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7 18:34최종 업데이트 23.11.0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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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쪽방상담소 입구에 '빈대주의'라는 문구와 함께 방제방법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다시 한번, 세계화가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한다. 바로 속담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빈대의 재출현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겠지만, 빈대 출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회적 현상은 코로나19 유행과 여러모로 닮았다.
  
무엇보다 혐오와 낙인, 차별 없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이 그렇다. 최근 국내에서 빈대가 출현했다고 알려진 장소는 찜질방, 기숙사, 고시원 등이다. 이미 오래전 사라진 줄 알았던 빈대가 재출현한 원인에 대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외국인'이 빈대의 원인일까?
 
여러 언론이 '외국인 학생이 지냈던 기숙사'라는 기사 제목을 달았고, 지난 10월 말 질병관리청이 내놓은 보도자료 역시 해외 유입이 원인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그에 관한 믿을만한 과학적 근거를 내놓지는 않았다.
 
생물학자, 의학자, 방제업체 관계자들은 혼재된 해석을 내놓는다. 언론은 이를 제 입맛에 맞게 가공해 내보내는 중이다. 현재로서는 최근 출현한 빈대가 해외에서 유입된 것인지 혹은 자생 중인 빈대인지, 해외 유입과 자생을 구분할 수 있는지,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등등에 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조선일보 10월 21일자 기사 <빈대 ‘40년만의 습격’… 외국인 머문 곳서 출몰하는 이유> ⓒ 조선일보 PDF

 
해외 유입이 원인이라 해도,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뿐 아니라 해외에 다녀온 내국인 또한 유입의 통로일 수 있다는 건 상식적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한 방송 진행자가 "위생 상태 안 좋은 이민자가 빈대를 옮기는 게 아니냐"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에 "공항에 도착하는 많은 관광객이 빈대를 옮길 수 있다"라고 수습을 시도했다.
 
개인 책임, 취약계층 집중 대응을 넘어 사회적 방제가 필요

한 언론은 쪽방촌의 빈대 확산 상황을 보도하면서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환기했다. 의미 있는 기획이지만, 빈대 사체와 배설물로 얼룩진 쪽방 사진은 또 다른 방식으로 혐오와 낙인을 야기할 수 있다. 곧 방제복 입은 이들이 쪽방촌에 살충제를 뿌리는 사진이 등장하지 않을까.
 
여러 지방정부가 쪽방촌·고시원을 '위생 취약 시설'로 호명하며 빈대 방제 노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빈대의 발생은 다른 해충과 달리 위생 수준과 관련이 없다. 일단 어떤 경로로든 빈대가 유입되면, 고급 주택이나 호텔에서도 빈대는 서식하고 확산한다. 다만 빈대 발생 시 대응에서는 차이가 있다.
 
질병관리청은 빈대가 감염병을 매개하지 않기 때문에 관리대상 해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빈대 출현이 이슈가 된 데 이어 한국에서도 빈대가 출현하자, <빈대 예방·대응 정보집>을 발간하여 개개인이 대응에 참고하도록 안내했을 뿐이다.
 
하지만 질병청이 발간한 <정보집>에서도 "빈대에 오염된 장소가 공동·숙박시설일 경우, 동시에 방제한다"라고 제언한다. 아파트, 호텔, 기숙사, 찜질방의 경우 감염병 예방법,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소독관리 의무가 부과된다. 반면 쪽방촌과 고시원은 관리기준도 의무도 없다.
 
아파트·호텔이든 쪽방촌·고시원이든, 모두 벽을 공유하는 공동·숙박시설이다. 개인적 대응이나 취약계층에 집중하는 대응을 넘어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미국의 공공주택 정책과 해충방제의 역사는 사회적 방제의 필요성에 관해 시사점을 준다.
 
미국 메릴랜드대 던 빌러(Dawn Biehler) 교수가 학술지 <Geoforum(지리포럼)>에 2009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937년 공공주택 건설 이래 1945년 이전까지, 미국에서는 공공주택을 공유지로 취급했다. 빈대 확산과 살충제 독성 문제는 공동의 건강 위험이었고 방제는 당연히 공동의 책임이었다.
 
