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라고 적혀있다. ⓒ 황철민
영화에 관한 한 나는 문외한이다. 사실 이건 자랑일 순 없지만, 아직껏 <쉬리>도, <공동경비구역>도, <친구>도, <엽기적인 그녀>도 보지 못했다. 그런 내가 한편의 영화를 보기 위해, 사무실을 도망치듯 빠져 나와 충북의 작은 도시 옥천을 찾았다.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탄 것은 8월 14일 오후 5시 54분.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8시에 옥천역에 도착했다. 옥천읍 시내에는 '옥천전투 시사회'와 '전국 물총 독립군 만남의 날'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천안부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져 걱정했지만 현장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비는 그쳐 있었다. 상영장인 옥천읍 죽향리 명가식당 앞 잔디마당 주변에는 언론개혁과 사회개혁을 표현한 걸개글씨와 만장이 바람에 휘날리며 시사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런데 이 영화를 제대로 보려는 분들은 사전공부가 좀 필요할 듯하다. 기자가 지난 1년 동안 옥천에서 전개된 조선일보 추방운동을 잠깐 소개하려는 이유도 여기 있다.

옥천 주민 33인은 작년 8월 15일 '조선일보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일명 조선바보, 대표 전정표)을 결성한 뒤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집중 고발하는 한편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사람들을 맨투맨으로 만나서 절독을 권유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인터넷 홈페이지 물총닷컴(mulchong.com)을 만들었고, 여기에 조선일보의 친일행각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한편 효율적인 싸움을 위해 '옥천전투일지'라는 코너를 만들었으며, 표적확인, 지원사격, 확인사살 등 자신들이 개발한 전투방식을 동원해 모든 절독운동 사례를 실명으로 공개했다.

유일한 지역신문인 <옥천신문>도 8월 15일부터 5단 통광고를 통해 조선일보의 친일기사를 소개하는 한편 독립군 모집에 들어갔다. <한겨레>의 국민주 창간방식을 통해 89년 9월 30일 창간된 <옥천신문>은 주민 편에서 군청과 의회를 가차없이 비판하고, 지방언론의 촌지관행을 톱기사로 폭로하고, 보도연맹 학살사건 등 왜곡된 현대사를 발굴하고, 98년 최장집 교수 사건 당시 '조선일보를 해부한다' 시리즈를 3개월에 걸쳐 연재한 전력이 있다. <옥천신문>이 이런 행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창간 초기부터 촌지와 계도지를 거부하는 등 스스로부터 떳떳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운동을 전개하자, 독립군 가입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현재 회원수는 약 4백명. 흥미로운 것은 독립군 가입자가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다는 점이다. 전교조, 농민회, 민예총 등 개혁적 단체는 물론이고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민족중흥동지회, 상이군경회 등 보수적 단체의 대표들까지 독립군이 된 것이다. 도의원 2명 중 1명, 군의원 9명 전원이 독립군에 가입한 것도 다른 지역에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동이면에 거주하는 '할아버지 독립군' 이종학 옹(80)부터 옥천중학교에 다니는 '소년 독립군' 오각현 군(15)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ㅇ경찰서 ㅅ경위 등 공직자들까지 익명으로 독립군에 가입해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고, 옥천에서 조선일보 부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 과정에서 옥천은 전국적인 언론개혁의 '성지'로 떠올랐다. 이날 시사회를 위해 전국에서 150여 명의 인사들이 불원천리 달려온 것도 이 때문이다.

▲ⓒ 황철민
실제로 이날 행사에는 성유보 민언연 이사장, 전영일 언론노련 수석부위원장, 이번영 <홍성청소년신문> 발행인(풀뿌리신문의 효시인 <홍성신문> 창간주역), 이기명 노무현후원회 회장, 명계남 노사모 대표(영화배우), 정운현 대한매일 차장(친일문제연구가), 최용익 부장(MBC <미디어비평> 연출가), 오동명 전 중앙일보 기자(<당신 기자 맞아?> 저자), 방의천 발해뗏목탐사대장, 우희창 대전충남민언련 사무국장, 박민 전북민언련 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이밖에도 임순혜, 안철택, 오유진 씨 등 바른지역언론연대, 참여연대, 경실련, 전교조, 인사모, 노사모, 전대기련에서 활동하는 간부나 회원들, 장문하 선생(아이디 잔다크), 문한별 씨(아이디 어른이) 등 안티조선 우리모두에서 필명을 날리는 네티즌 논객들,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스스로 옥천을 찾아왔다.

