고 한을 풀어야지."

이번에는 조옹의 한숨이 길게 이어졌다. 혈혈단신 남으로 내려와 양옹과 함께 사업을 일구고 새로 가정도 꾸몄다는 조옹.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남측의 아내를 여의고 보니, 죽기 전에 북쪽의 가족들을 보고 싶다는 바람은 더 더욱 커졌다.

2차 이산가족 상봉 때, 양옹이 북쪽의 가족을 만나고 돌아와 그쪽의 소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줬을 때, 그의 북쪽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들을 만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번 5차 이산가족 상봉에도 신청서를 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명단 안에 들지 못하고 말았다.

조옹은 통일이 되지 못하는 한 이 땅의 비극은 끝나지 않은 것이라며,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분단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민족은, 민족 차원에서 각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분단의 원인을 다른 쪽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한데 뭉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 자체를 민족 전체가 반성해야 한다는 것. 조옹의 목소리가 격양되는 듯하자 옆의 양옹이 한마디했다.

▲ 두 노인은 한평생 고향과 북측의 가족들을 그리워했는데도 통일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애석해했다
ⓒ SP21 이혜준
"여보게, 그래도 오늘 저녁에 우리 고향 땅의 아이들을 만나지 않는가. 이렇게 스포츠 행사로라도 자주 만나다 보면 또 아는가.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자유롭게 서로 만나게 될 날이 금방 올지를."

당신의 눈가에 맺힌 것은 절망입니까, 희망입니까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전반에는 북측 팀의 강력한 압박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남측 팀의 분위기도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공격 선봉을 맡은 이동국과 김은중의 몸놀림이 빨라졌고 월드컵 스타 이영표의 측면 돌파도 눈에 띄게 잦아졌다. 하지만 쉽게 득점을 올리기에 북한의 수비진도 만만치 않았다.

"원래 예전에는 우리나라 북쪽 지방의 축구가 강했어. 왜 경평축구라고 있지. 서울과 평양이 정기적으로 축구를 하던 거 말야. 그것 못지 않게 유명했던 게 함평축구야. 함흥과 평양이 정기적으로 축구를 했었지. 그럴 때면 오늘처럼 구름관중이 몰려들곤 했었어."

남측 팀이 아깝게 득점 찬스를 놓치자 양옹이 무릎을 탁 치고 나서 그렇게 말했다. 그는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평양으로도 이주해 15년 가까이 살았는데, 그때 당시 평양 지역의 축구열기는 대단했다고 했다. 그 또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축구장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떠들썩하던 사람들의 고함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선명하다고 했다.

"그때 경기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닐 거야. 세월이 얼마나 흘렀어. 내 머리칼도 이렇게 백발이 됐는데. 지나간 세월, 그 빠르게 흘러버린 시간이 야속하기만 해."

양 옹의 목소리가 격해진 감정 때문에 떨리는 듯하자, 이번에는 조 옹이 양 옹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준다. 피난길에 만나 서울에서 한 평생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분들답게,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이 친형제 이상으로 보였다.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끝이 났다. 경기를 마친 남측과 북측 선수들이 다같이 대형 한반도기를 붙들고 경기장을 돌자, 그 감격스러운 광경을 접한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던 조옹이 한마디했다.

"얼마나 감격스런 모습이야. 저렇게 함께 한반도기를 붙들고 있다고 당장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잦아지다 보면 언젠가 통일의 날도 오는 게 아니겠어. 그러다 보면 죽기 전에 북측의 가족들을 만날 날도 오겠지."

▲ 그들은 살아생전에 그리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까. 경기를 지켜보는 조 옹의 눈가는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 SP21 이혜준
경기장을 나오는 길에 두 노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금은 허탈한 듯, 조금은 아쉬운 듯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들이 조금은 무거워보였지만, 그래도 고향땅에서 온 어린 축구선수들을 봤다는 생각에 일말의 기쁜 흔적은 엿보이는 듯싶었다.

지하철역에 다다르자 두 노인은 작별을 고했다. 덕분에 좋은 경기 잘 봤다고,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이 땅의 통일을 위해 힘껏 일해달라고 내미는 손들은 거칠고 메말라 있었다. 왠지 마음이 찡해져 기자는 두 분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양옹의 눈가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참았던 설움인 듯 약간의 흐느낌이 새어나오려 했을 때, 조옹이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양옹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기자의 손을 놓치게 되자, 양옹은 체념한 듯 등을 보였다.

월드컵 경기장 부근의 지하철역에는 경기관전을 마치고 귀가를 서두르는 발길들로 붐비고 있었다. 두 노인의 야윈 뒷모습은 조금씩 그 인파 속으로 빠져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람들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양옹이 마지막에 보인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50년을 기다려왔어도 고향땅에 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절망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노인은 통일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는 않고 있었다. 언젠가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통일된 조국이 될 날을, 처음 분단된 현실 앞에 직면했을 때처럼 지금도 여전히 바라고 염원하는 듯했다. 양옹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하고 싶어했던 게 아니었을까. 통일★은 계속되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21(www.sportspeople21.com)에 실려있습니다.

2002-09-09 18:3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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