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정 뉴스게릴라의 시드니 리포트

9월 19일 한국과 쿠바의 야구 경기장.
넉점차로 앞서던 한국이 쿠바에 역전당하고 있는 급박한 상황.
외야석 잔디구장엔 한국 응원단 300여명이 모여 열띤 응원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대회진행요원이 한국 응원단석을 찾아와 대표를 찾는다.

"당신네들은 지금 기업마크가 찍힌 옷과 막대풍선을 들고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당장 철수하시오."
그러자 통역 담당인 듯한 사람이 달려나와 설명한다.
"우리 응원단은 지금 삼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어서 로고가 적힌 막대풍선을 들고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자 진행요원은 강경하게 말한다.
"안됩니다. 삼성은 올림픽 경기장 안에서 자신들의 로고가 적힌 옷을 입고 하라고 할 권리가 없습니다. 어서 철수하십시오."

이십여 분의 실랑이 끝에 응원단 대표인 듯한 사람의 철수 약속을 듣고 진행요원은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경기가 끝날 때까지 삼성 애니콜과 CITYNET이라는 로고의 티셔츠는 한국 응원단석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전 유도경기장에서도 똑같은 제재가 있었다. 분홍색 응원복을 차려입은 치어리더 6명이 경기장 중앙에 자리를 잡고, 한국 선수가 나오면 막대풍선을 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평범한 옷차림을 한 대부분의 관객들에 비해 한국 프로야구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녀들의 옷차림은 분명 한눈에 보아도 튀었다.

변호사라는 자원봉사자가 그들을 찾아왔다.
"치어리더들이 입고 있는 옷에 적혀 있는 애니콜마크와 막대풍선은 경기장 안에선 불법입니다. 당장 그만 두세요."
그러자 그녀들을 인솔해 온 책임자가 말을 막는다.
"삼성은 올림픽 공식 후원삽니다. 그런데 왜 광고를 하지 말라고 하는겁니까?"
"공식후원사는 삼성말고도 코카콜라 맥도날드 파라소닉...무척이나 많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경기장 안에서는 광고할 수 없습니다. 그건 경기장 밖에서의 일입니다."
변호사가 가르키는 경기장 어디에서도 'Sydney 2000'이라는 문구 외엔 기업체 광고는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 경기가 시작된 16일부터 이렇듯 한국 '공식' 응원단은 매일 매일 조직위로부터 경고를 받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삼성 애니콜'이라는 기업 로고를 경기장에 가지고 오지 말라는 것.

하지만 삼성측은 파란 막대풍선 속에 드문드문 애니콜 풍선을 넣는 등 일순간만을 모면한 뒤 눈가리고 아웅식의 편법으로 조직위의 눈을 피하며 응원을 계속하고 있다.

도대체 삼성은 응원단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주기에 이렇듯 강경한 걸까?

삼성은 이번 시드니 올림픽때 응원단을 파견하기 위해 한호후원회측에 약 20만불의 금액을 지불했다. 올림픽 응원을 목적으로 미리 결성된, 유학생들이 주축이 된 공식응원단과 결합해서 함께 응원을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를 위해 삼성은 이벤트업무를 KBS 영상사업단측에 일임했다. KBS 영상사업단은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할 치어리더를 뽑는 등 이벤트를 시작해 올림픽이 열리기 하루 전 김은배 씨를 단장으로 시드니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14일, 시드니 스트라스필드 공원에는 한국에서 온 8명의 전문 치어리더들과 호주에서 연습하던 18명의 학생들이 모여 호흡을 맞춰보는 시간을 가졌다. 화려한 옷차림과 화장을 한 전문 치어리더들과 청바지에 동작도 어수룩한 학생들의 연습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그러나 시장을 부르고 한국 방송, 신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치러진 행사는 요란한 사진찍기로 그 임무를 다한 듯 '걱정말라'는 말만 남겨놓고 행사를 마감했다.

그러나 그 연습 이후로 같은 경기장에서 그들이 동작을 맞추는 일사불란한 응원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생들이 삼성응원단측의 옷이며 막대풍선 사용에 대한 요구를 거부해 성사되지 못했던 것이다.

KBS 영상사업팀이 주도하는 삼성 응원단의 추태는 갈수록 더하다. 지난 오스트렐리아전과의 야구 경기장에서는 운동장에 앰프를 설치해 음악을 틀어놓고 응원을 하는 통에 호주시민들과 다른 응원단들의 야유를 받았다. 조직위에서 두 번에 걸친 경고가 있자 경기 중반무렵에야 앰프를 끄는 뻔뻔함도 연출했다.

규정에 의하면 응원단들의 깃발도 1m가 넘는 것을 사용해서는 안되고 경기장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쇠깃봉도 못들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1m 20cm짜리 깃발을 쇠깃봉에 달아 경기장에 몰래 숨겨와 사용하고 있다. 치어리더 가슴에 있는 크게 박혀 있는 애니콜마크를 카메라에 잡히게 하기 위해 선정적인 동작도 서슴지 않는다.

이들이 이렇게 '화려하게' 응원하는 통에, 지난 3월부터 매주 일요일 2시간씩 연습했다던 유학생들의 응원은 경기장 구석으로 밀려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다. 개량한복을 입고 태극기를 흔들며 박수를 치고 있던 이들은 자신들이 연습한 응원을 하나도 소개하지 못하는게 속상하단다. 매주 연습을 마치고 자비를 털어 저녁을 먹으며 준비했다던 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대기업의 불법적인 횡포에 상처받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우리 나라 굴지의 대기업 삼성. 올림픽 공식 스폰서로 선수촌과 기자촌 내의 냉장고며 세탁기, 에어콘, 전자렌지까지 무료 스폰서해주고 있다. 더불어 전세계에서 온 몇천 명의 임원들에게 핸드폰을 무상임대해 주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들이 사용하는 무전기에도 모두 삼성 마크가 찍혀 있다. 올림픽 파크 한켠에 커다랗게 삼성 홍보관을 지어놓고 올림픽에 참가한 외국인들에게 삼성의 이미지를 알리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도대체 저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회수는 할 수 있는지, 한국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그들의 생색내기에 낭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지만 그런 것은 다 접어두자.

하지만, 지금 삼성응원단들이 벌이고 있는 추태는 분명 그들 회사의 이미지에 손해를 끼치고, 더불어 한국이란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삼성과 KBS 관계자들의 생각에 호주시민들은 경기장 밖 점잖게 꾸며놓은 삼성이라는 이미지만을 기억하고 한국 국민들은 TV를 통해 방송되는 그들의 역동적인 응원을 통한 로고만을 기억하였으면 할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 경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외국 사람들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룰을 지킬 줄 모르고 선정적이며 요란한 사람들이란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아 속상하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교민이 내게 준 말 한 마디가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

"자기네들은 올림픽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가면 끝이지만 우린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겠습니다. 아까 야구 경기할 때도 보세요. 거기 있는 대부분의 외국 관중이 상업적인 냄새 풀풀 나던 한국에게는 냉담하고 모두 쿠바를 응원하잖아요. 여기서는 볼 수 없는 현란한 치어리더 덕에 한국 여자들은 모두 천박하다고 인식할까봐 더 걱정이에요."

삼성의 선도에 쿠바전때는 CITYNET이라는 회사와 아시아나 항공까지 응원단석에 자리를 잡고 제지를 받고 있었다. 이렇게 계속하다간 한국은 경고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로 시드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을 수도 있겠다.
2000-09-20 11:52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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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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