여기서 다시 일부 독자들을 위해, 조선바보, 물총닷컴, 독립군, 표적확인·지원사격·확인사살 등 용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조선바보---조선일보 바로보기의 줄임말이다. 시골에선 '안티'라는 말을 잘 모른다. 그래서 '바로보기'라는 쉬운 말을 고른 것이다.

●물총닷컴---물리적 역량만 놓고 볼 때, 조선일보가 '미사일'이라면 이에 맞서는 옥천의 조선바보는 '물총'에 불과하다. 그러나 조선일보라는 미사일의 재질은 종이에 불과하다. 종이에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인가. 바로 물이다. '물에 젖은 신문지'를 연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래서 홈페이지 이름을 물총닷컴이라 명명한 것이다.

●독립군---조선바보 회원의 애칭이다. 옥천에선 조선일보의 해악을 알리되 주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일행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회원을 부를 때 '친일파'의 반대말 '독립군'을 쓴 것이다. 출범식을 광복절인 '8월 15일'에 한 것도, 발기인을 '33인'으로 한 것도, '기미독립선언서'를 패러디해 출범선언문을 작성한 것도, 조선바보 대표를 '독립군 사령관'이라 부르는 것도, 회비를 '군자금'이라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표적확인·지원사격·확인사살---물총닷컴 전투일지 코너에서 독립군들이 사용하는 전투용어다. 조선일보 구독자를 발견하면 표적확인, 설득이 잘 안될 경우 다른 독립군의 도움을 요청하면 지원사격, 절독을 완수하면 확인사살이다.

자, 사전공부를 마쳤으니 다큐멘터리 장편영화 <옥천전투>(감독 황철민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 감상에 들어가자. <옥천전투>는 모두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그리고 각 에피소드에는 다음과 같은 소제목이 붙어 있다.

1장 안티조선 사행시
2장 독립군 사령관
3장 안터마을
4장 대구에서 온 손님
5장 독립군들의 동지애
6장 영동전투
7장 아무려면 워때유
8장 눈이 오나 비가 오나
9장 독립군 서울 오다
10장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 황철민
영화 내용에 대한 소개에 들어가기 전에 또 한 가지 알아둘 것이 있다.

이 영화에는 해설(나레이션)이 없다. 감독은 자신의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따라서 안티조선의 강렬한 메시지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아울러 깔끔한 TV 다큐멘터리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도 이 영화의 투박함에 당혹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점들이야말로 이 영화의 고유한 특장이라고도 할 수 있거니와, 안티조선이든 언론개혁이든 강요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그것은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느끼고, 자각할 때 완수될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참고로, 이 영화를 만든 황철민 감독은 장편영화 <빌어먹을 햄릿>으로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됐고, 올해 인디포럼 폐막작인 단편영화 <삶은 달걀>로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역량있는 감독이다.

자, 이제 <옥천전투>의 세계로 떠날 시간이다.

막이 열리자, 붓글씨로 흘려 쓴 영화의 제목이 떠오른다.

<옥천전투>

마치 신영복 선생의 글씨체를 연상케 하지만, 실은 독립군 대원인 김성장 씨(옥천상고 교사)가 쓴 것이다. 충청지역에선 그의 글씨를 가리켜 아예 '김성장체'라고 부른다. 혹시 여러분 중에 경부선을 타고 지나가다 옥천역 청사에 걸려 있는 '名詩 「향수」의 고장 옥천입니다'라는 글씨를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글씨도 바로 그가 쓴 것이다. 역시 옥천역 대합실에도 「향수」 등 그가 광목에 쓴 걸개글씨 몇 점이 걸려 있다.

영화의 첫 부분에 나오는 이 제목 글씨를, 김성장 씨가 '신이 들린 듯한 표정으로' 쓰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일종의 수미쌍관(首尾雙關) 기법인 셈이다.

이 영화에 동원된 또 하나의 기법이 있다. '반복(反復)과 상승(上昇)'의 기법이 그것이다.

