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30 07:04최종 업데이트 24.01.30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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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책, 인물,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과 지금의 한국사회를 비교해 봅니다.[편집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12일(현지시간) 빌뉴스 나토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 및 파트너국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정치는 명분과 실리'라는 말은 상식과도 같은 표현이다. 이 표현은 국내정치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특히,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가 가능한 국내정치와 달리 국제정치는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외교의 궁극적 목적은 국가이익의 극대화라는 주장이 통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대한민국 외교는 '그저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국가'로 전락했다. 어쩌다 한국 외교가 이렇게 되었는가?

대한민국, NATO의 회원국인가?

북대서양조약기구로 불리는 나토(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와 유럽 등 소위 서방 국가들의 군사동맹체다. 이 기구의 조약은 집단안전보장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특정 회원국이 외부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면 다른 회원국들은 자동적으로 자국이 침략을 당한 것으로 상정하고 집단적으로 군사대응에 나서도록 되어 있다. 이 같은 특징을 가진 나토는 2차 세계대전 후 냉전 당시 소련(당시 소련은 나토에 대항하는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설립함)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이었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정부는 마치 한국이 나토 회원국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외교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에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2년 연속 참석'하였다고 밝혔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약 한 달 만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나토의 회원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정부의 이 같은 외교노선은 현 국제사회의 흐름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국가이익을 가져오고 있는 것일까? 한국과 나토는 지난해 7월 정상회의를 통해 군축·비확산·인공지능(AI)·우주·미사일 등 11개 분야에서 '국가별 적합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후 12월에는 나토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 상주하고 있는 미국, 영국 등 8개국 대표들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이번 달에는 나토 본부에서 열린 군사위원회 합참의장 회의 둘째 날에 인도·태평양 4개국(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이 참여하는 별도 세션이 마련되기도 했다.

나토와 미국의 관점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월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방한 중인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 대통령실


한국 정부는 지금과 같은 상황 자체가 외교성과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나토와 미국의 이익이 반영된 것이지 우리 정부의 실질적 국가이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먼저 나토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의 관계 강화는 나토의 가장 큰 과제인 우크라이나 지원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지난해 1월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한국을 공식방문했다. 이에 대해 독일의 국영방송사인 DW NEWS는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나토 사무총장 스톨텐베르그는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것을 '강력히 촉구'(urge)했다." 나토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패하게 되면 나토 전체가 또다시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이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필수적인데, 나토의 입장에서 10대 무기 수출국인 한국은 매우 중요한 국가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단순히 군사적으로 이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있어서만 중요한 게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국가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급부상에 따라 미국 외교의 핵심 노선은 '중국 견제'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쉽게 회복되지 않은 미국의 경기와 달리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미국 혼자서는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이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 인도,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을 골자로 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고심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2022년 예상치 못한 전면적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에 또 다른 골칫덩어리가 되고 있다.

나토와 미국의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가 나토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협상력 면에서 확실한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선언적인 의미만 있는 협상 체결 외에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국가이익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최근 튀르키예의 행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토의 확장과 튀르키예의 외교

최근 국제사회는 전쟁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유럽지역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전이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나토라는 틀 속에서 미국과 유럽연합의 공조가 급속히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나토의 출범 배경을 고려하면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던 시나리오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예상치 못한 변화가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오랜 세월 중립국가를 표방했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외교 노선을 완전히 수정한 것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인접해 있다. 특히 핀란드는 러시아와 약 1300㎞에 달하는 국경을 마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련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핀란드 시민들에게 심각한 안보 불안을 야기했다.

2022년 5월 핀란드 공영방송 YLE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나토 가입에 대한 핀란드 시민들의 찬성 여론은 70% 중반을 기록했는데,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약 20%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웨덴과 핀란드 두 국가는 2022년 5월 공식적으로 나토 가입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023년 4월 핀란드는 공식적으로 나토의 31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지난해 4월 4일 핀란드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왼쪽)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나토 외무장관 회의 도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핀란드는 나토의 31번째 회원국이 됐다. ⓒ UPI/연합뉴스

 
그러나 스웨덴은 아직 공식적으로 32번째 나토 회원국이 되지 못했다.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튀르키예'다. 나토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나토의 모든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찬성해야 한다. 그런데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명분을 내세워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를 지난 1년간 펼치고 있다.