하지만 1945년 이후 DDT와 같은 새로운 합성 살충제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방제는 개인과 가정, 즉 사적 책임이 되었다. 동시에 1949년 공공주택 예산이 삭감되면서 공공주택 인프라가 노후화되었고 물리적으로 더 많은 해충이 침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새로운 살충제로 빈대는 거의 박멸되었지만, 역으로 독일 바퀴벌레가 확산하게 됐다. 빈대와 달리 바퀴벌레는 가정 내 살충제를 피해 공용공간으로 이동해 번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논문의 저자는 주거의 질과 살충제 사용을 개인 책임이 아닌 환경 정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마침 한국의 생물학자들도 방제의 효과성이나 살충제 내성을 고려해 빈대 문제의 공적 관리와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주거의 질 측면에서 쪽방촌·고시원과 같은 부적정 주거는 빈대가 아니더라도 살만하지 않은 공간이다. 아파트·호텔만큼 공동 방제가 가능하도록 해야겠지만,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통한 적정 주거로의 이전이 궁극의 사회적 방제이자 대응이다.
 
빈대 재출현 원인: 세계화, 살충제 내성, 방제 관행 변화, 그리고...
 

지난 10월 4일 프랑스 파리의 한 해충 퇴치 업체가 파리의 빈대 문제를 다룬 지역 신문 <르 파리지앵> 1면을 가게 문 앞에 붙여놓고 있는 모습. ⓒ EPA/연합뉴스

 
국내에서 1970년대~1980년대 박멸된 빈대가 최근 해외 유입으로 재출현했다는 게 사실일까. 지난 수년간 보도된 국내외 언론 기사를 종합해 봤다.
 
내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프랑스 파리에서 최근 공공장소에서의 빈대 출현이 이슈가 되긴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빈대는 세계화가 본격화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다시 고개를 들고 있었다. 그간 이슈가 된 곳은 주로 영국·프랑스 등 유럽, 미국·캐나다 등 북미 지역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미 2006년부터 빈대가 관찰됐다. 2009년 질병관리본부(현 질병청)가 발간한 <주간 건강과 질병>에 따르면 국내에서 이미 2006년 1례, 2007년 1례, 2008년 2례 빈대 관찰이 보고되었고 관찰 장소는 집단시설, 아파트, 호텔이었다. 2015년 대한피부과학회지가 발간한 논문에서는 해외 여행력이 없는 환자의 빈대물림 사례를 보고했다.
 
세계화에 따른 사람과 물건의 국가 간 이동 증가는 빈대의 확산, 특히 살충제 내성 빈대의 확산을 용이하게 했다. 혹자는 강력한 살충제인 DDT를 환경영향 우려로 사용 금지한 게 빈대 재출현의 원인이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DDT를 계속 사용했더라도 이미 빈대가 내성을 발전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해석이 합리적이다.
 
다만 공적 방제를 중단하고 방제를 개인 책임으로 전가한 것은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부적정 주거의 경우 열악한 인프라로 물리적 방어가 취약하고 공동 방제 대응이 부족하기 때문에 빈대 확산에 취약할 수 있다. 살충제 오남용은 내성 빈대를 증가시켰다.
 
최근 유럽, 북미 지역과 한국에서 빈대가 재출현한 것은 코로나19 엔데믹 전환 이후 폭증한 해외여행 영향이라는 해석이 많다. 유럽에서는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중고가구 구매 증가가 추가적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빈대가 늘어난 게 아니라, 빈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진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빈대에 물리면 가려움증과 염증반응이 유발된다고 하지만,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은 증상이 없거나 약하다고 하니 이러한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소셜미디어(SNS)로 인해 정보 확산이 용이해진 데다, 해충방제 산업이 성장하면서 빈대 위협과 방제 필요성을 더 적극적으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대중의 불안과 공포에 편승하는 언론도 한몫했다.
 
미국 켄트주립대 캐서린 구달(Catherine Goodall) 교수가 학술지 <Health Communication(보건 커뮤니케이션)>에 2013년 발표한 논문은 빈대 재출현이 2009년 신종플루 유행과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이 많은 새로운 공중보건 문제라는 점에 주목했다. 빈대의 위협과 해결책의 효능을 모두 언급하는 기사를 골라, 각각의 불확실성을 높고 낮은 2×2 총 4가지 경우의 수로 조작한 뒤 281명의 사람에게 읽도록 했다.
 