'반복의 기법'이라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10개의 에피소드가 시작될 때마다 조선바보의 인터넷 홈페이지인 물총닷컴의 '전투일지'를 접속하는 장면이 나온다.(삼성fn닷컴 CF 광고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감독이 각 장의 도입부에 이러한 장치를 배치한 것은 아마도 조선바보 운동이 인터넷을 무기로 활용한 운동이었음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승의 기법'이라고 한 까닭은 이렇다. 1장에 소개된 전투일지는, 한 독립군이 옥천읍 삼양리 태양이발관에 이발을 하러 갔다가 조선일보가 있는 것을 보고 절독을 권유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끈질긴 설득 끝에 마침내 10장에 소개된 전투일지에서 태양이발관 조선일보 절독은 성공한다. 물총닷컴을 자주 방문했던 사람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태양이발관 절독사례는 옥천전투 중 최장의 시간이 걸린 전투로 기록돼 있다. 감독은 수개월 동안 진행된 그 과정과 성공을 보여줌으로써 옥천 독립군들의 은근과 끈기를 말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영화가 한겨울에서 시작돼 한여름으로 끝난 것도 일종의 상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장 안티조선 사행시

첫 장면은 조선일보 사옥. 카메라 앵글의 방향은 서서히 그 건너편 프레스센터 앞으로 옮겨진다. 일군의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려는 모습이다. 올 1월 13일 안티조선 우리모두 1주년 행사를 옥천에서 가졌는데, 서울지역 사람들이 모여서 출발하기 직전의 장면이다. 그리고 그들은 옥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뒤 대화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고, 안티조선을 주제로 즉석에서 사행시도 짓는다. 다음은 사행시 중의 하나.

안: 안봐, 안봐.
티: 티껍냐?
조: 조선일보는 안봐.
선: 선물 끼워줘도 안봐.

일행 중에는 성유보 신문개혁국민행동 본부장(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과 김동민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 상임대표(한일장신대 신방과 교수)의 모습도 보인다. 이날 성유보 본부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모두는 지금 옥천으로 가고 있다. 안티조선과 언론개혁이 사회적 평가를 받고 역사에 족적을 남기는 세상이 온다면, 사람들은 옥천을 언론개혁과 안티조선의 성지로 기억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카메라 앵글이 버스 차창 밖의 석양에 초점을 맞추면서 1장은 끝난다.

●2장 독립군 사령관

오늘은 설날이다. 공간은 젯상을 차리는 '독립군 사령관' 전정표 씨의 자택. 전씨가 사과와 배 등을 접시에 담고, 향을 피우고, 술잔을 따른다. 그리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돌아가신 부친의 영정을 향해 절을 한다. 경건하게 제사를 올리는 독립군 사령관의 모습에서 부족의 제의를 집행하는 제사장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전씨는 음복을 하고 담배를 한 대 피운 뒤 독립군 본부인 자신의 방으로 가서 물총닷컴을 검색한다. 어떤 소식과 보고가 올라왔는지 검색하기 위해서다. "어, 김동민 교수가 글을 올렸네." 잠시후, 전씨는 집밖으로 나가 흰눈이 덮인 광활한 금강 가 백사장을 걷는다. 그의 옆으로 그가 기르는 개 한 마리가 뛰어다닌다. 갑자기 민초들이 술자리에서 흔히 꺼내는 '만주 벌판에서 말 타고 독립운동 하던' 류의 말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

까치가 야단스럽게 노래하는 소리, 얼음장 밑에서 물 흐르는 소리 등과 함께 2장이 끝난다.

●3장 안터마을

공간은 옥천군 동이면 안터마을. 대청호 상류에 자리한 이 자연부락은 아직도 지역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이다. 설날이면 마을회관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벌인다. 어른들께 공동세배를 올리고, 덕담과 함께 음식과 술을 나눈다. 명절을 맞아 객지에서 온 젊은이들도 인사를 온다. 독립군 사령관 전정표 씨와 독립군 대원 오한흥 씨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린다.

감독은 안터마을의 설날잔치를 지루할 정도로 오랫동안 보여준다. 조선일보 추방운동이 결국은 지역공동체 회복운동임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독립군이라는 '물고기'와 마을사람들이라는 '물'의 공존과 조화가 옥천에서 전개되고 있는 조선일보 추방운동의 진정한 저력이라는 것에 주목했던 것일까.

기자는 시사회에서 안터주민들이 이 장면을 어떻게 볼까 눈여겨 지켜보았다. 관람석 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과 일상이 여과 없이, 그것도 영화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은막에 비추는 것을 보고,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어떤 사람은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또 어떤 사람은 시종 입을 벌린 채. 자신의 모습이 커다란 은막을 가득 채우자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사람도 보였다.

아마도 이렇게 영화를 제작한 감독과 영화에 등장한 민초 배우들이 그것도 영화를 제작한 공간에서 만나 시사회를 가진 것은 <옥천전투>가 최초이지 않을까. 몇 년 전 푸른영상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장편영화 <동강은 흐른다>도 물론 배우가 된 분들이 시사회에 참여하기는 했었다. 그러나 영화를 제작한 현장에서 집단적으로 시사회를 갖지는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점에서 황철민 씨는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한 '행복한 감독'이 아닐 수 없다.

