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조별 예선을 끝내고 독일과 파라과이의 16강전을 앞둔 지금,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조별 예선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창은 방패를 뚫지 못한다” 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수비가 강한 팀들의 선전이 돋보이고 있는 것이다.

유럽 예선에서 단 세 골만 먹으면서 본선에 오른 스웨덴이나, 유럽 예선 “죽음의 조”에서 네덜란드를 격침시키고 포르투갈과 함께 본선 행 티켓을 거머쥔 아일랜드는 전통적으로 수비축구에 능한 팀들이다. 스웨덴과 비슷한 스타일의 축구를 펼치며 빠른 속공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덴마크(결국 덴마크는 이러한 전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강 프랑스를 무너뜨렸다), 사상 최약체라는 오명을 들으면서 이번 월드컵에 참가했던 독일도 강하고 견고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조별 예선에서 강하고 파이팅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었다.

이 네 팀의 공통 점은 무엇일까? 이들 나라가 맥주를 즐겨 마시는 북유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자연 이들 팀 수비수의 키나 파워는 바이킹의 후예마냥 상대 팀을 압도한다. 제공권이 뛰어나고,(이번 월드컵은 유독 머리에서 나온 골이 많다) 체력이 좋기 때문에 쉽게 뚫리지 않는 견고한 수비를 자랑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으로는 강하게 미드필더에서 밀어 붙이는 압박축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예선에서 의외로 선전했던 미국도 이런 북유럽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단 한번에 찔러주는 긴 패스로 상대 문전을 위협하며 찬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럴 때 주로 공격수는 최소의 인원만 필요하기 때문에 늘 견고한 수비 시스템을 유지 할 수 있다. 부족한 세기나 테크닉은 수적우세를 바탕으로 메워 나가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스웨덴의 경기 보듯이 뚫어도 뚫어도, 뚫리지 않는 스웨덴 수비 진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반면, 와인을 즐겨 마시는 남유럽 스타일의 축구, 즉 프랑스가 내세운 “아트사커”는 이번에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대개 이러한 스타일의 축구는 개인기를 바탕으로 땅 따먹기 식의 경기 운영을 한다. 즉 공간을 넓혀 나가면서 상대를 차례차례 넘어뜨리는 전술을 즐겨 쓴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이태리 등이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스타일의 축구를 한다고 보면 되는데,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걸출한 미드필더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지단, 피구, 토티가 바로 이들 나라의 대표적인 미드필더들이다. 이들의 발끝에서 늘 공격이 시작되고, 찬스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프랑스와 포르투갈이 탈락하고 이태리가 크로아티아에게 혼이 난 이유는 첫 번째로 이들 미드필더가 막혔을 때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하게 압박해 들어오는 힘과 체력이 좋은 수비수들에게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패스할 공간은 적어지고, 다급한 나머지 문전에 띄워 주지만 평균 185 센티미터 이상의 신장을 가진 수비수들에게 제공권을 뺏기는 것이다.

남미의 축구도 이들 남유럽 축구와 비슷한 점이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비슷한 전형을 쓰는 대표적인 나라인데 이들에게도 맨체스터에서 뛰는 베론이라는 걸출한 미드필더가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예선 탈락이 보여주듯 베론의 활약은 전혀 보여지지 않았다.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베론은 퍼디낸드, 캠벨 같은 장신의 파워 넘치는 수비수들에게 농락당하다 교체되었고,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후반 투입되었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와 맞수이자 “언제나 우승후보” 브라질은 선수 전원이 좋은 개인기를 구사하는 나라이다. 미드필더가 공격수에게 공을 주는 순간부터 공격수는 패스보다는 자신의 개인기에 의해 골을 만들어 낸다. 그런 면에서 “킥 앤 러쉬” 의 전형인 스웨덴과는 가장 대조적인 축구를 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브라질은 아직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했는데 만약 잉글랜드가 덴마크를 이기고, 브라질이 예상대로 벨기에를 젖힌다면 8강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데 이 경기가 사실 결승전이 될 것이다.