실험 결과, 빈대 위협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는 기사는 개인이 관련 정보를 찾고 관심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었다. 반면, 해결책의 효능에 대한 불확실성을 언급하는 기사는 사람들이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공포를 통제할 수 있는 '방어적 회피'를 조장할 수 있었다. 이는 빈대에 관한 대화나 관련 기사와 정보를 피하고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빈대 퇴치가 쉽지 않더라도 가능하고, 공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인지하는 것이 개인의 대응을 용이하게 하고 사회적으로도 확산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정부와 전문가의 위험소통과 언론에 주는 시사점이다.

빈대로 인한 건강 문제의 총체성  

빈대는 다른 해충과 달리 감염병을 매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근거로 질병청은 빈대 관련 공식 통계도 내지 않고, 빈대물림 발생 시 역학 조사도 해 오지 않았다. 국내에서 2006년 이래 관찰된 빈대나 최근 출현한 빈대가 자생인지, 해외유입인지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빈대물림이 가려움증, 염증, 알레르기와 같은 피부질환뿐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를 야기한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염성 질환과 그 매개체만 관리대응 대상으로 삼아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캐나다 워털루대 레이철 애슈크로프트 (Rachelle Ashcroft) 교수 등 연구팀이 <International Journal of Public Health(국제공중보건학회지)>에 2015년 발간한 논문은 빈대물림으로 인한 정신건강 영향에 관한 기존 연구들을 종합한다.
 
총 51개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빈대물림은 일반적인 심리적 증상 또는 고통(불안, 불면, 낙인, 사회적 고립 등)에서부터 심각한 정신과적 증상(편집증, 피부 위로 지속적으로 기어가는 느낌, 자살행동 등), 나아가 정신과적 장애(기존 정신과적 장애의 악화, 우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까지 유발할 수 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빈대 박멸을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방제 비용뿐 아니라 가구와 의류의 청소·교체 등 2차비용까지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추가적인 심리적, 경제적 고통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빈대로 인한 정신건강 악영향은 홈리스, 정신 질환자 등 사회경제적으로 이미 취약한 집단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고, 이는 기존 건강 불평등을 지속·악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빈대 퇴치만큼이나 빈대로 인한 정신건강 악영향을 예방·완화하기 위한 총체적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정신건강 서비스 보장은 물론, 낙인이나 사회적 고립 방지, 나아가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경제적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저자들은 빈대가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대물림으로 인한 정신건강 영향에 관한 연구가 대부분 일화적인 데 그친다면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함을 지적한다. 빈대 퇴치에 사용되는 살충제 사용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건강영향 문제도 앞으로 연구되어야 할 영역으로 꼽힌다.
 
빈대 퇴치를 위한 사회적 방제의 원칙
 

지난 10월 19일 대구 달서구 계명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역업체 관계자들이 빈대(베드버그) 박멸을 위해 방역 소독을 하고 있다. 이 학교 기숙사에서는 지난 10월 17일 한 학생이 빈대에게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 연합뉴스


빈대 퇴치를 위한 사회적 방제가 필요하다면, 어떤 원칙이 필요할까.
 
우선, 외국인 탓은 의미가 없다. 주어진 조건 하에서 예방·대비·대응을 위한 사회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반면 부적정 주거의 경우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통한 적정 주거로의 이전이라는 실행 가능한 정책대안이 존재한다. 빈대는 어디서나 발생하지만, 대응과 확산을 좌우하는 물리적·제도적 인프라의 부족은 부적정 주거에 집중되어 있다. 보여주기식 살충제 뿌리기는 그만하자.
 
방제의 효과성이나 살충제 내성 측면에서도 공적 관리와 대응이 필요하다. 관리대상 해충이 아니라던 질병청은 여론이 심상치 않자, 방제업체가 채취한 빈대 샘플을 받아 종류와 특성, 살충제 내성 등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10월 말 질병청 주관으로 관계부처 회의를 가진 뒤 한 박자 늦게 지난 3일 '빈대 정부합동대책본부'를 꾸렸다. 이미 각 지방정부가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행정안전부가 총괄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방제업체를 통한 빈대 방제 비용이 매우 비싸다는 점, 빈대로 인한 대표적 건강 문제인 피부질환, 정신건강 문제의 건강보험 보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빈대 방제 비용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중이다. 정부가 합동으로 내놓을 대책이 빈대로 인한 건강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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