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8.02 11:57최종 업데이트 23.08.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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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택배사 터미널에서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지난 7월 16일, 전국택배노동조합을 설립하여, 초대 위원장을 지낸 김태완 택배노조 수석부위원장이 급성 뇌출혈로 쓰러져 6일 만에 숨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물론 나는 아는 분도 아니고, 이름도 처음 들었다. 다만, 코로나가 유행 당시 기사들의 과로사가 잇따라 벌어질 때 택배노조가 택배사 전체 및 주요 택배 본사와 근무조건과 관련한 갈등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계속 들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대리점은 노조도 없었고 나와 우리 동료들 역시 노조원이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그들이 파업도 하고, 단식도 하고, 택배사들과 줄다리기를 할 때마다 조합원도 아닌 우리 처우도 조금씩 달라졌다. 명절 연휴 무렵부터 도우미 알바들이 투입되더니 작년부터는 아예 매일 알바들이 상시 배치되어 우리 기사들을 돕고 있다. 우리가 함께 참여해 주지도 않았지만, 혜택은 함께 받았다. 그래서 고인의 소식을 들었을 때 더 미안했다.


지난 연재에서도 언급했듯이 최근에는 노동조합(노조) 활동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꽤 높은 것을 느낀다. 한편 지당하다. 노동운동이 사회의 노동자를 넘어 소외계층 일반을 대변하던 시대를 지나 어느새 노조 자체가 갖는 기득권도 커진 데다가, 또 대기업노조 및 정규직 노동자 이해를 더 대변한다는 일리 있는 반감도 크게 작용하는 탓이다. 그러나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정당한 비판을 넘어 노조 및 노동운동 전반에 대한 과도한 불신은 기득권의 요구만 대변하기 쉽다. 또 정말 어려운 사람들의 절박한 요구와 필요마저 도매금으로 취급해서, 갈수록 노동자들은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코로나 당시 택배노조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택배사들과 협상을 벌이다가 일부 파업을 했다. 당연히 고객들의 불편과 항의도 늘어났다. 여느 날처럼 배송을 하고 있는데, 주차해 놓은 어떤 택배차가 보였다. 무심코 화물함을 보니 '우리는 파업을 하지 않습니다.'(파업하지 않는 ○○택배연대)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객의 항의는 이해할 수 있지만, 틈새시장을 위한 저런 연대는 아니다 싶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삶
 

서울 시내에서 이동하는 배달 라이더들. ⓒ 연합뉴스

 
200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온 후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우리 기사들의 신분과 지위는 매우 애매하고, 불안정하다. ○○택배 이름이 붙은 옷을 입고 ○○택배 기사라는 호칭을 달고 있지만, ○○택배 본사는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그래서 사고가 생기고 문제가 생겨도 본사는 책임이 없다. 또, 우리를 개인사업자처럼 사장님, 소장님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실제로 개인 사업하는 사람들이 전혀 아니다. 고용사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름만 빌린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 택배 기사들보다 위험하고 열악한 이들이 음식(라이더), 마트 배달원일 것이다. 이들의 애매한 신분과 지위는 다른 플랫폼 노동자들과 비슷하다. 그런데 가장 흔한 라이더들의 문제는 역시 안전이다. 시간을 다투는 배달이라 오토바이를 타고 위험한 질주도 흔히 본다.

사실 우리 같은 택배기사들은 도로에서 돌발변수가 많은 배달 라이더들이 주변에 있으면 신경 쓰인다. 그러나 그들의 사정을 잘 알기에 나는 미리 알아서 틈을 내주려고 노력한다. 더구나 한겨울에는 시린 추위로, 지금 같은 한여름에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중무장한 방호복도 이만저만한 시련이 아닐 것이다.

나는 한동안 대리운전도 해봤다. 활동 시간이 퇴근 후 식사, 음주 이후로 몰려 있고 자정 이후에는 콜이 거의 없어서 일할 시간이 짧아 수입도 들쭉날쭉하다. 물론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기사가 대리 요청(콜)을 선택해서 받기에 때로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불만이 있다. 당연하다. 굳이 변명하자면 라이더나 대리운전은 시간이 생명이기에 지역을 부득불 선별하게 되고, 대리운전은 돌아갈 콜이 잡히지 않으면 아까운 시간을 하염없이 허비하는 경우도 생겨 그런 것임을 너그러이 양해 구한다.

