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스페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박진성 역의 배우 김범이 3일 오전 서울 상암동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SBS 드라마스페셜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박진성 역의 배우 김범이 3일 오전 서울 상암동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며 미소짓고 있다. ⓒ 이정민


"조금씩 (현실로) 돌아가고 있어요. 물론 촬영하는 중에도 평상시에는 제 모습으로 살았지만, 지금도 가끔씩 감정들이 툭툭 나올 때가 있어요. (작품) 얘기할 때나, 대사가 생각날 때나…. 예전엔 되도록 작품 찍는 중간엔 최대한 몰입하고, 끝나면 최대한 빨리 나오려고 했는데요.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박동소리>(이하 <빠담빠담>)는 좀 달랐어요. 그 덕분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의 박진성도 만날 수 있었고요."

바깥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배우 김범이 들어섰다. 피곤해 보인다기보다는 아직 여운에 젖은 듯한 모습이었다. 수십 개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김범은 "진성이의 모습으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린다는 느낌"이라며 "캐릭터를 확 떠나보내지 않고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 회 기다리는 마음, 큰 시험 앞둔 학생 같았다"

김범은 <그 겨울>의 마지막 촬영까지 현장을 지켰다. 본인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이유를 묻자 "내 촬영이 금요일에 끝났고, 마지막 촬영이 일요일이었다"며 "그런데 뭔가 아쉬운 마음에 계속해서 보고 싶은 마음까지 들어서 진해까지 같이 가서 마지막을 보냈다"고 말했다. "사실은 내 촬영분이 끝나고 들었던 감정 중 하나가"라고 운을 뗐다가, "모르겠다"고 말하는 김범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 촬영이 끝나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데요?
"(예전과) 이번은 조금 달라요. 다른 작품들은 작품에 대한 아쉬움과 캐릭터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데, 이번엔 '이 좋은 사람들과 언제 또 다시 일해 보지?'라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헤어지기 싫은 마음에 계속 함께 있고 싶었고, 그래서 마지막 촬영장에 간 거죠. 제가 오는 줄 몰랐던 스태프들은 의아해 했을 거예요. '쟤는 왜 와있지?'하고. (웃음) 그런데 저는 '당연히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마지막을 보내고 올라왔는데도 마음속에 하고 싶은, 풀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다행히 인터뷰가 잡혔죠."

- 마지막 회에서 진성은 오수(조인성 분)를 칼로 찌릅니다. 그렇게 오수를 따르던 인물이었는데, 좀 놀라웠어요.
"원작에서는 자신이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흔들리면서, 그것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내가 동경했던 사람은 이 사람이 아니다' 이런 감정으로 찌르는 거였죠. 이번엔 진성이 어쩔 수 없이 칼을 드는 거였어요. 김 사장이 진성이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을 빌미로 삼고, 선택할 수밖에 없게끔 한 거죠. 진성도 반쯤은 넋이 나간 상태로 칼을 들고 오수를 찌른 거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황은 벌어져 있는 거고."

- 진성에게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겠습니다. 촬영하면서는 어땠나요.
"찍으면서 먹먹했어요. 처음에 대본을 받고 드라이하게 감정을 빼고 읽었는데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뒤로도 대본 볼 때마다 눈물이 났고요. 심지어는 그 장면을 찍으러 가는데 머리를 하면서도 눈물이 났어요. 제가 감정적인 컨트롤을 잘 못해서 실제 촬영 전에 감정을 다 써버린 거죠. 그래서 정작 촬영할 땐 제가 생각한 만큼 감정이 안 올라와서 좀 아쉬웠어요. 촬영 팀에도 미안한 거지만, 무엇보다 진성이에게 미안했어요."



- 이 장면 말고도, 진성은 마지막 회에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도박 장면도 그렇고요.
"진성이 조무철(김태우 분)의 죽음을 끝까지 함께하기도 하죠. 무철이 15회 때 죽는 게 아니라 마지막 회 때 죽는 건데, 15회 끝나고 기사엔 '칼 맞고 사망' 이렇게 나와서…. (웃음) 진성이라는 캐릭터는 마지막 회를 위해 15회 동안 달려온 거예요. 그동안은 오수 곁에 약간 조력자의 느낌으로 있었다면, 마지막 회는 제가 키를 갖고 있는 인물이라 부담스러웠어요. 이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촬영하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무거웠어요. 15회까지는 스케줄상으로는 오수에 비하면 편하게 찍었지만, 마지막 회를 기다리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거죠. 큰 시험을 기다리는 학생의 느낌이었어요."

- 이 '큰 시험'을 잘 치러내기 위해 따로 준비한 게 있나요.
"굉장히 큰 걸 바꿨죠. (웃음) 처음에는 대낮의 실내 주차장에서 형을 찌르는 거였는데, 제가 양해를 구해서 밤에 야외로 바꿨어요. 그 앞뒤상황이 맞아야 하니까 영이가 수술하는 시간도 바뀌었고요. 마지막 회 전체 시제가 바뀐 거죠. 너무 감사하게도 작가님이 제 의견을 들어 주셨어요.

