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한국과 터키전이 개최된 대구는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속속 모여드는 거리응원 인파와 각 지역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경기 시작전 6∼7시간 전부터 거리는 온통 붉은 물결로 가득 했고 시민들도 응원 준비에 나서느라 길거리를 가득 채웠다. 동대구역 주변은 붉은 옷을 입은 외지의 사람들과 월드컵 경기장행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도 온통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길거리는 '붉은 티셔츠'를 비롯해 '히딩크 김밥', '태극기' 등의 판매를 하는 상인들로 장사진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계속되는 국채보상공원에는 응원 나온 시민들이 좋은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두르고 있었다.

"축구를 너무 너무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백혈병에 걸린 꼬마 장진우(7세) 아동은 답답한 병실을 잠시 빠져나와 광장에 마련된 대형스크린을 보면서 고사리 같은 두손으로 '파이팅'을 외치면서 모처럼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여유를 가졌다. 지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데..."라고 이야기하면서 못내 말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기관지 위장질환자인 양명기(67세)씨는 "축구가 보고 싶어서 목포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다"면서 "다소 피곤하고 힘이 들지만 한국 축구에 거는 기대가 크다"며 승리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 시작 3시간전 대구월드컵경기장은 3-4위전을 보려고 몰려든 지방 사람들과 외국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서울에서 왔다는 임원경양은 스티커를 준비해 가족의 얼굴 모양을 가꾸어 주기도 했다.

일본 월드컵 관광객들과 영국, 태국, 미국, 카자흐스탄 등지의 외국인도 많이 눈에 띠었고, 단체관광에 나선 동남아 관광객도 자주 목격되었다. 한 영국인은 태극기를 준비해 "코리아 파이팅"을 연호하면서 대한민국의 선전을 기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는 외국인들은 기자의 "오늘 경기가 어떻게 풀릴 것 같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한국이 2:0으로 이길 것 같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축구가 좋아서 대구를 찾았다는 김창규씨의 아들 홍철(12세·5학년) 학생은 "한국이 1: 0으로 이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는 반면 김씨는 "3: 2로서 우리가 승리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리와 터키가 혈맹관계이니 승부에 관계없이 잘 싸워주길 바랄 뿐이다"는 바램도 전했다.

5시경부터 내린 비는 대지를 적힐 정도로 20여분간 내렸으나 곧바로 구름만 잔뜩 하늘을 수놓은 채 변덕스러운 날씨가 거듭되었다. 4시경부터 깃발 발대식을 가진 각급 학교의 학생들은 4Km 가량을 비가 오는 와중에서도 대형 태극기를 비롯한 각 나라 국기와 월드컵기 등을 흔들면서 길거리 퍼레이드를 펼쳤다.

길거리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도중에 강원도 영월에서 왔다는 김삿갓(본명 '김만희'/ 만화가)은 우리 고유의 선비 복장을 한 채 길거리 퍼레이드를 펼치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쳐주면서 때론 호탕을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길거리를 거닐면서 세월의 흐름을 즐겼다.
그는 "역사적인 일인만큼 이렇게 전국을 돌면서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경기장 주변에는 남은 입장권을 파는 외국인과 시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입장권을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입장권 전문브로커(암표상)로 보이는 사람 10여명이 입장권 판매처 부근을 돌면서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한 시민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자 한 입장권 판매원은 화를 내면서 "아이들까지 공짜로 들여보내려고 하였더니 다시 환불해 달라니 무슨 엉뚱한 소리이냐"면서 환불이 어렵다면서 어거지를 부렸다.

기자가 다시금 국채보상공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터키 선수들이 선취골을 얻은 상태였기 때문에 거리에 응원 나온 사람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대형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거리에 응원 나온 시민들은 동점골이 터지자 그제야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서로 부둥켜 앉고 즐거워하였으나 이내 터키 팀이 한 골을 더 넣자 기쁨도 잠시라고 기운이 빠진 상태에서 '대~한민국'을 연호하였다.

우리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결국 터키의 승리로 끝을 맺자 시민들은 "잘 싸웠다. 괜찮다"면서도 금세 박수를 치다가도 울음보를 터뜨리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가 종료되자 오색 찬란한 불꽃들이 하늘을 수놓았고, 축포 소리에 시민들은 다시금 새로운 기운을 얻은 듯 '아리랑'과 '대~한민국'을 부르면서 4강 신화를 이룬 태극전사들을 축하했다. 시민들은 그 와중에서도 거리에 뿌려진 종이조각과 응원도구들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일부 시민들은 늦은 시간까지 거리에 남은 시민들과 함께 폭죽을 터뜨렸고, 징과 북소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뒤풀이를 했다.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차량을 몰고나온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일부 시민들은 2톤 트럭에 올라가 응원을 하였다는 이유로 경찰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통제'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4강 진입 때처럼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고 많은 수의 시민들이 '경적'을 울리면서 '한국축구'의 발전을 기원해 주었다.

거리에 나선 중년 아주머니와 아저씨들도 자신들이 들고 온 농악악기들로서 흥에 겨워 춤을 추면서 자축을 하는 열정을 보이기까지 했다.

목이 터져라 불러보았던 '대~한민국', '오~ 필승코리'의 함성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과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는 것에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는 명제처럼 우리는 경기장에서 보여준 태극전사들의 열정과 응원의 열기처럼 우리도 우리가 처한 일터에서 새로운 4강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주역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2002-06-30 01:31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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