●4장 대구에서 온 손님

장소는 <옥천신문> 사무실. 3.1절에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고발하는 전단을 만들어 대구 전역에 뿌리겠다면서 한 대구사람이 전정표 대표와 오한흥 국장을 찾아왔다. 작년 12월 이후 한달에 5, 6차례 옥천을 방문해 촬영을 하던 감독에게 우연히 포착된 장면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독립운동 노하우를 전수하기에 바쁘다.

실제로 올 3월 1일 대구에서는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고발하는 수 십만 장의 전단이 뿌려졌다. 그리고 조선일보 대구지국이 이들을 업무방해로 고발하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이날 장면은 그 사건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보여준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5장 독립군들의 동지애

전정표, 오한흥, 조주현(옥천신문 편집기자), 김봉겸(옥천중 교사), 조만희(옥천중 교사, 옥천문학회장) 씨 등 독립군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김 교사가 교통사고를 당할 뻔했던 얘기, 전정표 대표가 물총닷컴에 올린 글에 대한 평가 등 이런저런 대화가 이어진다. 조 기자의 여섯 살 짜리 아들인 은석이가 카메라 앞으로 다가와 촬영중인 감독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어쩌면 중요할 것 같지 않은 이런 평범한 장면을 감독은 왜 보여주었을까. 독립군들도 매일 모이면 조선일보 이야기만 하는 별종의 인간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어진 장면은 독립군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자동차를 이용해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다.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듯한 감독의 카메라는 자동차 앞쪽을 향하고 있다. 조만희 교사가 앉아있는 운전석에서 비치는 계기판 불빛과 전조등을 켠 채 달려오는 건너편 차량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이 장면에서 감독이 주목한 것은 영상이 아닌 듯했다. 바로 자동차 안에서 들리는 라디오 뉴스 소리. 마침 뉴스에선 방송사 기자가 정부가 '신문고시'를 철저하게 시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김봉겸 교사의 "이제 조선일보 끊기가 더 쉬워졌네"라는 소리도 또렷이 들렸다.

기자에겐 이 장면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제도개혁과 작은 지역에서 전개되는 실천운동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옥천에서 진행되는 운동은 결코 고립돼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나라 전체의 움직임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 우연한 장면은 그 관계가 필연의 관계임을 절묘하게 보여주고 있다.

식당에서 독립군들은 며칠 후 있을 '조선일보 바로보기 영동시민모임' 출범식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특히 조만희 교사는 조선일보 친일문제를 주제로 한 특별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언론문제는 어른보다 청소년에게 더 시급하고 효과적이라는 의견과 함께.

나중에 조 교사는 실제로 이 수업을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이 수업 장면은 iTV '시대공감'과 MBC '미디어비평'에도 소개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6장 영동전투

공간은 영동읍 중앙로터리 3.1운동 기념탑 앞. 지난 3월 1일에 있었던 조선바보 영동모임 출범식 장면이다. 옥천에서 시작된 물총전투가 처음으로 다른 지역에 확산된 사례. 영동 독립군들을 축하하기 위해 옥천 독립군들을 포함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옥천에서 하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는 사회자의 경과보고에 이어 곧바로 '조선일보로부터의 영동독립선언서'가 낭독된다. 참석자들은 대회가 끝난 뒤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고발하는 전단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7장 아무려면 워때유

전정표 대표가 고뇌하는 표정이 카메라에 잡힌다.

"대구에서 3월 6일 고발하고, 3월 8일 옥천에서 고발했어요. 지국장 혼자 결정했다기 보다 본사 차원의 조율이 있었다고 판단됩니다. 이제 이 문제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전국적인 일이 돼버렸어요."

조선일보 옥천지국이 업무방해 혐의로 전 대표와 오한흥 국장을 형사고발한 것. 그러나 오 국장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

"아무려면 워때유. 차라리 잘 됐어요. 정규전이 아니라 게릴라전을 하는 우리로서야 그저 하던 대로 독립운동이나 하면 되지 뭐."

조주현 기자의 태도도 단호하다.

"강자에겐 강하게 나가고, 약자에겐 약하게 나가는 것이 우리가 취할 태도라고 봐요."

