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한국과 터키가 3-4위전에서 만나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몇 십 년이 흐른 올해 2002년도에 유독 터키란 이름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의아해했다. 지난 터키 대지진때 지독히 적은 원조를 한 한국에 대해 왜 터키가 그렇게 배신감 운운하며 섭섭해 했으며, 이번 터키 대 브라질 경기에서 한국 심판의 판정에 대해 왜 그리 크게 분노하는지, 왜 그들은 우리를 형제 나라라 여기는지.

(한국인 중에 터키를 형제 나라라 생각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월드컵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 터키란 나라는 그저 멀기만 하고 사회, 세계사 교과서에서나 봤음직한 그런 존재였다.

나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터키란 나라에 대해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적어도 내가 직접 그 나라 땅을 밟기 전까지는 말이다.

2000년 한여름에 많은 여행 자료에서 터키를 여자 혼자 여행하기엔 위험한 나라로 분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경고를 무시하고 혼자서 과감히 터키란 땅을 밟았다. 낯선 땅(우리에게 조금은 익숙한 유럽이나 미국을 접했을 때의 느낌과는 정말 현격히 다른 그런 낯섦이었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한국을 처음으로 떠나 외국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란 나라가 외국에서는 그리 큰 존재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어느 나라를 가나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말이 "Are you Japanese?(너 일본 사람이냐?)","No!" 라고 하면 다음으로 나오는 말은 "Are you Chinese?(너 중국 사람이냐?)"다. 그 다음으로 "Are you Korean?(너 한국인이냐?)"가 나온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런 말들에 지쳐서 어느 정도 포기할 때 쯤 도착한 나라가 터키였다.

터키 여행 속에서 터키의 훌륭한 문화유산들과 자연 경관들도 정말 기억에 남는 것들이지만, 터키인들이 나에겐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다. 앙카라의 한 박물관에서의 일이다. 그 박물관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던 한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세웠다. 당연히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한국이라고 하니, 그 할아버지는 그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반가운 얼굴을 했다.

처음에 나는 가이드나 해주고 돈을 벌려고 하는 수법이라 생각하고 그냥 무시하고 가려했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극구 나를 잡고서 잠깐 얘기하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전쟁이란 말을 시작으로 할아버지의 말꼬가 트였다. 그 할아버지는 바로 한국전쟁 때 한국에 파병되었던 군인이었다. 나도 태어나기 전 그 시절의 우리 땅을 이미 이 할아버지는 밟았고, 그 역사의 한 장을 함께 했던 것이다.

도대체 몇십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할아버지는 손가락 7개를 꼽으며 당신이 기억하는 그 한국 노래들을 불러대기 시작했다. '아리랑','고향의 봄','돌아와요 부산항에' 등등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전쟁 이후론 한국 땅을 다시 한 번 밟아보지도 않았고, 그 이후로는 다시 불러본 적도 없다는 그 노래들을 그렇게 생생하게 너무나 정확한 발음으로 불러대는 그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가슴 속에 뭔가 큰 요동이 쳤다. 그 할아버지 외에도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전쟁을 얘기했고, 한국인들은 터키인들과 참 비슷하다고 말했고, 한국 사람들이 좋다고 말했고, 형제 국가라 말했다. 이런 터키인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순수하고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 내게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터키란 국가에 대해 특별히 관심가져 본 적도 형제라 느껴본 적도 없던 나에게는 그랬다.(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고)

먼 이국 땅에서 한국인이라서 대우를 받은 나라는 터키가 유일했고, 한국인임을 특별 대우해준 나라도 터키인들이었다. 그 이후로 터키에 대한 나의 관심도 남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터키 대지진 때 한국이 보낸 초라한 원조에 실망하고, 이번 한국 심판의 판정에 분노하던 터키인들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그 이상으로 한국을 특별히 아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 땅에서 전쟁이 아닌 월드컵 준결승이란 이름하에 터키와 우리가 만나게 되었다.(개인적으로는 월드컵의 변방이었던 한국과 터키가 결승전에서 붙기를 바랬지만..) 우리는 물론 한국팀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응원하겠지만, 먼 역사를 거슬러 다시 이 땅에 서게 된 그 터키인들에게 격려의 따뜻한 박수를 잊지말자!

경기 후 떠나는 터키인의 가슴에 섭섭함과 아쉬움 대신 한국인의 따뜻함을 가득 채워서 보내자. 그래서 터키인들의 가슴 속에 한국이 여전히 따뜻하고 가까운 형제국가로 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월드컵 준결승 이상의 커다란 의미가 있는 토요일의 멋진 경기를 위해 화이팅!
2002-06-27 14:5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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