튀르키예 정부는 현재 자국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무장투쟁 중인 쿠르드 노동자당(Kurdish Workers Party, PKK)을 스웨덴이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웨덴이 지원을 중단하고 현재 튀르키예에 대한 무기 금수조치를 해제하지 않으면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승인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명분을 활용해 지난 1년간 튀르키예는 미국과 실리외교를 펼쳤다. 튀르키예는 2021년 10월 미국으로부터 F-16 전투기 추가 구매를 하고자 하였으나, 미 의회의 반대로 아직 진척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에 튀르키예는 이번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고리로 미국과 지난한 협상을 이어갔다. 스웨덴의 나토 가입이 절실한 미국의 입장을 활용한 튀르키예의 외교는 결국 튀르키예의 승리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4일 로이터 통신은 바이든 행정부는 결국 미 의회에 튀르키예에 대한 200억 달러(약 26조 7천억 원) 규모의 F-16 전투기 추가판매 및 기존 보유기 현대화 지원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튀르키예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었다.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하는가?
 

지난 2022년 6월 28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스페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서 열린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내외 주최 만찬에 참석, 기념촬영에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 나토 정상회의 사무국 제공


지난 2년간 국제사회에서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이 마치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수호자인 것처럼 동어 반복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은 과연 어떤 국가이익을 얻었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도덕적으로 혹은 규범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며, 하루빨리 전쟁이 종식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한 국가의 정부 또는 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정책결정자라면, 이 같은 상황을 오히려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웃음 뒤에 전략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중요한 외교 파트너들의 상황을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은 현재 매우 난처한 상황일 것이다.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미국 외교의 가장 우선순위는 중국 견제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바로 '인토·태평양 전략'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은 미국이 90년대 소련의 붕괴 이후 약 20여 년간 이어오던 '슈퍼파워'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에 미국은 일본, 유럽과 같은 전통적인 우방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202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은 여러모로 미국을 궁지로 몰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같은 우방을 매우 필요로 하는 상황이며, 이는 우리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최근 국제사회의 흐름과 미국의 입장에서 우리 외교부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또 하나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의 핵심적인 외교목표는 북미관계 정상화다. 이를 통해 북한의 체제, 즉 생존을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바로 트럼프 행정부와의 북미정상회담 노력이며, 당시 북한은 2018년 5개국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풍계리 핵실험장의 갱도와 부대시설을 폭파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문제 등으로 인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이러한 환경은 미국과 외교 협상테이블에서 협상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북한이 협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의 핵을 자국에게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인식해야 하며, 동시에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 국제정세는 모든 관심이 우크라이나와 중동으로 쏠리고 있다. 결국 지난해 북한의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최근 일련의 미사일 발사 등은 북한이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행동은 자연스럽게 한반도 위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정부는 무작정 미국과 나토가 원하는 대로 적극적 협력을 할 것이 아니라 분명한 전략을 가지고 국가이익을 극대화했어야 한다. 우리 정부와 외교부가 취해야 할 전략은 지난 70여 년 동안 한국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외교 현안인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과 '딜'을 했어야 한다. 튀르키예가 했던 것처럼.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와 같이 보수 정권이라면, 향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실질적인 인하 조치를 얻어낸다든지 혹은 선거 당시 공략했던 전술핵 배치(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좋은 안은 아니지만)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반대로 문재인 전 정부와 같은 진보 정권이라면, 미시적으로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조항 자체를 변경할 수 없다면 최소한의 예외조항을 이끌어 내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이를 계기로 북한과의 대화 물꼬를 마련하는 안이 있을 수도 있다. 거시적으로는 한반도 평화라는 하나의 외교 사안을 두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물밑작업을 할 수도 있다. 이미 우리 정부는 지난 2000년대 6자 회담을 성사시킨 성공 경험이 있다.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우리 정부가 마치 나토 회원국이 된 것처럼 동조하면서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 정부가 진보정부인지, 보수정부인지에 따라 미국과 협상하는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우리 대통령이 2년 연속 우리가 속하지도 않은 나토 정상회의에 가는 외교 노력을 기울인 것만큼 또는 그 이상의 국가이익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이번에 우리 정부가 나토에 동조하면서 그 어떤 실질적인 국가이익도 없었고, 이를 위한 협상 전략도 없었다면, 그것은 정부가 아니라 그저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호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다 한국 외교가 이렇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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