조선일보의 고발도 이들의 의지를 위축시킬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8장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옥천농민회 간부들이 독립군에 단체가입을 하기 위해 방문한 장면. 오늘은 그들과 함께 옥천장터에서 조선일보 구독거부 거리홍보전을 하는 날이다. 전 대표가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을 붙잡고 조선일보의 친일행각을 설명해 준 뒤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옥천에서 조선일보 보는 사람이 있나?"

옆에 있던 농민회 간부가 거든다.

"조선일보는 농민을 무시하고 농촌을 망하게 한 신문이여."

마침 이날 KBS PD가 옥천 독립군의 활약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다. 실제로 이 날 촬영한 내용은 신문의 날 특집프로에 소개됐다.

장면은 식당 안 풍경으로 바뀐다. 전정표 대표가 거리홍보전을 끝내고 농민회 간부들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전 옥천농민회 회장 주교종 씨(안남면 거주)가 "애쓰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전 대표는 "재미있어서 하는 일인데요, 뭐"라고 답한다. 주교종 씨가 평소 언론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말한다.

"여러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심정은 있는데 매일 논바닥에서 생활하다 보니 마음대로 안 되네요. 그 대신에 농민들이 사랑방처럼 이용하는 농약방 같은 곳에서 조선일보 보지 말자고 할게요. 사실 농민들은 언론의 철저한 홀대를 받고 있습니다. 한겨레조차 실망스러울 때가 많을 정도이니까요. 우리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었는데…. 조선바보가 있으니 든든하네요."

●9장 독립군 서울 오다

독립군 대원 오한흥 국장이 서울에 왔다. 조선일보사 앞 1인시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초록색 새마을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옥천에서 직접 제작해 가지고 올라온 선전물에는 '반민족 신문지' 조선일보에게 물을 먹이는 독립군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그려져 있다. 은막에는 옥천에서 온 독립군을 취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진기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날 1인시위 과정에서는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밤의 대통령'과 '옥천 독립군'이 조우한 것이다. 실제로 카메라 앵글에는 1인시위를 하는 오한흥 국장 옆으로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이 지나가는 모습이 잡혔다. 방 회장은 회사 정문을 나와 승용차에 오르기 전 고개를 돌려 오 국장을 바라봤다.

옥천에서 올라온 독립군을 지켜본 방우영 회장의 심정은 어땠을까.

●10장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옥천에서 시작된 조선바보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장면. 오한흥 국장이 전주로, 속초로 강연을 다니는 모습이 빠른 속도로 소개된다.

다시 장면은 오한흥 국장이 안터마을 앞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으로 바뀐다. 그가 카메라 앞에 서서 감독에게 말한다.

"주민들과 함께 동네 이름을 새로 찾고 있어요. 지금 동네 이름이 '석탄리'인데, 일제시대에 '지석리'와 '피탄리'를 억지로 합성해서 만든 이름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름은 지석리였거든요. 지석묘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아름다운 이름이지요. 이제 그 이름을 되찾아야지요. 이번에 새로 세우는 마을앞 다리도 '석탄교'가 아니라 '안터다리'라고 하기로 했지요. 조선바보운동은 결국 문화운동 아닙니까? 이제 우리는 됐어요."

● 에필로그

물총닷컴 홈페이지의 한반도 지도에 반딧불이 같은 불빛이 깜박이는 장면. 카메라는 홈페이지 제목이 바뀌었다는 것도 보여준다. 실제로 기존의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옥천을 위하여'가 '조선일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로 개편됐다.

곧이어 금강 가의 거대한 들불이 은막을 채운다. 활활 타오르는 들불을 배경으로,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전개돼 온 안티조선운동의 흐름이 자막으로 소개된다. 물총닷컴에 함께 들어와 전투일지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 창원, 대구, 광주, 전주, 청주, 영동, 대전, 홍성, 속초, 원주, 서귀포 등의 도시들도 소개된다. 조선일보 옥천지국이 3월 8일 제소한 소송이 '무혐의' 처리로 끝났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계절은 뜨거운 여름으로 바뀌었다. 김성장 교사가 땀을 흘리며 커다란 붓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다. 카메라는 잠시 후 그가 쓴 글씨를 보여준다.

<옥천전투>

이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한 그 글씨와 함께 1시간 45분 동안 진행된 영화는 막을 내린다.

150여 명의 관객이 쏟아내는 뜨거운 박수와 함성 속에, 주연, 조연, 단역 등 배우들의 이름과 영화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이름이 일일이 자막으로 소개된다.

그들은 현실로 돌아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전투에 들어갈 것이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
2001-08-18 02:0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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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환 기자는 월간 말 취재차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언론, 지역, 에너지,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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