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대회가 문화패러다임을 바꿨다. 금기와 성역의 틀을 깨버렸다. 혁명적인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대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태극기를 몸에 두르거나, 아예 치마를 만들어 입고 응원 나온 여자들, 축구 이야기만 나와도 '또 축구 이야기 냐'며 등을 돌리던 여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남자들보다 더 많은 여자들이 거리 응원에 참가했다. 월드컵대회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제 축구는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성들도 즐길 수 있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독일과 결승 진출을 다투던 날 거리의 응원 인파는 700만 명으로 언론은 보도했다. 4700만명 중에 700만 명이라는 숫자는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군중을 동원해도 이렇게 모일 수 없는 숫자였다. 젊은층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어린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다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하나가 되고,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오랜 친구 사이처럼 응원가와 함성을 질러댔다.

응원이 끝난 후에도 지나가는 승용차를 멈춰 세우고 같은 방향이면 탑승을 요구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에서도 어떤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우리의 따뜻한 이웃이고, 애국심으로 뭉쳐있다는 동포애적 연대감이 그런 행동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양한 태극기의 물결은 우리 의식의 틀을 바꿔놓았다. 태극기는 우리 나라 국기로 구겨지거나 찢어지거나 하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국기와 국가와 국민이 하나라는 의식은 국기를 보면서 한때는 오후 5시만 되면 학교와 관공서에서 국기 하강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애국가를 부르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그만큼 태극기는 우리 국민들의 의식 속에 인격적인 대우를 받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신성시(?) 여기는 태극기가 사람들의 얼굴에도 페인팅을 하고 다니고, 치마를 만들어 입고, 몸에 두르고 다니고, 작은 태극기 문양을 수십 개 옷에 달고 응원에 나서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이런 의식의 변화의 밑바닥에는 '애국'이라는 나라사랑은 의식적인 의례 시간에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언제라도 표출할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태극기는 이제 더 이상 국경일이나, 특별한 날에 게양되고 보고 지나치는 국기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나라 사랑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붉은 티셔츠의 물결은 월드컵대회가 가져다 준 최대의 충격이었다. '붉은색'을 떠올리면 우리 국민은 '빨갱이'를 떠올린다. 북한을 생각하면 빨간색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빨간색에 대한 이미지는 '적(敵)'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위 '레드 콤플렉스' 공포를 안고 살아온 우리 국민들에게 붉은색 티셔츠의 물결은 그 고정관념을 일시에 바꿔놓았다. 이제 붉은 색은 '레드 콤플렉스'의 언어적 상징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의식을 대변하는 '열정'이라는 이미지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서 월드컵대회는 과거 5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를 엄숙하게 지탱시켜온 의식의 틀을 일시에 바꿔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축구는 경기 그 자체가 아니라 문화 향유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고, 엄숙한 유교문화의 틀 속에서 거리로 나서지 않았던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응원대열에 함께 했으며, 태국기와 붉은 티셔츠의 물결은 성역과 금기라는 의식의 굴레를 벗어 던져 버리게 했다.

이번 월드컵대회를 기점으로 거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파도 속에서 우리 사회의 곳곳에 숨어 있는 쓸데없는 금기와 성역의 영역이 어떻게 알을 깨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주목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무조건적 강요나 맹목적 추종의 문화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2002-06-26 11:4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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