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3 05:19최종 업데이트 24.02.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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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누가 누굴 사랑하는 일에 쌍수 들고 반대하는 일의 효능은 무엇일까.

퀴어문화축제에서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라는 피켓을 든 사람의 얼굴을 보고 묘하게 차분해진 일이 있었다. 당신은 어떤 사연으로 그리 기묘한 숙제를 해결하느라 악쓰는 걸까. 별안간 궁금해졌다. 불쌍해서 도와주러 나왔다는 얼굴엔 측은한 눈빛도 계몽의 열정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상대방을 꺾고 말겠다는 투지, 비장함이랄까. 그렇게 해서 얻는 건 뭘까. 궁금해졌지만 축제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리던 그 현장을 이내 지나쳤다. 나는 적극적인 앨라이(Ally: 조력자)는 아니었기에.
 

ⓒ 고정미

  
앨라이는 특정 소수자 집단에 당사자로서 속하지는 않지만 그 집단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사람을 뜻한다(<성소수자 지지자를 위한 동료 시민 안내서>). 고백하자면 로맨스물은 딱 질색이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데 이견도 관심도 없던 나는 퀴어를 먼 나라의 일 보듯 살았다. 국내 5%로 추정되는 퀴어 인권에 눈을 뜬 건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들이 쓴 <커밍아웃 스토리>(2018)를 읽고 나서였다.

책엔 독특한 성별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의 '요지경 같은 인생사'가 쓰인 게 아니었다. 지정 성별로 도저히 살기 어려워 십 대 때부터 끙끙 앓다가 부모에게 극심한 고통을 알린 당사자들과 가족의 사연이 핍진하게 펼쳐졌다. 그건 차라리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꽤 오랫동안 퀴어를 '유별한 존재'라 여겼고, 마음이 들통난 것 같아 책을 읽고 나선 조금 부끄러웠다. 자녀 커밍아웃 이후 부모들 삶을 그린 영화 <너에게 가는 길>를 보고 나선 그동안 '(동성애자들이) 내 앞에선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다' 볼멘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이 슬슬 '예의 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내 눈에 띄지 말라'는 말에 담긴 폭력성 

성정체성으로 속앓이하며 살아가는 퀴어 청소년이 우리 곁에 분명히 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식하는 시기는 대부분 10대이며, '눈에 띄지 말았으면 좋겠다'라는 힐난을 입밖에 꺼내는 결례를 범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그 말이 누군가에겐 어린 목숨을 갉아먹는 멍에가 될 수 있으므로.

찾아 읽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세월이 지나, 여전히 적극적인 앨라이는 못 되었지만 '평범한 이웃' 퀴어에 애정이 생기면서 싫어진 집단도 생겨났다. 개신교가 그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교회에 다닌 전적이 있고, 종교가 없는 지금도 여전히 좋은 교인들이 많다고 여긴다.

그러나 동성애를 죄악이라고 부르짖는 반대 집회에 선 사람들이 악다구니 하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성인의 가르침을 거듭 오독할 때는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무엇일지 궁금했다. 이후엔 그들이 이득이 있어서 결집할 거라 싶어졌다. 얻는 게 있으니 반대 운동을 할 거란 의심이 들었다.

이 책에 그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다. <퀴어문화축제 방해 잔혹사>는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보수 교계를 비판해온 개신교 독립언론 '뉴스앤조이'의 두 취재기자가 국내 동성애 탄압을 추적한 기록이다.

'사랑이 혐오를 이겨 온 10년'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얇은 핸드북. 하지만 매우 정밀한 기록으로, 2010년대부터 시작된 극우 개신교의 도 넘은 형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는 물론, 학생인권조례 개정을 반대하고 공공도서관의 (성평등) 도서를 입맛대로 검열하며 혐오를 조장해온 시간을 상세히 되짚는다.

가령 세월호 추모 공연을 가장해 퀴어 축제가 열리는 현장 반대편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던 교인들의 모습. 두 기자는 사회적 약자라는 키워드를 악용해 혐오 집회를 일삼는, 포용이 사라진 한국 개신교의 모습을 여실히 비춘다. 추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2002 월드컵 당시 외쳤던 응원 구호를 빌미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최 어떤 베품을 실천하고자 했던 걸까. 기독 계통 신문은 오래전부터 '지역 유일의 동성애 음란 축제'라는 타이틀로 기사 제목을 내걸어 건강한 축제 현장을 음란의 축제 현장으로 탈바꿈해왔다. 워터밤 축제의 노출 수위보다 퀴어문화축제의 노출 수위를 눈에 불 켜고 문제 삼으며 혐오라는 이름의 풍선을 부풀려왔다.

네이버에 동성애를 검색해 보자. "성적 흥분과 만족을 얻기 위해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선택하는 행위"라는 결과가 첫 번째로 뜬다. 동성애는 유독 한국에서 죄악시된다. 2022년 기준 한국 무지개 지수(Rainbow Index: 국제성소수자협회 측이 내는 성소수자 인권지수)는 고작 10.56%로,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은 수준. 가뜩이나 소수자 영역인 퀴어의 존재를 잘 모르는 시민들의 색안경이 진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 사이 동성애는 언제나 유머로 소비되거나 핍박당하거나 유별한 존재들의 집합소로만 이해된다.

