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11 11:26최종 업데이트 23.08.1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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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경기도 안성의 한 장례식장. 9일 옥산동 신축 상가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베트남 출신 형제 노동자 A(30), B(23)씨의 지인들이 빈소를 찾았다. ⓒ 김성욱


"슬퍼요. 다 어려요."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안성의 한 장례식장. 나란히 놓인 두 앳된 영정 앞에 검은 옷을 입은 베트남인 10여 명만이 말 없이 모여 앉아있었다. 향 냄새 나는 조용한 빈소에 베트남 음악이 흘러나왔다. 고인의 지인이라는 한 베트남인은 "불법 많이 죽어. 우리도 불법(미등록 이주노동자)"이라고 했다.


두 영정 속 인물은 베트남 노동자 A(30)씨와 B(23)씨다. 두 사람은 형제다. 형제는 지난 9일 안성 옥산동의 한 신축상가 공사현장 8층에서 함께 일하다 콘크리트 타설 중이던 위층(9층) 바닥이 붕괴해 사망했다. 한국에서 7년간 일해온 형 A씨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형을 따라 2년여 전 한국에 온 동생 B씨는 등록된 노동자였다. 이번 사고로 부상을 입은 4명 중 3명도 외국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한국에서 만난 베트남인 부인과 4살 된 딸을 둔 가장이었다. 빈소에서 만난 A씨 부인의 친척 C(54)씨가 어렵게 인터뷰에 응했다. C씨는 "한집에 살던 남편과 남편 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아이 엄마(A씨의 부인)가 충격이 큰 상태"라며 울먹였다. 그는 "회사(기성건설)는 아직까지도 가족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했다.

C씨는 "아무리 대충 지어도 콘크리트가 무너져 사람이 깔려 죽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면서 "혹시 태풍 예고 때문에 작업을 서두르다 사고가 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번 사고 현장에선 일반적인 거푸집 작업과 달리 아래층에 동바리(지지대)를 받치지 않는 '데크플레이트(철강 패널)' 공법이 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데크플레이트 공법은 공기와 비용이 덜 들고 아래층 작업이 용이해 건설사들이 선호하지만, 측면 이음부 용접이 완벽하지 않으면 붕괴 사고 위험이 높다. 최근 철근을 누락한 '순살 아파트'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는 상황에서 또다시 부실 시공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다음은 C씨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

"사측, 아직도 가족들에게 사과 안 해... 장례 비용 얘기뿐"
  

경기도 안성시 옥산동의 한 신축 상가 공사현장. 베트남 출신 형제 노동자 A(30), B(23)씨가 지난 9일 이곳 8층에서 일하다 콘크리트 타설 중이던 위층(9층)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로 사망했다. ⓒ 김성욱

 
- 형제가 현장에서 함께 일하다 사망했다.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했다. 못 믿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죽는다는 얘긴 들었지만 베트남에 계시는 형제의 부모님은 너무 놀라 쓰러지셨다. 부모님들이 한국에 오시긴 힘든 상황이다."

- 형제로부터 평소 일이 어렵다거나 힘들다는 말을 들었나.

"돈 버느라 바쁘게 일하던 젊은이들이었다. 자주 얼굴 볼 새는 없었다. 옛날에 한 번은 A가 다른 현장에서 몇달 동안 힘들게 노가다 했는데 임금을 하나도 못 받았다고 하소연했던 적이 있다. 불법 체류자니까 아무 말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임금을 체불한 거다. 자기들 필요할 땐 쓰고 싶을 만큼 다 써놓고 이렇게 버린다.

중간에 조금씩 돈 떼가는 거 정도야 다반사라고 했다. 얘기 듣는 내가 다 화가 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면 일단 무시하지 않나. '후진국'이라고. 이래 놓고 우리는 선진국? 한국이 더 후진국 같다."

- 시공사인 기성건설은 사고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나.

"회사가 사고에 대해 우리 가족들에게 직접적으로 설명한 적은 없었다. 아직까지 가족들에게 사과도 안 했다. 그저 '장례 비용은 다 처리해주겠다'는 얘기만 했다. 그 외엔 아무 말도 없다가, 아까(10일) 안성시장님이 장례식장에 방문하셨을 때에야 우리도 옆에 앉혀놓고 처음으로 사고에 대해 설명을 하더라.

회사 사람들 말로는,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데 뭔가가 잘 안 맞아서 틀어져 갖고 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콘크리트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혹시나 태풍이 온다고 하니까, 그 전에 빨리빨리 공사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지... 오만 생각이 다 든다."

- 바라는 게 있다면.

"일단 제대로 조사가 됐으면 좋겠고. 지금 애 엄마(A씨 부인)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너무 크게 받았다. 치료라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관련기사] '순살 아파트' 이어 신축 상가도 붕괴... "위험하다 하면 현장 쫓겨나" https://omn.kr/255nl
 

9일 붕괴 사고가 발생해 2명이 매몰된 경기도 안성시 옥산동의 한 신축 공사장 모습. 이날 사고는 9층 규모의 건물에서 9층 바닥면이 8층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일어났다. 매몰된 2명은 베트남 국적 남성으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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