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 '정보의 바다'라고 하는 인터넷에서 헤엄치다가 우연히 남북통일축구 입장권을 예매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그 다음날 오전에 바로 서울은행 남대문지점에 가서 입장권을 구입했다.

1등석에서 3등석까지 3가지 종류가 있지만, 우리 집 가정경제와 형편을 생각해서 2만원짜리 3등석 4장을 샀다. 그리고는 그날 저녁 퇴근해서 집으로 와서는 애들한테 말했다.

"얘들아, 오늘은 아빠가 큰 선물을 하나 사왔단다."
애들이 말했다.
"선물이요? 그게 뭔데요?"
"궁금하지?"
"도대체 뭐예요?"
"자! 남북 통일축구 입장권이다!"
"와, 신난다! 우리 아빠 최고다!"라고 하면서 애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날 저녁부터 우리집 큰 애는 그날이 오기를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거의 매일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다가 드디어 어제 그날이 왔다.

나는 회사에서 퇴근하기가 무섭게(그것도 20분 조퇴하면서) 집으로 와서 아이들과 아내를 차에 태우고 상암동으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집을 나서자마자 도로에는 왠 차들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서울시내 차들이 다 상암동 구장으로 가는 듯이 거리를 꽉 메웠다. 나는 아내에게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핀잔까지 들어가면서 요리조리 곡예운전(?)을 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6시 35분이었다. 경기장 안에는 6만여명의 관중이 입장해 있었고 이미 식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입장권을 가지고 들어가기 위해서 남문을 향해 뛰어갔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가는데, 남문입구에 가니까 행사요원들이 입장권을 보고는, "이 번호는 북문으로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남문으로 들어가도 안에 가서 위치를 찾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고, 행사요원은 안에서는 통로가 연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알고보니 우리 표의 번호는 N - K열 58-25번부터 28번까지였는데, 맨 앞의 N은 북문을 뜻하므로 북문을 통해서 입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경기장 반 바퀴를 돌아서 헐레벌떡 북문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 번호 이쪽으로 해서 들어가는 거 맞아요?"
"네, 맞아요."
우리는 얼른 관중석으로 들어가서 지정된 자리를 찾아가서 앉았다.

이미 관중석은 미리 온 사람들로 꽉 찼고, 식전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남북 선수들의 가슴에는 태극기와 인공기 대신 '남북단일기(한반도기)'가 새겨져 있었고, 관중석에는 단일기와 태극기가 물결을 이루어 출렁거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통일조국'이라는 응원구호와 '아리랑'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은 지난 6월의 월드컵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아니면 통일축구를 위하여 통일된 응원연습을 못해서인지 잘 모르긴 했지만, 이따금씩 '대한민국'이라는 구호와 '필승 코리아'라는 노래 소리도 들려왔다.

남북 선수단의 기념촬영을 끝으로 식전 행사가 모두 끝나고 7시 5분에 북측의 시축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남북은 형제답게 축구 스타일이 비슷했지만, 친선경기일지라도 '승부는 승부다'라는 생각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시작부터 남북은 실력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남측은 이영표 선수의 현란한 발재간이 돋보였고 이천수 선수의 왼쪽 돌파, 김은중 선수의 슈팅력 등이 두드러졌고, 골키퍼 이운재 선수의 선방도 여러 차례 있었다.

북측은 노련한 쓰리백과 박성관, 전영철 선수로 이어지는 공격력 또한 두드러졌고 장정혁 골키퍼의 선방도 돋보였다. 특히 전반전 초반에는 북한이 우위에 있었고 위협적인 공격도 몇 차례 있었다.

아무래도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한 '통일축구'라서 그런지, 다른 나라와의 경기와는 분위기부터 확연히 달랐다. 경기장 곳곳에는 '하나되자! 하나되어 세계를 뒤흔들자!', '이산의 아픔을 화합의 축구로!', '남이 이겨도, 북이 이겨도 우리는 하나', '잘 왔다, 친구여! 우리는 하나 아이가!'라는 구호가 적인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고 관중들은 곳곳에서 '통일조국' '오 필승코리아' 등의 구호와 노래를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또한 이따금씩 율동으로 보여준 '파도' 응원도 일품이었다. 경기장 안은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경기를 하다가 선수가 교체되면, 그 선수가 남측선수이든 북측 선수이든 관중들은 모두 박수를 치면서 '잘 뛰었다'라고 하면서 격려해주었다.

남북의 선수들은 모두가 있는 힘을 다해서 뛰면서 각자의 최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해주었고, 경기도중 선수가 넘어지면 서로 일으켜주며 위로해주었다.

관중석에서는 "한팀으로 합치면 정말 좋겠다", "하나가 되면 좋겠다"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정말 그랬다.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한국축구가 화려한 개인기와 세련미가 돋보였다면 2년간 한 팀으로 발을 맞춰온 북한축구는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스피드와 투지가 뛰어났다. "이런 두 팀이 하나로 합치면 얼마나 막강해질까? 멀지 않아 정말로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이 터지도록 '통일' 응원을 하는 동안 어느덧 경기는 전후반 모두 끝났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남북의 선수들은 서로 서로 포옹을 하면서 다시 한번 남북이 한 핏줄임을 확인해주었다. 12년만에 열린 통일축구경기는 경기 결과도 0대 0, 남북이 사이좋게 모두 이기는 경기를 했다.

경기자체보다는 남북이 함께 만나는데 그리고 화해와 통일을 향해 일보 전진하는 데 더욱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경기가 종료된 후에 식후 행사가 벌어졌다. 커다란 남북 단일기가 등장했고 남북의 선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단일기 둘레를 에워쌌다. 이어서 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끊임없이 부르면서 경기장 주위를 한바퀴 돌면서 관중들과 함께 하나가 되는 모습은 어제 행사의 절정이었다. 한마디로 감동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었다. 내 생각 같으면 관중들도 선수들도 모두가 어깨걸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목청껏 불러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아무튼 '통일축구'가 해마다 남북을 오가며 열리고 축구 뿐만 아니라 탁구, 마라톤 등 다른 종목의 경기를 통해서 남북이 하나되는 행사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 특히 단축 마라톤과 같이 선수와 관중 모두 많은 사람이 함께 호흡하면서 뛸 수 있는 경기를 개최했으면 좋겠다. 또한 운동경기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행사를 남북을 오가며 개최하면서 통일의 기운을 높여갔으면 좋겠다.

아무튼 아주 행복한 하루였다. 특히, 경기장을 나오면서 남문 광장에서 거리응원을 마친 대학생들과 통일연대 회원들과 함께 의미있는 만남이 있었다. 응원을 마치고 나오는 흰옷 입은 '재일 조선학생소년예술단'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통일 조국'을 연호하기도 하고 누군가의 제안에 따라 '반갑습니다'라는 북한노래가 울려퍼졌다. 그 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흰옷의 한복을 입은 한 소녀와 악수를 하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짧은 외마디 인사말이었지만 나에겐 한없는 기쁨이었다.
2002-09-09 08:40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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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철도청 및 국가철도공단, UNESCAP 등에서 약 34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시간 나는대로 제 주변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온 고창남이라 힙니다. 2022년 12월 정년퇴직후 시간이 남게 되니까 좀더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좀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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