직접 예수의 정신을 실천해온 그리스도인들
 

책 <퀴어문화축제 방해 잔혹사> ⓒ 한티재

 

극우 개신교인들은 인분 테러, 참가자 폭행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성애 혐오를 선동해왔다. 이유는 단순했고 목표는 명징했다. '(극우) 개신교의 존립'을 위해서다. 기독교와 동성애의 관계를 추적한 다른 책에서도 그 이유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동성애 시위 때 등장한 '종북 좌파 게이'라는 표현은 극우 개신교의 동성애 혐오가 개신교의 포괄적인 혐오전략임을 잘 보여준다. 즉 강력한 외부의 적을 만들어냄으로써 내적 응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다." "…동성애 이슈는 종교와 정치를 이분법으로 분리해왔던 극우 개신교 집단이 매우 적극적으로 사회정치의 장에 뛰어들 수 있는 명분이 되고 있다."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박경미) 중에서

이만치 기독교가 싫어졌는데, 다시 희망의 종교라는 생각을 품게 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웃 사랑이라는 말이 남발되는 종교에서, 정작 이웃에 대한 존중이 없어지다시피 한 공동체 안에서 성소수자의 편에 서서 예수의 정신을 실천해온 목회자와 신학자가 있었다. 퀴어축제에 맞불 집회로 응수하는 강성 교인만 있는 건 아니었다.

2019년 8월에 열린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세 그리스도인들이 용기 내어 축제에 발걸음한 참여자들에게 축복식을 열어 주었다.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된다.
 
"고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 김돈회 사제(대한성공회 나눔의 집)는 연단에 올라 성소수자들을 축복했다. 이동환 목사는 이후 기독교대한감리회로부터 '정직 2년' 징계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그는 인천을 넘어 대구‧서울 등 다른 축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성수소자들을 환대하고 있다."
-<퀴어문화축제 방해 잔혹사>(구권효‧나수진) 중에서 

성소수자 차별 반대와 평화 운동에 앞장섰던 임보라 목사는 지난해 2월 4일 별세했다. 2010년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 연대 공동대표를 맡아왔던 그는 "우리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누가 누구를 차별하느냐"며 "일부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동성애를 혐오하는 근거로 삼아 폭력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을 회개해야 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 임 목사는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시작되던 2007년부터 인권 운동가들과 목소리를 함께했다. 2017년 <퀴어성서주석> 발간을 위해 신학자, 목회자들과 함께 출판위원회를 운영했고, 생전엔 "고 변희수 하사가 꿈꾸던 세상을 나도 꿈꾸는 사람"이라고 터놓기도 했다.

성소수자를 축복해 교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는 이동환 목사는 출교(교인을 교적에서 삭제하고 교회에서 내쫓는 행위)를 선고받은 뒤 4년째 맞서고 있다. 2019년 인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해 성소수자들을 축복했다는 이유로 다음해 감리회는 교회 재판에 이 목사를 기소하고 정직 2년을 선고했다. 2023년 2월, 이 목사는 법원에 징계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제2회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축복기도 중인 고 임보라 목사, 김돈희 사제, 이동환 목사. (화면갈무리) ⓒ 비디오머그

 
이들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개신교의 교리와 상반된 행태를 계속하는 주류 교단에 용기 내어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다. 그들이 실천한, 이웃을 사랑하는 '선한 일'은 단순하고도 명쾌했다. 벼랑에 몰린 누군가의 존재를 긍정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현실에 걸맞은 성경 해석이 필요하다

이 책은 전국 각지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얽힌 사연과 '평범한 평등'을 위해 물러서지 않고 행동한 퀴어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꼼꼼히 청취한다. 인천, 광주, 경남, 제주, 대구 등 지역별 퀴어문화축제의 상황과 극단적 반동성애 주장이 한국 교회 주류로 부상한 과정을 살핀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며 반목을 멈추고, 혐오가 신앙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일각에선 성경 구절을 근거로 동성애를 죄악으로 여긴다. 성경에 따르면 이혼한 사람을 정죄해야 하고,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했지만, 현대 사회에선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이혼 또는 돼지고기 먹는 사람을 벌로 다스리거나 죄악시하진 않는다. 박경미 기독교학과 신약성서학 교수는 '성경은 결국 사람의 손으로 쓰인 것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시대에 걸맞게 성경을 해석하는 논의가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다.

누군가 결사 반대를 외치는 동안, 노년층 성소수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는 청년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두터워지는 요즘이다. 말 그대로 '퀴어의 미래'는 막막해서 옛 <닷페이스> 등 단체에서 이를 수소문하고 자료를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소모임의 기록을 복원하고 문화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책 <퀴어문화축제 방해 잔혹사>도 그 노력의 일환 중 하나다. 낙심하지 않고 누군가의 존재를 응원하는 일. 이는 유별난 게 아니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별탈 없이 생애를 이어가고 싶은 게 누군가의 소원임을 아는 일이다. 다음은 퀴어문화축제에 함께한 참가자의 말이다.
 
"축제가 끝날 때쯤 할아버지 두 분이 손을 잡고 가셨어요. 그 모습에서 저는 삶의 지속성과 가능성을 봤어요. '내 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요.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은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나이대가 되게 다양해요. 청소년 퀴어분들도 '내가 살아도 괜찮을까' 혹은 '성장한 퀴어도 있구나'라는 걸 축제를 통해 보는 거죠."
-<퀴어문화축제 방해 잔혹사>(구권효‧나수진) 중에서

비가 갠 뒤 여전히 무지개는 뜬다. 자연은 무지개를 혐오하지 않는다.


퀴어문화축제 방해 잔혹사 - 사랑이 혐오를 이겨 온 10년

구권효, 나수진 (지은이), 뉴스앤조이 (기획), 한티재(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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