아직 그리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은 경기 내용을 보여주며 죽음의 조, F조를 넘어선 잉글랜드 축구는 남유럽도 북유럽도 아닌 축구를 구사한다. 원래 잉글랜드 축구는 “킥 앤 러쉬” 스타일의 원조이다. 독일과 함께 정말 재미없는 축구를 펼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잉글랜드 축구가 달라진 건 최근 몇 년 사이이다. “킥 앤 러쉬” 스타일에 개인기를 가미한 축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컴이나 오웬 같은 젊은 선수들의 발 재간은 히바우드나 호나우도 같은 브라질 공격수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보면 잉글랜드도 남유럽 스타일의 공간 침투형 축구를 할 것 같은데, 잉글랜드 축구는 좀 복잡한 면이 있다. 베컴은 지단도 아니고 베론도 아니다. 때론 자신의 개인기로 공간침투도 즐기지만 예전의 “킥 앤 러시” 스타일이 남아서인지 횡으로 길게 쭉 쭉 질러주는 패스도 곧잘 한다. 이러한 베컴의 패스는 맨체스터에서 한솥 밥을 먹고 있는 스콜스의 발끝에 어김없이 걸리게 되어있다.

올해 맨체스터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아스날에 이어 2위로 밀려 났는데 가장 큰 요인은 서로 플레이가 다른 베컴과 베론이 같이 뛰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흥미롭게도 올해 프리미어 리그 1위 팀은 앙리, 피레스, 윌토르, 비에리 등 프랑스 국가대표가 포진해 있는 아스날이고 2위팀 맨체스터와 3위 리버풀은 잉글랜드 대표팀의 축소판이다). 결국 사상 최고 전력이라고 하는 잉글랜드 축구는 남유럽의 “아트사커” 와 북유럽의 “킥 앤 러쉬’ 중간 쯤에 자리잡고 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일본, 한국, 세네갈, 미국 같은 나라들의 선전과 함께 수많은 우승후보 들의 탈락까지 워낙 이변이 많이 일어난 월드컵이라 16강 이후를 예상하긴 힘들지만, 앞에서 얘기한 흐름을 대입시키면 수비가 강하고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미드필더에서 힘있게 몰아 부치는 나라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한국도 골 결정력만 높인다면 우승 후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판세를 바탕으로 예상해 본다면 스웨덴 같은 북유럽 팀들이 돌풍의 핵이 될 것이다. 스웨덴은 비교적 대진 운도 좋은데 세네갈을 이기면 일본 대 터키 전의 승자와 맞붙게 되는데 터키는 유럽예선에서 이긴 바 있고, 일본은 스웨덴의 파워를 꺾기엔 부족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유럽에서 이태리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스페인과 아일랜드 전도 관심거리이다. 비교적 조 편성이 좋아 승승 장구했던 스페인이 아일랜드의 짠물축구를 맞아 고전할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이 이태리를 이긴다면 아일랜드를 8강에서 만나지 않을까? 아마 한국도 강하게 몰아 부치는 북유럽 스타일의 축구보다는 이태리가 오히려 더 편한 상대라고 보인다.

전형이 비슷한 덴마크와 잉글랜드 전도 관심 사이다. 몇 안 남은 우승후보 잉글랜드가 한 수 위로 보여지지만 덴마크의 선전도 기대된다. 비교적 대진 운이 좋은 독일은 무난히 4강까지는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고 브라질은 8강에서 잉글랜드라는 산을 넘어야만 한다. 아무튼 브라질과 스페인이 변수이긴 하지만 올 월드컵의 키워드는 개인기나 패스 보다는 파워, 체력, 스피드, 신장 일 것이고 이를 잘 활용하는 팀이 최후의 웃음을 짓는 자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예상 8강 진출국: 독일, 잉글랜드, 스웨덴, 아일랜드, 멕시코, 브라질, 터키, 한국
2002-06-15 15:4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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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학생들과 나누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입니다. 영화가 중심이 되겠지만 제가 관심있는 생활 속에 많은 부분들을 오마이 독자들과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여럿이 다양하게 본 것을 같이 나누면 혼자 보는 것 보다 훨씬 재미있고 삶의 진실에 더 접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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