정치의 역할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해 보자.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무렵, 우리 친한 동료들은 아침 11시 무렵 물품 정리를 마치고 요기를 위해 회사 3층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 가면 항상 TV가 켜져 있고 뉴스가 흘러나왔다. 대선을 반년 정도 남긴 상황이라 대부분은 정치 관련 뉴스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각 후보와 정당의 정책과 정치 현안이 아니라, 각 후보들 간의 억지 신변털기와 가십들, 일거수일투족 동향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기계적으로 입안에 밥알을 털어 넣으면서도 도대체 저들이 우리 같은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어떤 관심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정치가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인데, TV 보도를 보고 있으면 국민이 정치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저들의 허접한 일거수일투족에 할애할 1/5만 국민의 애환에 눈길을 돌린다면 훨씬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들의 모든 동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정작 중요한 국민 현안들에 대한 무관심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례대표의원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한 것 같다. 국민 눈높이와 사회 현안들에 둔감한 정치인들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소외된 직업 및 서민 영역을 대표할 전문인들이 자기 분야를 대변하게 하는 것이다. 얼마 전 국민의힘의 당론과는 다르게 간호법 제정안에 찬성 투표한 간호사 출신 최연숙 의원이나 장애인 인권 문제를 설득력 있게 제안한 시각장애인 김예지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각 분야와 영역은 각각 이해관계가 있지만, 정치는 그 얽히고설킨 부분을 잘 파악하여 조정하라고 있는 것이다.

수건, 음료수, 빵... 고맙습니다
 

서울 시내 한 빌라에 택배 기사에게 전하는 메모와 음료수가 놓여있는 모습. ⓒ 연합뉴스

 
내가 처음 택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고객에게 '확실하게' 직접 전달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이제는 비대면 배송이 기본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정 고객은 거의 만날 기회가 없지만, 자영업 사장님과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여건에서 장사하고, 사업하는지를 조금은 더 느끼게 된다. 물론 일이 바빠 대부분 서로 인사도 주고받지 못하지만, 이심전심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나누곤 한다.

반면 서로 입장이 달라 잠깐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가리봉동 배송 당시 어느 주점에 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흔하다. 문제는 배송지가 길가 1층일 때는 분실위험이 있어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어딘가 둘 곳을 찾거나 이웃에게 맡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따라 주변도 다 문이 닫혀 고객에게 전화해 봐도 받지 않는다. 큰 길가에 차 세워놓고 너무 오래 있을 수 없어서 가게 앞 광고 선전물 뒤편에 잘 숨겨놓고 고객에게 간단한 메모를 적어 문자를 보냈다. 30분쯤 지났을까, 전화벨 소리를 듣고 확인하니 그 가게 주인이다. 물건을 거기 두었다가 없어지면 어떻게 하냐며, 그럴 때는 다음날 배송하면 되지 않으냐며 화를 내는 거다.

보통은 이런 경우가 없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그런 곳은 안전하다고 해도 무책임하다는 식으로 자꾸 말하기에 나도 화를 냈다. 그러나 그런 경우 전화를 끊고 나면 밥 먹은 게 얹힌 듯 내내 불편하다. 잠시 후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겠다는 간단한 문자를 보내니, 자기도 새벽까지 장사하고 잠이 들어 전화를 못 받았고 이전에 물건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 신경이 날카로웠노라며 미안해한다. 서로의 가려진 부분을 보지 못할 때 자주 발생할 수 있는 다툼이다.

당연히 고마운 분들을 더 자주 만난다. 역시 코로나 시기 택배 기사들의 사정이 뉴스에 많이 등장하자 고객들의 분위기가 달라져 가는 것을 제법 느낄 수 있었다. 장마철에 비를 철철 맞으며 어느 집에 배송했더니 중국 교포인 듯한 고객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며 한사코 우산을 주려고 한다.

고맙지만 우산 쓰고는 배송하기 어렵다고 사양했더니 수건을 쓰라고 준다. 어느 허름한 여인숙 주인은 자기 집 배송 때가 아니어도 내가 끄는 택배 수레 소리를 듣고 종종 찾아 나와 음료수를 건넨다.

구로동의 어느 원룸을 가면 집 앞에 감사하다며 원하는 대로 가져가시라고 예쁘게 적은 쪽지와 함께 작은 빵과 음료수가 잔뜩 든 간식 박스가 있다. 제법 큰 어느 중국요릿집 로비에는 음료 세트가 마련되어 있는데 주인은 내게 배송이 있든 없든 마음껏 드시라고 권한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자신의 필요와 관심을 우선하게 되지만, 그러는 가운데 서로 알지 못했던 상대의 입장과 사정을 알게 된다면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태복음 18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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