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17 16:34최종 업데이트 24.04.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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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일본 외무성이 외교 성과 및 전망을 담은 <2024 외교청서>를 발표했다. ⓒ NHK


윤석열 정권은 '검찰 공화국'으로 불리지만, 윤 정권을 지탱하는 힘은 일본에서도 나온다. 일본과의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도 긴밀하게 만들어, 윤 정권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정권의 배경으로 두는 결과를 낳고 있다.

몽골 간섭기나 조선 전기에 특히 강하게 나타났듯이, 국내 기반이 취약한 군주들은 최강국의 책봉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강대국의 책봉이나 강대국과의 사신 교환을 근거로 정적이나 대중의 기를 누르려는 군주들이 있었다.


윤 정권이 민심 이반을 막지 못하는 것은 국정 운영 능력에도 기인하지만, 한층 긴밀해진 대미·대일 관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바깥에 비빌 언덕이 있다는 점은 윤 정권이 국내 민심에 덜 신경 쓰게 만드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이 윤 대통령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가미카와 요코 외무대신이 16일 각의 때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보고한 <외교청서 2024>에도 반영돼 있다. 한국의 4·10 총선과 거의 비슷하게 공개된 이번 외교청서에서 한국과 관련해 어떤 부분이 비판되고 어떤 부분이 칭송됐는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교청서는 제2장 제2절에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위안부 피해자 및 유족 16명이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승리한 일 등을 거론하며 "이들 위안부 소송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한국의 재판권에 승복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며, 본건 소송은 각하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누차에 걸쳐 표명해 왔다"고 언급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 재판권의 영향을 받을 수는 없다면서도 일본 정부가 한국 사법부에 영향을 미치고자 수차에 걸쳐 입장을 표명한 일을 숨기지 않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들뿐 아니라 한국 법원에 대해서도 곱지 않은 일본 정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로 지칭하는 강제징용 문제에서는 한층 격한 감정이 표출됐다. 전범기업인 히타치조센이 작년 12월 28일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금년 2월 20일 피해자 측에 6000만 원을 배상했기 때문에 극우정권인 자민당의 심기가 특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 6000만 원도 히타치조센이 주고자 해서 준 게 아니다. 2019년 1월에 히타치조센이 향후의 패소 확정 뒤에 있을지 모르는 강제집행을 막아달라며 보증금 조로 공탁해 둔 6000만 원을 한국 법원이 5년 만에 피해자 측에 내준 결과다. 외교청서는 이에 대해 "일본 기업이 한국 재판소에 납부한 공탁금이 원고 측에 넘겨진 사안에 관해서는 일본 정부로서 극히 유감이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를 했다"고 기술했다.

일본 정부의 불편한 감정은 독도에 대해서도 당연히 표출됐다.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그러나 한국은 경비대를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도 없이 다케시마를 계속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윤 대통령을 도드라지게 부각

<외교청서 2024>는 이처럼 한국인 식민지배 피해자들과 한국 법원 그리고 한국과의 역사문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대비되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호의적인 서술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 실패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겸한 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 때 "취임 이후 지난 2년 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국익을 위한 길을 걸어왔지만,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라며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데 모자랐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뒤 "큰 틀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세심한 영역에서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들이 체감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서술이 일본 외교청서에도 나타난다. 제2장 제2절 '한국 정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윤석열 정권은 국제적인 물가고 속에서 물가와 국민 생활의 안정, 수출이나 투자의 확대, 시장 중심 경제와 건전재정 등을 내걸고 각종 정책의 추진을 꾀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여당 국민의힘은 소수 세력이고 최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과반수를 점하는 이른바 뒤틀린 구도가 이어지는 속에서, 개별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이나 각료 임명 등을 둘러싸고 여야당은 격렬히 대립했다."

윤 정권은 국민 생활 안정 등을 위해 정책을 세웠지만, 여소야대로 인한 여야의 격렬한 대립이 방해가 됐다고 기술한 것이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한 것은 윤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야당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된다. 일본 정부가 윤 대통령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만하다.

외교청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관련해서도 윤 대통령을 부각시킨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국 정부가 2019년 8월 22일에 지소미아를 종료시키기로 하고 다음 날 일본에 통고한 사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렇게 했다.

외교청서는 "윤 대통령의 방일 직후인 2023년 3월 21일, 한국 정부로부터 2019년 8월의 일·한 지소미아 종료 통고를 취하한다는 정식 통고가 있었다"며 "현재의 지역 안전보장 환경을 고려하면 이 협정이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소미아에 관한 대목의 앞부분에서부터 "한국 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하다가 지소미아 복원을 설명하는 대목에 와서 '한국 정부'를 '윤 대통령'으로 바꿨다. 그런 뒤 이런 복원이 지역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했다. 어떤 의도로 썼건, 윤 대통령이 도드라지게 부각된 것은 사실이다.

윤석열 정권의 한일관계 긍정적 평가
 

2023년 3월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윤석열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윤 대통령을 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작년 외교청서는 '일한관계' 항목에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갖가지 과제에 대한 대응에서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평가했다. 이번 청서에서는 이 부분이 격상됐다. '일한관계' 항목은 "2023년은 일한관계가 크게 움직인 1년"이라고 한 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갖가지 과제에 대한 대응에서 파트너로서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평했다.

<외교청서 2024>는 윤 대통령을 부각시키며 작년에 한일관계가 크게 변했다고 한 뒤, 한국을 '중요한 이웃나라'에서 '파트너이자 중요한 이웃나라'로 격상시켰다. 강제징용·위안부·독도 및 한국 법원과 관련해 한국을 낮게 평가한 것과 전혀 딴판의 호평을 윤 대통령에게 보낸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다. 윤 정권이 이번 총선에 참패한 것은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 성적이 국민들에게 불만을 줬기 때문이다. 일본이 외교청서를 통해 윤 대통령에게 애정을 표시한 것은 지난 2년간의 대일외교 성적이 일본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4·11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윤 정권 평가에는 지난 2년간의 한일관계도 포함됐다. 이번 총선은 우리 국민들이 윤 정권의 대일정책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않음을 보여줬다. 그런데 총선과 때를 맞춰 나온 일본의 외교청서에서는 윤 정권의 한일관계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이는 윤석열 정권의 한일관계 운용이 한일 양국을 골고루 이롭게 하기보다는 어느 한쪽만 이롭게 했음을 방증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외교청서 2024>의 극찬은 그의 한일관계 운용이 한국 국민들에게 득이 되지 못했음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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