장면을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장소와 시간이 주는 느낌 같은 게 있잖아요. 제가 그 신의 감정을 생각했을 때 (배경이) 밤이고 야외면 좋을 것 같았어요. 사실 먼저 실내에서 야외로 바꾸자고 한 건 감독님이셨어요. 그런데 밖으로 나가면 대낮이니까, 낮엔 그런 감정이 이상하다 싶어서 '밤 신으로 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대본 리딩 때 부탁드리는 마음 반으로 말씀드렸는데 수정고에 그렇게 나와서 감사했어요."

"'그 겨울' 박진성은 뜻하지 않게 받은 선물"

- 진성이 마지막 회의 활약을 제외하곤 15회까지 '오수 바라기'에 머문 건 좀 아쉽습니다.
"원작에선 제 캐릭터가 오수를 살리기 위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역할이었지만, 진성은 절대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캐릭터였어요. 원작과 가장 다른 부분이 그거죠. 대사에도 '내가 아무리 형 네 편이라도 네가 사람 죽이는 꼴은 못 봐' 하잖아요. 그러면서도 '시한부는 영이가 아니라 형 너다' 그런 얘길 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했어요. 정말 사랑하는 형이 죽을 것 같은데 형은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부분을 원작에선 이해를 못하지만, 여기선 그 사랑조차 이해하는 착하고 인간적인 인물이었어요."

- 혹시 연기하면서 내심 '편집돼 아쉽다'하는 부분은 없었나요.
"어떤 작품이든 100%를 보여드리려면 150%를 찍고 50%를 들어낼 수밖에 없어요. 평소 편집실에 자주 들어가는 편인데, 사실 이번엔 더 자주 갔어요. 극 자체의 분위기가 무거워서 초반에 저도 모르게 녹아들었던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는데, 희선(정은지 분)과 있는 장면까지 무거워졌던 거죠. 이렇게 가다간 진성이라는 캐릭터가 위험해질 것 같았어요. 캐릭터가 안 살면 들어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감독님도 그런 부분을 이해해 주셔서 더 편집해 주신 것도 있고요. 그래서 아쉬운 건 없었고요. 되려 더 덜어내 달라고 부탁을 드렸죠."



- 아끼는 '형'을 든든히 받쳐 준다는 느낌은 <빠담빠담>의 국수와도 비슷하죠?
"저는 약간 불안했어요. '국수와 진성이가 너무 비슷해 보이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노희경 작가님께 굉장히 많이 여쭤봤는데, 그때마다 하신 말씀이 있었어요. 진성도 국수도 형을 위하는 마음이 크지만, 진성은 형이 말을 안 듣고 답답하니까 '내가 살려야겠다'는 확신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한다고요. 진성이 오수를 위해 시간적으로 13회부터 15회까지 어떤 일을 했는지가 마지막 회에 다 나오잖아요. 모든 걸 미리 준비해놓고 게임에서 김 사장을 다 이기고 형을 먼저 영이에게 보내죠. 그런데 김 사장이 진성의 가족을 잡는 바람에…. (웃음)"

- 그러고 보면 노희경 작가님이 선한 느낌의 인물만 주는 것 같습니다. (웃음)
"저를 너무 착하게 보셔서 천사를 주시질 않나, (웃음) 좋은 역할을 주셔서 감사하죠. 국수를 통해 정말 가치관이 바뀌었어요. 연기적인 걸 떠나서 <빠담빠담>은 인생의 가장 큰 반환점이 된 작품이었고요. 그것 때문에 작가님과 감독님을 믿고 어떤 작품이든 선택할 수 있었고, 진성이라는 또 좋은 캐릭터를 만난 거죠.

처음에 출연을 결정했을 때에는 캐릭터가 완성돼 있지 않았어요. 작가님은 '범이가 우리 작품에 들어와 준다면 기필코 후회하지 않을 역할을 주겠다'고 하셨지만, 제가 오히려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선택한 거였거든요. 초기에 선택해서 진성과 함께하고, 연구하면서 더 좋은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 진성과는 많이 달라졌죠."

- 덕분에 많은 애착이 가는 인물이 됐겠습니다. 김범에게 '박진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첫인상은 노희경 작가님이 주신 선물 같았어요. 기대하지 않고 있었던 깜짝 선물 같은 느낌? 다시 찾아주셨기에 당연하고 감사하게 선택한 캐릭터였는데, 그렇게 급하게 선택했는데도 (진성은) 밝은 모습으로 다가와 줬던 친구였죠. 밝고, 단순무식하고, 복잡한 것 생각하기 싫어하고, 호불호도 확실하고…. 뜻하지 않았는데 마음 편히 받은 선물 같았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기억에 남을 것 같고요. 하지만 더 잘해주지 못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있고요."

- 제작발표회 때 '바람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 게 기억이 납니다. 그 겨울, 김범씨에게도 '바람'이 불었나요?
"따뜻한 바람이 불었어요. 너무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졌죠. 이번 겨울에 유독 바람이 많았는데, 그걸 다 맞으면서도 혼자가 아니라 다함께 있어서 견딜 수 있었어요. 너무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어요. 그들과의 작업이 너무나 소중한 기억들로 남을 것 같고요."


=====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배우 김범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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